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는 중환자실 복도 의자에 앉아 그저 멍하니 복도 끝의 창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이 원망
스러웠다.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세상에 어쩌면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그러다 순간 생각이 다시금 그 영훈이를 괴롭혔을 그 나쁜 놈들에게까지 닿자 다시금 가슴에는 들불이 일고
눈에는 불똥이 튀었다.
온갖 악독한 생각이 다 떠올랐다. 만약 그 나쁜 놈들, 잡히기만 하면 손가락을 마디마디 도막내고 그 끝을
하나하나 불로 지져버릴테다, 눈알에 바늘을 꽂고 돌려버릴테다, 머리에 구멍을 내고 끓는 물을 퍼부어버릴
테다, 온갖 저주란 저주는 다 하다가… 그저 현실은 아들 영훈이 지금 아파트 11층에서 뛰어내려 전신골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만 떠올라서 도저히 울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숨이 막혀왔다. 가슴이 메인다고
하나. 아니, 이것은 그런 정도가 아니다.
가슴 위에 차 한대를 올려놓은 듯한, 정말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무지막지한 암담함에 계속 그녀는
몇 번을 가뿐 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울고, 속으로 그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들에게 무시무시한 저주를 하고,
소리없는 통곡을 하다, 그렇게 진이 빠지면 벽에 기대어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의사가 그랬다.
"오늘 내일이 고비입니다. 그리고 설령 위기를 넘기더라도, 평생 큰 장애는…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살아나더라도 평생 누워서 지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조차도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도대체 왜 그리도 잔인하게 말을 할까. 설령 당장 몇 시간 후에 죽을 환자라고 하더라도 저렇게까지 말하는
의사가 세상 천지에 어디있을까. 그리고 저렇게 일찌감치 포기하는 의사한테 아들을 맡겨도 되는 것일까.
내가 지금 이것은 잘하고 있는 짓일까. 아니 아까 그 의사가 정말 그렇게 말하기는 했나. 내가 너무 놀래고
얼떨결에 꿈을 꾼 것은 아닐까. 만약 또 의사의 말이 진짜라면 내가 이럴게 아니라 아들 곁에서 그 얼굴이
라도 더 봐야하지 않을까.
그녀는 안절부절하며 중환자실 문 앞을 엉거주춤 서성였지만 "한번만 더 그러시면 강제퇴원 시킵니다"
하는 간호사의 엄포 앞에 차마 이번에는 중환자실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다시 그녀는 의자에 앉았다. 정말로 영훈이가 앞으로 평생 걷지도 못하게 된다면 어찌 해야하나. 평생 누워
서만 지내야 한다면 나는 어쩌지. 겁이 났다. 무서웠다. 잘해나갈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정말 오늘 안에 영훈이가 죽기라도 한다면?
순간 눈 앞이 또 한번 아찔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죽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영훈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녀는 무심코 또 손을 모아 어딘가 그 누구에겐가 간절히 빌기 시작했다.
"제발 우리 영훈이, 영훈이만 살게 해주세요 저를 대신 데려가주세요…"
그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복받치는 울음에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혹여라도 안에 들릴까봐 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지만 그녀는 또 그렇게 소리없는 통곡을 했다.
