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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불용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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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천재였다. 엄마 말로는 7살 때 미적분을 풀 수 있었다는데, 그건 엄마 말이고 형의 말에 따르면 이미 그 이전에도 개념을 당연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냥 검사 받았던게 7살일 뿐이란다. 형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큰 이모부의 도움을 받아 국가영재지원 프로젝트인가 뭔가로 엄마와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다.

"아빠, 밥 먹자"

화물차 운전기사와 다방 레지 사이에서 그런 천재가 나왔다는 사실은 실로 기적이라 할 수 있지만, 본래 좋은 일에는 항상 마가 끼기 마련이다. 보호자 1인에 대한 지원금도 나오기는 했지만, 변변찮은 직업도 없는 상태로 천재를 돌보아야 하는 미국살이가 결코 쉬울 리 없었고 엄마는 결국 바람이 났다. 힘들었다고 바람을 피운다는게 합리화 되는 건 아니지만.

"으어…"

한국에서 힘들게 밤낮없이 일하며 미국으로 생활비를 보내고, 팔자에도 없는 강제 기러기 남편 노릇을 몇 년이나 했지만 그렇게 배신당했다는 충격에 아빠는 결국 쓰러졌다. 뇌출혈이 왔고 지금처럼 이렇게 하루종일 방에서 누워 지낸다.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했고, 엄마는 형을, 나는 아빠를 보살피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나이로.

"아빠 덥지? 선풍기 좀 틀어줄게"

다행히 보험과 조합의 지원비, 집 담보 대출로 어느 정도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스물넷이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당장 다음 달 전기요금 7,900원이 부담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나도 뭐 학교 다닐 때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그리 성적이 썩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서울 대학교를 장학금 받으면서 다닐 정도는 결코 아니었기에 대학은 포기했다. 하루 5시간 파트타임 알바 2개를 하며 아빠를 돌보았다. 차라리 그게 돈이 더 되기도 하고, 풀타임 일자리는 오히려 힘들었다. 중간에 아빠를 돌볼 수 없어서.

"연애는 안 해?"
"모쏠이에요. 연애할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상황도 안 좋고"

그런 처지에 나에게 연애는 당연히 사치 중의 사치일 수 밖에 없었다. 당장 휴대폰비조차 부담되어서 지난 달에 없앴다. 오전에 한번씩 들리는 요양보호사 아줌마한테는 알바 때 정말 급한 일이 생기면 그냥 가게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런 지경이니 연애가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인가. 수많은 꿈과 희망을 나는 일찌감치 접었더랬다. 사실 아버지도 10년 가까운 투병 생활 끝에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었고, 나는 내심 아빠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패륜이라고 욕해도 좋지만 이 지옥의 사슬을 끊고 싶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아빠가 죽으면 나도 죽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내 인생이 크게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야야야, 야! 화장실 청소고 나발이고, 빨리 전화 받아봐"
"어? 왜?"
"병원이래. 보호자 찾는대!"
"뭐?"

아빠가 발작을 일으켰다고 했다. 다행히 요양보호사 아줌마가 있던 시간이라 천운이었다. 아니 정말 천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병원으로 가면서 차라리….

"… …"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보다 수술비, 하루에 수십만원이라는 중환자실 병원비 부담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정말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상황이 왔다. 사채라도 끌어써야 하나.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냥 강제퇴원 시켜야 하나.

"누구세요?"

그때였다. 형이 나타난건.




용불용설





수없이 원망했던 형과 엄마였지만, 적어도 형은 나름대로 고생은 했던 것 같다. 바람난 엄마는 한인타운에서 만난 새 남자'들'과 놀아났고, 형은 어머니에게 사실상 방치되었다. 13세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방학 기간 내내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기숙사에서 지냈단다. 엄마 역시 그를 찾지 않았고.

"왜 말을 안 한거야?"

