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즉석으로 예거 밤을 만들어 온 승진이 그렇게 묻자 탁자에 앉아 신문을 보던 형준은 픽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둘 다 사귀던지"
형준의 말에 "에이, 그건 아니지" 하면서 고개를 저은 승진은 잔에 입을 대더니 말했다.
"내가 저번에 양다리 걸치다가 개좆되고 끝났잖아. 씨발, 좀만 일찍 쳐냈으면 외제차 한 대가 딱 내 입으로
걍 들어올 뻔 했는데"
형준은 신문 한 페이지를 또 넘기며 물었다.
"그건 뭔 소리야?"
승진은 혼자 쿡쿡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한별이 걔, 아예 그냥 한국 들어오려고 했거든. 아 형 한별이 아나? 알지? 거 왜 오뎅바에서 봤던 애"
형준은 눈을 그대로 신문에 고정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승진은 말을 이었다.
"걔가 내 차 구리다고, 가오 안 선다고 걍 지 차 아예 나 타라고 했거든. 어차피 자기는 그냥 미니 새로
뽑을 거라고 했거든"
형준은 픽 웃었다.
"야, 그냥 그럼 사귀면서 잠깐 빌려타는거지 그게 어떻게 니 차가 되냐?"
승진은 정색을 했다.
"아냐, 아예 그랬다니깐. 이 차 걍 오빠 줄까? 아빠한테는 걍 팔았다고 하면 돼 막 지랄하면서"
"에이"
형준이 무시하는 듯 하자 승진도 나름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아 아니래두? 근데 씨발 난 그때 중고 외제차 이거 팔아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거, 걍 두고 이렇게 빌려
타고 다니면서 대신에 슬슬 이것저것 빼먹어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혜주랑 문자한거 제대로 딱 걸려서
그때부터 비리비리 하다 시마이 됐잖아. 아 그때 헤어지면서도 그 년이 얼마나 지랄을 까던지. 나 이제
다시는 양다리 안 걸친다 진짜"
형준은 내심 별로 와닿지않는 다는 듯 시큰둥하게 신문 한 페이지를 또 넘겼다. 그리고 물었다.
"근데 지금 달라붙는다는 둘은 어떤데?"
소파에 다리를 쭉 뻗으면서 기지개를 편 승진은 담배 생각이 나는지 잠깐 뒷주머니를 뒤적이다 보이지
않자 그냥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어, 하나는 피트니스 클럽 요가 강사. 아 몸매 죽여. 제대로야. 돈은 뭐… 개털이고. 스물 일곱살이고,
괜찮아 진짜 괜찮아"
요가 강사라는 말에 픽 웃은 형준.
"또? 다른 하나는?'
승진은 득의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얘가 좀 제대로야. 아부지가 베네주엘라 대사고, 지도 외무고시 1차까지는 합격을 했는데 다음부턴
안 되서 그냥 다 관뒀대. 또 뭐 이제 외무고시가 없어진대나? 여튼 그래서 지금은 걍 공기업 다니는데
삼삼해. 얼굴도 괜찮아. 아 몸매는 요가 강사한테 안 되지"
형준은 신문을 슥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말했다.
"이야, 그런 애를 어디서 만났냐? 스펙 장난 아닌데? 얼굴 되지 머리 되지 배경 되지 완전 초 일급수네.
근데 그런 애가 너 좋대? 걍 또 혼자 김치국 마시는거 아냐?"
승진은 손을 내저으며 "아 참, 형은 의심이 문제야 문제. 아 이래서 신용사회가 힘들어" 하면서 주머니
에서 폰을 꺼내서 그녀와 며칠간 주고받은 문자를 보여주었다. 핑퐁처럼 틱톡택톡 주고받은 문자 속
에서 분명 여자애의 설레임과 호감을 듬뿍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대로 또 슥 통화기록까지 죽
확인해보니 거의 매일 밤마다 통화를 장시간 하고 있었다.
"이건 뭐 벌써 다 넘어왔네. 떡은? 쳤냐?"
형준의 물음에 승진은 다시 휴대폰을 빼앗아 가며 말했다.
"아 그걸 말이라고 해요 형? 떡을 쳐봐야 연애를 할지 안할지 정하지. 처음 만난 날 잤어 만난 날. 아
내가 걔를 으트게 만났나면, 청담에 엘루이 갔다가 딱 걔가 지 친구들하고 생일파티하고 왔대나 봐.
뭐 그래서 우리 애들이랑 쪼인해서 어찌어찌 놀다가 뭐…"
형준은 그제서야 승진이 만들어 온 예거 밤으로 목을 축였다.
"에이 그럼 걍 엔조이네. 너 자꾸 맨날 김치국 퍼마실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문 형준을 바라보며 승진은 "아이 참"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형준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나저나 형은 왜 자꾸 연애를 안 해?"
