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희진이에게서의 카톡 한 마디. 하는 일 없이 그저 침대에 앉아 멍하니 휴대폰이나 만지고 있던
나로서는 고마운 메세지지만, 내용은 글쎄.
[ 왜? 무슨 일 있어? ]
그러자 그녀는 잠시 대답이 없다가 곧 답장을 했다.
[ 그냥요 ]
이쯤되면 전화로 물어보고 싶어진다.
"응 오빠. 굳이 전화는 안 해도 되는데"
"어, 왜? 무슨 일 있는거야? 왜 우울해? 걱정되서"
긴 우울증의 터널을 건너온 한 사람으로서 우울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든 돕고 싶어진다. 물론 대부분은
정말 우울해서가 아니라 그저 깊은 밤의 울적함에 젖어 칭얼대는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거나 나로서도 심심
하던 차에 말 벗이 생겼으니 좋은 일 아니겠는가.
"아니에요, 근데 오빠 나 걱정해준거에요? 고마워요"
"고맙긴. 왜 우울해, 옆에 남자친구가 없어서? 외로워?"
나의 말에 후후 웃던 그녀는 대답했다.
"그런가봐요. 아 근데 오빠 뭐하고 있었어요? 바쁜거 아니에요?"
"아니야. 안 바빠. 이 밤 중에 뭐 할 일이 있다고 바쁘겠니"
그러자 그녀는 잠시 대답이 없더니 곧 나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오빠, 오빠는 외로울 때 어떻게 해요?"
"딸딸이 쳐"
…라고 어지간하면 솔직하게 답해서 빵 터뜨리지만, 이제껏 남친을 딱 두 번 사귀어봤고 성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편인 그녀에게는 한번 봐준다.
"그냥 뭐, 친구들이랑 놀고 그러지 뭐. 너 근데 정말 많이 외롭구나?"
"아니요, 그런건 아닌데 음"
어쨌거나 그런 와중에 나한테 말을 걸어주었다는건 기쁘다. 꼭 나 한 명한테 말 건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지만 뭐 그러면 어떤가 싶기도 하고, 어쨌거나 말만 하면 되는거 아닌가.
"그럼 오빠가 너 안 외롭게 해줘?"
슥 물어보자 그녀가 곧바로 반응한다.
"어떻게요?" 하더니 또 "소개팅?" 하고 묻는다. 아예 나는 선택지 자체에 없나보구나. 조금은 슬픈 생각도
들었지만 난 쉽게 좌절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아니, 내가 직접 안 외롭게 해줄까"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도 내 말 뜻을 알아먹고는 또 흥흥거리며 웃더니 "싫어요" 하고 잘라말한다. 남한테
절대 싫어요 소리 못하는 기집애가 내 말은 또 단칼에 싫어요랜다.
"오빠랑은, 큭, 왠지 웃길 거 같애요"
서로 빈말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들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하다. 일전에 그 태진이라는 애랑
잠깐 같이 봤을 때는 지 또래들끼리 "태진이 어때?" 했을 때 "뭐, 매력있지" 하면서 지들끼리 수근대던 그
순간이 기억났다.
뭐 결국, 사귀고 싶은 남자랑 그냥 어울리는 남자는 다른 것이겠지. 허허. 아 물론 나라고 뭐 이 희진이랑
어떻게 막 해보고 싶고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자지 달린 남자로서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이쁘
장한 여자애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해 보는 것은 꼭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겠지'
그녀에게 나란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그저 유경 언니, 상준 오빠, 형욱 오빠, 가은 언니 등과 함께 곧잘
자주 보는, 그리고 그 중에서 제일 만만하고 편한 오빠 중에 하나겠지. 흐흐.
'싫군'
문득 가슴이 싸하게 식어내렸다. 아까 깊은 밤 갑자기 날아온 카톡 메세지 하나에 그냥 뜬금없이 설레였던
마음이 식는다.
"흠, 뭐하냐"
별 의미없이 희진에게 물었다. 그러자 희진은 "걍 암 것도 안해요. 오빠는요?" 하고 또 왠지 별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거기서 나는 애써 힘을 내었다. 그래 뭐 씨발 같이 떡칠 사이는 아니더라도 그냥 주변에
두고 웃는 얼굴 감상하는 정도로선 나쁘지 않잖아.
"희진아, 뭐 곧 잘 되야. 남친도 곧 생기고, 주변 일도 잘 풀리고. 넌 이쁘고 착한데 뭐가 걱정이니 내가
걱정이지"
그리고 그 말을 하면서 왠지 힘이 빠졌다. 우울했다. 그렇다, 내가 우울해져버린 것이다. 나도 누군가를
설레이게 하는 남자이고 싶다.
"오빠 고마워요"
난 조금 피곤해졌다. 다 귀찮아졌다.
"그래, 그럼 맘 잘 수습하고 주말 늦은 시간인데 푹 잘자"
"오빠"
내가 전화를 끊으려는 멘트를 하자 그녀는 왠지 다급하게 날 불렀다.
"응?"
혹시 나는 우울한, 짜증이 난 내 마음을 들켰을까 봐 다시금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안도한 듯 "아니에요" 하면서 "오빠 그럼 쉬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후우"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씨발.
'뭐야, 븅신같이'
호구 찌질이 새끼. 전화비가 아깝다. 뭐야 이게. 오지랍도 아니구, 염볭.
'됐어 다 집어치워'
왠지 모를 짜증이 내 안을 가득채운다. 그리고 그때 또 카톡 메세지 하나가 날아왔다. 부르를 진동 오는
휴대폰을 바로 받아 메세지를 확인했다. 희진이었다.
[ 오빠 혹시 나 땜에 괜히 우울해진거 아니죠? 그랬음 미안해요 글구 항상 고마워요 오빠 ^_^ ]
난 그 메세지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니야, 하고 대답을 하려다가 그냥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됐어'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연애, 아니 호구들의 최대 단점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너무 상대의 마음을 맞춰주려고 해서 그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내가 하나를 해준다고 그녀의 호감도 하나가 올라가고, 내가 뭘 실수했다고
그녀의 호감이 하나 내려가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며 터무니없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물론 그렇다고 나같은 새끼가 어설프게 튕김질을 해봐야 상대 마음을 끌어당기기는 커녕
무한히 추락만 하겠지만…
'하하 씨발'
그냥 다 귀찮아졌다. 그리고 문득 생각해봤다.
'만약에 내가 희진이한테 고백해서 그렇게 사귀게 된다 치자. 근데 그럼? 그럼 뭐?'
그래봐야 깊은 밤에 매일 밤 전화하고 같이 데이트 좀 하고, 그러다 더 친해지면 뭐 거시기한 것도
하고, 그리고 가끔은 싸우기도 할테고, 가끔은 또 어디 여행가서 신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또 서로
불타올라 막 한없이 설레이기도 하겠지만…
'에이 다 좆까'
별로, 그녀가 아깝다. 나같은 새끼한테 희진이 같이 이쁘고 착한 애라니. 에이 구려. 희진이가 너무
아까워. 그리고 귀찮다 솔직히.
'다 귀찮아'
나는 그렇게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정말 다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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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나 요즘 좀 우울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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