진작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때는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이혼 도장을 찍고 돌아온 이후의 엄마 말로는 아버지도 나도, 그냥 자신들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단다. 형 역시도, 자신 때문에 유학을 와서 집안이 풍지박산 난 것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아니 그보다 자기 때문에 가족이 깨졌다는 죄책감 때문에 차마 연락을 못 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한번쯤은 한국에 올 수도 있는거 아냐? 아니 연락 한 번이라도. 엄마 아빠는 그렇다 쳐도, 나는?"

형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변명거리를 찾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대신 자신의 이후 이력을 말해나갔다. 그러나 그건 내 화를 돋울 따름이었다.

"열세살에 대학 가고 그런거 하나도 안 궁금해. 나한테 필요한건!"
"…내 말 끝까지 들어"

어차피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보아야 양아치년놈들의 더러운 애정행각 밖에 볼 것 없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더더욱 답 없을테니 그냥 차라리 학문에 집중하기로 했단다. 다시 말하지만 형은 천재였다. 천재가 가족을 포함한 세상과 연을 끊고 학문에 집중을 했으니 어떤 결과가 나타났겠는가.

"이게 뭔데"
"엄청난 약이야. 이 주사 한 방이면…"

형은 유전공학을 전공했다. 형이 유전공학을 전공한 이유도 웃기다. 우리 부모님 같은 평범 이하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과 같은 아이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단다. 게다가 유전공학을 전공한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는데, 세상에 자기만 천재인 줄 알았는데 만만찮은 천재들이 수도 없이 많은 분야라서 더 좋았단다.

"그게 좋을 일인가?"
"당연히"

어쨌든 형은 꽤 안정적인 성취를 이뤄가고 있었지만, 대학교를 2년 만에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밟기로 했을 때 잘못된 선택을 했단다. 물론 그건 내 평가다. 형은 그 진 박사인가 하는 사람을 만난 것을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세상을 바꿀 연구를 하고 싶다"

수많은 글로벌 대기업과 무려 노벨상 수상자를 지도교수로 하는 세계적인 명문 연구실의 기회를 뿌리치고, 진 교수라는 사람의 거지 같은-이건 형이 쓴 표현이다- 연구소를 택했다. 설비가 거지 같았다는 말이 아니란다. 오히려 설비는 아마 세계 최고 수준일거라고. 단지 무슨 비밀집단 마냥 은밀하고 답답하고, 연구하는 주제가 비현실적인게 매력이자 문제일 뿐이라고.

"중국에서 연구했어"
"중국?"

중국의 국가생명외방연구소. 신장위구르 자치구 인근에 있는, 중국의 국영연구소라고.



"여기부터는 좀 너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내가 차근차근 말해줄게. 인간의 유전자에는 수많은 정보가 담겨있어. 하지만 직접적으로 뼈와 피, 근육, 조직 등 단백질을 만드는데 쓰는 정보가 담긴 유전자는 그 중에서 단 2%야. 그래서 옛날에는 그 98%의 데이터를 쓸모없는 자료라고 해서 '정크DNA'라고 불렀어"

생각보다 형은 설명을 꽤 잘했다. 외국에 오래 살았으면서도 한국어 발음도 제법 또박또박했고. 오히려 영어 발음이 미국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그 중간이라 조금 이상할 따름이지.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추가적으로 연구가 진행되면서 모든게 달라졌어. 쓸모없는 자료라고 생각했던 98%의 유전자에 사실은 무수히 많은 중요한 데이터들이 담겨 있었던거야. 유전자가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 세포를 어떻게 분열시키는지부터 암이나 각종 유전질환, 노화 관련 데이터 등등. 왜 자폐증이 생기는지에 대한 연구도 거기서 나온거고. 아직까지는 이해하지?"
"어 계속 말해"

