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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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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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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그때는 그토록이나 선명하고 세련되고 세상이 멋졌던 것 같은데 왠일인지 사진을 펼쳐보면 누렇고
퍼어런 촌스런 빛깔이 온 세상을 덮고 있는 '풍요의 90년대'를 갓 맞이한 그때 그 시절…



버스타고 전철 타고 그렇게 한 시간도 넘게 걸려서 도착한 놀이공원. 하늘은 맑고 푸르지만 사람도 그만큼
많아 줄 서는 것만 또 30분. 겨우겨우 앞에 앞에 앞에 앞에 앞에만 지나가면 이제 우리 집 차례다! 하고
신이 나 있는데 저기 앞에 써있는데 자유이용권 티켓 가격을 보니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렇게 비쌌나? 아… 엄청 비싸네… 것두 우리 4인 가족이면…어휴. 맨날 엄마
말마따나 저 돈이면 고기가 몇 근인데. 음 갑자기 그냥 동생이 조를 때 나도 조르지 말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솔직히… 놀고 싶다. 봐, 남들도 다 어린이 날이라고 이렇게나 많이 노는데…

'아…'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때까지, 옷이라는건 그냥 엄마가 사다주면 그만인 그런 어린 초딩
3학년 일 뿐이었지만, 그 어린 눈에도 엄마 아빠의 옷이, 다른 집 엄마 아빠들의 옷에 비해 무언가
초라하고 없어보인다는 것을. 그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우리 엄마가 얼굴은 더 이쁜데'

그런데도 귀티 나보이는 옷을 입은 아줌마들의 모습을 보니까 왠지 속상했다. 하지만 일단은 잊기로
했다. 놀이공원에 온 거니까.



"에? 얼마요? 그렇게 비싸요? 어휴, 이건 뭐 완전 날강도구만 날강도…이거 뭐 완전…"

아니 난 아까 저 뒤에 있을 때부터 이미 확인했건만 그때까지 뭐하고 있으셨는지, 아버지는 자유이용권
가격을 듣더니 꽤나 부담스럽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면서, 뒤로도 사람이 그렇게나 많이 서있는데도  
'날강도'라는 말을, 그 어린 우리들 앞에서, 또 참으로 앳된 얼굴의 그 죄없는 매표소 알바생 앞에서
서슴없이 신랄하게 툴툴 대었다. 그 모습이 참 어린 내가 보기에도 민망하고 부끄러웠고 엄마는 엄마
대로 눈을 흘기면서 아빠 옆구리를 쿡 찌른다. 난 그 쿡 찌르는 것도 싫었다.

"에휴 이거 비싸서 안 되겠는데. 그럼 셋이 보고 와…"

급기야는 그 말과 함께 이마를 벅벅 긁는 아버지의 모습에 엄마는 이미 있는대로 짜증이 난 듯 싶지만
다행히 매표소 누나가 "저 자유이용권이 부담스러우시면, 빅4 티켓이나 입장권만 구입하셔서 들어가신
다음 탑승하고 싶으신 것만 탑승하실 때 따로 돈을 지불하시면 됩니다" 라는 안내를 해준다. 

"그건 얼마요" 하는 말에 답을 듣고는 '몇 천원대'라는 말에 좀 표정이 누그러진 아버지는 입장권만
구입을 하여 들어간다.

내 앞으로도 서있던 몇 가족, 그리고 아마도 그 뒤로도 네 가족 모두가 입장권만 사서 입장한 케이스는
아마 못 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우리 가족의 첫-그리고 마지막이 된- 놀이공원
나들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제서야 신이 조금 났다. 드디어 우리 집도 이런데를 다 와보
는구나. 사진 많이 찍었으면 좋겠다. 분명 우리 집 사정상 자주는 못 올텐데.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서
나중에 오고 싶을 때 사진 보면서 참게.


