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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69)] 오 부장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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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진짜 이따위로 할래? 엉? 이건 뭐 4년차나 됐다는 놈이, 완전 개판이야? 어! 회사 놀러다녀?
내가 승질을 안 내게 생겼어?"

오부장은 잠시 영업본부에 들렀다가 저어기 구석에서 한창 깨지고 있던 최상목 대리를 보았다. 영업
2팀의 한 부장한테 욕을 먹고 있었는데, 꽤나 다혈질인 한 부장인만큼 그 나무람도 격렬해서 다른 팀
사람들이 다 민망해 할 지경이었다.

'저건 아닌데…'

최 대리가 갓 입사할 때 일 가르쳐가며 키워놓은 부하 직원인지라, 지금은 다른 부서에 가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마음은 썩 좋지 않았다. 그걸 떠나서 남들 앞에서 자기 부하직원을 저렇게 망신주는게
아무리 파이팅 넘치는 스타일이라고는 해도 영 보기 좋지 않았다. 일단은 영업본부장이랑 잠시 회
의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나오자 그때는 최 대리가 제 자리에 앉아있길래 잠시 커피 한잔 하자면서
최상목을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왔다.



"담배 한 대 피워. 근데 뭐 때문에 그러는거야?"
"어휴, 진짜 뭣도 아니에요. 달달 볶는거죠 뭐. 그냥 뭐 지 꼴리는대로 안 풀리면 맨날… 제가 진짜
부장님 앞에서 이런 말 하는 것도 뭐하지만, 저 요즘 솔직히 회사 관둘 생각까지 한다니까요"

분명히 오 부장이 기억하는 최 대리는, 아니 당시 말단 사원 시절의 최상목은 제법 일을 잘하는 축
이었다. 눈치 빠르고, 똘똘하고, 사람들한테도 싹싹하고. 같은 팀에서 사내 연애를 하다가 중간에
깨지는 바람에 휴직이고 뭐고 그냥 관둔다는거 겨우겨우 붙잡았는데(지방대 출신에 뭐 하나 크게
내세울게 없는 놈이 대뜸 걷어차고 나가봐야 여기만한 직장을 또 어디서 구해. 가뜩이나 나이 먹은
홀어머니 모시고 산다는 놈이 정신 못 차리고)…

도저히 그 년이랑은 얼굴 보고 같이 일 못하겠다 곤조를 부리는 바람에 '사무실 앞에만 앉아있는
것도 좀 그렇다' 라는 말에 나름 적성에도 맞을 것 같아 영업팀으로 보내준 게 정확히 2년 전. 

…근데 영업팀 한 부장이 좀 다혈질이긴 해도 그렇게 앞 뒤 없는 사람은 아닌데, 그렇게까지 신랄
하게 깨지는 모습은, 음, 뭔가 잘 안 맞는건가.

"저도 차라리 이게 일적인 문제로 그런거면 아 일만 똑바로 처리하면 되는 거니까 속 편합니다.
근데 이거는… 아 진짜, 솔직히 사람이 잘 안 맞는 사람이라는게 있긴 있는 거 같습니다. 정말로
힘드네요 어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최상목 대리. 그러더니 그는 "아니, 사람이 악감정을 갖는 것도 다 이해
합니다. 사람인데 어쩌겠습니까. 그렇지만, 사적인 감정을 갖고 이런 식으로, 남들 다 보는 데서
무안을 주는 스타일은, 아 진짜 우리 팀 사람들이 다 뭐가 되겠습니까. 저는 또 저대로 뭐가 되
구요. 정말이지…아니 자기 책임까지 아랫 사람한테 떠넘기니 원" 하며 울분을 토해냈다.

흐음. 가끔 이렇게 어쩌다, 술자리나 혹은 이런 격정적인 분위기에서 진짜 속마음을 털고 다른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게되면-보통 직속 부하들은 아무리 편하게 말을 하라고 해도 못하지만-
꽤 많은 정보를 얻게된다. 물론 대부분은 상당히 각색된 이야기들이다. 자신들의 단점이나 잘못은
쏙 빼놓은 채, 그저 마냥 자기들 억울한 이야기, 기분 상한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관리직 사원들끼리 있을 때는 서로 의식하고 견제를 하다보니 얻지 못하는
'잠재적 라이벌'의 약점이라던가 다른 부서들의 속사정 등을 '그저 적당히 말을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알 수 있으니 꽤 쏠쏠한 일이다. 특히 나같은 부장급 직원은 더더욱 그렇다. 조금만
소홀해도 어느새 아랫선의 '언로'와 정보 루트마저 끊겨버리니까. 회계, 인사팀와 더불어 사내
3대 정보조직인 총무과의 수장으로서 나름 '항상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떠나, 한때 함께했던 부하직원의 괴로움을 들어주는 것은 상사로서의 도리.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지 뭐. 드러운 일 보고 겪고. 근데 솔직히 아까 진짜 좀 거시기 하두만"
"어효, 진짜 제가 뭐 아부 떨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부장님 밑에서 일할 때 생각 많이 납니다.
진짜 구관이 명관입니다"
"하이고, 우리 성목씨, 영업팀에서 일하더니만 아부 마~이 늘었네"

참담한 처지에 빨아주는 아부지만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닌가.
거기에다 사실 아까 영업본부장한테 들은 이야기는 꽤 재미나는 이야기였다.

