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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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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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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네"

나보다 7살이나 어린 은실장님과의 3차 면담. 나는 간절히 부탁했지만 그녀의 입장 역시도 사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저 그녀는 회사의 뜻을 전달하는 메신저에 불과하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실장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신경 많이 써주셔서"

그래, 그녀는 나에 대해 배려를 많이 해줬다. 회사와 싸워가며 한달치 해고예고 수당에 위로수당이라고 한달치 월급을 더 받아주기까지 한 그녀다. 요즘 같은 노동유연화 사회에 그 무슨 꿈같은 말인가. 진짜 은 실장은 할만큼 했다. 처음에는 '왜 나를 해고 대상자로 골랐냐!'며 은 실장한테 막말까지 했지만, 내가 그녀 입장이라도 마찬가지였을거다. 딸린 입이 하나라도 더 적은 놈이 회사 입장에서도 자르는데 마음의 부담도 덜할테니까. 독신이 제일 만만하지. 하기사 뭐 스펙도 훨씬 더 짱짱하고 어리고 연봉도 싼 놈이 수두룩 빽빽한데 나 같은 놈을 회사가 굳이 더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겠지.

"미안합니다"

연신 미안하다며 눈시울까지 붉히는 그녀의 모습에 내가 더 미안할 지경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랬다. 막판에 일이 손에 안 잡혀서 개판친게 조금 미안했다.

"저 죽으러 나가는거 아니잖아요. 당분간 쉬면서 또 좋은 일자리 알아보죠 뭐. 정말 감사합니다. 신경 많이 써주신 것 알아요"
"아니에요. 그리고. 힘내세요. 양 과장님이면 할 수 있어요."
"그럼요"

그렇게 씩씩하게 나왔지만 나는 느끼고 있었다. 진짜 나 좆됐다는거.






데스토피아 






나이 마흔 아홉의 만년 과장. 작년 말, '이번에야말로' 싶던 승진에서 기어이 미끄러지며 막연하지만 확실하던 불안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왔다. 그 다음 주에 권고사직을 권유 받았다. 나는 불같이 화를 냈다. 사실 화가 났다기보다는 겁이 났다. 독거노인이 코 앞인데 노후대책은 커녕 천애고아 주제에 빚더미 뿐이니까.

"부디, 재고 부탁드립니다"

생산은 물론 물류나 상품기획단계까지 모두 기계에 의한 전공정 자동화 공장이 대세가 된 요즘이다. 나같은 쉰을 바라보는 중늙은이가 재취업이 될 리가 없다. 40대를 넘어 30대 후반도 정리해고 명단에 오르는 시대다.

"부디…"

실업율이 60%를 훌쩍 넘긴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실업은 직장이 아닌 계급의 상실이다. 추락이다. 급속도로 줄어가는 일자리 속에서 나이 먹은 실업자는 서민도 아니고 그대로 빈민추락이다. 실업급여제도가 사라진지가 벌써 10년이다. 게다가 이렇게 갑작스러운-은 사실 아니지만- 해고는 장기 고용을 기반으로 계획한 대출이나 각종 장기 생활계약 때문에라도 파멸을 부르는 일이다.

"내가 회사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뭐 한 일이 있겠나. 주는 일만 항상 어기적 어기적 대충 쳐내고 월급도둑으로 보내온 지난 11년. 그나마 제일 일찍 출근해서 제일 늦게까지 하는 무급야근, 빠지지 않는 회식, 자존심이고 뭐고 없이 그저 비벼대고 빨아대며 아부로 버틴 세월. 물론 알고 있었다. 그것마저 슬슬 한계가 오고 있었다는 것을.

"나도 배우면 되잖아요 배우면. 배움에 빠르고 이르고가 어딨어요!"

억지도 부려봤다. 하, 진작에 좀 배워놓을 것을. 젊었을 때는 영어 공부 안 해서 후회했고, 늙어서는 개발언어 공부 안 배워서 후회했다. 그거 뒤늦게 배운다고 뭐 크게 변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를 잘라야 하는 핑계거리라도 덜 줬을 것 같아서.