형은 중간중간 내가 이해를 하고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러나 여전히 일부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데이터들도 있지. 어떤 유전자의 경우에는 현재 인류에게는 전혀 의미없는 내용도 들어있거든. 마치 컴퓨터 하드에 '내 컴퓨터에 이런 자료가 왜 들어있지?' 싶을 정도로 기억조차 희미한, 전혀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그런 파일이 있는 것처럼"
"응"
"근데 만약에 그런 쓸모없어보이는 데이터에 정말 뜻밖의 정보가 있다고 쳐봐. 예를 들어서 그 정크 DNA에 '아가미로 숨쉬는 법'에 대한 데이터가 있고, 그걸 어떻게든 활성화 시킬 수 있으며, 사람 몸에 아가미를 달아준다면 정말로 물고기 인간 같은걸 생명공학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거야. 쉬운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걸 군사용으로 쓸 수 있다면 엄청난 가치가 있겠지? 그게 내 연구의 시작이었어"

…솔직히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앞서 들은 모든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형이 어쩌면 정신병이 걸려서 돌아온게 아닌가 하는 식의. 아니 더 나아가 이 사람이 정말 형이 맞나 하는 의심까지 했을 정도다. 왜 나를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사기를 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막말로 닮긴 했지만 10년도 전에 헤어진 형의 얼굴 따위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를 일 아닌가.



"뭔 의심이 그렇게 많아"
"힘들게 살아서 그래. 온갖 쓰레기들이 달라붙거든. 그리고 형이라면 그런 황당한 말 듣고 사람을 믿을 수 있음?"

형은 나와의 어렸을 적 정말 희미한 기억을 쥐어짜내야 했고, 십수 년 넘게 연락은 커녕 이름도 꺼내 본 적 없는 사촌들의 이름을 기억해내야 했다. 이름 한 자 힌트를 주긴 했지만, 그걸 기억하는게 더 신기했다. 내 왼쪽 새끼 발톱 밑의 상처가 형이 깨물어서 난 상처라는 걸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나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화가 누그러지기도 했다.

"자, 중국 여권. 이제 믿냐?"
"그럼 국적이 지금 중국인이야?"
"어"
"미친!"
"그 정도로 중국에서 중요 인재 취급한다는 이야기지"
"연구소에서 짤렸다며"
"원래 요즘 중국 기업들 분위기가 좀 그런 구석이 있어. 공산주의 국가였다가 뒤늦게 자본주의 맛을 봐서 그런지, 오히려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심하게 이익을 쫒는게 있어"

형은 어쨌거나 연구 실패의 책임을 지고 짤렸단다. 천억대 연구비가 투입된 연구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 싶었지만, 형 말로는 그 연구소에서 천억은 돈도 아니라고 했다. 단지 단물이 빠졌다고 판단해서 버린 것 뿐이라고.

"그래도 갈 곳은 많을거 아냐. 그런 엄청난 곳에 있었으면"
"아니"

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중국의 국영연구소에서 일한 연구원이 서구권 글로벌 기업이나 주요한 메이저 연구실에 간다는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처음에 자기가 중국에 갈 때만 해도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준 간첩 취급이라고.

"그럼 중국 내에서는?"
"법으로 막혀있어. 한국에서도 정보나 연구 관련해서는 몇 년 간 동종업계 취업금지 뭐 그런 거 있잖아"
"벌어놓은 돈은?"
"아까 병원비 지불하고, 또 한달 정도 아버지 입원비 낸다고 치고, 그럼 대충 한 이제 5백만원 정도?"

큰 돈은 맞고, 정말 너무 고마운 것도 맞지만… 그래도 형이 더 큰 돈을 갖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막연하지만, 그냥 한줄기 아주 작은 희망이었다. 조금 전의 이야기들을 듣는 중에도 내 팔자가 잘하면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그 표정은 뭔데"
"그럴 거면 그냥 미국 연구실 가지 그랬어. 노벨상 수상자도 형한테 오라고 했다며"
"그랬으면 이게 없었겠지"

형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아까 보여준, 노란 약이 꽉 차있는 주사기를 다시 꺼내들었다. 나는 물었다.

