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5년 만에 만난 그녀는 꽤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또랑또랑한 눈에 작고 동그란 두상을 더 강조하는 숏커트 헤어스타일은 그대로지만, 일단 오늘은 재영이가 와인색 드레스를 입었다. 그것도 등이 상당히 파인 옷으로. 진짜 말도 안되는 일이다.
"감사합니다"
종업원이 의자를 슥 빼주자, 자연스럽게 앉는 그녀. 이미 내가 주문은 해두었다. 정면으로 마주보기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뻐진 그녀였다.
"야, 너 왜 이렇게 이뻐졌어? 나만 아저씨 됐네"
"오빠도 그대론데? 하나도 안 늙었어"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언제나 청바지에 흰 셔츠, 반스 운동화를 신은 톰보이였다. 물론 화장도 립글로즈나 바르는 편? 그럼에도 항상 깨끗한 피부와 화사한 웃음, 매사 삶에 진지하고 최선을 다 하는 그 모습에 반했었다. 그래서 한 2년을 속 끓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돌직구로 고백했었지. 같이 점심 먹다가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아 뭔 소리야, 오빠는 남자가 아니라고"
"뭐?"
"나한테는 그냥 친오빠나 마찬가지라고. 우리가 어떻게 사귀어"
"야, 왜 못 사귀어. 손 잡고 영화 보고, 뽀뽀하고, 어? 그렇게 하나하나 하면 되지"
"아 미친"
그렇게 보기 좋게 차였지만, 내가 한달 뒤 노선을 갈아타고 지혜랑 사귀기로 했을 때 재영의 흔들리던 눈빛을 기억한다. 취해서 주정 부리던 모습에 솔직히 나까지 조금 마음이 아팠을 정도다. 그러게 진작에 내 고백 받지 참.
"지혜가 그렇게 좋아? 오빠도 그렇게 여자다운 여자가 좋은거야?"
"그러니까 너도 좋아했지"
"나는 그런 과가 아니잖아"
"아니긴 개뿔이. 야 여튼 나 지혜랑 사귄다고 막 찌질하게 울고, 밤에 오빠 보고 찌포요 이딴 카톡 보내면 안된다?"
"나 지금 속 안 좋은데 토할 뻔 했어"
여튼, 졸업 후 취업을 하고 간간히 연락하고 지내다가 재영이도 뭐 새 남친 사귀고(뒤늦게 알았는데 그게 첫 남친이었다), 나도 바쁜 일상 속에 그녀를 그렇게 서서히 잊었더랬다. 지난 주 화요일에 갑자기 날아온 전화 한 통 직전까지. 이게 진짜 몇 년 만인가. 너도 나도, 번호 안 바뀐게 더 놀랍긴 하지만.
그렇게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평일의 압구정 로데오는 역시나 한가롭다.
"야 근데 너 예전엔 이런 드레스 같은거 안 입었잖아. 화장도 많이 늘었네. 스타일 변화 뭔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그런 변신에 대해 캐묻지는 않았다.
"그럼 여전히 그 신문사 다니는거야?"
"아냐, 그게 언제적 회산데. 얼마 전까지 광고대행사 다니다가, 일이 너~무 힘들고 사람 갈려나가는 느낌이라 관뒀어. 근데 다음 주부터 다시 출근이야. 애기용품 파는 회사"
"넌 꼭 니랑 안 어울리는 회사 다니더라. 난데없는 보수 신문사를 다니지를 않나, 명품 광고를 하지 않나, 이제는 애기용품이라고?"
"아 내가 뭐. 나도 이제 30대인데, 육아용품도 딱이지"
근데 그러고보니 오늘 얘 가방도 명품이네. 등 깊게 파인 와인색 오픈 솔더 드레스에 미니멀한 디자인의 구찌백이라. 정말 내가 아는 재영이 맞긴 한가 싶을 정도다.
"나 스타일 좀 바뀌긴 했지?"
"어, 아까부터 그거 계속 묻고 싶었다. 왜? 남친이 이런 옷 입으래?"
"아니"
그냥 별 대단한 이유는 없었단다. 예뻐지고 싶었단다. 예전에는 그게 죽도록 싫었는데, 언젠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요즘에는 이상하게 정장 입고 일하고 싶더라?"
"입고 가면 되지. 예전에는 잘 입었잖아?"
"그게 언제적 이야기냐"
나는 맥주를 들이켰다. 오후 2시 반, 따사로운 햇살을 텅 빈 가게 안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마시노라니 새삼 재영이가 이뻐보였다.
"남친은? 연애는 잘하고 있어?"
아까부터 묻고 싶었지만 역시 타이밍 좋지 않게 물었다. 밑도 끝도 없이. 무심하듯, 묻는 느낌이었지만 역시 내가 생각해도 좀 어색했다. 마치 예전의 고백처럼. 어쩔 수 없다. 너무 궁금했으니까. 재영은 픽 웃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 아까부터 좀 묻지. 왜 항상 꼭 그러냐? 왜 참다 참다 묻냐고. 아예 묻지를 말던지"
그게 그렇게 뻔히 내다보였나. 나도 이제 안되겠네.
"그냥. 좀 그렇잖아"
"뭐가"
"그냥"
재영이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너 결혼해?"
청첩장이었다. 아이 씨.
"내가 좀 갑자기 연락하긴 했는데, 청첩장 줄라고 만난건데 이렇게 막 차려입고 너 꼬시고 싶어요 스타일로 덤비면 내가 이걸 어떻게 주냐. 진짜 오빠 대단하다"
"아 개쪽팔리네"
"하하하"
그리고 그제서야 나도, 재영도 처음으로 본심으로 웃었다. 부끄러웠지만, 솔직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 참 이뻐졌구나 재영아.
