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적당히 도시락을 먹고 형기차에 올라 묵묵히 무전을 기다린다. 밥 먹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의
입냄새가 심하고, 특히 옆 자리에 앉는 오은석 상경의 입냄새는 특히나 지독하다. 왕고 기훈은 눈을
감고 자는지 어쩐지 말이 없고, 비좁은 차 안에서 모두들 아무 말이 없다.
[ 치-익, 거기 앞에 기동대 누구야? 방순대야? 어이? 뭐하는거야, 어? 안되겠음 뒤로 빼야지이 어? ]
상황이 급한지 음어고 나발이고 무전기에서 계속 들려오는 말은 어느새 다 자연어다. 듣고 있던 고참
들 입에서는 실소가 흘러나오고 "지금 지휘하는거 누고? 개파이네" 하고 조수석에서 계속 내내 졸고
있던 이형석 경장도 한 마디 한다.
그러나 그들의 실소와는 달리 막내들은 그저 묵묵히 무표정만 지킬 따름이다. 어느새 3시간째 입
한번 뻥긋 못하고 가만히 있다.
"준식이, 졸리냐?"
아뿔싸. 꾸벅꾸벅 졸던 준식이가 악마새끼 효수의 눈에 띄였다.
"이, 이경 이준식, 아입니다"
상경들의 눈은 일제히 준식에게 쏟아지고 준식은 정신이 번쩍 손에 땀이 질질 흐르는 것이 여기
까지 느껴졌지만 아까부터 내내 눈을 감고 자던 기훈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상황을 정리했다.
"쓸데없이 애들 갈구지 말고, 그냥 새벽부터 대기하느라 다 피곤할텐데 돌아가면서 눈 좀 붙여"
평소대로였으면 '좆같이 씨발'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겠지만 조수석의 이형석 경장의 눈치를
봐서 그런지 그저 짧막한 한 마디. 물론 당장의 갈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오늘 밤 점호
시간 준식의 파멸은 이미 확정된 상태다. 준식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만 바라보고 있다.
"히야, 기후이가 왕고가? 히야, 마이 컸네. 그래, 다들 좀 자라. 졸린데 억지로 꾸븍꾸븍 닭처럼
빙시처럼 그라지 말고, 돌아가미 자라. 상황 내 보이까네 두어시간은 더해야 끝날 거 같다"
하지만 직접 '막내들 자라'까지 일일히 챙겨주지 않는 이상, 막내들이 실제로 눈을 감았다가는
그날 점호가 어떤 식으로 돌아갈지는 뻔한 상황. 그저 꺾인 상경 윤두열이 "에휴, 난 잠이나 자야
겠다" 하고 혼자 몸을 틀어 웅크리고 눈을 감았을 뿐.
'덥다, 답답하다'
입냄새와 쿰쿰한 공기가 가득한 봉고 안. 춥다며 창문조차 다 닫아놓아 공기까지 탁하다.
몇 시간째 웅크리고 있는 다리는 피가 통하지 않아 죽을 것만 같다. 아니 시간으로는 이제
겨우 한 시간 밖에 안 된 거 같은데 다리는 왜 이리 불편할까. 직원들까지 동원된 통에 버스는
직원들이 타고 현장에 나가있다. 처음에는 시트가 편한 형기차라 좋아했지만, 이것만큼 또
지옥이 더 있을까.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본다. 지금 내 몸에서 유일하게 남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발가락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땀이 차 움직이는 것이
마냥 거북하다.
"담배나 피러가야겠다, 아, 주영아, 라이타 좀"
"같이 피시지 말입니다?"
투고 태식과 그의 영혼의 파트너 주영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봉고차 문이 잠깐 열렸다
닫히는 순간 들어온 한 줄기 차가운 공기가 살짝 폐를 정화한다. 하지만 그 한 모금의 공기
이후 다시 봉고 안에는 피어오른 먼지와 함께 적막함만이 감돈다.
"하이고 마, 나도 답답해서 못 있갔다. 이휴, 언제 끝나는기고?"
형석 경장도 차에서 내려 "나 담배 하나만 도" 하면서 태식과 주영에게 담배를 빌린다.
나도 차에서 내려 다리 좀 펴고 싶다.
또 한참의 적막이 감돈다.
그리고 문득 눈을 떴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15초? 5분? 10분? 하지만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다. 아니 누가 보았을까. 조용히 눈알을 아주 살그머니 굴리면서 눈치를 본다. 기훈은
자고 있고, 앞 자리의 태식은 내려서 저 밖에서 형식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고…
운전석의 룸미러로 보진 않았을까 싶어 아주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보았지만 강용구 상경도
그저 잠에 빠져있다.
[ 치익- 길 터주고… ]
[ 삼익로쪽으로… ]
[ 302, 302… ]
"아 기동대 애들 존나 고생하고 있겠구만. 불쌍하다 씨발. 새끼들아 니들은 진짜 꿀 빠는거야"
"이경 한동준"
"이경 이준식"
신병들이 무전으로 듣기에도 답답한 지휘 속에 시위는 끝이 보이지 않고, 그저 어느새 해만
서서히 기울어가는데 그러나 아직도 해가 지기에는 너무나 먼 오후 3시. 소화된 도시락 탓에
뱃 속에 가스는 차오르는데 아무도 화장실 가자는 말조차 없다. 뱃 속이 쥐어짜듯 고통스러운
데 그저 아주 가볍게 입으로 아무도 모를 아주 가는 한숨으로 마음만 달래본다. 등조차 편하게
기대지 못하는 이 답답한 상황 속에 하늘마저 노란 것 같다.
"막내들도 피곤할텐데 좀 자라"
"이경 한동준 예 알겠습니다"
"이경 이준식, 예 알겠습니다"
답답하고 지리하고 우울하면서도 숨막히는 공기… 문득 혜경이 또 미친듯이 보고 싶지만
그저 나는 오로지 이 비좁은 봉고 차 속에서 눈꺼풀만 겨우 감은 채, 이 지옥같은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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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내 속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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