뭐 정말 각 잡고 배우자면 별 것도 아니었을텐데 나이 먹으니 왜 그리도 무언가를 배우기 싫었던건지. 수십 명 업무량을 혼자 해치우는 요즘 놈들 보면 감탄부터 나온다. 그걸 옆에서 맨날 보면서도 '내일 내일' 하다가 결국 이 나이 먹도록 그렇게 되어버렸다. 하기사 내 사회초년생 시절에 엑셀 못하고 파워포인트 못하던 부장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던가. 역지사지해보면 똑같은 거겠지. 내 게으름이 원수다.





"어쩌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중얼거린다. 생각없이 멍하게 오다가 사고가 날 뻔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자율주행 모드로 바꿨다. 고집스럽게도 맨날 꺼둔 기능인데. 인공지능이 싫었다. 일자리도 빼앗고 사회도 극단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같아서. 그러나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잘 안다. 아직 이 기계 할부가 반 년은 남았다. 이 미친 나라는 수백만원짜리 장치를 법으로 강제로 달게 하면서도 지원금 한 푼 안 준다. 돼지 목에 진주도 아니고, 근 20년이 되어가는 2015년형 똥차에 인공지능 4세대 자율주행장치라니 그냥 웃음부터 나온다.

"진짜 어쩌냐고"

이 달 월급이랑 해고예고수당, 위로금까지 합해서 한 돈 2천 남짓한 돈이 나왔다. 퇴직금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었을텐데. 안보 대통령이랍시고 뽑아준 김정길이 그 개새끼가 퇴직금 제도를 날리는 바람에 이 꼴이 됐다. 뭐, 그나마의 퇴직연금을 중간에 가져다 쓴 내 잘못도 있지만.

"씨발"

이제 나도 사회복지원이나 드나드는 신세가 되겠지. 그래도 일단 먹거리라도 쟁여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25만 8천원입니다"
"뭐 이 시팔?"

마트 무인계산대를 향해 나는 쌍욕을 내뱉는다.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라의 물가는 미쳤다. 우울한 마음에 거하게 밥이나 배 터지게 먹자고 이것저것 좀 집었더니 20만원이 넘게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 많이 나왔네" 하고 말았겠지만, 마음이 초조하다보니 그렇지가 못하다. 서둘러 허둥지둥 술이랑 안주를 조금 내려놓는다. 뒷 사람들 눈치가 보인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줄이고 줄였는데도 8만원이 넘는다. 이제는 이런 마트도 못 오겠다. 하기사 왜 빌스플러스로 왔을까. 이제 내 주제에 맞게 싸구려 썬마트나 갈 것을. 그럼 아까처럼 집었어도 10만원 대에 뚝딱 해결일텐데. 이제 백수가 된 내 주제에 무슨 질을 따지고 있는가. 정신차리자. 어쩔 수 없이 10kg 쌀 한 포대랑 라면 무너기를 차에 싣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정말로 겁이 난다. 이 나이에 정말 재취업이 가능할까.

띠딩-

반나절만이다. 원스탑 퇴사처리가 되자마자 바로 당일 지역보험가입센터에서 가입 안내 메세지가 날아온다. 맞다. 이젠 정말 좆됐다. 달달히 건강보험료만 70만원씩 뜯어간다던데. 이번 달 카드값은 얼마지?

띠딩-

미용실이다. 워치폰에 연동되어 차 HUD에 뿌려지는 적정 미용시기 안내 메세지. 생각해보니 뭐한다고 맨날 6만원씩이나 주고 머리를 잘랐을까. 더욱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되는 내 처지가 서글펐졌다. 농담이 아니라 눈가가 뿌옇게 변했다. 역시 정확히 말하자면 슬퍼서도 억울해서도 아니고 무서워서. 정말 무서워서.





당장의 생활비를 줄여야 했다. 마흔 아홉 싱글라이프. '화려한 싱글'이라는 단어에 부족함 없이 한달 월급 460만원 중 410만원을 소비하며 살아왔다. 물론 집세 포함해서.

집에 오자마자 이력서 업데이트를 하고 이틀간 5개 구인구직 채용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취업난이 심화될수록 취업 사이트만 늘어간다. 내용도 다 거기서 거기다. 아예 기업이 아니라 채용 사이트에서 돈을 주고 채용공고를 역으로 모셔오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만원이라…"

업데이트만 만원이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내쪽이다. 다른 구직자보다 조금 더 눈에 띄게 번쩍이는 효과 하나에 5만원, 2배 사이즈 노출은 10만원. 미친 세상이다. 그래도 역시 아쉬운 것은 내쪽이다.