정신을 차리자 그녀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순간적으로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지만 남편 호석의 근심 어린
얼굴을 보고서 "영훈이는" 하고 아들 이름을 부르며 몸을 일으켰다. 호석은 다시 반 강제로 그녀를 뉘이며
"중환자실에 그대로 있어. 너 어쩔려고 그래. 너까지 죽으려고 그래?" 하고 속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건조한 목소리. 사실 성미는 눈을 뜨고 낯선 하얀 풍경을 느꼈을 때, 그리고 여기가 여전히 '병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혹시나 모든 것이 꿈이기를, 그 찰나의 시간동안 너무나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앞 동의 아줌마들이랑 함께 구청의 요가 강습을 받고 돌아온 성미. 아줌마들이랑 오는 길에 폐업처분하는
속옷가게가 있길래 잠깐 구경하다 온 통에 조금 늦었다. 아들 영훈이 벌써 집에 왔을 시간. 학원 보내기
전에 밥을 먹여야 하니까 헐레벌떡 서둘러왔건만, 방에는 아들 가방만 있을 뿐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이구, 가방은 내팽겨쳐놓고. 어디간거야. 밥 먹고 학원 가야지"
올해 중학교에 올라간 놈이 가방은 뭐가 이리도 무거운지. 지 아빠를 닮아서 퉁퉁한 것이 참 귀엽게도
생겼건만 역시 그 맘 또래 애들이 그렇듯이 살 때문에 고생이라고 맨날 고민이다. 가방을 영훈이 방에
가져다 놓으려고 보니 방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방 다 식으라고 창문…"
세차게 들어오는 바람 속에 순간 성미는 너무나 무서운 생각을 떠올렸지만 애써 그것을 부정하며
창문을 닫으려 가까이 가는 순간 저 밑에서 앞동 푼수 아줌마 은주 엄마의 엄청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이고오오오오오, 아이고오!! 이게 누구야! 사람이, 사람이 죽었어요오오!"
순간 얼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리고 제발 아니길, 제발 그런 것이 아니길 하고 빌면서 성미는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저 밑에는…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조차 잘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이상한 방향으로 팔 다리가 꺾인 사람, 그것도
눈에 익은 체구의 한 학생의 시체… 아니 죽지는 않았으니 시체는 아니지만… 아니길 빌었지만 그건
영훈이 같아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확신보다는 그저 가슴이 미칠듯이 쿵쿵쿵쿵쿵쿵쿵 뛰기 시작할 따름이었지만
곧 저 아래서 "영훈이 엄마아아아아, 아이고오오, 영훈이 엄마아아 내려와봐요오오오" 하는 통곡이
들려왔고, 부들부들 떠는 성미의 눈에는 책상 위에 싸인펜으로 써놓은 무언가의 편지 비슷한 것이
들어왔다.
그녀는 그제서야 모든 것이 서서히 짐작이 갔지만, 모든 것을 인정하기 싫었고 그저 그녀는 그 '유서'로
짐작되는 종이를 손에 들고 맨발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갔으며, 머지않아 몇 분 후 엠뷸런스 소리가
아파트 단지 전역에 울려퍼졌다.
성미는 그녀 스스로가 엄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쓴 그 유서…아니, '편지'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들은 혼자 무던히도 애썼다. 정말 장할 정도로 애를 썼다. 하지만 아들 혼자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는 결국 그런 참으로 바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성미는 몇 시간이고 스스로를 곱씹었다. 만약 내가 그날 요가를 가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죽기로
결심한 아들의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챌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하다못해 그 사지도 않을 속옷가게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버리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더욱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아들이 그 화단 밑에서 사지가 꺾인 채로 바들바들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저 생각없이 가뿐한 마음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현관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만약 아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이미 혼이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너무나 지치고 힘들고 세상이 하얗게만 보였다. 이대로 죽고만
싶었다. 이 모든게 다 꿈은 아닐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거운 마음은 가실 줄을 몰랐다.
"흐으으으으으읍"
옆에서 남편은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한번쯤은, 아들이 아파트 13층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막지 못한 나에 대해 원망을 풀고 싶지 않을까. "야이 여편네야 집에서 뭘 하고 있었길래 애가…"
하는 그런 레파토리로 말이다.
하지만 그저 그는 중환자실 앞에서 기절한 채 쓰러져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병실로 옮기고, 아들이 병실에
서 죽어가는 와중에까지 이렇게 제 한 몸도 추스리지 못하는 '병신' 같은 나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하고
그저 저렇게 혼자 숨죽여 울고 있다.
무어라 말을 꺼낼 수도, 꺼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입만 무어라 벌리다가 나는 다시 입을 닫았다. 그리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들 영훈은, 전신타박상 및 척추와 정강이 등에 대한 분쇄골절, 뇌진탕과 두개골 함몰 등 이름만 들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진단을 받고 긴급 수술 후 회복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꼬박 이틀 전의, 아니
어제 일인가. 시간 개념도 사라졌다.