"아까부터 그게 뭔데"

형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용불용설이라고 알아? 동물의 신체 기관은 쓰면 쓸수록 발달하고, 안 쓰면 퇴화한다. 그래서 목이 짧은 기린이 맨날 높은 가지에 달린 나무를 따먹다 보니 목이 조금씩 길어졌고, 그 후대에 이어지면서 결국 지금의 기린이 됐다라는 식의 주장"
"개소리 아냐?"
"맞아. 개소리야. 그런데 현대 최신의 진화 연구에 따르면 또 아주 틀렸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부분들이 존재해. 후성유전학이라고, 부모가 이미 태어난 이후에 얻은 유전적 특성이 자식에게 정말로 대물림이 되는 현상들이 있어. 이건 이미 많은 실험과 역사적…"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아니 대충 알겠는데, 그게 그 주사랑 뭔 상관이냐고. 그거 뭐 마약이야?"
"사람 몸 속에 있는 유전적 가능성을 발현시키고, 그 형질을 유전시킬 수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전자 개조 주사제"

판타지 같은 이야기에 코웃음이 났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키가 크고 싶다고 그 주사 맞으면 내 키가 커지는거야? 근데 유전이라면서. 내 자식은 키가 크겠지만 나는?"

형은 어깨를 으쓱했다. 미드 같은데서 보는 동작이라 좀 느끼했다. 정말로 저런 동작을 하는 사람이 있네.

"유전자를 조작한다고 했지 니 정자를 조작하는게 아니라고. 니가 손톱 자르면 평생 그 잘린 채로 손톱이 있냐? 유전자가 니 새 손톱을 조금씩 만들잖아. 니 몸의 모든 세포도 다 그런 식이야. 늙은 세포 죽고 새로운 세포 만들고. 초당 380만개의 세포가 새로 만들어져. 그래서 인간의 모든 몸이 새로운 세포로 싹 다 바뀌는데 드는 시간은 약 80일이야. 얼추 세 달이면 사람은 사실상 누구나 새로 태어나. 유전자 정보를 살짝 조작하면 딱 80일 만에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어"



형이 일단 머리가 좋은건 알겠다. 이건 망상병 환자의 개소리라고 생각해도 일단은 재밌는 소재다. 이런걸로 영화 나오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여튼 그럼 그 주사 맞으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헐크라도 됨?"

그러나 형은 아까와는 또 다른 소리를 한다.

"근데 아무렇게나 개조하면 망하는거야. 바로 암 세포가 되어버리니까. 진짜 인간의 몸은 섬세함을 넘어서 그냥 신이 만든거 맞는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야. 컴퓨터 코딩 배워봤으면 알텐데, 이거 하나 고치면 저기서 문제가 터지고 저거 고치면 또 어디서 문제가 생겨. 진짜 유전자 개조는 그런거야. 직접적인 개조는 항상 문제를 만들더라고. 그래서 조금 안전장치를 만들었지"
"그게 뭔데"
"용불용설에서 힌트를 얻었지. 자주 쓰고 자주 하는 행동에 반응하도록, 몸의 포텐셜을 늘려주는거야. 니가 팔 근육을 빡세게 운동한다? 그러면 스테로이드 쓰는 것보다 빨리 팔근육을 키울 수 있어. 니가 달리기 운동을 자주한다? 그러면 다리 근육과 관절, 뼈가 강해져서 점점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될거야. 심폐기능도 마찬가지. 생각도 마찬가지야. 평소 뭔가를 자주 외우려고 노력한다? 암기력이 좋아질거야"

점점 더 형의 말이 황당무개해지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확실히 알겠다.