"후우"

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사회적 재교육 사이트를 돌아본다. 그러나 역시 뭐가 없다. 제대로 된 구직 교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구직자를 대상으로 교육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아귀다툼 조장용 교육이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비교적 저렴하거나 전망이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는 교육은 모조리 매진이다.

'하아'

장사를 생각해보아도 답이 없다. 자본도 없고, 요즘 같은 세상에 자영업이라니 재주도 없고 경험도 없는 내가 성공할 리 없다. 근 30년째 화두 아닌가.

'뻔히 실패할 것 아는 장사에 도전하다 망하고 죽는가, 버티다 죽는가'

애초에 무슨 장사를 한단 말인가. 요리도 못하고, 말주변도 없는 내가. 그 와중에 돈은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간다. 집세, 전기요금, 수돗세, 국민연금, 보험료, 카드값, 통신비, 인터넷…게다가 그 와중에 깜빡한 죄로 게임 정기결제, OTT & VTT 정기결제가 빠져 나갔고 자동차 보험료와 자동차세가 생각치도 못하게 타격을 입히고는 수도관 수리비와 정수기 대여료 등등이 또 야금야금 돈을 빼먹는다.

매달.

그 뿐인가. 삼시세끼 밥 먹고 커피 먹고 과자 먹고 술 사먹고 하는 모든 돈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차라리 아예 아무 것도 없는 거지라면 매달 30만원 남짓한 생활비 지원이라도 있지만 나에게는 당연히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부모님이라도 살아 계셨다면 좋았겠지만, 빚만 물려주셨다.




낮잠을 자다 일어나니 목이 탔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옛날에 사막에서 조난 당한 남자를 주제로 한 단편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 본 영화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저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복판에서 손에 든 생수병 하나가 전부인 주인공은 철저히 한 모금 한 모금 아껴서 물을 마시며,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낄 때만 반 모금을 먹고 먹고 하면서 걸어나간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그렇게 역경을 딛고 사막을 횡단하거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누군가의 구원으로 살아났겠지만 감독이 나같은 니힐한 취향인지 아니면 리얼리스트였는지 주인공은 결국 탈진해서 죽고 만다. 허무한 결말. 1시간 반 동안 내내 정말 보는 사람의 입이 마를 정도의 목마름과 갈증을 너무나 리얼하고 괴롭게 그려낸 영화였다.

그때 생각했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당연하다는 듯이 한참 걷다가 너무 목이 마르고 짜증이 나면 벌컥벌컥 마시고 어느 시점까지 더 걷다가 그대로 뻗어 죽음을 맞이했겠지.

지금의 처지가 문득 오버랩되었다. 재취업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치자. 내가 야금야금 돈을 아껴쓴다고 해봐야 잘해야 네다섯달 정도가 한계이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마음이 정해졌다.

'적당히 놀다 두 달 후에 그냥 죽자'

그러자 정말 놀랍게도 깔끔하게 마음이 정리가 됐다. 앞으로 뭐해먹고 살지, 이제 재취업은 어떻게 하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등, 모든 고민의 답이 그걸로 정해졌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생각하자 두 달 동안 즐기고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2천은 두 달 살기에는 넘치도록 풍족한 돈이다.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죽을지만 정하면 된다. 마음이 편해졌다.





며칠 간은 차로 여행을 다녔다. 임진각에서 땅끝마을까지, 경포대에서 여수까지 돌아다녔다. 좋았다. 경치 좋은 곳이 이리도 많았구나 싶었다. 진작에 여행 좀 다닐걸 하는 후회를 했다. 기름값 아낀다고, 시간 없다고 핑계만 대면서 사무실과 집에서만 인생 다 날렸다.

'좋구나'

자율주행 모드로 놓은 채로 맛있는 것을 먹고, 풍광 좋은 곳을 드라이브 했다. 참 좋았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사실은 죽고 싶지 않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그저 조용히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니까. 왜 이렇게 됐을까.

