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지 못했다. 두 시간이나 겨우 잤을까. 빙빙 도는 머리를 붙잡고 승희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술 기운이 온 몸 핏줄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 느낌에 서있기조차 힘들어 그녀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
쪼르륵, 하고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컵에 찻주전자 한 가득 끓여놓은 보리차를 따라서 한 모금 마셨다.
침대에 눕기 전 우유 한 팩을 다 마시고 잤거만 잠을 자지 못해서인지 얼굴이 팅팅 부었다.
"하아"
한숨 한번 쉬는데도 온 몸의 기운이 다 빨려나가는 듯 하다. 힘들어서 머리를 잠깐 젓는데 세상이 다 흔들
리는 듯 했다. 몸살인가? 싶어 머리를 짚었지만 다행히 열은 없었다. 그저 간밤에 집요하게 술을 멕이는
개진상 때문에 술을 드립다 퍼마신 덕분에 이렇게 된 듯 했다. 룸에서 풀로 넘어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술을 너무 못 마셔서인데 아, 정말이지.
'이러다 몸 다 상하겠네'
다시 협탁 위에 손을 뻗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스팸 문자 두 개를 제외하고는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원래부터 여자애들보다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타입이라 딱히 친구라고 부를만한 애들도
별로 없었고, 이 일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혹시라도 어딘가 알려질까 싶어서 그나마도 일체 연락을 끊
었다. 옆에서 얼쩡거리던 몇몇 남자들도 몇 달 연락은 안 받아주니 다 떨어져 나갔다.
기가 막혀 웃음이 픽 흘러나왔지만 상관없었다. 그보다는 팔이 욱씬 욱씬 쑤시고 등이 뻐근한게 아무
래도 이러다 몸살 나겠다 싶어서 그녀는 마사지샵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예약을 할까 하는데요… 아 잠시만요"
시계를 확인한 그녀는 아차 싶어 "나중에 다시 전화할께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벌써 출근 준비할
시간이 다 됐다. 뭐야. 시간이 붕 하고 날아가버린 느낌이었다. 출근을 준비할 시간. 그녀는 서둘러
채비를 했다.
"하하"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하나하나가 다 온 몸을 훑어내리는 그 느낌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물줄기에 몸을 맡긴 채로 씻고는 대충 화장을 하고, 사지가 따로 노는 몸을 이끌고 건물
을 나섰다. 무뚝뚝한 기사의 무미건조한 인사를 받으며 차에 올랐다.
야구장에 도착해서 다시 제대로 화장을 하고 있노라니 민주 언니가 아는 체를 했다.
"안녕, 어제 잘 들어갔어?"
"어후, 아뇨. 저 아직 술도 다 안 깼어요"
그러자 민주가 다가와 옆에 앉아 말했다.
"그치? 어제 너 진짜 제대로 진상 걸렸더라. 아니 차라리 그냥 막 무대포 같으면 뭐라고 하면 되지만
그렇게 집요하게 들이대는 새끼들이 아 진짜 제일 조심해야 돼 제일. 생긴건 멀쩡하게 생긴 것들이.
그나저나 정말 몸 괜찮겠어?"
"원래 그런 사람들이 더 그렇잖아요. 네 괜찮아요 몸 찌뿌둥하긴 한데"
그래도 걱정해주는 누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낄 무렵 민주가 컨디션 한 병을
건내주었다.