'봄을 전후해서 또 한번의 임원급 승진 인사이동이 있을 것이며 오 부장 당신이 그 후보군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 영업 2팀 한 부장이 또 다른 후보고.'

어디서 들은 정보냐니까 어깨 툭툭 두드리며 손가락 두 개를 펴보인다. 실세 중에 넘버 투라
하면 한동진 인사본부장… 나를 밀어준 것도 그 사람이란다. 정작 나한테는 귀뜸 한번 없더니만,
뭐 예전에 차려준 강남 야구장 떡밥이 아직은 살아있다 이건가. 하여간에 그런 양반들이 은근히
그런 디테일과 기억력은 끝내준다. 어쨌건 한번 빚을 졌으니 갚는다 이건가.

그래도 한가지 미심쩍은 것은 '왜 그걸 자기 부서 사람을 젖혀놓고 나한테 정보를 주나' 싶어
직접적으로 물어봤더니 그 대답이 걸작이다.

"내 도끼라고 너무 믿으면 곤란하지. 자기 도끼에 찍혀 죽는 사람, 얼마나 많아?"



한번 미끄러져봤다. 두 번 실패하면 더이상은 분명 기회가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기회면서
위기이기도 하다. 일단 영업 2팀 한 부장에 대해 최대한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래야 싸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스파이'는 눈 앞에 있지 않은가. 나에 대한 헛된 기대까지 품고서 말이다.

"저, 오 부장님. 참 같잖은 소리이긴 한데… 저 좀 다시 끌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사회생활 몇 년 했다는 놈이 사내 전보를 두 번을 하겠다니. 게다가 작년의 인사 개편 때문에
이제 더이상 본부 단위를 넘는 인사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굳이 실망부터 시킬 필요야 없지. 특히 이런 상황이면.

"에휴, 그러게 내 잘 생각하고 하라니까. 하지만 뭐 힘 써보지 뭐"

그리고 거기까지 말하자 영업 물 좀 먹어본 놈답게 바로 답례 이야기가 나온다.

"감사합니다 오 부장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뭐, 충성은 나중에 다 되면 할 이야기고, 그보다
언제 시간 되십니까? 좋은 데로 한번 모시겠습니다. 꼭!"
"아휴 우리 상목씨 이거이거 그래서야 쓰겠나? 응? 아 요즘에 그렇게 노골적으로 하는 사람이
어딨어. 한 부장한테 이상한거 많이 배웠네"

한번 튕겨준다. 그러자 상목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오 부장님. 솔직히 저도 뭐 눈치가 있고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데 뭘 모르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솔직히 욱하는 마음에 관두고 나가겠다는거, 그 멍청한 어린 새끼 붙잡고 남으라고, 또 기회 주신
분이 오 부장님 아니겠습니까. 그거 제대로 답례도 못한게 죄송하고 그랬는데 그거 한번 갚는 셈
치고 하겠다는 이야기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아 자꾸 이러실 겁니까? 부장님하고 제 사이에?
삼촌 조카 같은 사이 아닙니까? 하하 참"

정말 쭈삣대던 대딩 같은 때가 엊그제 같인데 정말 너스레가 많이 늘었다. 으이구 그래 좋다.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근데 영업팀 자주 다니는 가게들은 위험해서 좀 그렇고, 그럼 내일, 금요일에
어때? 선릉에 좋은데 있는데"
"선릉 어디 말입니까? 혹시 야구장?"

어이쿠.

"알아?"
"아 주대리 따라서 몇 번 가봤죠. 하하, 거기 물 좋죠"

이거여 원, 주영삼 이 새끼 회사 사람 다 데리고 다닌거 아닌지 몰라.

"하, 그려그려. 그럼 내일 뭐…"
"알겠씀다. 제가 거 강남야구장, 박지성 상무한테 연락해놓겠습니다"
"번호 있어?"
"지난 주에도 다녀왔거든요"
"이야, 이거 민망하게스리 뭐 우리 다 형제구만 형제야"
"제가 그래서 그러지 않았습니까. 저랑 부장님은 삼촌 조카 같은 사이라고"
"참나, 몰라. 여튼 내일 보자고"
"예예, 내려가시죠"

오 부장은 힘찬 콧바람을 뿜으며 옥상 벤치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임원을 향한 또 한번의 큰 야망의
기회가 찾아왔다. 내일, 간만의 오입질 기회도 함깨 말이다.


  (다른 편 보러가기) - [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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