'남처럼 살지 않았던 탓일까'

젊은 시절 아끼고 모으고, 결혼할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대출 내서 집 얻고 애기 낳고 살다가, 둘이 아둥바둥 번 돈 모아 집 사고, 오른 집 값으로 나중에 잘릴 무렵 되어 역모기지론으로 노후대책하고, 애들 잘 커가는거 보면서 웃다가 장가가는거 보고 웃는, 그렇게 조용히 살다 조용히 죽는 삶. 사실 이제는 전체 가정의 30%도 되지않는 모습의 꽤나 성공한 삶이지만 어쨌거나 흔히들 '평범한 삶'이라고 불리는 그런 '보통의 길'.

나는 그러기가 싫었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날린 부모님, 자살한 아버지와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얻은 어머니, 언젠가는 결혼식 하고 살자며 같이 동거하던 13년 지기 여자친구, 아니 사실상의 마누라와의 이별이 연이어 일어났고 내 명의로도 대출된 부모님의 빚은 4년 전에야 간신히 다 갚았다. 물론 내가 만든 빚은 제외하고서 말이다.

'후'

나는 그런 '평범한 행복의 꿈'을 꾸어볼 기회가 없었다. 상관없었다. 애초부터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응? 저게 뭐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저기 산 아래 에드벌룬 현수막을 바라보았다.

[ '가장 힘들 때 서로 힘이 된 사람들' - 영산 생활문화연구소 ]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다. 그게 여기 있었구나. 생활문화연구소인가. 신랄하게 말하자면 가난뱅이들끼리 모여 집단공동체 생활을 하는거다. 최저생활비 인당 30만원을 네 가족이 받아봐야 120만원으로 생활할 수 있을 리 없지만, 10가족이 모여 40명이 1200만원으로 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니까. 게다가 모인 사람들의 노동력을 집약하여 무언가의 생산하청이나 자급자족 농사 같은 것도 할 수 있으니 적어도 먹고 사는 고통에서는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다는 논리로 출발한 사회단체다.

"말은 그럴싸하긴 한데"

이런 류의 집단에서 항상 발생하는 묘한 컬트적인 냄새와 그와 동반하는 구린 일들. 다 같은 옷을 입고, 종교적 의식도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한다고 하고, 구닥다리 공산주의 강령 비슷한 뭔가를 공부한다고도 하고, 단순히 경제공동체를 넘어서 마누라와 남편을 종종 바꿔 자기도 한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있다. 뭐, 누군가에게는 흉흉한이 아니라 훈훈한 일지도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무슨 공산주의 집단농장 같은 냄새가 나서 극도로 싫어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살 길을 하나라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저희 지부에서는 미혼자 분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결혼을 하셨다고 하더라도 저희와 함께 가실 수 있는 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절차도 오래 걸립니다. 저희 입장에서도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일이니까요"
"그렇군요"

안내 팜블렛만 하나 받아왔다. 미혼자는 안된단다. 규모의 경제로 잉여이익을 발생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독신자 1인은 그런 면에서 부적합하단다. 애를 낳을 수도 없고.

"그럼 만약에 미혼모를 자청하는 싱글여성이 있다면 받아주려나? 궁금하네"

일단은 합리적인 이야기다. 차 안에서 메뉴얼을 읽었다. 웃음이 나오는 포인트가 몇 개 있었다. 출산계획을 모두가 함께 고민해서 결정한단다. 뭐 따지고 보면 당연한 소리다. 애 하나 낳으면 그거 대학 보낼 때까지 돈이 얼마가 들어가고 양육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어느 미친 놈이 들어와서 번식욕 채운다고 다짜고짜 애만 마구 낳아버리면 그것도 답 없는 일 아닌가. 공동체의 생애주기를 감안한 자금 싸이클도 고려하여 출산도 계획한단다. 아마 바로 그 '출산계획을 함께 모두가 함께 고민한다'에서 마누라 남편을 바꾼다 어쩐다 하는 흉흉한 소문이 나왔으리라. 세상의 소문이란 참 무섭구나 새삼 생각이 든다.



"흠"

큰 마음 먹고 엊그제 예약한 파인 다이닝 고급 레스토랑에 왔다. 한 끼에 28만원이란다. 하지만 '최후의 만찬'으로서 좋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도 몇 명 있었다. 이제 파인 다이닝에 1인 고객은 드문 풍경이 아니다. 혼자 살고 직장이 있는 사람들. 그렇다고 남까지 사주기에는 여유가 부족하고 일에 치여 연애할 시간도 많지 않은 그런 사람들. 아니면 만사 다른 사람 엮이기 귀찮은 사람들.

