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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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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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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 온다는 말에 엄마의 얼굴에는 기쁨 반, 걱정 반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장판, 도배부터 새로 싹 해야겠다"

형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런 것을 왜 하냐고 했지만 엄마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십수년도 더 된 누렇게 바랜 흰 벽지와 노란 장판을 보노라면 그 어느 여자라도 우리 집안과 엮일 자신의 암담할 미래를 머릿 속에 단번에 그려 버릴테니까. 그래도 내심 '집에 데려온다는거 보면 형 여친도 어느 정도 사정이야 알고 있겠지'라고 생각은 한다만 변해가는 사람 마음 속이야 알 수 없는 법이니 나 역시도 걱정이 들었다.

'하긴'

형은 우리 집안 사람 같지 않게, 엄마나 나처럼 빈티나는 외모도 아니고 곱상하니 귀티나게 생긴데다 서울에서 회사 다니면서 말쑥하니 차려 입고 다니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여자가 그렇게까지 쳐진다고는 짐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분명히.





"엄마"

형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몰래 엄마한테 30만원을 쥐어주었다. 원래는 컴퓨터 업그레이드 하려고 모아놓은 돈인데, 도배 장판하는데 보태 쓰시라고 돈을 쥐어 드렸다. 형은 신신당부하며 절대 도배 장판 같은거 하지 말라고 하면서 갔지만 엄마는 분명히 할 것이다. 제 입에 들어가는 것은 굶을 지언정 자식 새끼들에는 고기 한점이라도 더 물리려는 이 신 여사의 삶에 있어 혹여라도 '가난 때문에 자식 새끼 발목 잡았다'라는 일이 있었다가는 못이 아니라 말뚝이 가슴에 박힐지도 모르니까. 아니, 이미 말뚝 여러개 박혀있긴 하지만 더 박히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고맙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착한 아들" 하면서 내 등을 두드려 주었지만 그저 뿌듯함보다는 가난이 싫어 속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번 주 토요일에 온다니 시간이 얼마 없다. 엄마는 서둘러 현두 아줌마 집에 전화를 걸어 도배를 예약했는데 "싸게 해줘" 라는 말을 몇 번을 반복하는지, 그저 내 입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허어'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온 집안 구석의 오만 짐들을 다 버리는 것부터였다. 거지 같은 집구석에 뭔 짐은 또 그리도 많은지 버리고 또 버려도 버릴 것이 나왔다. 꾀죄죄한 집구석이 너저분하기까지 해서야 답이 없으니 엄마는 정말 많은 것들을 버렸다. 몇 번을 버리려다 끝내 못 버린 그 고장난, 엄마의 손때 묻은 재봉틀마저 이번에는 과감히 버릴 수 있었다.

'아들을 위해'

저 다섯 글자라면 엄마는 정말 못할 것이 없는 사람이니까. 사실 형은 몰라도 나는 안다.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까지 했는지. 엄마는 내가 어려서 아마 모를 것이 생각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안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결코 부끄럽거나 더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 돈으로 내 아가리 속에, 우리 세 가족 입에 뭐가 들어갔는지 아니까. 사실 그래서 지금껏 먹고 체했어도 나는 엄마가 차려준 밥은 단 한번도 남긴 적이 없다.

"이만하면 좀 됐나?"
"되기는, 이제 시작인데"

내 허리가 이 정도면 아마 지금 엄마의 허리는 어쩌면 이미 끊어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무렵인데도 엄마는 쉬지 않고 방을 청소했다. 어차피 곧 도배 장판 새로 해서 없어질 것이건만 무엇이 그리도 그녀를 초조하게 하는지 엄마는 그런 장판조차 트리오 풀어 철저하게 청소했다.

"엄마, 화장실 내가 이미 다 청소했어"
"니가 하긴 뭘해, 엄마가 다 해야지 한거지"
"에유, 그냥 좀 쉬지 쫌"

조금이라도 구질구질한 것은 다 버려졌다. 구멍난 때밀이 수건도 가차없었다. 그토록 아끼고 또 아끼는 신 여사는 어디갔는지, 그저 그녀는 조금이라도 '없어보이는' 무엇인가는 다 버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 덜 가난해보이고, 조금 더 넓어보이고 깔끔해 보인다면, 엄마는 그것으로 행복할테니.




"아니 시팔 그럼 이걸 다 어디로 옮기라는거여"
"아니 어따데고 시팔조팔이야?"

아침에 눈을 뜨자 집 밖에서 엄마와 우리 빌라 B102호 할아버지의 다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도 덜 깬 상황이었지만 반사적으로 몸을 튕겨 일으켜 옷을 대충 추려입고 밖으로 향했다. 뭐 알만했다. 폐휴지를 주워 생활하는 영감님네는 우리 빌라 앞 골목에 산처럼 그 쓰레기더미들을 쌓아놓곤 했는데 지금 형의 여친이 그 모습일랑 봤다가는….

