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내 댕겨오께. 아 글고 나무 하믄서 막둥이 거 약될 거 약초 있음 좀 뽑아올테니께 탕재기도 좀
꺼내놓고"
"네에 서방님"
선녀는 집을 나서는 서방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며
입을 막았다. 만약 시어머니가 봤더라면 등줄기를 후려맞았을 일이다. 어디 기집이 재수없게스리
한숨을 쉬냐면서. 본인은 그렇게나 툭하면 날 보며 그렇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이다. 남편만 없으면
어김없이 시집살이가 시작된다.
"아 선녀야아, 뭐하는거여 시방, 어서 똥굿내가 풀풀 나는거 보니까네 아 막둥이 똥쌌나비다"
"네에 어머님"
서둘러 신혼방으로 들러 둘째 기저귀를 갈아입히고는 똥 싼 기저귀를 가져다 빨기 시작했다.
"아 아야, 아 짐 뭐하냐아. 아 배고파 죽갔다!"
"네에 어머님"
선녀는 빨던 기저귀를 내려놓고 서둘러 부뚜막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하루에 밥을 네 번 해야
했다. 아침에 남편 나무하러 가기 전에 한 그릇(겸 점심에 먹을 주먹밥), 나무하러 간 다음에
시어머니 먹을 한 그릇 겸 애기 밥, 그리고 저녁 먹을 남편, 시어머니 진지, 또 밤 자기 전 감자.
사실 아침에 그냥 남편 먹을 때 시어머니도 같이 먹으면 좋겠지만 꼭 아들 앞에선 입맛이 없어
안 먹는다고 해놓고는 남편만 나무하러 갔다하면 또 닥달이다. 말 그대로 시집살이, 홀로 아들
하나 키우면서 느꼈을 한을 자신에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월강선녀로서 인간의 마음에 더
애틋하게 교감이 가능한 하선녀로서는 그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식사를 오래하지 않아도 되는 선녀라고는 해도, 먹지 않고 고된 일만 계속
해서는 그 육신이 견디지를 못한다. 하늘나라에 있었다면 매년 하나씩 먹었을 천도복숭아도
못 먹은지 4년, 옥영고도, 환영단도, 기원소도 먹지 않고 아니 하다못해 쇠죽 한 그룻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그저 아침부터 밤까지 고되게 일하고, 또 무슨 이유에선지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면서 맨날 애를 보채는 남편과 그걸 또 못 견뎌하는 다음 날의 시어머니 바가지.
'힘들다'
천하의 선녀도 이 삶이 지긋지긋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솔직히 왜 환향선녀들이 그렇게 하늘
나라에서 천시받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오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 세상은 정말
사람이, 아니 선녀들은 더더욱 살 곳이 아니었다.
너무너무 힘들었다.
새복녘에 인(寅)시만 되면 간밤의 격한 '그것'으로 부서질 것 같이 힘든 몸으로 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띄워가며 홀로 깨어, 아무리 속곳에 속바지를 껴입어도 찬 바람을 가릴 길
없는 홑겹짜리 기워입은 넝마조각 치마 저고리를 끙끙대며 입고는 몸이 덜덜 떨리는 차디찬
부뚜막에서 또 전날 앞산에서 주워온 잔솔가지 태워 밥을 얹힌다.
불 앞에서 꾸벅꾸벅 졸다 하마터면 아궁이에 얼굴을 묻을 뻔한 적이 몇 번인가. 너무 놀라고
힘들어 혼자 운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렇게 밥 다 짓고나면 아직도 컴컴한 집 뒷 편의 장독대에서 더듬더듬 냄새만으로도 장을
종지에 요만치 퍼담아 와 그렇게 조밥에 된장 하나로 남편 한 끼를 챙겨준다. 가난한 살림에
제대로 된 찬다운 찬을 만들 길이 없다. 하다못해 밤에 먹는 감자만 들 먹어도 찬이라도 좀
챙길 수 있을 듯 한데 시어머니의 유일한 식도락이 그것이라니 그건 남편도 완고하다.
가끔 아랫 마을에 길쌈하다주면서 얻어온 전이며 깻잎파리로 그래도 적당히 제대로 된 밥
이라도 한 그릇 챙겨먹이고 싶은데, 아무리 미운 남편이라도 챙겨먹이고 싶은데 이 효자 아들은
생전에 맛나는 것을 지 입으로 넣어 본 역사가 없다.