- 끝 -
"감사합니다"
종업원이 의자를 슥 빼주자, 자연스럽게 앉는 그녀. 이미 내가 주문은 해두었다. 정면으로 마주보기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뻐진 그녀였다.
"야, 너 왜 이렇게 이뻐졌어? 나만 아저씨 됐네"
"오빠도 그대론데? 하나도 안 늙었어"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언제나 청바지에 흰 셔츠, 반스 운동화를 신은 톰보이였다. 물론 화장도 립글로즈나 바르는 편? 그럼에도 항상 깨끗한 피부와 화사한 웃음, 매사 삶에 진지하고 최선을 다 하는 그 모습에 반했었다. 그래서 한 2년을 속 끓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돌직구로 고백했었지. 같이 점심 먹다가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아 뭔 소리야, 오빠는 남자가 아니라고"
"뭐?"
"나한테는 그냥 친오빠나 마찬가지라고. 우리가 어떻게 사귀어"
"야, 왜 못 사귀어. 손 잡고 영화 보고, 뽀뽀하고, 어? 그렇게 하나하나 하면 되지"
"아 미친"
그렇게 보기 좋게 차였지만, 내가 한달 뒤 노선을 갈아타고 지혜랑 사귀기로 했을 때 재영의 흔들리던 눈빛을 기억한다. 취해서 주정 부리던 모습에 솔직히 나까지 조금 마음이 아팠을 정도다. 그러게 진작에 내 고백 받지 참.
"지혜가 그렇게 좋아? 오빠도 그렇게 여자다운 여자가 좋은거야?"
"그러니까 너도 좋아했지"
"나는 그런 과가 아니잖아"
"아니긴 개뿔이. 야 여튼 나 지혜랑 사귄다고 막 찌질하게 울고, 밤에 오빠 보고 찌포요 이딴 카톡 보내면 안된다?"
"나 지금 속 안 좋은데 토할 뻔 했어"
여튼, 졸업 후 취업을 하고 간간히 연락하고 지내다가 재영이도 뭐 새 남친 사귀고(뒤늦게 알았는데 그게 첫 남친이었다), 나도 바쁜 일상 속에 그녀를 그렇게 서서히 잊었더랬다. 지난 주 화요일에 갑자기 날아온 전화 한 통 직전까지. 이게 진짜 몇 년 만인가. 너도 나도, 번호 안 바뀐게 더 놀랍긴 하지만.
그렇게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평일의 압구정 로데오는 역시나 한가롭다.
"야 근데 너 예전엔 이런 드레스 같은거 안 입었잖아. 화장도 많이 늘었네. 스타일 변화 뭔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그런 변신에 대해 캐묻지는 않았다.
"그럼 여전히 그 신문사 다니는거야?"
"아냐, 그게 언제적 회산데. 얼마 전까지 광고대행사 다니다가, 일이 너~무 힘들고 사람 갈려나가는 느낌이라 관뒀어. 근데 다음 주부터 다시 출근이야. 애기용품 파는 회사"
"넌 꼭 니랑 안 어울리는 회사 다니더라. 난데없는 보수 신문사를 다니지를 않나, 명품 광고를 하지 않나, 이제는 애기용품이라고?"
"아 내가 뭐. 나도 이제 30대인데, 육아용품도 딱이지"
근데 그러고보니 오늘 얘 가방도 명품이네. 등 깊게 파인 와인색 오픈 솔더 드레스에 미니멀한 디자인의 구찌백이라. 정말 내가 아는 재영이 맞긴 한가 싶을 정도다.
"나 스타일 좀 바뀌긴 했지?"
"어, 아까부터 그거 계속 묻고 싶었다. 왜? 남친이 이런 옷 입으래?"
"아니"
그냥 별 대단한 이유는 없었단다. 예뻐지고 싶었단다. 예전에는 그게 죽도록 싫었는데, 언젠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요즘에는 이상하게 정장 입고 일하고 싶더라?"
"입고 가면 되지. 예전에는 잘 입었잖아?"
"그게 언제적 이야기냐"
나는 맥주를 들이켰다. 오후 2시 반, 따사로운 햇살을 텅 빈 가게 안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마시노라니 새삼 재영이가 이뻐보였다.
"남친은? 연애는 잘하고 있어?"
아까부터 묻고 싶었지만 역시 타이밍 좋지 않게 물었다. 밑도 끝도 없이. 무심하듯, 묻는 느낌이었지만 역시 내가 생각해도 좀 어색했다. 마치 예전의 고백처럼. 어쩔 수 없다. 너무 궁금했으니까. 재영은 픽 웃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 아까부터 좀 묻지. 왜 항상 꼭 그러냐? 왜 참다 참다 묻냐고. 아예 묻지를 말던지"
그게 그렇게 뻔히 내다보였나. 나도 이제 안되겠네.
"그냥. 좀 그렇잖아"
"뭐가"
"그냥"
재영이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너 결혼해?"
청첩장이었다. 아이 씨.
"내가 좀 갑자기 연락하긴 했는데, 청첩장 줄라고 만난건데 이렇게 막 차려입고 너 꼬시고 싶어요 스타일로 덤비면 내가 이걸 어떻게 주냐. 진짜 오빠 대단하다"
"아 개쪽팔리네"
"하하하"
그리고 그제서야 나도, 재영도 처음으로 본심으로 웃었다. 부끄러웠지만, 솔직해질 수 있어서 좋았다. 참 이뻐졌구나 재영아.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