"그러니까 지금 30키로로 달리는 차의 속도를 100키로로 바꿔주는건 아니지만, 엔진부터 속도계까지 원래 200키로가 한계점이면 한 400키로까지 달릴 수 있게 해준다는거 아냐. 맞지?"
"그래, 바로 그거야. 다만 심장 같은 불수의근이나 림프계 같은건 뜻대로 움직이는게 아니니까 뭐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제약이 있게 잘 조정을 해뒀지만…"

정말로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꿈의 기술인데 나는 시큰둥 해졌다.

"근데 무슨 그런 대단한 기술을 발명했다는 사람이 짤려"

형은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했다.

"부작용이 장난 아니거든. 이 주사 맞으면 60%는 암 걸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빨리 진행되는 암. 무조건 80일 안에 온 몸의 모든 세포가 암세포가 되어서 죽어"

실패작이구나. 하지만 그래도 60%면 나름 해보겠다는 사람 꽤 나오지 싶었는데, 다음 말이 문제였다.

"동물실험에서 100% 안전하다고 판명나도, 인간에게 임상실험하면 무조건 암이 되어버려. 온 몸의 모든 장기에서 궤양이 생기고 피똥을 싸면서 암이 발병을 해. 그걸 어떻게든 안정화 시킨다고 시켰는데도 여전히 암 발병율이 60%야. 여기까지 오는데 몇 명이 죽었는지 몰라"
"그게 무슨 소리야"

형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인간 대상으로 실험한거야. 생체 실험. 마루타 같은. 근데 더이상 못하게 됐어. 외국에서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문제를 걸고 넘어져서, 실험 자체가 접혔지"
"형이 마루타 실험을 했다는거야?"

앞의 이야기들이 기술적인 황당무개함이라면 이건 윤리적 황당무개함이다. 중국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에 앞서 충격적인 이야기인데도 전혀 현실감이 없어서 오히려 부담이 없었다.

"실험이 너무 계속 철저하게 실패하니까 방향의 접근성을 바꿔봤어. 범용성을 갖는 약물이 아니라, 특정 유전자에서의 안정성을 높히도록. 내 유전자 기반으로. 내 유전적 복제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해서 60%까지 끌어올렸는데 실험이 접힌거야"

복제인간이라… 헛웃음을 겨우 참았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은 내 입가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겨우 60%까지 안정성을 끌어올렸는데 그 연구가 도저히 포기가 안되더라. 여기서 접으면 그 많은 사람들 다 개죽음 되는거잖아. 근데 그런 국영 연구소에서 그런 실험약을 어떻게 몰래 갖고 빠져나올 수가 있겠어.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이거야"

형은 팔뚝에 주사 바늘 자국을 내밀었다.

"마지막 실험약의 6회 투여분을 내 몸에 주사했어. 내가 살아서 한국까지 올 수 있는, 그리고 내 피에서 걸러서 딱 1회 분을 만들 수 있는 분량. 그리고 한국에 오자마자 내 피를 걸러서 이렇게 주사제를 다시 만들었지. 참고로 나 암이야. 오늘 아침에 피똥 쌌어"

나는 입을 닫았다. 한참 후에야 그 주사기를 건내받고 말했다.

"이걸로 뭐 어쩌라고. 나도 맞고 암 걸리라고?"

형은 또 어깨를 으쓱했다.

"니 마음대로 써. 어차피 내 유전자 기반이라 생판 다른 사람들이 쓰면 보나마나 암으로 죽어. 그나마 너는 나랑 형제니까 확률적으로 2할 정도 성공 가능성이 있어"

20%의 확률로 초인이 되고, 80% 확률로 암에 걸린다고? 그럼 이게 자살약이지 뭐냐.

