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했다. 6.5평 원룸 안에도 각 성의 관료들을 임명했으며 하늘 아래 부여된 모든 권력을 휘두르곤 했다.
"어찌하여 이리도 궁성이 어수선한 것이냐!"
"폐하, 죽을 죄를 지었사옵나이다, 즉시 치우도록 하겠사옵나이다"
"짐이 오늘 은혜를 베풀 것인즉, 즉각 청결히 치우도록 하라!"
"예! 폐하!"
…물론 저 모든 대사는 혼잣말이다. 혼자 무거운 음성으로 역정을 내고, 혼자 간들어진 음성으로 허둥지둥 대는 것이다. 즉 그는 황제이자 대소신료이었으며 백성이었다. 가장 위대한 자이자 가장 미천한 자이기도 했다. 오늘도 그는 혼자 크게 화를 낸 뒤 궁시렁대며 걸레질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 SB 알림 : 9월 5일 11:13 58091-**-*****213 새서민일자리지원 150,000원 입금, 잔액 152,200원 ]
띠링하는 알림과 함께 백수 청장년들을 위한 국가 복지 지원금이 입금되었다. 그는 뛸듯이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어라! 마셔라! 오늘은 좋은 날이 아니더냐, 왜 이리 풍악소리가 작은게냐, 풍악을 울려라, 풍악을 울려! 여봐라, 서둘러 대취타를 연주하라!"
"부로바, 대취타 연주해줘"
[ 베이버 뮤직에서 국립국악단, 대취타를 재생하겠습니다 ]
빠아아아~애애앵~
풍악이 울리기 시작하자 그는 진정으로 대취타에 맞춰 격렬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물론 박자도 분위기도 맞지 않는 엉터리 율동이었지만 알게 뭔가. 그는 황제인데.
"동방예의지국에서 황제의 나라로 조공을 보내와 이리도 국고가 풍족해지니 실로 기쁘구나, 태평성대로다 태평성대야, 이 모두 짐의 요순치세 덕분 아닌가! 좋다 오늘은 이 나라 만 백성에게 짐이 큰 포상을 내도록 하겠노라"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역시 그는 혼자 기분 내고 혼자 감읍하며 스스로이자 만 백성을 위한 거대한 축제를 계획했다.
"여보세요? 네, 여기 성운하우스 302호실인데요, 네, 후라이드 양념 반반에 콜라 세트로 해서 하나 보내주세요. 카드 결제할게요. 아 그리고 양념 좀 많이 부탁 드릴게요 네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지난 달, 알바자리에서 짤린 뒤로 남은 돈도 똑 떨어진 상황에서 때마침 공돈이 들어왔다. 이거 다 쓰고 나면 이제는 진짜 뭘로 먹고 살지 암담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그는 지엄한 국체이자 제국 만인의 지존이니 결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었으니까.
'흔들리면 안된다'
부지런히 알바 채용 사이트를 뒤지지만 어째 마땅한 자리가 없다. 그는 혀를 찼다. 세상이 어찌 이리도 쓸만한 일자리가 없단 말인가.
"제국 상서는 즉시 들라!"
"부르셨사옵니까 폐하"
"짐이 민정을 살핀 결과, 백성들이 일할 자리가 없으니 이는 필시 그들의 곤궁함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상서는 어찌하여 백성들의 곤궁함을 살피지 못한 것인가! 백성들이 밥벌이를 하지 못하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흔들리며 장차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니 이는 짐의 시름이 깊어짐이며 그것은 불충이다. 그대는 서둘러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살피도록 하라"
백성을 어루만지는 어진 황제의 사려. 하지만 제국상서 역시 고민이 깊었다.
"예 폐하…분부 받들겠사옵니다. 하오나 이에 부연을 하온즉, 작금의 불경기는 하루이틀 내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며 장차적인 대비와 깊은…"
"네 이 놈이 감히! 짐의 말에…! 즉각 이 자를 끌고가 참형에 처하라"
"폐, 폐하!"
물론 그가 참형을 운운하며 극형을 내린다고 하여도 실제로 그 누군가가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 스스로가 황제이자 재상이고 내관이며 백성인데 누가 뭐 누굴 죽인단 말인가. 스스로 목을 자를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렇게 누군가를 극형으로 끝내버린다는 말 한 마디만으로 어딘가 속이 좀 시원해지는 것이 있었다.
