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창문을 활짝 열고 담배를 쉼없이 빨아대던 현식은 못참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장농을 열었다.
"후우"
알코올 램프와 비커, 강력 소독제와 작은 유리병에 든 몇 가지 가루와 액체, 조잡한 몇 가지 기구와 마지막
으로 가로 세로 1미터쯤 되는 유리상자. 유리상자는 위로 문을 열 수 있게 되어 있으며 가운데에 작은 고무
파킹 같은 것이 있었다. 양 사이드에는 주먹만하게 도려낸 구멍과 그 구멍 안으로 의료용 장갑이 빈틈없이
메꿔져 있었다.
"흠"
현식은 곱게 갈아 석유 에테르에 재워놓았던 나팔꽃씨 말린 것을 뚜껑 있는 목청 비커에 담그고는 다시
정성스레 밀봉을 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방을 서성이다 "에이 아냐" 하고 중얼거린 다음 다시 그것들을 챙겨서 장농 속에 스윽
집어넣었다. 아픈 목에 침 한방울 삼키고는 다시 습관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살짝 충혈된
눈으로 방을 두리번 거리다가 안절부절 못하고는 다시 침대 밑으로 손을 뻗으려다가 관두었다.
'안돼'
한참을 그렇게 방안을 촛점 없는 눈으로 서성이던 그는 갑자기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불을 올려
냉동실에서 고기를 꺼내어 올려놓았다. 하지만 꽝꽝 언 얼음덩어리나 다름없는 고기가 쉽게 구워질리
없었고 그는 "씨발!"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냄비에 물을 올리고는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는 그 약 5분의 시간동안 두 손을 기도하듯 꼭 잡던 그는 그 꽁꽁 언 고깃덩이를 팔팔 끊는 물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냉장고를 뒤지다가 두부가 보이자 허겁지겁 포장을 까고 생두부를 손으로
들고 씹기 시작했다. 입과 손에 담백하면서도 묘하게 비린 콩냄새를 느끼던 그는 다시 퉤! 하고 두부를
뱉어내고는 찬장에서 간장을 찾아 남은 두부에 조금 뿌렸다. 숫가락을 들어 또 우적우적 퍼먹던 그는
그러나 곧 "우욱" 하는 헛구역질과 함께 방금 먹은 두부들을 토해내었다.
간신히 입을 막고 대부분의 건더기는 화장실에 쏟아냈지만은 약간은 거실에 그 흔적을 남겼다. 대충
발로 걸레를 들어 닦아낸, 아니 닦아냈다기보다는 그저 바닥에 문지름에 가까운 행동을 취한 그는 "후"
하고 한숨을 쉬면서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꿀꺽꿀꺽 마셨다.
'미치겠다'
하늘이 노랗다. 그는 다시 냄비에서 끓고 있는 고깃덩이를 보았지만 아직 익기까진 시간이 걸릴 듯
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솔직히 식욕을 거의 잃었다. 그는 힘없이 불을 껐다.
현식은 손이 가볍게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씩 체온이 내려가는 것도 느꼈다. 문득 문득
방문을 열고 누군가가,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여자가 칼이라도 들고 뛰어들어 올 것 같은 환상이 들
어 가슴이 두근두근했지만 그는 애써 이성을 유지했다.
'하아아'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침대 밑으로 손을 뻗어서 비닐팩에 싸둔 주사기와 작은
앰플을 준비해두었다. 침대 끝에 만들어놓은 간이 손발 잠금장치도 슥 바라보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후우'
현식은 휴대폰을 찾았다. 그리고 정신없이 번호 리스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목 뒤가 뻐근해지면서
달칵달칵 몸이 떨림을 느꼈다. 추위로 인한 떨림과 원인 모를 경련…가늘게 떨리는 손발 뿐만 아니라
어깨 뒤까지 경련이 일어나는 그 느낌에 현식은 당혹스러웠지만 꼬부라 지는 혀를 애써 힘을 주어
입 안에서 입천장에 비벼대며 참았다. 그리고 드디어 겨우 눈에 들어온 유진이 누나의 번호를 눌렀다.
두루루루- 두루루루- 두루루루- 두루루루- 두루루루-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어'
거의 10번 가까이 통화음이 울린 이후에야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간만이네 현식이'
전화기 너머로 아련하게 딥하우스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아 그녀는 자신의 바에 있는 듯 했다.
"어, 안, 안녕핫, 세세요 눈누님"
입이 뻑뻑해지면서 혀가 꼬이는 것을 어떻게든 다시 억지로 입을 크게 벌려가며 진정시킨 현식은
다시 인사를 하려 했지만 이미 눈치를 챈 유진은 픽 웃으면서 목소리를 죽이고는 말했다.
"상태보니까 비타민이 필요한게 아니라 링겔 맞아야겠네?"
그녀만의 은어에 현식도 바보처럼 흐 하고 웃고는 다시 말했다.
"그, 급해. 배달, 좀 해주면, 해주"
혀가 자꾸 베베 돌아가니 말을 길게 할 수가 없었다. 씨발 남들도 이러나? 안 그렇던데. 왜 나만 이러지.
