결국, 화이트 맥북을 샀다. 그런데 사놓고 딱 세 번 켜보고 일주일째 파우치에 가만히 넣어두고 있다.
맥미니(초기형 PPC 모델)도 싸게 하나 들여놨다. 비디오 서버용으로 산건데 OS X 10. 4 타이거에서는
에어비디오가 안 돌아간다고 해서 그냥 아이튠즈로 라디오 듣는 용도(그냥 PC로 해도 될 것을 굳이)로
돌리고 있다.
그래도 좋다. 책상에 애플 물건이 들어오니 이…뻐야 하는데 요 며칠 그냥 피곤해서 책상을 치우지 않았
더니 엉망진창이다. 안경에 책갈피에 붓에 가위에 생수에 스킨에 충전줄에 책에…
지금 방 안에는 달콤한 냄새가 가득하다. 아침에 빨래를 돌렸는데 깜박하고 나갔다 뒤늦게 들어와서야
깨달았다. 다시 한번 헹굼으로 돌리고는 방 안 가득 지난 일주일간 밀렸던 빨래를 널었다. 방 안에 섬유
유연제 향기가 가득하다.
낮에는 명동에 잠깐 다녀왔다. 머리를 커트하러 갔다. 원래는 그냥 짧게 자르려다가 지난 달에 파마한
게 조금 아까워서 딱 한달만 더 이 머리 유지하기로 했다. 다음 달에는 시원하게 짧게 잘라야지. 낮에는
많이 더웠다. 드디어 정말 '봄'이 왔는지, 반팔에 블레이저 하나 입었는데도 더웠다.
쇼핑을 했다. H&M에서 스트라이프 셔츠를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관두고 그냥 에잇세컨즈에 가서 봄에
맞는 핑크 셔츠나 하나 샀다. 에잇세컨즈, 사실 런칭 전에는 조금 기대했었는데 막상 하고보니 그냥 20대
초반이나 어울릴 법한 조금 어린 느낌의 디자인이 많아 조금 당혹스러웠고 가격대도 전혀 싸다는 느낌이
없다. 하지만 이 셔츠는 쏙 마음에 든다.
그보다 요새 살이 쪄서 뭐 맞는 옷이 없다. 작년에 입었던 베이지 바지 입으려고 보니까 작아서 불편
했다. 짜증이 났다. 정말 운동해야겠다.
…라는 주제에 돌아오는 길에 크리스피 도넛 하프박스에 이것저것 골라담아 사왔다.
아버지는 무사히 퇴원하셨지만 아무래도 집에서 요양을 하다보니 이래저래 답답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는 모양이었다. 어머니와 전화를 하노라니 나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에효"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 딸린 외국인 부부가 사이좋게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로
향하는 모습을 봤다. 그 화목한 모습이 참 훈훈해보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대충 청소를 하고 라디오 방송으로 음악이나 듣다가 그렇게 빨래를 널고 컴퓨터
좀 하다가…
허무하게 흘러가버린 일요일을 아쉬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일어나서 어디 미술 전시회라도
보고 오는건데. 요즘 재미나는 전시회 많던데.
…이렇게 꽤 자세하게 쓴 듯한 '일기'를 쓰지만 정작 중요한 몇몇 이야기는 빼놓았다. 내 기분을 우울
하게 만든, 그래서 이 깊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게 만든 몇 가지 이야기를. 많이 답답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가벼운 절망을 느낀다. 담담하고 무료하게 주말이 흘러가버렸듯, 그렇게라도 좋으니
당분간의 일상이 좀 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조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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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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