다 시어머니 입으로 들어간다. 기어코 아들 입에 시어머니가 떠먹여주면 몰라도 말이다.
조밥에 장 요만큼 싸서 주먹밥 해서 보재기에 싸 점심 챙기고 빨아놓은 웃도리와 발싸개 내주고
땀수건 챙겨서 지게에 요래 묶어놓고는 점심 보재기 딸려서 그래 남편 나무하러 보내놓고 나면…
깨어난 시어머니의 잔소리와 함께 시어머니 자실 아침을 새로 또 하고 그 와중에 집안청소에
막내 똥기저귀 빨고, 시어머니가 집 뒤에서 키로 웃집 농사지은거 대신 까불고 있을 때 틈틈히
남편 옷도 빨아널고 받아온 오 진사댁 길쌈도 글피까지는 해보내야 하니 정신없이 해놓고…
밥 다 되면 시어머니 불러다가 쉰 김치에 꽁보리밥, 된장 해서 한상 채려주고 그릇수저 설거지
하고 애 좀 봐주면서 아주 잠깐 쉬다 이제는 머리 다듬을 시간도 없이 막내 애 업곤 시어머니와
함께 재 너머 큰 외웃어르신네 밭 메는 일 하러간다. 가까운 친척도 아니고 촌수로 16촌이 넘어
가는 멀고 먼 친척이더마는 그래도 어쩌겠는가. 목구멍에 뭐라도 넘기려면 그래도 도와줄
사람은 예뿐인데.
일을 하면서도 막내는 막내대로 보채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집에 두고온 큰 애는 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애 배고프겠다 싶어 남들 다 쉬며 새참 먹을 때 또 혼자서는 재를 넘어
다가 자기 몪 주먹밥 한 개를 먹여주고 쉴 새 없이 또 재를 넘어서는 일 도와주러 간다.
하루 해는 길어도 왜 그리긴지, 정말이지 혼이 빠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쯤에야 어느새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는데 돌아오는 길에 시어머니 다리 저는 모습을 보면 또 한숨도 눈물도
동시에 나고, 집에 와도 쉴 수는 없다.
해 넘어가기 전에 물 길어와야지, 서방님, 어머니 드실 저녁 밥 짓고 빨래해서 널어놓고
하루종일 손도 못 댄 바느질거리 두어벌 겨우 다 하고 정말이지 죽을만큼 고된 몸에 손발이
다 부들부들 떨린다. 심장은 펄떡펄떡 뛰고 죽을 것만 같은데 애는 또 밤새도록 울고 겨우
겨우 달래서 재워놓고 이제 정말로 정말로 자려고 하면 어느새 남편은 위로 타고 올라온다.
"서방님…"
"어허, 내 말했잖여. 아 셋을 낳기 전까지는 단 하루도 쉴 수 없으니 그리 알어"
"…네에"
그렇게 선녀는 눈을 질끈 감고 남편의 격렬한 '사랑'을 받아낸다. 너무 힘들고 눈물이 절로
나는 시간을 보내고나면 남편은 또 어느새 스르륵 내려와 곤히 잠에 빠진다.
뒷물을 하러 몸을 일으키니 정말로 손발 어디 마디마디 단 한 군데가 안 아픈 곳이 없다.
이러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다. 짐승같은 깊은 밤의 숨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어둠 속에서
뒷물을 하고 있노라면 온 세상이 다 무서웠다. 그리고 저 하늘의 달이 너무나, 정말 너무나
황홀하고 다시 가고 싶었다.
선녀는 두려웠다.
선녀는 본디 하늘의 존재. 인간세상에서 인간과 어울려 살 수는 있지만 인간 세상에서 죽으면
영원히 윤회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걸 알면서도 꾹 참고 살려고 했지만, 이건 아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몇 달간 참아왔던 눈물을, 그녀는 또 한번 훌쩍이며 한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졸라볼 생각이다. 선녀옷을 입어보고 싶다고.
안다.
내가 떠나면 남편도 시어머니도 모두 엄청나게 슬퍼할 것을. 하지만 이대로라면 내가 먼저
죽을 것만 같다…
미안해요 낭군님…
죄송해요 어머님…
↧
선녀와 나무꾼 ~그녀는 왜 나뭇꾼을 떠났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