"나는 내일 아침 아빠 얼굴 잠깐 보고 다시 중국 돌아간다"
"중국은 왜"

형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 친구고 뭐고 그나마 아는 사람은 이제 다 중국에 있어. 한국에서 내가 뭐할건데. 근데 죽기 전에 너랑 아빠는 보고 싶더라. 돈은 많이 못 가져와서 미안해. 근데 나도 여기까지 오느라고 여기저기 돈 찔려주느라 남은 돈이 얼마 없었어. 그나마 남은 돈도 투석하면서 약 걸러내는라 정말 남은게 없어.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서 다행이야"

누군가에게는 대략 학살을 주도한 미친 과학자일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 내 상황에서는 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형일 따름이다.

"밥이나 한 끼 해"
"장기 궤양으로 피똥 쌌다니까. 밥 먹으면 더 빨리 죽어"
"참 나"
"한국 구경이나 시켜줘. 디디피 한번 가보고 싶었어"



다음 날 형은 기저귀를 차고 비행기에 올랐다. 떠나기 전 형은 병원에서 아빠를 보고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의식이 없었고. 생각보다 애틋함은 없었다. 형은 아주 드라이한 성격이었다. 내 아주 어린 기억 속의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암 걸리는 약"

나는 그저 주사기만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만약 아빠가 죽으면 그 주사를 맞을 생각이었다. 형의 말은 애초에 믿기지도 않고, 만약에 암에 안 걸린다고 해도 또 다른 부작용이 있을지 어찌 아나 싶었다. 단지 바로 그래서 맞을 생각이었다.

살아서 뭐하나.

가족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대한민국 모두가 들고 다니는 그 흔한 휴대폰조차 없다. 아빠 병원비 내고 대충 5백만원이 남는다는데, 사실 그것도 여기저기 돈 빌린거 갚고 나면 끝이다. 빈털털이라도 살아면 있으면 좋은 날 온다는 말, 참 여기저기서 많이 듣기는 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너무 허탈해서 코웃음만 난다.

그냥 콱 죽어버리는게 낫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벌인지, 그 직후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안 좋은 표정으로 나왔다.

"방금 전 보호자 분, 아버지 환자분, 돌아가셨습니다"

아직 신입인지 간호사는 조금 횡설수설하며 아빠의 죽음을 알렸다. 나는 쿨하게 알겠노라며 이후 절차를 알려 달라고 했다. 장례는 치르지 않기로 했다. 올 사람도 없었고. 화장한 유골은 대충 집 뒷 산에 뿌렸다. 아빠랑 휠체어 타고 다닌 유일한 산책 코스니까.

"후우"

울음도 나지 않았다. 울음은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소주 첫 잔을 들이켰을 때부터 터져 나왔다. 그것도 딱 한 3분 정도, 짧은 통곡이었다. 그게 다였다.



술이 웬수다. 정신을 차려보니 팔에 주사가 꽂혀 있었다. 희미한 기억이 나를 일깨운다. 내가 내 팔에 주사를 놨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진짜로 자살용 주사를 스스로 맞췄어. 미친 놈.

"무제한 요금제요"

예상 일정보다 아빠가 더 빨리 죽은 바람에 돈이 생각보다 조금 더 남았다. 약 2천만원 정도. 형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제 살 날이 두 달 남 짓 한 상태. 그 2천만원 중에 5백은 일단 기존에 여기저기서 5만원 10만원 빌린 돈들을 갚았다. 남은 천오백으로 나는 원없이 살다 죽을 생각이었다. 휴대폰부터 개통했다. 옷도 사입었다. 겨우(?) 나이키였지만.

"…"

사치를 부린다고 부린게 겨우 치킨 두 마리, 피자 한 판이라는 사실에 스스로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그래도 소주 안주로 피자도 꽤 괜찮구나 하는 정보를 얻은 것은 이득이었다. 어쨌거나 조금은 더 쓰기로 했다.

"어머 혼자 왔어요?"
"네"

사실 나도 여자도 만나보고, 막 화려하고 근사하게 놀아보고도 싶었다. 근데 아는 여자도 없고, 내 주제에 클럽에 가면 당연히 입뺀 당할 거 같고, 그렇다고 또 성매매 하는 뭐 그런 곳에 가긴 쫄려서, 그냥 매번 알바 다니던 역 근처 앞에 있던, 이쁜 여자들 종종 그 앞 식당에서 보이던 룸살롱에 가봤다. 돈지랄이라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하는 생각에 대범하게 돈 쓰기로 했다.