여전히 "에휴 드럽게 비싸구만" 하면서 툴툴대는 아버지에게 드디어 엄마는 "그만해에? 어? 계속 그냥
그렇게 툴툴툴툴 대지?" 하고 짜증 섞인 핀찬을 주고, 그제서야 아버지도 입 다물고 놀이공원의 풍광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좋긴 좋구만"

희비의 전환이 빠른 아버지답게 주변의 알록달록, 동화 속 마을같은 분위기에 마음이 풀어진 듯 하고
엄마 역시 표정이 밝아진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래봤자 당시 엄마의 나이 30대 중반… 한참 놀러도 다니고 싶을 때고, 분명 그
친구들 중에 시집 잘간 년들은 해외여행도, 하다못해 어디 제주도라도 몇 번이나 다녀왔을텐데. 도대체
우리 엄마는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기에 고생을 그리도 많이 했을까… 


꺽다리 외국인 광대가 웃는 얼굴로 지나가면서 동생에게 윙크를 하고, 엄마의 표정은 밝아진다. 아빠는
픽 웃고 나는 그 눈치를 보며 나 역시 웃는다. 그리고 그렇게 이미 여기까지 대중교통으로 오느라 한참
뻐근해진 다리가 많이 무거워졌을 무렵, 그제서야 우리 가족은 첫 놀이기구를 마주한다.

"박스야, 둘이 타. 동생 손 꼭 잡고 타야 돼?"
"엄마는?"
"에휴 엄마는 무서워서 이런거 못 타. 바이킹 이런거 전혀 못타"
"아 엄마도 타"
"에휴 됐어 됐어"

결국, 여기까지 와서도 그저 놀이기구 타는건 나와 동생 뿐. 아버지도 분명 못내 타고 싶어하는 눈치
였지만 그는 그저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여기 봐봐" 하면서 손을 젓는 엄마의 모습에, 솔직히 그냥 놀이기구에만 집중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대로 우리를 보는걸로 놀이기구를 못 타는 아쉬움을 대신할게 분명하니 나는 한껏 웃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아버지는 저 아래서 연신 셔터를 터뜨렸고, 자꾸 터지는 플래시가 좀 민망했고
내 뒤에 앉은 누나가 분명 뭐라고 짜증내하는 듯 했지만 난 애써 모른 척 했다.



"재밌어!"
"어 완전 재밌어"
"어이구, 그렇게 재밌었어?"

동생은 재밌다고 난리, 아까만 해도 다리 아프다고 찡찡대더니 이제는 하나도 안 아픈 듯 그저 신이
났다. 솔직히 나도 흥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엄마 다리 안 아파?"
"안 아퍼. 다리 아퍼?"
"아니 안 아퍼"

하지만 우리 셋과는 달리 아버지는 "어휴 힘들다" 하면서 이미 저기 벤치에 앉는다. 불룩한 배가 좀
보기흉했고 엄마는 또 아버지에게 다가가 뭐라고뭐라고 핀찬을 준다. 어쨌거나 동생은 "저거, 저거
타자 저거" 하면서 저 멀리 있는 꽤 무서워보이는 놀이기구를 가리킨다.




입장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88열차에서 동생이 키 제한으로
탑승을 못하면서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자유이용권과는 달리, 입장권과 별도로 놀이기구를 탈 때 내는 요금은 생각보다 비쌌다. 차라리 이럴
거면, 그냥 자유이용권을 사는게 싸게 먹히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자유이용권을 떠나 이미 벌써
아버지가 쓴 돈은…

'그만타자'

조금, 씁쓸했다. 솔직히 내 안에서도 그냥 하나만 더 타자, 하는 유혹이 있었지만, 이미 그건 아까부터
한 생각이다.

"아우 나 다리 아퍼. 그리고 배고파"
"배고파?"
"어 그만탈래"

나의 말에 동생은 눈이 똥그래지면서 "난 더 탈래, 어? 형, 저거 하나만 타자, 저거 하나만, 어?" 하고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내 팔을 붙잡았지만, 나는 그 애원을 뿌리쳤다.

"밥 먹으러 가자"

결국 동생은 울음을 터뜨렸지만, 동생의 울음 한번이 아버지의 지갑을 비우는 것보다는 싸게 먹힌 것
이라고 생각했다.