"반갑습니다"

그리고 저런 사람들. 사람은 언제나 외롭다. 연애와 결혼이 힘들어진 사회 속에서 인연을 찾기 위한 온갖 어플과 서비스, 기업들이 날뛴다. 부질없는 만남의 희망 속에서 희박한 확률을 뚫고 만난 사람들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캐쉬템으로 헛돈지랄 좀 했을거다. 어떻게 어플로 만난 사람들인가를 알 수 있냐면, 서비스로 제공하는 와인에 [맛나요] 라는 만남 어플의 상호가 붙어있었다.

'거기 담당자 이뻤었는데'

전에 일하던 회사에 있을 때 광고문의로 우리 회사에 왔었다. 그 어플업체에서. 처음 봤을 때 기획 잘했다고 생각했다. 흔한 데이트 어플처럼 만남이 중심이 아니라 '밥 같이 먹이 먹을 사람 모아주는' 앱인데, [내가 쏩니다] 메뉴까지 있으니 누구들은 밥 얻어먹기 좋고, 누구는 그 핑계로 잘난 외모 사람과 밥 같이 먹을 수 있으니.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혼자 밥 먹기 힘든 분위기의 가게에서 밥 같이 먹을 사람 찾기, 술 친구 필요한 사람 등이 모여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나도 몇 번 써봤다. 어째 꼭 고기 안 뒤집는 놈들만 나와서 금방 관뒀지만.

"관자 구이에 소이소스를 입혀 구이한 오리 요리입니다"
"감사합니다"

맛있다. 그래, 사실 이 재미로 살았다. 먹는 재미. 나는 맛있는거 먹는게 좋았다.

"와"

천원 더주고 사이즈 키우면, 1500원만 더 주고 토핑 더 얹으면, 5천원만 더 주고 사이드 하나 시켜먹으면, 만원 더 주고 새로운 맛 추가하면, 2만원만 더 주고 고급메뉴로 고르면, 딱 10만원만 더 주고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훨씬 더 풍성하고 화려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세상 프리미엄이라는게 대부분 그랬다. 남들보다 아주 조금만 더 투자하면 훨씬 나은 세상이 바로 그 앞에 있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맛있군"

하지만 이제는 그런 행복은 없을 것이다. 가성비와 저렴함. 오로지 그것만을 추구하는 삶이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서라도 삶이 지속될 수 있다면 그것조차 어렵겠지.

빈익빈 부익부는 이제 끝을 모르고 벌어졌다. 직장을 잘리고 낙오한 사람들의 구매력은 처참하다. 기업에도 부담이 된다. 소비자가 줄어드니까. 저가 경쟁에도 한계가 있다. 생필품이라면 저가 경쟁으로 살아남을 수 있지만 사치재나 기타 소비재는 그렇지 않다. 아예 서민층은 사지 않으니까. 오히려 성능과 고급스러운 프리미엄으로 경쟁력을 확보한다. 그렇다고 부자만을 상대로 사업할 수는 없으니 나같은 푼푼이 직장인들을 위해 120개월 할부 같은 상품도 나온다.


한편 그나마의 직장도 없는 빈민들은 정말 상황이 어렵다. 한달 최저생활비 30만원. 인스턴트 라면 한 봉지가 3천원 하는 시대에 말이다. 부업이 필요하다. 공공근로 사업. 일당 5만원짜리를 받으러 나간다. 물론 매일 할 수도 없다. 아예 법적으로 최대 3일에 한번만 할 수 있다. 모두가 일하고 싶어하니까.

그래도 부족하니 사람들은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판다. 예쁜 글씨, 노래, 자작 게임, 영상 컨텐츠, 노하우, 자랑거리, 아이디어, 재주, 수공예품을. 오프라인에서도 팔고 온라인에서도 판다. 물론 몸도. 아둥바둥 살고, 죽어라 산다. 겨우겨우 그렇게.




"우리나라도 이런거나 좀 들어왔으면 좋겠네"

A.I와 온라인 마켓의 발달, 로봇 시장의 본격화와 그로 인한 일자리의 폭발적 붕괴. 사회적 낙오자가 대거 양산되고 좌절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많은 나라에서 보험과 공공 의료시장이 붕괴되었고, 네덜란드와 스위스에서 최초로 자살에 대한 서비스가 격렬한 논쟁 끝에 허용되었다. 안락사에서 몇 발자국이나 성큼성큼 다가온 '편안한 죽음'에 대한 서비스.

