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에 앉아 나는 커피, 그녀는 산타 비토리오 음료수를 마시며 잡지를 휘휘 넘기다가 그녀의 얼음잔에
남은 음료수를 한 모금 슥 마신 다음
"출출하지 않아?"
"응, 출출해. 밥 먹으러 갈까? 뭐 먹을래?"
"뭐든 좋아 누나. 돈 내는 사람이 먹고 싶은거 먹어야지"
"그럼 스파게티 먹으러 가자"
해서 먹고 있노라면 그녀는 남친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겁니다.
"어? 어, 혜경이랑 만나서 놀고 있어. 응. 오빠 언제 끝나? 아 오늘 늦어? 그럼 못 보겠네? 어 알았어.
응 그럼 수고해"
하고 전화를 끊으면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녀에게 묻겠지요.
"내가 혜경이야?"
그러면 그녀는 방긋 웃으면서 "어, 혜경아" 하고 웃겠죠. 돌돌 말아 스파게티를 입에 쏙 집어넣고 먹는
모습에 그만 나까지 피식 웃게 되는데 아 뭐 너무 빠져드는 것도 곤란하니까 적당히 데이트는 거기서
그만하고 본업에 충실하기로 합니다.
"가자"
그러자 그녀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 가자"
우리가 가는 곳은 언제나…
슈퍼카의 장점은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지만, 단점도 주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차에서 내려
발렛파킹을 위해 키를 넘겨주면 종업원은 언제나 묘한 시선으로 우리 둘을 바라봅니다. 순간
으쓱해지는 면도 있지만 그래봐야 내 차도 아닌 것을.
교외, 국도변에 뜬금없이 우뚝 서있는 이 러브호텔은, 의례 백화점 외부 엘리베이터들이 그렇
듯이 한쪽 면을 유리로 해서 바깥이 내려다보이는데, 아직은 눈이 간간히 덮힌, 그러나 어느새
봄볕이 그 눈을 사르르 녹이고 있는 주변의 한적한 풀숲이 인상적입니다.
"박스야"
"왜?"
"오늘은 좀 거칠게 해줘"
"알았어"
우리는 종종 이렇게, 그녀의 슈퍼카를 타고 이렇게 교외로 멋지게 드라이브를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평일 낮의 뻥 뚤린 국도를 타고 풍광을 구경하면서 바람을 쐬노라면 이만큼
재충전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나야 우울한 삶의 한줄기 빛이 되고, 그녀는 역시 무료한 삶에 짜릿한 자극이 되겠지요. 음,
우리가 만난 것은 그러니까 약 4개월 전, 까페에서 번호를 딴 연상의 그녀와 첫 데이트를 하는데
처음 만나자마자 그녀가 그러는 겁니다.
"미처 말 못했는데, 나 남친 있어"
피식 웃었죠.
"그게 뭐?"
그게 전부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내가 인정하는 양다리를 그녀가 걸치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남친은 국내 유수의 대기업 핵심사업부에 재직 중인 30대 능력남으로, 집안도 교육자 집안이더군요.
"결혼할 남자로선 딱이지"
그녀의 평가대로 남자는 꽤 여자한테 헌신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반듯하고, 바르고, 착하고. 허나
그녀는 뭔가 부족했다고 합니다.
"나 과거 화려한 여자잖아"
대학원 재학 중에 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던 남자와 잠깐 만났는데, 그 인연을 징검다리 삼아
현 야당 모 유력 의원의 세컨드로 2년 정도 있으면서 이래저래 많은 것을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슈퍼카라니, 그 놈도 참 어지간히 미친 놈이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진심'이었을지도.
어쨌거나 그렇게 과거 싹 정리하고 이제 슬슬 시집갈 준비를 하던 차에 지도교수 님의 소개로 만난
모교의 선배인 지금 남친과 만난거고 그렇게 내년 쯤에 결혼을 계획 중이라는데…
그거와는 별개로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그녀는 꽤 심심하던 차에 딱 내가 나타난 겁니다. 것두
'세컨드' 라는 사실에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 한량이라니, 그녀 입장에선 그야말로 딱이겠죠.
"하아하아, 아학, 아…"
찌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며 하복부의 경미한 경련까지 일으키고는 저는 절정을 느꼈습
니다. 그녀 역시 이미 땀에 젖은 채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좋았어. 엄청"
"나두, 누나 요새 운동해서 그런지 복근 엄청 섹시하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누나'라고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첫째로 만에 하나 누가 아는 사람이
보더라도 그냥 '아는 동생'이라 둘러대기 좋아서고, 외동딸이자 주변에 항상 연상의 남자들 밖에
없던 그녀로서는 연하남을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누군가가 자신을 '누나'라고 불러주는
것이 그렇게 좋답니다.
한참을 그렇게 끌어안은 채로 있다가 저는 다시 그녀의 옆에 털썩 누웠습니다.
"넌 근데 일 안 해?"
그녀의 물음에 저는 입맛을 다시다 대답했습니다.
"이제 슬슬 다시 일해야지. 크레인 통관건 때문에 사우디까지 가서 한 석달 일했고, 그리고 지금
까지 5개월째 놀고 있는데, 이제 돈도 떨어져가"
그러자 그녀가 물었습니다.
"누나가 용돈 줄까?"
저는 순순히 응락했습니다.
"그럼 좋지"
그녀는 몸을 일으켜, 내 가슴팍 위에 슬쩍 기대더니
"얼마줄까? 얼마 필요해?"
"누나 주고 싶은만큼 줘. 어차피 난 돈도 그리 많이 필요없어. 그냥 뭐 자고, 헬스장 가서 하루
종일 운동하고, 밥 먹고, 가끔 이렇게 누나랑 데이트하고. 아니면 도서관 가서 책보고. 그게
전분데 뭘"
그러자 그녀는 "도서관 가서 책본다는 부분이 섹시하다" 라면서 "많이는 못 주구, 50 정도면 어때?"
하고 물었습니다. 50이라…
"많은데?"
그녀는 제 볼을 꼬집으며 말했습니다.
"좋으면 좋다고 말해. 으이그. 너보면, 꼭 예전에 나 같아"
"누나도 이랬어?"
"어. 그 선생님이…"
그녀는 그 유력 정치인을 꼭 '선생님'이라 칭했습니다.
"돈 준다고 할 때 나는 항상 빼지는 않았어. 근데 대신에 많이 바란 적은 한번도 없거든?"
"그런 사람이 포르쉐를 선물로 받냐?"
"그게 더 사람 맘을 동동 구르게 하는거야. 더 좋은거 해주고 싶고, 또 허세도 부려보고 싶고,
그러다보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거 해주고 싶어지는거지"
"와 누나 진짜 여우다"
"너도 만만찮어"
그러더니 그녀는 제 위로 올려왔습니다. 머리 맡에 올려놓은 콘돔 하나를 다시 포장을 까더니
"한번만 더 해" 하며 제 가슴팍에 두 손을 얹습니다.
"그래, 누나"
그리고 문득 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그녀를, 그녀의 '퍼스트' 남자친구는 마냥 그저
좋아라하고 또 얼마 후에 있을 생일에 또 근사한, 명품백이라도 선물을 하겠지요? 그렇게 날마다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반복해가며 번 돈으로 말입니다.
'뭐 어때'
이렇게 내가 그녀의 우울함을 풀어주고, 그래서 아주 밝은 기운으로 가득찬 그녀가 남친에게 또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애정을 보내주면, 모두가 좋은거 아닐런지.
'그래, 그런거야'
↧
세컨드로 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