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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쉐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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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가'

집주인이 올해는 월세를 올려달라고 해서, 가뜩이나 부담되는 월세비에 더이상 올려주면서까지 살기는 
힘들어 다른 집을 알아보기로 했는데…정말이지 집 구할 데가 없었다. 도저히 이 정도로 작은 곳에서는
못 살 것 같다, 싶은 집 아니면 곰팡이 흔적이 득시글한 오래된 집, 아니면 대낮에도 불을 켜야 살 수 있
는 채광이 안 좋은 반지하방 뿐이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보따리 무역상 형식이형이 간만에 전화를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집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아 옳거니, 딱히 갈 데 없으면 형이 마침 사업장 겸 쉐어하우스 겸 해서 살고있는데
정 갈 데 없으면 와서 살라는 것이다. 장소도 동대문 근처라서 지금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고, 무엇보다
월세 대신 와서 일 좀 도와달라는게 아주 매력적이었다. 월세만 굳어도 초 대박 아닌가.


'…흠'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아주 솔직히 말해서 건물은 많이 낡은 건물이었다. 5층짜리 상가건물인데 벽은
좍좍 실금이 가있고, 저 위에 옥상은, 잘은 안 보이지만 슬레이트로 덮어놓은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형식이 형과 그 친구들이 살고있다는 3,4층은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이삿짐은 나중에 옮기기로
했는데 이래서야 정말 이사하는 것도 큰일이다 싶었다.

'1층은 전당포, 2층은 포목상'

왠지 입주한 가게들마저 왠지 추억의 그때 그 시절 느낌이라 찝찝했지만, 그래도 형식이 형을 믿기로
했다. 아무렴 패션디자인 전공한 사람이 후지게 살고 있겠는가, 라고 애써 위안을 하며.

"형, 나왔어"

잔뜩 녹이 슨 가느다란 철제 비상계단을 올라가면서 '아 이거 정말 내가 잘하는 짓일까'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갈 곳 없는 놈한테 공짜로 집도 내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군데군데 녹슨, 미색 철제문을
두드리며 형을 부렀다. 초인종도 없네. 반응이 없어 잠시 기다리다 다시 또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누구
세요? 하는 여자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

그대는 찌는 듯한 여름에 갑자기 불어온 아주 청량한 한줄기 바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저기요?"

순간 멍해졌을 정도로 아주 청량한 미모의, 문을 열어준 그녀는 낯선 이가 문을 두드리더니 멍하니 얼
빠진 채 서있자 당혹스러웠던 모양이다.

"아,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현준이라고 합니다. 형식이 형…이랑 아는 사이구요, 음, 저기,
뭐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 만화잡지 핀업 포스터에서 본듯한 또래 청소년 아이돌 느낌의 오목조목 귀엽게 생긴 그녀는
"아, 오늘 온다는 사람이 너구나, 반가워" 하면서 나를 알아보더니, "나는 형식이 오빠 여자친구야. 너
28살이라며? 난 너보다 한살 누나야. 아 맞다 내 이름은 한은지야" 하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했다.
손이 보드러웠다. 어떻게봐도 한 23~24살 정도로 보이는데, 엄청 동안이구나.


상가건물이라 그런지 3층 안은 벽지도 바르지 않고 그저 벽에 하얀 페인트만 칠하고, 바닥도 그냥 장판이
아닌 돌바닥이었다. 천장 기둥에는 철제 조명이 몇 개 달려있었고, 얼추 우리 부모님 집만한, 그러니까 한
30평쯤 되어보이는 이 곳에 저쪽 벽을 따라 PC와 각종 문서가 난잡하게 쌓인 책상이 3개 놓여있었다.

방 중앙에는 유리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있었는데, 테이블, 소파 모두 따로따로 어디서 주워온 모양인지
유리테이블은 깨진 유리를 테이프로 붙여놓은 상태였고 소파는 2인용 소파가 2개, 1인용 소파가 한 개
였는데 모두 다 다른 소재, 디자인이었다. 누가봐도 어디 재활용 센터에서 주워온 느낌의.

왼쪽은 벽을 따라 죽 행거들이 놓여있었고 그 행거에 옷 수백벌이 걸려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박스
와 보자기에 옷가지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오른쪽은 그나마 깔끔하게 텅 비어있었지만 대신 벽면에 온갖
사이즈의 액자들에 의미를 알 수 없는 타이포 그라피 사진들이 들어가 있었다.

쉽게 말해서 꼭 무슨 빈티지 편집샵 느낌이었다.

"어때? 괜찮지?"