동생 영미와 친정엄마, 시어머니 시아버지, 현주, 큰 형부, 혜주 고모와 숙자 이모가 다녀갔고, 앞으로도 또
계속 일가친척들이 올테지.
'차라리'
차라리 누군가가 나를 비난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죄인이라면, 그래서 이 가슴 속에
차갑게 응어리진 한이라도 없어진다면 그러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이미 죄인이 맞다
생각을 했다.
기자들이 다녀갔다. 아니 다녀갔다고 했다. 내가 또 실신해서 쓰러진 동안 기자들이 들이닥쳤고 남편이
그들을 상대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9시 뉴스에서 아들 영훈의 이야기가 나왔다. 왕따.
왕따.
그 가해자라는 놈들을 모조리, 철저히 털끝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씹어찢어죽이고 싶었다. 그녀는
세상이 두쪽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놈들한테 철저히 복수하기로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아들 영훈은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광대뼈도 부러져서 이미 얼굴은 아들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별 생각을 다했다. 자기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 죽이는 방법은 모든 것을 상상 속에서 다 구현해 본 것
같았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영혼을 팔아도 좋았다. 그리고 그 직후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이 아니라
'영훈이가 살 수만 있다면'이라는 조건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을 자책했다 허나
그녀 스스로도 어쩌면 포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을 몇 배로 괴롭혔다.
그녀는 생각해보니 자신의 죄가 정말이지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
었다. 그 전에 사귀던 남자와의 상처가 정말 너무나도 깊어서, 그걸 잊을 수만 있다면 그 누구라도 좋았다.
그리고 그 포근함을 사랑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회고하건데 그녀는 단 한번도
남편에게서 이성으로서의 두근거림을 느낀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썩 나쁘지
만은 않았다.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 그것은 정말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가슴 벅찬 감동과 기쁨'이
없을 따름이었다.
심지어는 바람을 피워볼 생각까지 했다. 결혼 이후 간만에 연락을 해온 대학교 선배의 문자 한 통에 가슴
두근대기도 했다. 온갖 일탈을 꿈꾸기도 했다. 심지어 남편과의 잠자리 와중에도 다른 남자 생각을 한 적
이 있었다. 그랬다.
그 모든 게 다 지금의 업보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저 다 모든게 내 죄 같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부모로서 아들이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데도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게 죄가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
7시간에 걸친 난산 끝에, 그래서 더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그래서 더욱 아들을 처음 보는
순간 너무나 기뻤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세상에 이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날부터
그녀의 결혼 생활에 처음으로 행복이 찾아왔다. 아이는 축복이며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 산소마스크에 의지해서 힘겹게 버티고는 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의사는 기적을 믿어보자고 했지만, 기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성미는 그저 흐느꼈다. 기적에
밖에 기댈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이 너무나도 힘들었으니까.
아들의 '편지'를 몇 번이고 읽으며 성미의 머리에는 '태경, 한수, 기태, 문식'이라는 네 이름이 아로새겨
졌다. 그들은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처절하게 복수하리라 다짐을 하고 또 했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했고,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는 지독한 좌절감에 온 몸을 떨어야 했다.
다시 한번 그녀는 우울함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자신이야말로 병원 옥상에 올라가서 그냥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금 지금껏 살아오면서 지은 모든 죄를 하나하나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
했다. 그저 죽고 싶다고. 아득하니,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다 생각해보니… 꼭 그 모든 죄를 영훈이가
대신 끌어안고 죽은 듯 하여 눈물만 펑펑 샘솟았다.
"좀 자"
남편은 오늘도 신경안정제와 물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쩔려고 그래. 그러다 영훈이보다 니가 먼저 죽겠어"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후우"
남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나도 힘들어. 그러니까 너도 고만 힘들게 해. 영훈이만으로도 미쳐버릴 거 같으니까"
나는 그저 콧방귀를 뀔 따름이었다. 남편은 가타부타 말 대신 그저 끊었던 담배를 다시 손에 들고 저기
복도 끝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이 꼭… 아니다.