"에효"

그래도 맨날 뭐 하나라도 더 가져다 드리고 혼자 되신 불쌍한 할아버지라도 뭐 국도 떠다 드리고 하고 그랬는데, 결국 아들의 미래가 엮이니 엄마도 마음이 독해진 것이리라. 할아버지야 돌변한 엄마가 당황스럽기도 했겠지만, 그 역시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감정이 격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엄마와 할아버지의 싸움은 육두문자질로 번지기 직전이었지만 큰 소리에 함께 나온 다른 집 아줌마, 옆 동 아줌마들까지 엄마의 편에 합세하고 있었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내가 정작 나서야 할 곳은, 그 쓰레기 산을 치울 때였다. …정말로 허리가 끊어질 뻔 했다.

"백수 아들 이럴 때라도 써먹어야지"
"아 진짜 나중에 내가 여친 데려올 때 두고 본다? 어?"

늦어도 목요일 금요일에는 도배, 장판 다 한다고 치면 집 주변 환경 정리는 오늘이 마지막이어야 했다. 나와 엄마는 집 앞 골목은 물론 우리 빌라단지 근처까지 다 싹싹 청소를 했고, 깨져서 신문지로 막아둔 2층의 복도 유리도 새 유리로 갈았다. 그리고 근 몇 년 만에, 문 앞의 센서등도 고쳤다. 정말로 근 10년은 된 거 같은데.




이미 깎고 깎고 또 깎았음에도 엄마는 일손을 돕겠다는 억지를 부려서 3만원을 더 깎았다. 결국에는 감정이 상해서 "상호 엄마도 그러는거 아니야"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기어코 더 깎아낸 엄마는, 대신에 정말로 두 명 몫은 할 요량으로 도배 아줌마들을 도와 일을 했다.

어릴 적에는, 아니 지금도 사실 엄마의 저런 억척스러움이 너무 싫었지만, 언젠가의 중학교 때, 내가 자는 줄 알고 안방에서 엄마가 울면서 이모와 나눈 전화를 본의아니게 엿들은 뒤로는 난 단 한번도 그녀의 그런 억척스러움을 비난하거나 부끄러워 한 적이 없다. 단지 매번 슬플 뿐이었지.

도배 장판을 싹 새로 하고, 엄마는 거실의 시계까지 새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이 '아들의 여친맞이'를 준비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상록수회'라고 쓰인 그 누런 시계는 엄마와 아빠의 결혼선물이었다. 그 낡고 빛바랜, 이젠 누렇다 못해 허연 느낌까지 있는 오래된 시계를 엄마는 수시로 닦고 또 닦았다. 그리 먼지가 쌓이지도 않았음에도.

아마 그것은 엄마가 외로움을 느낄 때, 너무 힘들어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한 행동이었으리라. 그런 시계를 엄마는 "이것도 버리자, 진짜 이젠 낡아서 못 봐주겠다" 라며 떼어내었다. 나는 엄마가 후회할까 두려워 몇 번이고 말렸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에휴 버려. 엄마가 이따 가서 새로 사올거야"
"참 진짜"

결국 엄마가 내다버린 것을, 내가 곧 뒤따라나가 그 시계를 슬쩍 가져다가 비닐 씌워 옥상 한 구석에 올려두었다. 엄마가 버린 것을 후회하는 모습이 보이면 얼른 다시 가져올 수 있도록.



"이거 다 먹지도 못한다니까"
"아 남으면 우리가 먹으면 되지"

마지막은 먹거리였다. 엄마는 유난히 들뜬 얼굴이었다. 갈비도 사고, 삼겹살도 사고, 전 부칠 거리도 사고, 한우 국거리도 사고, 봄동에 나물에 오만 반찬거리를 다 사고, 토마토에 청포도에 뭔 계절에 안 맞게 체리까지 사고 심지어 김치도 익은 김치 뿐이니 겉절이 조금 해야겠담서 배추까지 조금 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새벽 1시 반이 되도록 준비를 했다. 도배에 장판 까느라 힘들었을 금요일 밤인데도.




"아휴 엄마 됐어. 여울이 돈 많어"
"네네, 어머니 나오지 마세요. 아휴, 아니에요 어머니, 무슨 용돈을 다, 괜찮아요 어머니 정말 괜찮아요, 하하"
"받아둬, 응? 내가 주는거니까, 받아둬. 상호랑 둘이 맛난거 많이 먹고, 이건 니 용돈 해. 받아둬 받아둬"

카톡에서 몇 번 보았던 형의 여친은 사진보다는 더 정감 어린 얼굴이었다. 못 생겼다는 말이 아니라, 세련된 도시미녀보다는 싹싹한 타입의 친절한 얼굴이랄까. 누구라도 웃으며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호감형 타입. 분명 형도 어떤 '확신'이 있었기에 그녀를 우리 집에 데려올 수 있었으리라.