빈티지를 살짝 넘어 진짜로 빈(貧)해보이는게 좀 거시기 하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뭔가 되게 신선했다.

"네"

은지 누나는 "다들 지금 점심 먹으러 나갔어. 원래는 대부분 그냥 여기서 해먹는데, 지금 가스렌지가 고장
나서. 이따가 기사가 고치러 온대" 하면서 설명해주었다. 나를 처음 보는데도 아주 스스럼 없이 대하는게
참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이렇게 예쁘고 붙임성도 좋은 여자랑 사귀다니, 형식이 형이 부러웠다.

"근데 그러면 잠자는 방은 윗층에 있어요?"
"어. 4층도 소개해줄께"



3층과는 달리 4층은 그래도 제대로 사람 사는 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원래 이 건물 주인집이 살던 곳이라
했다. 굳이 말하자면 4베이 구조로, 저쪽 벽면에 방 넷이 주르륵 있었고 중앙에는 큼지막한 아일랜드 식탁이
놓인 거실, 그리고 입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대형 냉장고와 함께 3구짜리 싱크대, 오른쪽은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었고, 세탁기가 놓여있는 작은 베란다가 있었다.

"어 저기 베란다 전망이 엄청 좋아"

그녀의 말처럼, 여기서 보아도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두 빌딩 사이로 저 멀리까지
바라다보이는 풍경이 참 좋았다.

"그러네요"
"근데 방은 좁아"

거실을 지나 방에 들어서자 과연,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작은 옷장 하나가 전부인 작은 방이었다. 다행히
천장이 꽤 높아서 숨 막힐 듯한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움직임은 제한이 있었다.

"잠은 여기서 자도, 그외 다른 것들은 저기 식탁에서 하던가 아니면 아랫층에 내려와서 다들 해. 좁으니까.
답답하잖아. 그래도 창문 열면 좀 괜찮긴 해"

확실히 침대 머리 맡의 창문이 크고, 채광은 엄청 좋았다.

"이 방은 주은이라고 여자애가 쓰는 방이고, 이 옆 방이 니 방이야. 이거보다 좀 더 작아"

이 방보다 더 작다는 말에 살짝 긴장이 되었지만, 뭐, 문을 열어보니 그럭저럭이었다. 침대는 없었다.

"어때?"
"깨끗하고 맘에 들어요. 아 여기 사는 사람이 전부 몇 명이에요?"
"너까지 여섯 명. 저쪽 끝방을 나랑 오빠랑 쓰고, 이 옆방이 말한대로 주은이, 이 방이 너, 이 오른쪽 방은
또 커플이 살아. 다 우리 회사 식구들이야"
"아 혹시 이 방, 저 때문에 뺀 건가요?"
"아니야, 원래는 창고방으로 쓰던거야. 가끔 손님이나 친구들 오면 뭐 재우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 너가
안 왔음 내 방이 됐을 예정인데, 너가 왔으니깐"
"…죄송해요"
"대신에 밥값만 제대로 해"

그러고보니 형식이 형이 나한테 뭔 일을 도와달라는건지 궁금하네. 솔직히 암만 그래도 뭐, 세를 놔도
돈 몇 십은 버는건데 공짜로 방을 준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어려운 일 시키면 걱정인데.

"아 걱정마, 설마 뭐 힘든 일 시키겠니? 얘 표정 바뀌는거 봐. 너 은근히 웃기는구나?"

은지 누나는 내 표정을 보면서 웃었다.

"미안해요"
"너 은근히 되게 귀엽다? 오빠가 너 챙기는 이유를 알겠어"

귀엽다라는 말이, 솔직히 싫지 않았다.




"아 현준이 왔네? 짐도 다 싸가지고 온거야?"
"아니에요, 일단은 몸만 왔어요. 짐은 다음 주에 옮기려구요"
"어 그래. 아아 다들 인사들 해. 내 고등학교 후배야. 뭐 바로 아는 사이는 아니고, 한다리 건너서 아는
사이인데 뭐…스물여덟살, 맞지? 어, 이현준이라고, 귀엽게 생겼지? 앞으로 당분간 우리랑 같이 먹고
자고 싸고 할테니까 친하게 지내. 아, 일은…너 회사 다니냐?"

아랫층으로 내려가자, 형식이 형은 회사동료 겸 하우스 메이트들과 식사를 마치고 와있었다. 그리고
형은 나를 그들에게 소개시켜주었다.

"그냥 프리랜서로 웹디자인일 해주고 있어요"
"오 웹디?"