"연애하면 뭐가 있는데"
"뭐가 있기는. 젖과 꿀이 있지"
젖을 말할 때는 가슴을 만지고 꿀을 말할 때는 가랑이 사이를 만진 승진을 보며 "새끼 추잡스럽기는" 하며
정색을 하면서도 픽 웃은 형준.
"임마 이 형님은 할 일이 많다"
형준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은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내일 뭐하냐 ]
약 5분 정도의 지루한 텀을 보낸 후 그녀의 답장이 왔다.
[ 걍 뭐. 왜? ]
형준은 잠깐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를 고민하다가 다시 답장을 보냈다.
[ 내일 밥이나 먹자 ]
그리고 곧바로 답장이 왔다.
[ 콜 ]
쿨해서 좋은 년. 하고 씩 웃은 형준에게 승진이 물었다.
"누구야? 또 은정이 누나?"
'또' 라는 말에 살짝 빈정이 상했지만 내색 안 하고 "어" 하고 대답한 형준. 그러나 승진은 재차 태클을
걸어온다.
"아 형, 끝난 여자랑 언제까지…알았어 미안해"
끝난 여자 라는 말에 순간 형준의 눈꼬리가 치켜올라간 것을 발견한 승진이 곧바로 손을 내밀며 미안
하다고 사과하고 승진은 고개를 저었다. 형준도 잠시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신문을 접고 2층으로
형했다.
"아 형 혹시 기분 상한거야? 아 형, 미안해. 어? 기분풀어 형. 아 나는…"
"아냐 임마. 그냥 피곤해서 자려고"
"…어"
2층에 올라와 침대 누운 형준은 뜬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승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헤어진
여자친구 은정과 3년째 '친구'로 지내는 것… 솔직히 첫 1년 간은 가끔 잠도 자고 그랬다. 하지만 그
어느 날 그녀가 일을 치루고 담배를 피우면서
"더이상 우리,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나 더이상 너 안 만날거야"
하고 선을 그었기에 붙잡으면서 관계까지 포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낸 2년. 뭘 생각하는거지. 뭘
바라는건데. 언젠가 다시 인연이 되어 연인이 되길 바라는거? 아니면 둘 중 어느 하나가 먼저 결혼식
하는 모습 보는거? 뭘 바라는건데?
'몰라'
그렇다고 그 미련이 딱히 크게 남은 것도 아니다. 정? 글쎄…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가끔 친구
처럼, 이렇게 영화나 보고 맛있는거나 먹고 서로 지내는 이야기나 좀 하고…
'그럴 바에야 여자친구를 사귀면 되잖아'
그렇지. 당연히 그렇지. 근데 그냥 왠지… 모든 것을 불태우고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아서 그렇다. 더이상
다른 누구와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아가고 조심스럽게 쌓아나가는 것이 귀찮다. 그냥 친구처럼 오래된
연인처럼…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분명 그녀는 그녀대로 어떤 남자들과 자고 다닐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게
뭔 구질구질한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녀의
"여자는 안 만나고 다녀? 여자친구야 그렇다고 쳐도, 섹스는 어떻게 해결해?"
하는 질문에 그저 어색한 웃음과 "그냥 뭐, 젊은 남자가 하는 건 다 하면서…" 하고 어설픈 허세를 부려볼
따름. 그리고 그때 그녀의 얼굴에 살짝 스쳐지나간 서운함에 묘한 기쁨도 느끼고. 물론 그 직후의 "잘하고
다니나 보네" 라는 말에 그저 어깨만 으쓱했지만.
'니가 잘하긴 잘했는데'
솔직히 은정이만한 여자가 없었다. 그렇게 궁합이 잘 맞을 수가 없었다. 또 잘했다. 그래서 서로의 몸에
대해 아직까지도 같이 술을 한잔 하다보면, 생각이 그쪽으로 가면 꼴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 그녀가 직접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했다.
"아 손 치워. 그렇게 주무르면 나… 후우… 하하"
말꼬리를 흐리긴 했지만 그 뒷 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행동과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과연 남녀가 다른 것은, 그녀는 그런 와중에서도 거절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알잖아. 나 자꾸 그러다 다시 오빠한테 매달릴지도 몰라. 그리고 이번에 또 우리 그러면, 피차 다 끝장
나는거 알잖아?"
길게 한숨을 내쉬며 형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로 손을 뻗어 침대 옆 협탁의
아이폰 도크 스피커 리모콘을 눌렀다. 곧이어 신나는 클럽음악이 흘러 나왔다. 몸이 저절로 들썩여지는
음악이었지만, 오히려 형준은 쏟아지는 잠에 몸을 더 편한히 뉘일 수 있었다.