"폐하,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그러나 아무리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한들, 누군가를 말 한 마디로 죽인다는 것도 지나치게 과하다는 생각에 그는 또 혼자 작게 황제 최측근의 내관을 흉내내어 간들어지는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간언을 했다. 하지만 황제의 뜻은 확고했다.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는 결코 뜻을 이룰 수 없다. 때로는 지나친 수단이 가장 적당한 수단일 수도 있다. 만 백성을 위한 우리의 책무는 한 개인의 목숨값에 비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대로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며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면 살아 무엇한단 말인가.
띵동-
"네, 19500원입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네 맛있게 드세요"
치킨이 도착했다. 그는 밥상을 펴고 앉아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달고 짜고 맵고 맛나다. 얼마만에 맛보는 치킨인가. 거의 한달은 넘었지 싶은데.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또 혼자 스스로에게 감사하고는 치킨에 열중했다. 한참 뜯으며 심심하다는 생각에 카톡을 확인하자 어제 밤에 성태가 보내온 게 있었다.
[ 살아있냐? ]
그는 답을 하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런가, 살아있는가. 살아야있지. 당연히. 숨을 쉬고 먹고 싸며 생각을 하는데. 하지만 나이 스물아홉에 취업은 커녕 알바자리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고 통장잔고는 쥐뿔 나라에서 준 돈과 부모님 흡혈로 먹고 사는 비루한 처지에 차마 살아있다는 답이 민망하게 느껴졌다.
결국 답장 대신 읽씹으로 살아있음에 대한 간접적 증명만을 남긴 채 치킨에 열중했다.
"본디 황제가 움직이면 국고가 축나기 마련이다. 만 백성이 힘든데 어찌 짐 혼자만 즐거움을 누리겠는가"
"기운을 차리소서 폐하"
"그래, 그렇기 위한 보양식 아닌가"
뱃살을 생각해보면 보양이 아니라 일주일쯤 굶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새삼 떠올리지만 그는 허튼 생각을 집어치우기로 했다.
"짐은 황제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닿았던 '여자친구'에 대해 씁쓸한 고찰을 하기로 했다. 황후를 맞이하고 싶다. 생각해보니 모쏠로 끝난 황제도 있던가? 있기야 있겠지 싶긴 한데, 우리나라 왕 중에 그런 케이스도 있었나? 아, 단종은 일찍 죽었으니, 혹시 하며 검색해보니 그도 왕후가 있었다.
"지미럴"
나이 스물도 안된 애송이들도 할건 다 했구만, 하는 생각에 새삼 시름이 깊어졌다. 사랑하는 왕후와 함께 국사를 논의하며 정답게 세자 생산행위에 임하는 막중한 책무를 도외시한 채, 허구헌 날 금발 오랑캐와 왜구의 나체처자 영상서화나 밝히는 스스로의 처참한 처지에 그만 깊은 비탄에 빠질 뻔 했지만 다시 한번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짐은 황제다"
일단 다 먹은 치킨을 치우고 손을 씻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 다시 알바자리를 알아본다.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버스 세 정거장 거리의 PC방 심야 알바자리 하나와 역 근처 마트 매대판매 알바 자리에 지원해 본다.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한다. 국고가 바닥나면 황제고 나발이고 그 끝은 볼 것도 없으니까.
"어흠"
"폐하, 밤이 깊었사옵니다. 기침에 드소서"
"오늘 밤은 외롭구나"
"본디 높은 자리는 외로운 법입니다. 폐하의 마음이 약해져서는 결코 아니되옵니다"
"그냥 해 본 소리일 뿐이다."
그래놓고서는 또 게임과 인터넷을 하며 결국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피곤에 절어 잠자리에 든다.
"오늘 하루 참 고되었구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린 그는 드디어 잠자리에 든다. 언제 빨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쿰쿰한 냄새가 나는 베게보를 좀 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디 내일 눈을 뜨면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그렇게, 고단한 잠자리에서 그는 꿈을 꾼다.
어느 따스한 봄날, 황금색 천이 휘날리며 문무백관이 모인 자리에 우러러 서서 만인지상의 위상을 뽐내는 기쁨을 누리며, 끝없는 부와 사치를 즐기고 가슴 벅치도록 넘쳐나는 행복 속에서 최고의 재주를 가진 이들과 큰 일을 논하고 동작대를 지어 대교 소교 못지 않은 미인들과 향락과 거사에 임하는, 결코 현실에 오지 않을 아름다운 꿈을.