그냥 죽고만 싶다.
스러웠다.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세상에 어쩌면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그러다 순간 생각이 다시금 그 영훈이를 괴롭혔을 그 나쁜 놈들에게까지 닿자 다시금 가슴에는 들불이 일고
눈에는 불똥이 튀었다.
온갖 악독한 생각이 다 떠올랐다. 만약 그 나쁜 놈들, 잡히기만 하면 손가락을 마디마디 도막내고 그 끝을
하나하나 불로 지져버릴테다, 눈알에 바늘을 꽂고 돌려버릴테다, 머리에 구멍을 내고 끓는 물을 퍼부어버릴
테다, 온갖 저주란 저주는 다 하다가… 그저 현실은 아들 영훈이 지금 아파트 11층에서 뛰어내려 전신골절이
되어버렸다는 사실만 떠올라서 도저히 울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숨이 막혀왔다. 가슴이 메인다고
하나. 아니, 이것은 그런 정도가 아니다.
가슴 위에 차 한대를 올려놓은 듯한, 정말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무지막지한 암담함에 계속 그녀는
몇 번을 가뿐 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울고, 속으로 그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들에게 무시무시한 저주를 하고,
소리없는 통곡을 하다, 그렇게 진이 빠지면 벽에 기대어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의사가 그랬다.
"오늘 내일이 고비입니다. 그리고 설령 위기를 넘기더라도, 평생 큰 장애는…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살아나더라도 평생 누워서 지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조차도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도대체 왜 그리도 잔인하게 말을 할까. 설령 당장 몇 시간 후에 죽을 환자라고 하더라도 저렇게까지 말하는
의사가 세상 천지에 어디있을까. 그리고 저렇게 일찌감치 포기하는 의사한테 아들을 맡겨도 되는 것일까.
내가 지금 이것은 잘하고 있는 짓일까. 아니 아까 그 의사가 정말 그렇게 말하기는 했나. 내가 너무 놀래고
얼떨결에 꿈을 꾼 것은 아닐까. 만약 또 의사의 말이 진짜라면 내가 이럴게 아니라 아들 곁에서 그 얼굴이
라도 더 봐야하지 않을까.
그녀는 안절부절하며 중환자실 문 앞을 엉거주춤 서성였지만 "한번만 더 그러시면 강제퇴원 시킵니다"
하는 간호사의 엄포 앞에 차마 이번에는 중환자실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다시 그녀는 의자에 앉았다. 정말로 영훈이가 앞으로 평생 걷지도 못하게 된다면 어찌 해야하나. 평생 누워
서만 지내야 한다면 나는 어쩌지. 겁이 났다. 무서웠다. 잘해나갈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정말 오늘 안에 영훈이가 죽기라도 한다면?
순간 눈 앞이 또 한번 아찔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죽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영훈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녀는 무심코 또 손을 모아 어딘가 그 누구에겐가 간절히 빌기 시작했다.
"제발 우리 영훈이, 영훈이만 살게 해주세요 저를 대신 데려가주세요…"
그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복받치는 울음에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혹여라도 안에 들릴까봐 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지만 그녀는 또 그렇게 소리없는 통곡을 했다.