그거랑 같이 해서 그런가. 심장이 어째 뭔가 불규칙하게 뛰는 것 같고 가슴이 시큰시큰한게 숨이 조금
가쁘다.
"…빨리"
겨우 쥐어짜는 목소리로 부탁을 하자 유진은 여전히 여유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약값은 있어?"
"히, 히, 있어"
월세 내려고 동생한테 꾸어온 돈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태를 가릴 상황이 아니다. 발바닥 저 끝에서
미칠 것 같은 경련과 쥐가 온다. 한 손으로 발을 잡고 열심히 문질러 보지만 어차피 팔에도 지금은 힘이
안 들어가고 팔다리 전체가 덜덜덜 떨릴 뿐이다.
"알았어, 그럼 영록이 시켜서 배달시킬 테니까 돈 준비해 놔"
"어, 어어, 어어, 어"
어 한 마디면 끝날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거야. 서서히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오한이 본격적으로 몰아
치기 시작했다. 그는 그냥 침대 밑에 그 주사기를 놓아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곧
머지않아 쓰게 될 건데.
"알았어 그럼 추울테니 이불 덮어쓰고 기다려. 집 비번 4684 맞지? 10분 내로 도착할테니까 좀만 참어"
"어"
전화는 끊어졌고 현식은 유진의 말대로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덜덜덜덜 떨면서 영록을 기다렸다. 똥이
마려웠지만 참기로 했다. 소변도 조금 마려웠지만 역시 참기로 했다. 도저히 화장실까지 갈 수 있는 상
태가 아니었다.
그저 현식은 눈으로, 벽에 붙여놓은 '살고싶다' 라는 혈서만 눈으로 계속 쫒았다. 턱이 울릴 정도로
너무 이가 심하게 떨려 그는 이불을 물었다. 그러니까 조금은 살만했다. 온 다리가 막 덜덜덜덜 떨려서
조금 재밌기도 했다. 전에는 없던 현상인데. 갈수록 증세가 심해지는 것 같다. 이제 곧 나도 똥오줌
방에 갈기려나.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노라니 곧 부릉부릉하는 고출력 바이크 소리가 들리더니 계단을 오르는 소리
가 들려왔다. 영록이 틀림없다. 그는 이빨로 물고 있던 이불을 퉤하고 뱉어나고는, 이불도 슥 벗었다.
그래도 영록이 앞에서만큼은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개새끼.
그리고는 곧 삑삑삑, 삑 하는 문 여는 소리와 함께…
현식은 머리가 축구공 세 배만한 괴물이 머리를 흔들어 제끼면서 방 안으로 들어오는 환각을 보았지만
그래서 그만 실금을 했지만 그의 이성은 그것이 분명 영록이 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 괴
물은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씨발, 이 형 완전… 아 씨발 이게 뭐야. 끝났네 씨발 이 형도 이제. 아 염병 좆같은 꼴 보네. 아 형
지금 나 보여? 형? 정신차려 봐"
뺨을 툭툭 치는 영록의 손길. 그러고도 한참을 더 있고 나서야 꿈에서 깨듯 영록의 얼굴이 제대로 보
였다. 그는 방안에 구두발로 들어와서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 형, 안되겠다 형. 형한테 못팔겠다 이제. 이러다 형 뒤지면 우리까지 머리 아퍼. 응? 형, 이제 슬슬
시설 가야겠네. 어?"
영록은 현식의 휴대폰을 들고는 유진의 번호를 지웠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형 그래도 요새도 밥 먹자는 사람이 있긴 있네? 이야, 형 진짜 인간관리 잘했나보다. 에휴 형 내가
진짜 지금까지의 정이 있어서 딱 한 대만 놔주고 갈께. 이제 우리랑 거래 끊자. 위험하다. 형도 우리도.
그치? 형도 이제 시설 가서 한 2년만, 형 근데 집에서 월 30은 대줄 수 있을거 아냐. 형 동생 존나
착하잖아. 그리고 어디보자…"
주사기 세팅을 슥 마친 그는 방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뭐 어디 전화번호 적어놓고 그런건 없지? 어차피 뭐 우리는 일주일 단위로 폰 버리긴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깐. 여튼, 형 근데 유진이 누나도 이제 그러더라. 형은 그래도 진짜 존나 부러운 케이스
라고. 아 몰르겠다. 발가락 벌려봐. 아 씨발 발냄새. 형 좀 씻지. 아 찌린내도 씨발"
사회생활을 위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주사를 놓은 현식은 여자애들처럼 엄지 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에 주사를 놓아왔다. 시커멓게 죽은 주사바늘 자국 있는 곳을 피해 조심스레 주사를 놓은 영록.
현식은 서서히 정신줄을 놓아가며 "어어…"하고 가볍게 신음성을 흘렸다. 영록은 책상 위의 돈봉투를
슥 쟈켓 주머니 속으로 챙기면서 말했다.
"에휴, 형 나갈께. 그리고 이따 정신 좀 차리면 알았지? 꼭 말해. 동생한테 시설간다고 해. 진짜 우리가
형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 여튼 간다. 에휴 씨발"
방에 서서히 피어오르는 똥구린내를 맡은 영록은 손으로 후후 저으며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현식은
그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입으로는 침을, 아래로는 똥오줌을 싸면서 극락에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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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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