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야, 블라인드 좀 걷어봐"
보배는 안대도 벗지 않은 채로 말했다. 옆에 누운 영지는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말했다.
"어후, 언니야 나 지금 못 일어나겠어. 왜?"
"언제까지 잘거야 일어나야지"
"아우 나 더 잘래. 블라인드 걷지마라"
보배는 안대를 벗고 몸을 일으켰다. 어제 정말 하드코어하긴 했다. 정말로 간만에 진짜로 잘 노는 젊은
오빠들이 왔는데, 지금까지 야구장에서 일한 것 중에서 제일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게다가 그 판이 끝
나자마자 연짱으로 한 탕을 더 뛰었는데 이번에는 만땅 술을 들이붓는 진상 노땅들이라서 어쩔 수 없이
제법 많이 마셨다. 간만에 몸이 다 쑤셨다.
나름 이 바닥에서 닳고 닳은 본인이 그 정도인데 새로 일 시작한 영지는 그대로 들여보냈다가는 술은
둘째치고 일에 질려버릴까 걱정이 되어 오지랍을 떨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다시 한번 기지개를 펴는데
정말로 몸이 쑤신다. 휘청이는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가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마셨다. 지금 마시는 물
이 술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붕 뜨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아무래도 오늘은 하루 쉬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하며
냄비에 물을 올렸다. 찬장을 열어서는 미역을 꺼냈다. 다시 방으로 와서 영지의 이불을 덮어주었다.
'흠'
원래는 키스방에서 일하던 애라고 했다. 대학 다닐 때 돈 많은 아저씨랑 어울리다가, 흔히 부성애 못
느끼고 자란 애들이 그렇듯이 중년남자한테 이끌려서, 적당히 경제력 되는 아저씨들한테 빠져서 정신
못차리다가 씀씀이도 정신 못 차리게 커져서 헛지랄 하다가 결국 스폰서 떠나고 카드값 못 막고 무너져
버린 흔한 케이스였다. 키스방에서 일하다가 아무래도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오피쪽에서 잠깐 일하다가
삼촌들이 너무 짜증나게 굴어서 마침 손님으로 온 영업 상무 하나를 통해서 야구장으로 점프했다고.
'으휴'
일단 얼굴도 이쁘고 몸도 이쁘고, 어제보니 나름 술도 잘 마시는 것 같으니 잘만하면 잘해나갈 것 같기도
했다. 벽의 시계를 봤다. 벌써 오후 2시다. 몇 시간을 잔 거지. 그보다 밑이 아직까지 얼얼하다.
'아흐'
일단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니 보배는 다시 싱크대로 나가갔다. 담배가 땡긴다. 일단 끓는 물에 대충
다시다와 간장만 조금 넣고 바로 미역 투하. 귀찮게 정석대로 요리할 정신머리는 없다. 허리에 한 손
을 얹은 채 나무 주걱으로 몇 번 휘휘 젓다가 불을 껐다.
'얼마만에 이 집에 다른 사람이 와서 자는거지'
한 6개월쯤 되는 것 같다. 일단 그렇게 불을 끈 그녀는 국그릇 두 개에 미역국을 퍼담고, 햇반 하나를
뜯어 반반씩 나눠서 말았다. 냉장고에는 김치도 없다. 쟁반에 그 국그릇 두 개와 숫가락 두 개, 물컵
에 물 하나만 담아 방으로 가져갔다.
"영지야, 이제 일어나. 밥 먹자. 하루종일 잤어. 속 버려, 일어나"
"음…"
보배의 말에 영지는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 안대조차 더듬더듬하며 벗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잠시 미소 지은 보배. 그리고 문득, 만약 자신이 가정을 꾸렸다면, 그리고 나중에 그 딸이 큰다면 꼭
지금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곧 그런 기억은 털어버렸다.
"음"
"맛있냐?"
"언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
영지의 물음에 보배는 빵 터져서 "아 됐어. 말하지마" 하고는 계속 웃었다. 영지도 한참을 웃다가 "아
배아퍼, 아 어제 나 너무 웃었나봐요. 지금도 배가 아퍼" 하고는 배가 땡긴다는 듯이 배를 문질렀다.
"농담이야 언니 맛있어"
그리고는 계속 미역국을 먹었다.
"나, 아침 챙겨먹는거 얼마만인지 몰라요. 언니는 맨날 이렇게 먹어요?"
"아니, 나도 안 먹어. 근데 오늘은 너 곤히 자길래 나가서 먹자고 하기도 뭐하고, 나도 귀찮고 해서
그냥 있는 걸로 한거야. 근데 어디 오늘 출근은 하겠니? 몸 찌뿌둥해서"
하지만 영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해야죠. 돈 벌어야지"
"으휴, 그래 돈 벌어야지"
영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보배도 억지로 미역국을 입에 밀어넣었다. 영지는 보배에게 말했다.
"근데 어제 그 오빠들이요, 뭐하는 오빠들이래요? 호빠들이죠?"
"글쎄, 말 안 하던데. 근데 내 보기에는 호빠는 아닌 거 같은데. 그쪽 느낌은 아니었어"
"그럼 연예인 지망생 뭐 그런 애들인가?"
"그런가? 몸도 디게 좋고 노래도 진짜 잘 부르고. 정말 잘 놀던데"
"그쵸? 아 정말 맨날 그런 손님만 오면 돈 안받아도 일할 수 있을텐데"
하지만 보배가 "정말로?" 하고 묻자 영지는 "음, 솔직히 공짜는 오바고, 반값?" 하며 혀를 내밀며
웃었다. 일단 둘 다 밥을 다 먹자 보배는 쟁반에 그릇을 담아 내가며 말했다.
"일단 피부 맛사지부터 하러가자. 너 오늘 얼굴 많이 부었어"
"정말요?"
"어, 가서 맛사지도 받고 그러지 뭐"
"네"
"일단 먼저 씻어. 칫솔은 거기 선반 안에 보면 일회용 몇 개 있을거야"
"네에"
영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배는 문득 다른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도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덜 외로울 것도 같고, 월세도 굳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까지나 영지가 같이 산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지만'
일단 어쨌든 그건 이따 생각할 이야기고 설거지 마치고, 출근 준비부터 하자. 오늘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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