"어휴, 이건 뭐 진짜 어휴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구만"

지갑이 많이 가벼워진 탓일까. 아버지의 탄식에 이번에는 엄마도 별 말을 안 하며 그의 말에 암묵적
동의를 하는 듯 했다. 놀이공원 내 식당. 그냥 햄버거 먹자고 할 것을 괜히 엄마 아빠 생각에 고기 
먹자고 식당으로 가자고 했는데… 

"주문 받겠습니다"
"이거 2인분만 주세요"
"아 죄송합니다 손님, 여기는 인원 수대로 주문하셔야 되요"

그 말에 아버지는 "아 여기 애 둘인데 무슨 인원 수대로 주문을 해요" 하고 역정을 내고, 종업원은
다소 당혹스러운 눈치였지만 "죄송합니다 손님 인원수대로 주문하셔야 되요" 하고 똑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참 그 년도 어지간히 꽉 막힌 년인 것이, 암만 어설픈 자본주의 고도화 시기
의 90년대라고 하더라도 지가 업주도 아니고 알바 년이면 적당히 요령껏 할 수도 있었을지 않을까
싶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회경험 없이 갓 현장에 투입된 어린 여자애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었겠지. 

엄마는 또 엄마대로 "우리 애기들이 많이 안 먹으니까, 그냥 2인분만 주문할께요" 하고 좋게좋게
말하는 그 찰나에 눈치없는 동생은 "아냐, 나 많이 먹을거야 많이!" 하고 웃어제끼고 그 눈치없음에
그만 내가 다 불끈해서 "똑바로 앉아 새끼야" 하고 화를 낼 뻔 하는데…  

슬몃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 단위 손님들 모두 이만큼씩 풍성하게 고기를 놓고 먹는데 우리 집만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구나. 슬그머니 부끄러운 마음도 들고 아버지도 그런 생각이었는지
"거 그럼, 4인분 주쇼" 하고 말하고 알바녀도 "네에" 하고 받아적으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아녜요
아녜요 2인분만 주세요" 하고 고집을 부린다.

조금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을 무렵, 저 쪽에 서있던 센스있고 참 이쁘게 생긴 여자 매니저가 서둘러
다가오더니 상황을 재빨리 파악한 후 "아 알겠습니다. 2인분 주문받겠습니다" 하고 알바녀를 데리고
저기 주방쪽으로 가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겨우 수습된 상황 속에서 벌개진 얼굴을 내리깐다. 

고기라고 맛이 있을 리 없다. 남들은 다 맛있게 먹는 듯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곤하고 힘들지만 아버지는 아까 식당에서부터 말이 없고 엄마는 엄마대로 
겨우겨우 동생 칭얼거리는거나 받아주지 마찬가지로 말이 없다. 나만 중간에서 그 암담한 분위기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동생은 또 발이 아프다고 지랄이다. 전철 안에서 한 오지랖 
넓은 할아버지가 떼끼 이 눔아 힘들긴 니 엄마가 힘들지 니가 힘드냐? 하고 횬을 낼 때까지. 

이미 해는 뉘엇뉘엇 넘어가고, 무거워질대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겨우 버스에 탔더니 다행히도
자리가 있다. 여전히 부모님은 말이 없고 나는 애써 분위기를 전환할까 "아빠 카메라 좀 찍어줘"
하고 한 마디 하는데…

순간 움찔하며 아버지가 허둥지둥 카메라를 찾는다. 엄마도 "왜? 두고 왔어?" 하고 당혹스러워
하다가 잠든 동생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며 모두 겨우 안도한다.

"거 잘 챙기라니까 남자가 뭐 하나 칠칠맞게 하는게 없어"

하는 엄마의 잔소리에 드디어 참고 참았단 아버지의 짜증이 조용하게 뿜어져 나온다.

"이 여자가 진짜…"

아버지의 정색하는 '이 여자'라는 표현과 함께 버스 안에서 부부싸움은 아주 조용하게 시작되고
버스에서 내려서도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먼저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참나"

하는 아버지의 투덜거림과 함께 이미 마음이 무거워진 나. 집에 돌아와서도, 잠긴 안방 문과 그 안에서
오가는 고성에 동생은 "엄마 아빠 왜 싸워?" 하고 나한테 묻고 나는 대답 대신 그냥 한숨만 대쉰다.


그 암울하고 일요일 오후의 먹먹하고도 무거운 분위기에, 돈은 돈대로 쓰고 망쳐버린 가족 놀이공원
여행이 참 씁쓸하게 느껴졌고 그 어린 나이에 나는 그만 이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마음 깊이,
또 깊이 그리게 되지만 끝끝내 그 가난이라는 족쇄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오늘날까지도 이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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