"수고해"
워낙에 일하는 언니들 수가 많은 곳이고 또 스스로도 딱히 싹싹한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친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동료도 없었지만, 그래도 민주 언니는 제법 친한 사이. 특히 이렇게 배려해
주는게 정말이지 고마웠다. 가끔은 이렇게 남을 챙길 줄 모르는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오늘 시작부터 장난 아니네"
옆에서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웨이터 영길의 말처럼 오늘은 일찍부터 손님들이 많이 들이닥쳤다. 가게
오픈과 함께 온 손님들… 불경기는 불경기인 모양이다. 몇 만원이라도 깎아주는 이른 시간에 오는
손님이 전보다 많이 늘었다. 물론 이 시간대가 아무래도 초이스하기도 쉽고 이쁜이 고르기도 좋다는
소문이 그만큼 퍼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룸 두 어개를 허탕치고 세 번째 방에서 초이스 되었다. 접대 자리는 아닌 듯 했지만 나름대로 서로들
사이에서 적당히 체면을 차리고 하는 자리인 모양. 웨이터한테 팁으로 5만원짜리를 꽂아주는 모습에
왠 호구인가 하는 생각마저 했지만 호구라서 그랬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서로들 사이에 허세가 잔뜩
들어간 자리인 듯 했다. 담당 구좌인 박지성 상무도 "잘해드려. 중요한 자리인가 봐" 하고 귀뜸을 해
주었다.
"어머 어쩜 이렇게 멋있는 신사 분들이…"
인사전투를 스킵하자는 자리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말에 초이스 된 승희와 수진, 지원은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각자의 손님들에게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적당히 타이트한 넥타이도 헐겁게 풀어
주고, 은근슬쩍 허벅지도 스킨십 하면서 술도 따라주고 하다보면 자연스레 분위기도 풀어지게 되고
다행히 같이 들어온 수진, 지원 모두 눈치가 빠른 타입들이라 일하기 편했다.
처음에는 눈치만 보던 샌님 아저씨들도 슬슬 풀어지고, 수진이 노래를 부르면서 스트립쇼를 하자
본격적으로 달아오른 룸 안의 분위기는 어느새 열락의 장으로 변해있었다.
"잘하는데"
승희는 자신을 칭찬해 준 남자에게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
"더 잘해드릴 수도 있어요"
"기대되는데"
"시간 슬슬 됐는데"
"그럴까. 여러분, 슬슬 본 게임 하러 가죠"
자리를 옮겨 2차. 남자는 이런 곳의 경험이 별로 없었는지 모텔에서의 2차를 마치고는 또 따로 팁을
주었다.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하면서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자 남자는 더욱 마음에 들었는지
"잘해서 주는거야. 받어. 그리고 조만간 또 올 때 더 잘해줘" 하면서 팁을 꾹 찔러주었다. 감사히 받곤
가게 휴게실로 돌아온 승희는 잠시 쉬면서 시계를 보았다.
'9시 반…'
시간이 참 안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오늘 첫 테이프를 매너 깔끔한 손님을 받아서 제법 편
하고 기분도 좋았다. 이런 손님만 계속 받을 수 있다면 이 일 오래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만큼. 그래도 역시 오늘은 몸 컨디션이 딱히 좋은 상태가 아니라서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을 따름이었다.
"자자 언니들 또 일합시다"
노크와 함께 문 빠꼼히 열고는 도와달라는 박지성 상무의 말에 승희를 비롯해 몇몇 언니들이 일어나
홀로 향했다.
"한 명은 몇 번 와 본 손님이지만 그쪽도 뭐 초짜나 다름없고, 나머지 두 명은 생전 처음 이런데 오는
손님이라니까 서비스 잘해드려. 나 아는 사람 통해서 온 사람들이야"
승희, 아라, 윤미가 초이스 되었고 박지성 상무는 그녀들에게 복도에서 잠깐 귀뜸을 해주었다. 그
말에 아라가 "아, 그 오빠 소설 블로그 거기 통해서 온 손님들이에요?" 하고 뭔가 아는 척을 했다.
박지성상무가 "어 맞어"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아라가 무척 좋아했다.
"언니들 거기 통해서 온 손님들 대부분 매너 괜찮고 재밌어요. 우리 오늘 잘해봐요"
아 이렇게 싹싹한 애들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아까도 괜찮았는데 어쨌든 오늘 같이 일하는 파트너
조 운이 제법 괜찮은 듯 하다. 그래, 가끔은 이렇게 편하게 일하는 날도 있어야지. 대신 오늘같은 날,
제대로 흥을 내서 놀아보자고 다짐하며 승희는 같이 작게 "파이팅!"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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