"어찌하여 이리도 궁성이 어수선한 것이냐!"
"폐하, 죽을 죄를 지었사옵나이다, 즉시 치우도록 하겠사옵나이다"
"짐이 오늘 은혜를 베풀 것인즉, 즉각 청결히 치우도록 하라!"
"예! 폐하!"
…물론 저 모든 대사는 혼잣말이다. 혼자 무거운 음성으로 역정을 내고, 혼자 간들어진 음성으로 허둥지둥 대는 것이다. 즉 그는 황제이자 대소신료이었으며 백성이었다. 가장 위대한 자이자 가장 미천한 자이기도 했다. 오늘도 그는 혼자 크게 화를 낸 뒤 궁시렁대며 걸레질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 SB 알림 : 9월 5일 11:13 58091-**-*****213 새서민일자리지원 150,000원 입금, 잔액 152,200원 ]
띠링하는 알림과 함께 백수 청장년들을 위한 국가 복지 지원금이 입금되었다. 그는 뛸듯이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어라! 마셔라! 오늘은 좋은 날이 아니더냐, 왜 이리 풍악소리가 작은게냐, 풍악을 울려라, 풍악을 울려! 여봐라, 서둘러 대취타를 연주하라!"
"부로바, 대취타 연주해줘"
[ 베이버 뮤직에서 국립국악단, 대취타를 재생하겠습니다 ]
빠아아아~애애앵~
풍악이 울리기 시작하자 그는 진정으로 대취타에 맞춰 격렬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물론 박자도 분위기도 맞지 않는 엉터리 율동이었지만 알게 뭔가. 그는 황제인데.
"동방예의지국에서 황제의 나라로 조공을 보내와 이리도 국고가 풍족해지니 실로 기쁘구나, 태평성대로다 태평성대야, 이 모두 짐의 요순치세 덕분 아닌가! 좋다 오늘은 이 나라 만 백성에게 짐이 큰 포상을 내도록 하겠노라"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역시 그는 혼자 기분 내고 혼자 감읍하며 스스로이자 만 백성을 위한 거대한 축제를 계획했다.
"여보세요? 네, 여기 성운하우스 302호실인데요, 네, 후라이드 양념 반반에 콜라 세트로 해서 하나 보내주세요. 카드 결제할게요. 아 그리고 양념 좀 많이 부탁 드릴게요 네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지난 달, 알바자리에서 짤린 뒤로 남은 돈도 똑 떨어진 상황에서 때마침 공돈이 들어왔다. 이거 다 쓰고 나면 이제는 진짜 뭘로 먹고 살지 암담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그는 지엄한 국체이자 제국 만인의 지존이니 결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었으니까.
'흔들리면 안된다'
부지런히 알바 채용 사이트를 뒤지지만 어째 마땅한 자리가 없다. 그는 혀를 찼다. 세상이 어찌 이리도 쓸만한 일자리가 없단 말인가.
"제국 상서는 즉시 들라!"
"부르셨사옵니까 폐하"
"짐이 민정을 살핀 결과, 백성들이 일할 자리가 없으니 이는 필시 그들의 곤궁함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상서는 어찌하여 백성들의 곤궁함을 살피지 못한 것인가! 백성들이 밥벌이를 하지 못하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흔들리며 장차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니 이는 짐의 시름이 깊어짐이며 그것은 불충이다. 그대는 서둘러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살피도록 하라"
백성을 어루만지는 어진 황제의 사려. 하지만 제국상서 역시 고민이 깊었다.
"예 폐하…분부 받들겠사옵니다. 하오나 이에 부연을 하온즉, 작금의 불경기는 하루이틀 내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며 장차적인 대비와 깊은…"
"네 이 놈이 감히! 짐의 말에…! 즉각 이 자를 끌고가 참형에 처하라"
"폐, 폐하!"
물론 그가 참형을 운운하며 극형을 내린다고 하여도 실제로 그 누군가가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 스스로가 황제이자 재상이고 내관이며 백성인데 누가 뭐 누굴 죽인단 말인가. 스스로 목을 자를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렇게 누군가를 극형으로 끝내버린다는 말 한 마디만으로 어딘가 속이 좀 시원해지는 것이 있었다.