그렇게, 은정을 처음 만난 그 때 그 순간의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으니까.
말했다.
"그럼 둘 다 사귀던지"
형준의 말에 "에이, 그건 아니지" 하면서 고개를 저은 승진은 잔에 입을 대더니 말했다.
"내가 저번에 양다리 걸치다가 개좆되고 끝났잖아. 씨발, 좀만 일찍 쳐냈으면 외제차 한 대가 딱 내 입으로
걍 들어올 뻔 했는데"
형준은 신문 한 페이지를 또 넘기며 물었다.
"그건 뭔 소리야?"
승진은 혼자 쿡쿡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한별이 걔, 아예 그냥 한국 들어오려고 했거든. 아 형 한별이 아나? 알지? 거 왜 오뎅바에서 봤던 애"
형준은 눈을 그대로 신문에 고정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승진은 말을 이었다.
"걔가 내 차 구리다고, 가오 안 선다고 걍 지 차 아예 나 타라고 했거든. 어차피 자기는 그냥 미니 새로
뽑을 거라고 했거든"
형준은 픽 웃었다.
"야, 그냥 그럼 사귀면서 잠깐 빌려타는거지 그게 어떻게 니 차가 되냐?"
승진은 정색을 했다.
"아냐, 아예 그랬다니깐. 이 차 걍 오빠 줄까? 아빠한테는 걍 팔았다고 하면 돼 막 지랄하면서"
"에이"
형준이 무시하는 듯 하자 승진도 나름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아 아니래두? 근데 씨발 난 그때 중고 외제차 이거 팔아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거, 걍 두고 이렇게 빌려
타고 다니면서 대신에 슬슬 이것저것 빼먹어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혜주랑 문자한거 제대로 딱 걸려서
그때부터 비리비리 하다 시마이 됐잖아. 아 그때 헤어지면서도 그 년이 얼마나 지랄을 까던지. 나 이제
다시는 양다리 안 걸친다 진짜"
형준은 내심 별로 와닿지않는 다는 듯 시큰둥하게 신문 한 페이지를 또 넘겼다. 그리고 물었다.
"근데 지금 달라붙는다는 둘은 어떤데?"
소파에 다리를 쭉 뻗으면서 기지개를 편 승진은 담배 생각이 나는지 잠깐 뒷주머니를 뒤적이다 보이지
않자 그냥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어, 하나는 피트니스 클럽 요가 강사. 아 몸매 죽여. 제대로야. 돈은 뭐… 개털이고. 스물 일곱살이고,
괜찮아 진짜 괜찮아"
요가 강사라는 말에 픽 웃은 형준.
"또? 다른 하나는?'
승진은 득의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얘가 좀 제대로야. 아부지가 베네주엘라 대사고, 지도 외무고시 1차까지는 합격을 했는데 다음부턴
안 되서 그냥 다 관뒀대. 또 뭐 이제 외무고시가 없어진대나? 여튼 그래서 지금은 걍 공기업 다니는데
삼삼해. 얼굴도 괜찮아. 아 몸매는 요가 강사한테 안 되지"
형준은 신문을 슥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말했다.
"이야, 그런 애를 어디서 만났냐? 스펙 장난 아닌데? 얼굴 되지 머리 되지 배경 되지 완전 초 일급수네.
근데 그런 애가 너 좋대? 걍 또 혼자 김치국 마시는거 아냐?"
승진은 손을 내저으며 "아 참, 형은 의심이 문제야 문제. 아 이래서 신용사회가 힘들어" 하면서 주머니
에서 폰을 꺼내서 그녀와 며칠간 주고받은 문자를 보여주었다. 핑퐁처럼 틱톡택톡 주고받은 문자 속
에서 분명 여자애의 설레임과 호감을 듬뿍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대로 또 슥 통화기록까지 죽
확인해보니 거의 매일 밤마다 통화를 장시간 하고 있었다.
"이건 뭐 벌써 다 넘어왔네. 떡은? 쳤냐?"
형준의 물음에 승진은 다시 휴대폰을 빼앗아 가며 말했다.
"아 그걸 말이라고 해요 형? 떡을 쳐봐야 연애를 할지 안할지 정하지. 처음 만난 날 잤어 만난 날. 아
내가 걔를 으트게 만났나면, 청담에 엘루이 갔다가 딱 걔가 지 친구들하고 생일파티하고 왔대나 봐.
뭐 그래서 우리 애들이랑 쪼인해서 어찌어찌 놀다가 뭐…"
형준은 그제서야 승진이 만들어 온 예거 밤으로 목을 축였다.
"에이 그럼 걍 엔조이네. 너 자꾸 맨날 김치국 퍼마실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문 형준을 바라보며 승진은 "아이 참"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형준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나저나 형은 왜 자꾸 연애를 안 해?"