"나라에도 어차피 이득 아니냐고"

더이상 노동생산성이 의미가 없는 세상. 물리적인 것부터 정신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이미 기존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것을 기계가 대신 생산할 수 있는 사회. 인간이 설 자리는 좁았다. 더이상 사람 목숨이 귀한 시대가 아니다. 무능한 국민은 매달 복지비만 까먹는 짐일 뿐이다. 사람 목숨이 귀하다는 공허한 외침도 비루한 삶의 현실 앞에서 비웃음 당했다. 자살방지 인권 운동하던 사람이 사회단체에서 알력으로 잘리고 나와서 생계에 쫒겨 자살한 사건은 사회에 많은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에서 탈출하기 위한 러시가 이어졌고, 스위스와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10만명이 넘는 이들이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물론 무료로. 정부 지원 사업이다. 암이나 뇌출혈 등 중증질환에 대한 국가 지원시스템도 사라진 시대에 말이다.

"왜 한국만 이런게 없어"

항상 그랬다. 한국은 항상 늦었다. 남들이 다 해보고 '이거 해보니까 영 별로야. 그만해야겠어' 할 때 도입하고, 남들이 '이거 무조건 금지했었는데, 막다보니 부작용도 많고 막을 이유도 없는 것 같네' 싶어서 다 풀어도 혼자 끝까지 금지했다. 그런 나라인만큼 자살지원정책도 그랬다. 미국에서 자살지원기업이 드디어 허용된 시점에서도 한국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니 다들 괴롭게 죽는거지"

이제는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 연탄을 구태어 동남아에서 수입해다 피우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알려진 몇몇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화학용액을 섞어 마시고, 목 매달고 하면서. 그렇게 해서 자살에 성공이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도 했다가는 폭탄 같은 병원비에 이제는 일가족 자살의 고민이 시작된다.

어차피 막는다고 막아질 수도 없는 것이고 희망도 없는 사람들에게 뻔한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정부와 관련단체의 쓰레기들. 아마 자신들이 같은 처지에 빠지면 일주일도 안되어서 먼저 목 메달 인간들이 감히 생명의 존엄성을 논한다. 존엄성이라는 단어마저 미워질 정도의 지옥같은 처지에 그들의 삶을 던져놓은 것들이.



약 2주일간의 전국 여행은 즐거웠다. 생각보다는 비용이 덜 들었다. 약 400만원 정도. 정말 즐거웠는데 별로 남는게 없었다. 당연하지만.

"두 달이 아니라 이러다 한달 안에도 죽겠는데"

막상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죽기로 결심하니까 생각보다 재미가 조금 덜했다. 다 담담한 느낌이다. 맛있는 것도 그저 그랬고, 노는 것도 그저 그렇고. 늘어지게 12시간씩 자봐도 그냥 피곤하고.

죽는 방식은 고민해봤는데, 역시 목 메다는게 제일 낫겠다 싶었다. 고통이 적을 것 같고, 실패시에 대한 부담도 그나마 적었다. 뒷처리는, 집주인한테 정말 미안하긴 하지만 나 죽은 3일 뒤에 자동예약 문자 보내놓고 내 장례비-라고 해봐야 그냥 공공화장터에만 보내줘도-와 뒷처리 비용까지 합해서 한 500만원 드리면 어떨까 싶었다. 요즘 그런 뒷처리 업체도 경쟁이 심해져서 200이면 된다던데.

"삼만 오천원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살할 목줄 사오는데 감사하다며 점원에게 말하는 기분이 묘했다. 튼튼한 등산용 합성 나일론줄을 사왔다. 방 문 위에 목을 박고 걸어놨다. 언제든 결심들면 바로 메달 수 있게.

내 장례식에는 아무도 오지 않겠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누군가에게 나쁜 기억을 남기고 싶지도 않고. 조용히 떠난다고 생각하니 좋았다.

이제는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조금 헛헛한 웃음만 나올 뿐. 휴대폰에는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이 오지 않…이 아니네. 어제 저녁에 은 실장이 보낸 메세지가 있다.