정신을 차리자 그녀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순간적으로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지만 남편 호석의 근심 어린
얼굴을 보고서 "영훈이는" 하고 아들 이름을 부르며 몸을 일으켰다. 호석은 다시 반 강제로 그녀를 뉘이며
"중환자실에 그대로 있어. 너 어쩔려고 그래. 너까지 죽으려고 그래?" 하고 속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건조한 목소리. 사실 성미는 눈을 뜨고 낯선 하얀 풍경을 느꼈을 때, 그리고 여기가 여전히 '병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혹시나 모든 것이 꿈이기를, 그 찰나의 시간동안 너무나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앞 동의 아줌마들이랑 함께 구청의 요가 강습을 받고 돌아온 성미. 아줌마들이랑 오는 길에 폐업처분하는
속옷가게가 있길래 잠깐 구경하다 온 통에 조금 늦었다. 아들 영훈이 벌써 집에 왔을 시간. 학원 보내기
전에 밥을 먹여야 하니까 헐레벌떡 서둘러왔건만, 방에는 아들 가방만 있을 뿐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이구, 가방은 내팽겨쳐놓고. 어디간거야. 밥 먹고 학원 가야지"
올해 중학교에 올라간 놈이 가방은 뭐가 이리도 무거운지. 지 아빠를 닮아서 퉁퉁한 것이 참 귀엽게도
생겼건만 역시 그 맘 또래 애들이 그렇듯이 살 때문에 고생이라고 맨날 고민이다. 가방을 영훈이 방에
가져다 놓으려고 보니 방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방 다 식으라고 창문…"
세차게 들어오는 바람 속에 순간 성미는 너무나 무서운 생각을 떠올렸지만 애써 그것을 부정하며
창문을 닫으려 가까이 가는 순간 저 밑에서 앞동 푼수 아줌마 은주 엄마의 엄청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이고오오오오오, 아이고오!! 이게 누구야! 사람이, 사람이 죽었어요오오!"
순간 얼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리고 제발 아니길, 제발 그런 것이 아니길 하고 빌면서 성미는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저 밑에는…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조차 잘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이상한 방향으로 팔 다리가 꺾인 사람, 그것도
눈에 익은 체구의 한 학생의 시체… 아니 죽지는 않았으니 시체는 아니지만… 아니길 빌었지만 그건
영훈이 같아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확신보다는 그저 가슴이 미칠듯이 쿵쿵쿵쿵쿵쿵쿵 뛰기 시작할 따름이었지만
곧 저 아래서 "영훈이 엄마아아아아, 아이고오오, 영훈이 엄마아아 내려와봐요오오오" 하는 통곡이
들려왔고, 부들부들 떠는 성미의 눈에는 책상 위에 싸인펜으로 써놓은 무언가의 편지 비슷한 것이
들어왔다.
그녀는 그제서야 모든 것이 서서히 짐작이 갔지만, 모든 것을 인정하기 싫었고 그저 그녀는 그 '유서'로
짐작되는 종이를 손에 들고 맨발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갔으며, 머지않아 몇 분 후 엠뷸런스 소리가
아파트 단지 전역에 울려퍼졌다.
성미는 그녀 스스로가 엄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쓴 그 유서…아니, '편지'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들은 혼자 무던히도 애썼다. 정말 장할 정도로 애를 썼다. 하지만 아들 혼자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는 결국 그런 참으로 바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성미는 몇 시간이고 스스로를 곱씹었다. 만약 내가 그날 요가를 가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죽기로
결심한 아들의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챌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하다못해 그 사지도 않을 속옷가게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버리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더욱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아들이 그 화단 밑에서 사지가 꺾인 채로 바들바들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저 생각없이 가뿐한 마음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현관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만약 아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는 이미 혼이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너무나 지치고 힘들고 세상이 하얗게만 보였다. 이대로 죽고만
싶었다. 이 모든게 다 꿈은 아닐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거운 마음은 가실 줄을 몰랐다.
"흐으으으으으읍"
옆에서 남편은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한번쯤은, 아들이 아파트 13층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막지 못한 나에 대해 원망을 풀고 싶지 않을까. "야이 여편네야 집에서 뭘 하고 있었길래 애가…"
하는 그런 레파토리로 말이다.
하지만 그저 그는 중환자실 앞에서 기절한 채 쓰러져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병실로 옮기고, 아들이 병실에
서 죽어가는 와중에까지 이렇게 제 한 몸도 추스리지 못하는 '병신' 같은 나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하고
그저 저렇게 혼자 숨죽여 울고 있다.
무어라 말을 꺼낼 수도, 꺼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입만 무어라 벌리다가 나는 다시 입을 닫았다. 그리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들 영훈은, 전신타박상 및 척추와 정강이 등에 대한 분쇄골절, 뇌진탕과 두개골 함몰 등 이름만 들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진단을 받고 긴급 수술 후 회복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꼬박 이틀 전의, 아니
어제 일인가. 시간 개념도 사라졌다.