"연애하면 뭐가 있는데"
"뭐가 있기는. 젖과 꿀이 있지"
젖을 말할 때는 가슴을 만지고 꿀을 말할 때는 가랑이 사이를 만진 승진을 보며 "새끼 추잡스럽기는" 하며
정색을 하면서도 픽 웃은 형준.
"임마 이 형님은 할 일이 많다"
형준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은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내일 뭐하냐 ]
약 5분 정도의 지루한 텀을 보낸 후 그녀의 답장이 왔다.
[ 걍 뭐. 왜? ]
형준은 잠깐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를 고민하다가 다시 답장을 보냈다.
[ 내일 밥이나 먹자 ]
그리고 곧바로 답장이 왔다.
[ 콜 ]
쿨해서 좋은 년. 하고 씩 웃은 형준에게 승진이 물었다.
"누구야? 또 은정이 누나?"
'또' 라는 말에 살짝 빈정이 상했지만 내색 안 하고 "어" 하고 대답한 형준. 그러나 승진은 재차 태클을
걸어온다.
"아 형, 끝난 여자랑 언제까지…알았어 미안해"
끝난 여자 라는 말에 순간 형준의 눈꼬리가 치켜올라간 것을 발견한 승진이 곧바로 손을 내밀며 미안
하다고 사과하고 승진은 고개를 저었다. 형준도 잠시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신문을 접고 2층으로
형했다.
"아 형 혹시 기분 상한거야? 아 형, 미안해. 어? 기분풀어 형. 아 나는…"
"아냐 임마. 그냥 피곤해서 자려고"
"…어"
2층에 올라와 침대 누운 형준은 뜬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승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헤어진
여자친구 은정과 3년째 '친구'로 지내는 것… 솔직히 첫 1년 간은 가끔 잠도 자고 그랬다. 하지만 그
어느 날 그녀가 일을 치루고 담배를 피우면서
"더이상 우리,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나 더이상 너 안 만날거야"
하고 선을 그었기에 붙잡으면서 관계까지 포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낸 2년. 뭘 생각하는거지. 뭘
바라는건데. 언젠가 다시 인연이 되어 연인이 되길 바라는거? 아니면 둘 중 어느 하나가 먼저 결혼식
하는 모습 보는거? 뭘 바라는건데?
'몰라'
그렇다고 그 미련이 딱히 크게 남은 것도 아니다. 정? 글쎄…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가끔 친구
처럼, 이렇게 영화나 보고 맛있는거나 먹고 서로 지내는 이야기나 좀 하고…
'그럴 바에야 여자친구를 사귀면 되잖아'
그렇지. 당연히 그렇지. 근데 그냥 왠지… 모든 것을 불태우고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아서 그렇다. 더이상
다른 누구와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아가고 조심스럽게 쌓아나가는 것이 귀찮다. 그냥 친구처럼 오래된
연인처럼…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분명 그녀는 그녀대로 어떤 남자들과 자고 다닐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게
뭔 구질구질한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녀의
"여자는 안 만나고 다녀? 여자친구야 그렇다고 쳐도, 섹스는 어떻게 해결해?"
하는 질문에 그저 어색한 웃음과 "그냥 뭐, 젊은 남자가 하는 건 다 하면서…" 하고 어설픈 허세를 부려볼
따름. 그리고 그때 그녀의 얼굴에 살짝 스쳐지나간 서운함에 묘한 기쁨도 느끼고. 물론 그 직후의 "잘하고
다니나 보네" 라는 말에 그저 어깨만 으쓱했지만.
'니가 잘하긴 잘했는데'
솔직히 은정이만한 여자가 없었다. 그렇게 궁합이 잘 맞을 수가 없었다. 또 잘했다. 그래서 서로의 몸에
대해 아직까지도 같이 술을 한잔 하다보면, 생각이 그쪽으로 가면 꼴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 그녀가 직접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했다.
"아 손 치워. 그렇게 주무르면 나… 후우… 하하"
말꼬리를 흐리긴 했지만 그 뒷 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행동과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과연 남녀가 다른 것은, 그녀는 그런 와중에서도 거절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알잖아. 나 자꾸 그러다 다시 오빠한테 매달릴지도 몰라. 그리고 이번에 또 우리 그러면, 피차 다 끝장
나는거 알잖아?"
길게 한숨을 내쉬며 형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로 손을 뻗어 침대 옆 협탁의
아이폰 도크 스피커 리모콘을 눌렀다. 곧이어 신나는 클럽음악이 흘러 나왔다. 몸이 저절로 들썩여지는
음악이었지만, 오히려 형준은 쏟아지는 잠에 몸을 더 편한히 뉘일 수 있었다.
그렇게, 은정을 처음 만난 그 때 그 순간의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