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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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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타는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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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해'

커피샵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니 너무 우울하다. 옆의 은정은 남자친구와의 통화를 이제야 끝내고는
전화가 너무 길어진 것이 눈치보였는지 슬그머니 나한테 내 남친의 근황을 묻는다.

"효석 오빠는 요새 뭐한대?"

우리 남친? 뭐하긴. 일에 치여 살지. 쩔어서. 맨날 야근하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고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하고
어쩌다 노는 날은 잠자기 바쁘다. 아 재미없어.

"그냥 뭐 맨날 회사 땜에 바뻐"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스트로우로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은정이 눈치를 챘는지 묻는다.

"요새 둘이 뭐 안 좋아?"

안 좋은건 아닌데… 얼굴도 못 보고, 어쩌다 봐도 그저 적당히 밥이나 먹고 땡이고, 그 좋아하던 드라이브조차
요새는 그냥 귀찮아하고 모든게 다 피곤한 거 같아서 만나기도 부담스럽고 만나면 오히려 내가 더 피곤하다.

"응 별루야"

그래, 별.루.야. 그러자 은정은 잠깐 휴대폰을 만지다가 왠 남자 사진을 하나 보여준다.

"얘 어때?"

개구장이처럼 장난끼 많아보이게 생긴 남자애. 골격은 마른건 아닌데 군살도 없어보이고… 옷은 좀 대딩 삘
나게 입었지만… 스키니 바지가 좀 에러지만 그래도 참 활기 넘쳐보인다. 요즘 우리 오빠하고는 너무 비교가
확 되네.

"누군데?"

은정은 슬몃 웃으면서 말한다.

"관심가?"
"아 누군데"

은정은 "관심은 가지?" 하고 재차 떠보더니 웃음을 못 참고 대답한다.

"응, 울 오빠 후밴데 저번에 같이 술먹었거든. 근데 그때 소개팅 좀 시켜달라고 하도 졸라서. 우리보다 한살
어려. 고운대 다니고, 키도 183인가? 울 오빠보다 크더라"
"아직 학생이야?"
"가을에 졸업한대"

흠…

"됐어. 학생은 무슨. 글고 연하는 아 딱 싫어"
"아 뭐 둘이 사귀라는거니? 그냥 요즘 우울하니까 같이 밥 한번 먹으라는거지? 어때?"
"어우 됐어"
"아이 야, 어? 걍 한번만 밥 먹어주라, 어?"
"야, 그러다 오빠 알면 난리나"

그렇잖아도 저번에 싸울 때 정말 오빠가 정색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솔직히 조금… 쇼크를 먹었다.
물론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오빠도 잘한거 하나 없는거고, 무엇보다 그렇게 정색하는 모습은, 정말
놀랐다.

"너 오빠 디게 무서워한다"
"아 몰라"
"아 우리 소정이가 어쩌다 이렇게 일편단심이 됐니"
"아 그냥 다 짜증나고 우울해"
"근데 진짜 효석 오빠도 좀 너무하는거 아냐? 아까부터 너 계속 연락도 없었지?"
"…어"

안다. 일도 바쁘고 근무시간에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눈치보이는 분위기라는 것을. 그렇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어후, 안 되겠다. 너 잘 생각해 봐"
"뭘"
"오빠랑 너랑 딱 보니까 권태기네. 너 참아봤자 좋을거 하나 없어. 남자들 뭐 그러다가 지 혼자 바람 다
피울고 피우다가 나중에 항의해도 '나도 힘들었어' 이 지랄하고 그만이다?"

은정의 그 말은 아마도 지난 번 연애의 교훈이겠지.

"아 몰라. 나 우울해. 어쩌지?"
"아니면 우리 이번 주에 클럽갈래? 우리 안 간지 엄청 오래됐잖아"

그럴까.

"솔직히 뭐가 싫으냐면, 오빠가 힘든건 나도 잘 알어. 대기업이 사람 힘들게 부려먹는건 나도 아는데,
아 그래도 최소한 문자, 전화 같은거 아예 못하는건 아니잖아. 그렇게 바쁘면 우리나라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은 다 장가 어떻게 갔대? 글구, 힘든건 알지만 그래도 그 스트레스랑 짜증을 막 못 이겨서 혼자
끙끙대고 막 이런 것도 좀 그렇구‥"

답답하다. 연애가 꼭 연애가 아닌거 같다. 그냥 출근길에 문자 몇 통, 저녁에 전화 한 통이 연인 사이를
확인하는 전부다. 이게 무슨 연애야. 그렇다고 심술 피우기도 미안하고, 그냥 답답하다. 가끔 데이트를
하면 그때는 좋지만, 매번 그런 것도 아니고. 지난 주에는 정말…

"너네 좀 심각하네. 아님 오빠 보고 휴가라도 내라고 그래. 그래서 주말끼고 여행이라도 다녀와"
"아 그럴 분위기가 아닌가 봐. 저번에는 코피 줄줄히 쏟는데… 그래서 하루 쉬라니까 그러면서도 나갔어"
"아 진짜 돈 많이 준다고 빡빡 긁어먹는구나. 역시 대기업 무서워"

커피숍 구석에서 막 사근사근 설레이는 대화를 주고받는, 서로 좋아 죽겠는 커플을 보노라니 옛날 생각도
나고 지금의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연애가 싫기도하고 마음이 영 싱숭생숭하다.

"사실은 우리 커플도 요새 좀 별로야"

10분도 넘게 전화해놓고서는. 은정은 지도 그 생각이 났는지 금방 "겉으로 보기엔 그래도, 뭔가 애정이 서로
식은거 같아" 하면서 부연설명을 한다. 하아.

팔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고개를 옆으로 한 채 엎드린다. 

"나 정말 어쩌면 좋을까? 은정아"

그러자 은정은 머리카락을 빙빙 꼬으며 대답했다.

"글쎄"

서서히 불어오는 봄바람에 기분은 설레이는데, 현실은 그저 답답하고 우울하기만 하니 설레임은 그저 소모
되어가는 청춘에 대한 불안으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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