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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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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오지 않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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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이고 싶지만 타고 나기를 잠이 많아 피곤함에 쩔어버린 몸으로 회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대충
씻고, 방의 불을 끄며 블라인드를 치고는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던진다. 고요한 밤, 깜깜하고 조용한 방.
이제는 더이상 남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적당히 표정관리를 할 필요가 없다. 눈을 감는다.

사라졌던 방 안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째각이는 시계 소리, 옆 집 사람 들어오는 소리, 내 숨소리…

미칠듯이 힘들다. 하루하루 미래없이, 발전없이 그대로 정체된 채 시간만 흘러가고 어느새 많이 늦어
버린 것 같은데, 아니 이쯤해서 뭐 하나만 터져주면 그런대로 될 것도 같은데 그런건 아무 것도 없고
은퇴한 아버지는 며칠 전 급전 5만원을 꾸어가셨다.

'후우'

단돈 5만원이 없어서 아들에게 돈 빌리는 전화를 하는 처지를 생각해보면 그저 마음이 답답하고 그저
미쳐버릴 것 같은데 또 그게 속상해서 그만 퉁명스러운 말을 해버렸다. 마음이 참 안 좋다. 가족 같은
거 다 잊는다 해도, 나 하나 앞가림 하는 것조차도 이렇게 막막하고 언제 끝장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너무나 혼란스럽다.

이대로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힘들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깊은 한숨이 절로 쉬어
진다.

정말로 이대로 확 죽으면 어떨까. 아픈 몸 이끌고 또 얼마나 벌겠다고 공장 나가서 그 찬 데서 일하다가
밤이면 힘들어서 끙끙 앓는 소리 내면서 제대로 잠도 못자고 뒤척일 엄마 생각하니 또 그게 한없이 속상
하다. 

그거 생각하면 답답한 직장에서 그저 꾹 참으며 일하는 처지 같은 건 생각없는 투정처럼 느껴지고, 또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나도 한때는 분명 잘나갈 때가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던
때가 있었는데.
 
눈물을 흘리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나아진 것도 같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대출금과 방세, 그리고 한달 생활비 카드값을 제하고 나면 정말이지 돈 한 푼 남는 것이 없다. 그래도
지난 달에는 조금 돈을 아껴서 20만원을 남겼다. 패딩이라도 한벌 사고 싶었지만 그 돈은 남겨둘 생각
이다. 무엇에 쓸지는 모르지만.

나이 서른 하나에 가진 돈이 빚을 모두 제하더라도 꼴랑 20만원 뿐이라니.

5월이면 집도 비워줘야 한다. 이 동네 집값이 많이 올라서 분명 월세도 올려달라고 할텐데, 그때는
나가야겠지. 자취 포기하고 그냥 다시 집으로 들어갈까.


참 생각없이 살았다. 너무나도 철이 늦게 들었다. 아니 아직도 들지 않은 것 같다. 지난 몇 년을 떠올려
보면 그저 모두가 후회로 가득하다. 이러지 말걸,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안 그랬더라면, 일찌감치
그랬더라면, 거기서는 생각대로 했어야 했는데…

뭐 하나 후회되지 않는 기억이 없다. 모두에게 상처만 줘버렸다. 나만 잘난 줄 알고 그저 생각없이
저지른 수없이 많은 짓들이 다 이제는 미안하고, 돌이킬 수 없는 치부가 되어버렸다.

아니, 그래도 나름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한건데. 그저 내가 미욱하고 모자랐을 뿐이다. 더 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다 그게 한계였다. 

연애도, 일도, 친구도, 돈도, 가족도… 한때는, 아니 지금도 사실은 조금 모두가 다 밉고 싫다. 그냥 나
혼자 조용히 다 포기하고 관두면 차라리 그게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낫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나에게 기대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언젠가는 크게 실망을 했다.

영원히 내 편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내 실수에, 내 짜증에, 내 부족함에 실망하고 하나둘씩
다 결국에는 등을 돌려버렸다. 그래도 끝까지 내 편을 들어준 몇 사람들에게는 차마 내가 미안해서 내
가 먼저 등을 돌렸다.

함께 미래를 같이 하고 싶던 그녀와 헤어지고,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고 어머니의 수술비로 삶이 아득
해졌다. 하늘은 아예 내가 그때 죽기라도 바랬던 모양인지 회사까지 관두게 만들었다. 그 모두가 불과
1년 안에 이뤄진 일이다.

아픈 부모님 수술비로 그때까지 모은 적금을 깼다. 빈털털이가 되었고 대출을 내었다. 할부와 유지비
감당이 안 되어 차도 팔았다. 부모님은 나에게 미안해하셨지만 그때 사실 내 진짜 속마음은 오히려 차분
해졌다. 하늘이 이제는 드디어 나를 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어릴 적부터 언젠가 나는 된다, 빛 볼 날이 오리라는, 아무런 근거없는 기대와 희망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지만 그때 나는 확신을 얻었다. 그건 정말로, 정말로 가능성 없고 부질없는 희망이라는 것을.

그 즈음에, 간만에 집에 찾아갔다가, 그 당당하던 아버지가 집에 가도 그저 하루종일 의기소침한 채
본 신문을 보고 또 보고, 그 옆에 벼룩시장을 쌓어놓고 한숨을 쉬면서 어디 일자리라도 찾아보는 그
모습에 너무나 속상해서 한번은 화장실에서 운 적도 있다.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을 하는 그 모
습에 또 한편으로는… 서로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끌어안고 살아가는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럽고 나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스럽기도 했다.


언젠가 윤주가 나한테 술을 사주면서 그랬던 적이 있다. 가끔은 오빠가 부럽다고. 뭐가 부럽냐니까
그 힘든 일들 다 잘 이겨낸 것 같아서, 대견하다고. 멋있고, 그런 정신력을 가진 오빠가 부럽다고.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하니 실소가 터져나온다.

하루하루가 즐겁지가 않다. 미쳐버릴 것만 같다. 분명히 한때는 나도 미래를 그리고, 남들처럼, 뭐
그리 멋있지는 않을지 몰라도 분명 나로서는 세상이 다 내 것만 같고 나 스스로는 남들 이상으로
멋지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화목한 집에 즐거운 직장을 갖고 예쁜 여자친구와 아끼는 자동차를 타고 주말 교외를 달리면서 그
렇게 깔깔대고 웃으면서 화창한 저 하늘에 구름을 보며 나는 지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라고
생각하던 순간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도대체 뭔가. 극복할 길은 있는가. 아둥바둥 어떻게든 과거를 다시 그리려고 해도,
그 모든 과정이 또 다른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그냥 이쯤해서 손을 다 놔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부모님이고 나발이고 다… 부담스럽고 힘들다. 그냥 하루 날잡고 겨울바다
보러가서, 죽을 각오로 덜덜 떨면서 밤바다만 한없이 바라보고 싶다. 

그 깊은 어둠을 바라보면서 내 답답한 마음을, 바다라도 내 마음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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