실제로 누나는 꽤나 싹싹했다. 엄마가 기겁을 하며 말리는데도 기어코 설거지도 엄마와 도와 나란히 하지를 않나, 빼는 대신 "어머니 정말 맛있어요" 하며 밥을 정말 맛있게 먹는다거나. 형의 얼굴도 꽤나 흐뭇해보였고, 저렇게 성격 좋은 여자를 만난 형이 새삼 부러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형이 과연 낫긴 낫다, 대단하다 하고 새삼 생각했다. 그저 엄마는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렸고, 나중에 만원짜리 수십장을 기어코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마 그 돈은 내 돈이었겠지만.




그날 밤, 화장실을 가며 본 엄마는 안방에서 혼자 적금통장 몇 개를 펴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의 머릿 속에선 형의 결혼식까지 이미 다 치뤄지고 있을테고, 이제는 전세자금을 생각해 본 것이겠지. 전세금이라도 어떻게 조금 보태야 할텐데, 하는.

나 역시 뻔한 우리 집 사정을 생각하며 혼자 짱구를 꽤 많이 굴려봤다. 그러나 백수 처지에 뾰족한 답이 있을리 없고, 조금은 답답한 밤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형과 그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던 형의 카톡 사진 속 누나의 모습은 그 후 몇 주 가지않아 사라졌고, 생전 카톡 프로필에 상태 메세지 같은 것을 남기지 않던 형의 카톡에 '힘들다' 라거나 '현실의 무게', '숨길 수 없는 세 가지' 등의 조금은 오그라드는 문장들이 수놓아지더니 그마저도 사라지고 곧 기본 프로필로 돌아갔다.

그것으로 이미 나는 조금 짐작했지만, 이후 형이 집에 올 때마다 웃으며 "여울인지 꺼굴인지는 잘 있냐?" 하는 엄마의 농 섞인 말에 어느 날 벌컥 "그 년 이야기 좀 꺼내지 마, 돈 밖에 모르는 년!" 하고 화를 내는 형의 모습에 결국 슬픈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엄마는 당황하며 형에게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것을 말리며 그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더이상 바늘 하나 더 들어갈 곳 없이 수없이 인이 박힌 엄마의 가슴이건만, 그날 또 굵은 말뚝이 박혔겠지.




"백퍼 엄마 후회할 거 같아서 따로 챙겨놨었어"

형에게는 "세상에 여자가 그년 밖에 없다디?" 하고 퉁을 놓더니, 정작 형이 가고 나자 혼자 거실에서 긴 한숨을 쉬는 엄마를 위해 몰래 옥상에서 결혼 기념 시계를 찾아다가 걸어놓았다.

"에그…"

그리고 그제서야 꽤 오랫동안 참았던 긴 울음을 터뜨린 엄마는 내 품 안에서 한참을 꺽꺽대며 울었다. 나 역시 괜히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뭐, 사실 나는 결혼 같은거 별로 생각도 없고 마음도 접었지만, 만약 내가 결혼할 기회가 온다면… 정말 그런 여자가 있다면, 거지도 상거지 같은 우리 집 구석의 경제사정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여자, 그거 하나면 절대, 절대로 그녀를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모시며 행복하게 해줄거라고, 요리 못하고 집안 일 같은거 안 하고 못생기고 뭐 잘난거 진짜 단 하나도 없는 여자라도, 그래도 정말 잘해줄거라고.

그래서 인이 박힌 엄마 가슴에 더이상 못 안 박을 여자면 그걸로 나는 족하다고. 뭐,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역시 그냥 나같은건 장가 안 가는게 모두에게 행복한 길이겠지만.

"에휴, 엄마도 그만 울어. 뭐 잘못했다고 울어. 됐고, 밥이나 먹자. 내가 라면 끓일게"




"후우"

닫힌 안방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은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울이 누나도, 물론 우리 집이 가난하긴 해도 진짜 우리 집은 다시 안 봐도 되는데, 절대 안 귀찮게 하고 무슨 시집살이니 그런거 없고 그냥 형하고 누나, 아니 형수님, 아니 전 형수? 여튼 누나하고 둘이서만 진짜 알콩달콩 잘 살면 되는데,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고 우리 멋있고 착한 우리 형이랑 다시 사귀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진심으로 다시 잘 되길 빈다.

그리고 끝끝내 다시 잘 안되더라도… 그냥 그 날 표정관리 잘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다. 솔직히, 나라도 실망했을테니까. 흐. 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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