"오빠 나 술 한 병 더 시킬께"
"어"

그리고 생각없이 몇 잔 더 받아마시다가 깨달았다. 나 원래 술 몇 잔 마시면 취하는데, 지금 양주를 몇 병째 마시고 있다.

'용불용설'

소름이 끼쳤지만 양주라서 그런거 아닐까 싶어서 소주를 한 병 물처럼 마셨지만 안 취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울었다. 형의 마지막 선물이 고마워서. 자기 죽음을 무릅쓰고 선물을 가져다 주어서.

"오빠 왜 울어"
"내 친형이 나 술 잘 마시게 만들어 줬거든. 진짜네"
"뭐야 그게"



그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딱 한달 만에 나는 몸짱이 됐다. PT 선생님이 진지하게 약물 같은거 쓰면 큰일 난다고 조언을 했을 정도다. 같은 피트니스 클럽의 아저씨들도 보충제 뭐 먹냐고 물어보거나, 뒤에서 수근거리며 한 소리씩 할 정도로.

"미쳤구나 이거"

성적 능력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전까지 모쏠이라 약 먹기 이전과 비교를 못해본게 아쉬웠지만.

"오빠 진짜 미쳤다. 약 먹었지? 비그리아?"
"내가 그걸 왜 먹냐"
"아니 근데 어떻게…아 진짜 대박. 그리고 오빠 할 때마다 자꾸 더 커지는거 같아. 이거 기분 탓인가? 아니 이젠 좀 막 부담스러워 살짝"

솔직히 그 이전에도 공부는 그냥저냥 수준이었지만 머리 나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다. 진짜 대가리 좋은 사람들의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는 것을. 기억력이 좋다는건 꽤 유용한거고, 개그를 잘 치는 건 지능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말장난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그 뿐이 아니었다.

"대박. 혹시 원래 악기를 배우셨던 분이신가요? 아닌데. 이렇게 빨리 실력이 늘 수가 없는데. 그냥 어렸을 때 배웠는데 기억 못하시는거 아니에요? 아니면 하루에 연습을 몇 시간 하세요? 막 밥만 먹고 연습만 하시는거 아니에요? 저 진짜 보람 너무 느껴요! 저희 다음 주에 레슨 끝나고 식사라도 같이 안 하실래요?"
"나이스샷! 피지컬이 좋으신데 배우시는 속도도 거의 남 몇 배에요. 아 진짜 한 1년? 아니 한 6개월? 진짜 프로 노려봐요 우리. 아! 그리고 요즘에 아마추어들 참가하는 오픈 대회도 많거든요. 기본적으로 비거리도 좋아서…진짜 기대해볼만 해요"
"그죠. 남들은 뭐 운이네 뭐네 하고, 실제로 운도 많이 작용하기는 하지만 코인이라는게 흐름을 보는 거잖아요. 직관이라고 해야되나? 형은 타고 났어요. 상승장이 아니라 하락장에서 돈 버는 사람이 진짜거든요. 형은 진짜 인정. 리스펙합니다. 내가 가르쳤지만 나보다 나아"

무엇을 하던 아주 조금만 노력하면 남들의 몇 배로 잘하게 되었다. 물론 보통 사람의 1.5~2배,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하게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긴 속도계 한계지점을 200에서 400으로 만들어준다고 했지, 가솔린 엔진을 로켓엔진으로 바꿔주는거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애초에 그렇다면 인간의 몸이 버텨낼 리도 없고. 그게 살짝 아쉽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뭐.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는 부자가 되어 있었다. 코인으로 시작해서 주식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갔고, 취미 겸 교양으로 배우던 첼로 선생님이던 수현과 결혼했다. 유복한 집에서 사랑받고 자란 그녀는 나의 황량한 마음을 잘 케어해주었다. 처가도 고아인 나를 마치 자식처럼 대해주셨고.

