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그녀의 비난.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는 나. 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내기
미안한 나. 얼마나 많이 나를 원망할까. 그동안 내 곁을 지킨 그 많은 시간이 얼마나 억울할까. 얼마나
내가 한심스러울까.
'차라리 붙잡지 말걸 그랬어'
그랬더라면 어렵게 마음 먹은 그녀의 결심을 흐트려뜨리지도 않았을테고, 나 역시 곱게 그녀를 보내
주면서 언젠가 우리의 인연을 그저 한순간의 씁쓸한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었을텐데.
항상 미안했다. 마냥 미안했다. 솔직히 미래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흘릴
때가 많았다. 어차피 당장은 나보고 뭐 어쩌라는 소리냐는 마음이었다. 아니 가끔은 불끈하는 마음에,
또 정신차리자 하는 마음에 이 악물고 노력하고자 다짐도 했지만…
솔직히 뭘 해야할지도 몰랐다. 당장 뭘 어째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어쩌면 그냥
흔한, 안정감 있는… 함께 미래를 생각해나가는 그런 만남. 하지만 나는 그런 것조차 해줄 수 없는
놈이었고, 결국 더이상은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에 대한 믿음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던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 너는 결국 나를 나쁜 여자로 만들었어. 넌 그러겠지, 넌 너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 정말
그랬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솔직히 니 스스로 생각해 봐. 너 최선을 다했니? 너 정말로 너 가슴에
손을 얹고, 최선을 다했어?"
무엇에 대한 최선을 묻는 것일까. 우리의 관계? 나의 미래? 아니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던 것일까. 정말 오늘의 내가, 오늘의 우리가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이것인가.
할 말을 잊은 나에게 그녀는 계속 추궁했다.
"말해보라구. 말해봐. 정말 최선을 다한거 맞아? 정말 최선을 다한게 이거야? 정말 이게 맞아?"
울멱이며 묻는 그녀에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팔목의 팔찌에 쓰인 의미
없는 문구만 한없이 눈으로 쫒았다.
"말을 해보라구"
겨우 울음을 삼킨 그녀의 추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못나서, 그게 내 최선이었는지도 몰라. 아니 분명 더 잘할 수 있었겠지만, 결과가 이렇게
되어버렸어"
미안하다, 내가 여기까지다, 라는 말이 입안에서 감돌았지만 나는 그 말을 꾹 삼키고,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듯이 실망하는 그녀에게, 또 한번의 잔인한 부탁을 한다. 그리고 또 다시 습관처럼 그 말을
앞에 붙였다.
"미안해, 그리고 곁에 있어줘. 부탁이야"
솔직히…
그녀가 내 말에 응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냥 떠나주기를 바랬다. 그게 우리 둘을 위해서, 그 누가
봐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고 나를 아무리 원망해도, 설령 나를 저주하고
모함하고 비난하고 욕해도, 모두 다 받아낼 수 있었다. 제발 나같이 무능하고 게으르고 잔인한
놈을 용서하지 말기를 바랬다.
"됐어, 관둬"
그녀는 내 손을 뿌리쳤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조금 기뻤다. 그리고 그녀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로 더이상은 나같은 새끼 만나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기를 바랬다. 한가지, 딱
한가지 아쉬운 것은…
마지막으로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 건내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고맙다는
말을 안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저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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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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