"폐하,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그러나 아무리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한들, 누군가를 말 한 마디로 죽인다는 것도 지나치게 과하다는 생각에 그는 또 혼자 작게 황제 최측근의 내관을 흉내내어 간들어지는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간언을 했다. 하지만 황제의 뜻은 확고했다.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는 결코 뜻을 이룰 수 없다. 때로는 지나친 수단이 가장 적당한 수단일 수도 있다. 만 백성을 위한 우리의 책무는 한 개인의 목숨값에 비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대로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며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면 살아 무엇한단 말인가.
띵동-
"네, 19500원입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네 맛있게 드세요"
치킨이 도착했다. 그는 밥상을 펴고 앉아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달고 짜고 맵고 맛나다. 얼마만에 맛보는 치킨인가. 거의 한달은 넘었지 싶은데.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또 혼자 스스로에게 감사하고는 치킨에 열중했다. 한참 뜯으며 심심하다는 생각에 카톡을 확인하자 어제 밤에 성태가 보내온 게 있었다.
[ 살아있냐? ]
그는 답을 하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런가, 살아있는가. 살아야있지. 당연히. 숨을 쉬고 먹고 싸며 생각을 하는데. 하지만 나이 스물아홉에 취업은 커녕 알바자리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고 통장잔고는 쥐뿔 나라에서 준 돈과 부모님 흡혈로 먹고 사는 비루한 처지에 차마 살아있다는 답이 민망하게 느껴졌다.
결국 답장 대신 읽씹으로 살아있음에 대한 간접적 증명만을 남긴 채 치킨에 열중했다.
"본디 황제가 움직이면 국고가 축나기 마련이다. 만 백성이 힘든데 어찌 짐 혼자만 즐거움을 누리겠는가"
"기운을 차리소서 폐하"
"그래, 그렇기 위한 보양식 아닌가"
뱃살을 생각해보면 보양이 아니라 일주일쯤 굶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새삼 떠올리지만 그는 허튼 생각을 집어치우기로 했다.
"짐은 황제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닿았던 '여자친구'에 대해 씁쓸한 고찰을 하기로 했다. 황후를 맞이하고 싶다. 생각해보니 모쏠로 끝난 황제도 있던가? 있기야 있겠지 싶긴 한데, 우리나라 왕 중에 그런 케이스도 있었나? 아, 단종은 일찍 죽었으니, 혹시 하며 검색해보니 그도 왕후가 있었다.
"지미럴"
나이 스물도 안된 애송이들도 할건 다 했구만, 하는 생각에 새삼 시름이 깊어졌다. 사랑하는 왕후와 함께 국사를 논의하며 정답게 세자 생산행위에 임하는 막중한 책무를 도외시한 채, 허구헌 날 금발 오랑캐와 왜구의 나체처자 영상서화나 밝히는 스스로의 처참한 처지에 그만 깊은 비탄에 빠질 뻔 했지만 다시 한번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짐은 황제다"
일단 다 먹은 치킨을 치우고 손을 씻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 다시 알바자리를 알아본다.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버스 세 정거장 거리의 PC방 심야 알바자리 하나와 역 근처 마트 매대판매 알바 자리에 지원해 본다.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한다. 국고가 바닥나면 황제고 나발이고 그 끝은 볼 것도 없으니까.
"어흠"
"폐하, 밤이 깊었사옵니다. 기침에 드소서"
"오늘 밤은 외롭구나"
"본디 높은 자리는 외로운 법입니다. 폐하의 마음이 약해져서는 결코 아니되옵니다"
"그냥 해 본 소리일 뿐이다."
그래놓고서는 또 게임과 인터넷을 하며 결국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피곤에 절어 잠자리에 든다.
"오늘 하루 참 고되었구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린 그는 드디어 잠자리에 든다. 언제 빨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쿰쿰한 냄새가 나는 베게보를 좀 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디 내일 눈을 뜨면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그렇게, 고단한 잠자리에서 그는 꿈을 꾼다.
어느 따스한 봄날, 황금색 천이 휘날리며 문무백관이 모인 자리에 우러러 서서 만인지상의 위상을 뽐내는 기쁨을 누리며, 끝없는 부와 사치를 즐기고 가슴 벅치도록 넘쳐나는 행복 속에서 최고의 재주를 가진 이들과 큰 일을 논하고 동작대를 지어 대교 소교 못지 않은 미인들과 향락과 거사에 임하는, 결코 현실에 오지 않을 아름다운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