동생 영미와 친정엄마, 시어머니 시아버지, 현주, 큰 형부, 혜주 고모와 숙자 이모가 다녀갔고, 앞으로도 또
계속 일가친척들이 올테지.
'차라리'
차라리 누군가가 나를 비난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죄인이라면, 그래서 이 가슴 속에
차갑게 응어리진 한이라도 없어진다면 그러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이미 죄인이 맞다
생각을 했다.
기자들이 다녀갔다. 아니 다녀갔다고 했다. 내가 또 실신해서 쓰러진 동안 기자들이 들이닥쳤고 남편이
그들을 상대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9시 뉴스에서 아들 영훈의 이야기가 나왔다. 왕따.
왕따.
그 가해자라는 놈들을 모조리, 철저히 털끝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씹어찢어죽이고 싶었다. 그녀는
세상이 두쪽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 놈들한테 철저히 복수하기로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아들 영훈은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광대뼈도 부러져서 이미 얼굴은 아들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별 생각을 다했다. 자기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 죽이는 방법은 모든 것을 상상 속에서 다 구현해 본 것
같았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영혼을 팔아도 좋았다. 그리고 그 직후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이 아니라
'영훈이가 살 수만 있다면'이라는 조건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을 자책했다 허나
그녀 스스로도 어쩌면 포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을 몇 배로 괴롭혔다.
그녀는 생각해보니 자신의 죄가 정말이지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
었다. 그 전에 사귀던 남자와의 상처가 정말 너무나도 깊어서, 그걸 잊을 수만 있다면 그 누구라도 좋았다.
그리고 그 포근함을 사랑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회고하건데 그녀는 단 한번도
남편에게서 이성으로서의 두근거림을 느낀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썩 나쁘지
만은 않았다.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 그것은 정말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가슴 벅찬 감동과 기쁨'이
없을 따름이었다.
심지어는 바람을 피워볼 생각까지 했다. 결혼 이후 간만에 연락을 해온 대학교 선배의 문자 한 통에 가슴
두근대기도 했다. 온갖 일탈을 꿈꾸기도 했다. 심지어 남편과의 잠자리 와중에도 다른 남자 생각을 한 적
이 있었다. 그랬다.
그 모든 게 다 지금의 업보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저 다 모든게 내 죄 같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부모로서 아들이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데도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게 죄가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
7시간에 걸친 난산 끝에, 그래서 더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그래서 더욱 아들을 처음 보는
순간 너무나 기뻤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세상에 이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날부터
그녀의 결혼 생활에 처음으로 행복이 찾아왔다. 아이는 축복이며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 산소마스크에 의지해서 힘겹게 버티고는 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의사는 기적을 믿어보자고 했지만, 기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성미는 그저 흐느꼈다. 기적에
밖에 기댈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이 너무나도 힘들었으니까.
아들의 '편지'를 몇 번이고 읽으며 성미의 머리에는 '태경, 한수, 기태, 문식'이라는 네 이름이 아로새겨
졌다. 그들은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처절하게 복수하리라 다짐을 하고 또 했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했고,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는 지독한 좌절감에 온 몸을 떨어야 했다.
다시 한번 그녀는 우울함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자신이야말로 병원 옥상에 올라가서 그냥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금 지금껏 살아오면서 지은 모든 죄를 하나하나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
했다. 그저 죽고 싶다고. 아득하니,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다 생각해보니… 꼭 그 모든 죄를 영훈이가
대신 끌어안고 죽은 듯 하여 눈물만 펑펑 샘솟았다.
"좀 자"
남편은 오늘도 신경안정제와 물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쩔려고 그래. 그러다 영훈이보다 니가 먼저 죽겠어"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후우"
남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나도 힘들어. 그러니까 너도 고만 힘들게 해. 영훈이만으로도 미쳐버릴 거 같으니까"
나는 그저 콧방귀를 뀔 따름이었다. 남편은 가타부타 말 대신 그저 끊었던 담배를 다시 손에 들고 저기
복도 끝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이 꼭… 아니다.
그냥 죽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