[ 양 과장님, 잘 계시죠? ]





"이제 뭘로 불러야죠?"
"뭘로 부르긴요. 오빠라고 부르면 되죠"
"뭐야, 나간 사이에 그새 아저씨 된 거에요? 양 과장님 갑자기 늙었어"
"늙기는 이미 옛날에 늙었죠. 아저씨가 뭐람 할아버지 소리 들을 나인데"

하루종일 무슨 일을 하던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하게 남아있는 '자살'에 대한 부담과 삶에 대한 희미한 미련, 걱정. 그 모두가 은 실장을 만나자 조금은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만큼 사람에 대해 외로웠던 것 같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2주간 전국 여행 했어요. 제주도 빼고 다 가본 거 같아요."
"와, 멋있네요. 어땠어요? 나 전국일주 하는게 꿈이었는데"

맨날 일에 치인 채로, 권고사직을 앞두고 숨막히는 걱정과 좌절 속에 초조하게 그녀를 앞에 둔 것과, 지금처럼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만나는 것은 달랐다. 편안하고 좋았다. 같이 맛있는 것을 먹노라니 정말 좋았다. 나 정말 사람이 그리웠구나. 평생 혼자 살아놓고 말이다.

"다 먹었으면 2차 갈까요?"
"좋아요"

바로 옆의 바로 자리를 옮겼다. 한 잔 두 잔 술이 오가고, 살짝 술이 올라온다 느낄 무렵 나는 솔직하게 다 이야기 했다.

"암담하더라구요. 이대로 몇 달이나 버틸 수 있을까. 알죠? 나 집도 월세인거. 지금 갖고 있는 돈 2천 다 까먹으면 그걸로 끝이죠"
"…"
"떠나기 전에 만날 사람도 없더라구요. 누구 하나 연락할 사람도 없고, 연락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딱 그냥 두 달만 신나게 놀다 죽자 했는데 2주 지나니 그것도 시들하더라구요"
"…"

나는 잠시 나도 모르게 입술을 떨다가 술잔을 내려놓고,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나 어제, 등산줄 샀어요. 목 메달려고. 삼만 오천원 주고"
"양 과장님"
"과장님은 무슨! 나 백수인데 무슨 과장이에요"

그러자 은 실장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호영 오빠. 됐죠? 정신차려요. 죽긴 뭘 죽어요. 진짜 미친 거에요?"

의외로 이런 면도 있었구나.

"그럼 물어볼게요. 나 어떻게 살면 돼요? 열심히, 잘? 정말 몰라서 그래요. 이제 뭐해서 먹고 살아요? 새벽 4시에 공공근로 일자리 나가서 맨날 터덜터덜 돌아오고 뭐 그렇게? 아니면 빅튜브라도 할까요? 나이 먹은 썰 푼다 하면서?"
"살아야하면 그렇게라도 살아야죠"
"…그렇게해서라도, 살 수 있기는 해요?"

나의 울먹이는 질문에 은 실장도 눈물을 보였다. 고마웠다. 그냥 날 위해 울어주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에.

"…미안해요. 실장님한테 뭐라고 하려는 것도 아니고, 부담주려는건 절대 아니었어요. 에이, 그냥. 그냥 정말 맛있는 밥이라도 사주고, 술 한 잔만 얻어마실까 했는데. 미안해요. 내가 원래 주책 바가지 잖아요. 회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은 실장은 눈물을 닦았다.

"나 사실 양 과장님 되게 멋있다고 생각한거 알아요? 맨날 부대표님한테 싫은 소리 듣고, 회사 옥상에서 혼자 안 좋은 표정으로 있다가도 내려와서는 항상 밝게 웃고 먼저 싹싹하게 사람들한테 대하는거, 저는 그게 진짜 프로라고 생각했어요. 알죠, 다 알잖아요. 살려고 노력하는거. 저 같았어도 몇 번이나 때려치울 싫은 소리, 무시당하는 소리 듣고도 웃으면서 미안합니다 다음에 잘할게요 소리 하는거! 저 그거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생존력 있잖아요. 자존심 피우는거 누구나 하죠. 근데 그거 내려놓는거 어려운 거잖아요. 나한테도… 나한테도 막, 소리 지르고 욕하고 그럴 때도, 살라고 그랬던 거잖아요. 과장님, 아니, 호열 오빠 살고 싶어서 그랬던 거잖아요"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이 없었다.