"응. 오빠 그러면 와이프는?"
"와이프는 며칠 친정 갈거야"
"그럼 딱이네. 우리 가게 와서 놀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알았어. 아 가게에는 장 프로도 갈거야"
"알았어"

…양주로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던 룸빵 에이스 소라, 본명 재희는 내 세컨이자 강남의 잘 나가는 룸빵 사장님이 되었다. 물론 그 가게도 내가 차려준거다. 바람기도 유전인지도. 

[ 항상 피드 잘 보고 있어요 매번 느끼는데 몸 너무 멋있으세요ㅋㅋㅋ 담에 한번 시간되시면...ㅋ ]

나는 SNS에서 스타였고, 쏟아지는 DM과 리플은 수현이 매번 은근히 신경쓸 정도로 노골적인 유혹도 많았다. 분명 너무 신경 쓰는게 뻔한데도 애써 아닌 척 티 내는 모습이 귀엽고도 미안하지만.



"아 인스타 그만하고 축구 좀 봐. 이거 축구 본다고 오빠가 200인치 TV 산거 아냐?"
"알았어. 아 근데 뭐냐 저거. 중국한테 전반 11분에 2:0이 무슨 망신이야"

조금은 짜증 섞인 수현의 핀찬에 나는 다시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한국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놀랍게도 중국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다행히 이미 승점을 확보한 상태라 이번 경기는 져도 올라가는 상황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시아 예선에서 중국한테 진다니.

'어?'

그 생각을 한 순간, 한 골을 더 먹혔다. 하지만 내가 놀란 것은 한 골을 더 먹힌 것 때문이 아니었다. 방금 화면에 비친 어시스트를 한 선수의 얼굴이 내가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형'

형의 얼굴이었다. 나는 이미 시력과 안면인식능력까지 좋아진 상태다. 잘못 봤을 리 없다. 형이 틀림없다. 처음에는 형이 어쩌면 중국에 돌아가서도 안 죽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보다 너무 젊었다. 그는 형이 아니라 21세의 축구선수 양하오둥이었다. 제 3 세계 선수들이 종종 와일드 카드 때문에 나이를 속이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저 선수는 형이 아니다. 중국은 정말로 그 연구를 접은 것이 아니었다.

'아'

그리고 순간 그제서야 하나를 깨달았다. 내가 맞은 주사의 성공율은 60%라고 했다.

'60%'

애초에 모조리 실패했다면 6할이라는 '성공율 데이터'가 있을 수 없다. 그랬구나. 중국에는 나와 동일한 능력을 가진 초인이 6의 배수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아니, 정말로 형의 모든 말을 다 믿는다면 연구를 위한 '형의 복제인간'이 수도 없이 많을 가능성이 있다. 찍어내면 그만이고, 유전형질의 유전을 감안한다면 출산을 시켜서 또 다른 초인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아마 저 양하오둥이라는 선수도 그 중의 한 버전에 불과하겎지.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실히' 중국은 초인 군대를 만들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중국의 지도자라도 압도적인 근력과 정신력을 가진 초인 군단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아무리 군인보다 군사무기 체계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당장 복제를 찍어내라고 명령할 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수현을 바라보았다.

"왜"
"애국하자"
"뭐?"
"씻고 올게"
"뭔 소리야 축구보다가 갑자기"

설비도 연구결과도 아무 것도 없는 내가 중국의 초인 군단을 대항해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나 역시 초인을 생산하는 것 뿐이니까.

< 끝 >


이 글을 기점으로 당분간은 유료 메일링 중심으로 소설이 게제될 예정입니다. (물론 가끔은 이 블로그에도 글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그럼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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