웹디자인이라는 말에 키 크고 머리 뒤로 묶은 잘생긴 형…인가? 여튼 범상치 않은 인상의 훈남이
반응했다. 형식이 형은 이번에는 식구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우선, 내 여자친구이자 영업실장 한은지. 영어도 잘하고 일본어도 잘해. 그리고 너보다 한살
많아. 아, 둘이 인사 했지?"
"네, 엄청 자상하게 여기 소개해주셨어요"

'자상하다'라는 말에 다들 풉 하고 웃었다. 은지 누나는 "왜들 그래?" 하면서 샐쭉했지만 형식이 형은
모르는 척 다음을 소개했다.

"이쪽은 오주은. 너랑 동갑이고 우리 회사 구매 담당. 얘가 일 잘 못하면 우리 회사 쪽딱 망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진 완전 승승장구하고 있어. 아 얘도 일본에서 살다와서 일어 엄청 잘해. 근데 술 버릇
존나 안 좋으니까 얘랑 술 마시지마"
"아 사장님! 왜 그런 말을 해요, 나 안 그래. 안녕?"

그녀는 손을 잼잼하며 인사했다. 귀엽네. 뭐 은지 누나급의 미녀는 아니지만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다. 옷도 약간 에스닉하게 입은게, 감각이 있어보였다.

그 다음은 아까 내가 웹디자인 일을 한다니까 반응했던 꺽다리형.

"여기는 봉주. 윤봉주고 나이는 나랑 동갑이야. 서른 셋. 아직 미혼! 근데 바람둥이! 우리 회사 온라인
관계된 일은 전부 얘 담당이야. 홈페이지부터 서버 관리까지 다. 완전 초인이니까 배울 거 있음 배워"
"반갑다"
"반갑습니다"

악수를 나눴고 다음은 키는 나보다 좀 작은, 한 170 초반? 쯤으로 보이는 안경 쓴 몸 단단해 보이는
남자였다. 이쪽은 딱봐도 나보다 나이가 있어보였다. 

"아 이쪽은 수완가, 은배 형님. 나이는 올해로 마흔이고, 돌싱이야. 화려한 돌싱. 경력 13년차 무역의
달인! 무달!"
"강은배다. 잘 지내보자. 그냥 편하게 은배형이라고 불러. 여기선 다들 그냥 형동생하고 지내. 말도
편하게 해"
"네 반갑습니다"

그때 문득, 아까 은지 누나가 방 소개하면서 내 옆 방은 커플이라고 했던게 기억났다. 형식이 형 
커플, 그리고 주은씨, 그러면 봉주형과 은배형이 커플?

"왜? 무슨 문제 있어?"

내 표정이 뭔가 기묘했던지, 형식이 형이 물었다.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호기심을 못 이겨 물어보았다.

"저기, 아까, 은지 누나가 방 소개시켜주면서… 제 옆 방은 커플이 산다고 했는데… "
"커플? 우리 커플?"
"아뇨"

다들 어리둥절해 있는데 은지 누나만 혼자 빵 터져서 어쩔 줄 모른다. 

"뭐야?"

은지 누나는 "아이고 죽겠다" 하면서 소파에 몸을 굴려가며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그녀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얘 엄청 귀엽다. 아까, 내가 방을 소개시켜주면서 오빠들 방을 내가 커플이 산다고 했거든"
"야이!"
"야! 아 이게 한순간에 우릴 호모로 만들어버리네"

그러더니 봉주 형은 손을 내저었다.

"호모 아니거든? 난 멀쩡해"
"솔직히 근데 오빠 둘이 같이 자는거 좀 그렇긴 해"

주은씨까지 끼어들어서 둘을 몰아붙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은배 형님은 따로 집이 있어서 야근하는
날에만 여기서 자고 간다고 한다. 다만 봉주형이 선반 용도로 이층침대를 쓰는 덕분에, 그리고 창고
방에는 침대가 없으며 은배 형님이 허리디스크가 조금 있어서 바닥에서는 못잔다는 이유로 꼭 봉주
형의 이층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덕분에 다들 둘을 커플이라고 놀린다고.

"어쨌든 온 거 축하한다. 가끔, 너 할 일 하다가, 우리도 일손이 달리고 그럴 때가 많아. 그럴 때만 좀
너가 도와주면 고맙겠어. 그리고 언제든지 불편한거 있으면 말하구. 다 좋은 사람들이니까"

사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이사를 완벽히 온 것이라기보다는, 살지 어떨지 결정하러 온 것이었는데
얼떨결에 이렇게 아예 도장을 쿵! 찍은 느낌이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난 이 집이 아주 마음에
드니까. 

"네! 그럼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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