"근데 왜 그래요 왜. 정말 멋있게 살라고, 막 열심히 항상 살려고 했던 사람이 왜 죽을라고 그래요"

무어라 대답하면 좋을까.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고자 했다.

"너무 힘들어서요. 이제는 조금 쉬어도 되겠다 생각했어요. 앞으로는 너무 힘든 일만 있을거 같아서요"

그 말에 또 은 실장이 눈물이 터졌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다행히 손님은 우리 뿐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이별의 모습처럼 보이리라. 하긴 이별은 이별인지도.

"미안해요, 주접 떨어서. 그냥 그렇다고요"

나는 남은 술을 비웠다.

"아 그리고 오빠라는 말 농담이니까 진짜로 자꾸 오빠 오빠 하지 말아요. 나 얼굴 빨개져요"

그 말에는 다시 은실장도 웃었다.




가끔 안부 전하겠다고, 정말로 이상한 생각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말라고, 그러면 진짜 자기가 죄책감 느껴서 자기도 죽을거라고 말하는 은실장의 말에 참 고마웠다. 가끔 같이 저녁에 밥 먹어주고 가끔 영화도 봐줄테니까 혼자 죽지 말라는 말에 부끄럽지만 이 나이에 살짝 설레기도 했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잘나가는 중견기업의 화려한 40대 젊은 임원과 초라한 늙은 백수.

집으로 돌아와 올가미는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한 씁쓸한 마음은 가시지를 않는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다.

차는 팔아야지. 운전연습용으로 내놓으면 얼마는 받을 수 있겠지.
집도 당연히 저렴한 집으로 이사하고.
앞으로 식비는 한달에 10만원 안쪽으로 줄일 수 있도록 하고. 탄수화물 식단으로 가득차겠구나.
준비하던 기획서 내용 정리해서 아이디어샵에 올려보고.

세상에 나의 쓸모를 알리고 싶지만 사실 정말 쓸모 있는 인간인지에 대한 자신이 없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16층 이 오피스텔에서 아래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과 저어기 달동네 어딘가의 반지하방을 동시에 떠올린다.

'삶이 뭐며, 죽음이 뭐라고'

나약하다, 용기를 내라, 미래를 바라보라 하는 마음 속의 외침과 그냥 편해지자는 읆조림이 뒤섞인다. 나는 그냥 조금 쉬고 싶을 따름이다. 손에 쥔 올가미는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책장 위에 올려놓은 술병들 중에서 짚히는대로 위스키 한 병을 꺼내어 한잔 따라 마신다.

'일단은'

어쨌든 두 달은 살아보기로 했으니까, 한달 반은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그 이후의 삶에 크게 미련은 갖지 않기로 했다. 주어지면 사는 것이고, 주어지지 않으면 거기서 끝내면 되니까.

그리고 거울을 다시 한번 보았다.

'일단 최선을 다해서 살 길을 찾아라'

살 길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물론 길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나는 정통파 인간이 아니다. 남들처럼 사는 인간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 양호영이, 정신 차리고 임마"

어차피 죽음이라는 확실한 길을 하나 만들어 놓은 이상, 다른 길을 찾아보는 마음은 편하다.

"은다영"

나는 혼자 어이없는 웃음을 실실 흘린다. 나이 쉰을 바라보는 백수가 생각해 낸 '살 길'이라는게 너무 황당하고 비현실적이며 미친 생각이라서 그저 너무 웃겼다.

동정심
죄책감
미안함
측은함

동료의식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나에게 동정심을 가진 것이 죄라고 해두자. 나는 그녀를 꼬셔보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단칼에 거절당하고, '잠깐 불쌍한 마음에 잘해줬더니 혼자 오해하고 버러지 같은 생각을 하더라'라는 소문을 터뜨려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난 곧 죽을거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잘 되면 적어도 당분간의 살 길은 생겨나는 것 아닌가. 독하게 말하자면 피차 40대의 연인 없는 싱글. 흐흐. 그냥 또 이 노망난 미친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걸 '살 길'이라고 떠올린 내가 너무 웃기고 즐겁다.

"또라이 새끼"

실실 웃으면서 나는 은 실장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밥 먹는건... ]

해보자.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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