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3일째, 혼자 온 홍콩의 밤은 외롭다. 호텔 방은 또 왜이리 싸늘한지. 시간은 어느새 밤 11시 반. 3박
5일로 온 여행이니까 내일 밤이 지나면 나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흠'
차라리 어제 좀 쉬고 오늘 놀 걸 그랬나. 아니다, 그래도 내일은 날밤을 새야하는데 오늘 좀 쉬어두는게
맞다. 그리고 어제 클럽에서 그렇게 재미나게 놀았는데. 전혀 아깝지 않다. 홍콩의 클럽이라고 해서 별
기대도 안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드래곤아이를 갈까 하다가 그냥 딱 삘이 오길래 베이징클럽으로 향했는데 아 탁월한 초이스였던 것 같다.
시설도 나름 깔끔하고 수질은 좀 많이 떨어져도-그래도 그 와중에 끼어있는 백마 언니들은 어째 전부 다
미란다 커 아니면 전성기의 미셸 파이퍼다. 물론 가난한 김치 코리안인 내가 건드릴 수 있는 레베루가
당연히 아니지만- 분위기 괜찮고, 무엇보다 다들 춤들이 각양각색이라 가끔은 손발 오그라들어도 뭔가
그래서 더 편하고 재미졌다.
'흐흐'
그러다 살살 '동남아 이민정', '어디가서 많이 맞고 온 김태희' 급의 이쁜이들이랑 부담없이 부비부비 하노
라니 이게 바로 글로벌 라이프 아니겠는가. 새삼 또 가고 싶을 정도로 재밌었다. 왕년에 갔던 일본 록폰기
클럽 가스패닉은 뭔 씨발 등치 큰 흑형 아니면 기획물AV에서도 출연이 힘들만한 추물들로 그득한 뭔 미군
부대 느낌이라 최악이었는데 여기가 그보다는 100배 재밌었던 것 같다.
뭐 확실히 한국보다 물은 좀 많이 떨어지지만 대신, 뭔가 좀 더 편하고 자유롭다고나 할까. 엘루이에서
놀다가 어느 날 엔비에서 놀 때 느껴지는 그 뭔가 '편함' 말이다. 일전에 듣기로는 대만쪽 클럽이 그렇게
물도 좋고 재미나다는데. 별로 믿지는 않지만-경험상 한국이 클럽 물은 확실히 아시아에서는 독보적인
원탑인 것 같다- 내년에는 대만에나 갈까. 아니 그보다, 생각해보니 클럽 안 간지도 엄청 오래됐구나.
외국보다 일단 한국가면 다시 클럽이나 가야지.
TV를 켰다. 알 수 없는 쏼라쏼라 중국말이 쏟아진다. 그러고보니 이 '쏼라쏼라' 라는 말, 왠지 참 중국어
를 잘 표현해낸 말 같아서 새삼 재미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니 영화 '우주전쟁'을 보여준다. 딱
거기서 채널을 고정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킨 나는 TV화면 대신 냉장고를 뒤지고 있다. 아까 낮에 사놓은 '블루걸' 맥주다. 우리
나라 OB맥주에서 수출하는 현지 전용 맥주인데, 나는 그 어떤 맥주보다 이 맥주가 제일 맛있다. 홍콩하면
이 맥주만 떠오를 정도니까. 목 넘김이 부드러운 맥주를 좋아하는 나는 역시나 김치 코리안이다.
"후우"
혼자 우적우적 비첸향 육포에 맥주를 넘기노라니 뭔가 허망하다. 아 역시 지금이라도 나갈까? 왠지 외국
까지 나와서 호텔에 혼자 있으려니 너무 청승맞다. 아 씨팔 역시 해외여행은 혼자 다니면 이래서 싫다.
뭔가 혼자 시간을 때워야 하는 시간이 오면 마냥 초조하고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 뭐
딸딸이라도 치는 건 그거야말로 병신 짓 아니겠는가.
그냥 지금이라도 란카이펑에 가서… 아 막상 나가려니 너무 귀찮다. 후우. 그리고 주말 이 시간대에 그냥
술집에 가면 술에 꽤나 쩔어버린 양키들이 크게 소리지르며 놀 시간인데, 김치 황인이 혼자 그 사이에서
끼고 들어가는 것도 조금은 애매하다.
'아 그냥'
SEVVA가 떠올랐다. 원래는 내일 마지막 일정으로 짜놓았는데, 아무래도 너무 답답하고 뭔가 초조한 이
마음에 오늘 가기로 마음 먹었다. 호텔에 도착 직후 캐리어에서 꺼내서 옷장에 걸어놓은 나의 휴고 보스
수트를 훑어본다. 후우, 좋아.
원래는 아까 자려고 씻었던 것이건만, 잘 되었다. 다시 한번 얼굴에 스킨만 바르고는 손목에 살짝 향수를
뿌렸다. 흠. 거울을 보면서 머리에 왁스도 바르고, 좋아. 음.
타이는 하지 않은 채 와이셔츠도 두 어개 풀고 아래 위로 정장을 슥 걸치고 구두까지 딱 신고는, 지갑도
놓고 카드 하나에 1,100 홍콩달러만 딱 머니 클립에 꽂아 출발한다. 물론 휴대폰, 호텔 카드키까지는 챙
기고.
단단하게 꾸미고 호텔 방문을 나서니 마침 맞은 편 복도에서 머리가 하얗게 샌 미국 할매 한 분이 걸어온다.
먼저 나를 보며 인사를 한다. 역시 외국인들의 이 밑도 끝도 없는 인사는 참 좋다. 나 역시 "Hi" 하고 인사를
받노라니 무어라 말을 하는데 영어가 아니다. 나는 그냥 슥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지나쳐서
호텔 입구로 향한다. 호텔 앞에는 벨보이도 없다.
"후우"
생각보다 날씨가 많이 차다. 와이셔츠 하나를 잠궜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베스트 입고 올 것을 그랬나.
하지만 뭐 금방 택시를 탈 거니까. 택시를 잡아타고 나는 "센트럴 프린스 빌딩" 하고 말했지만 역시나 잘
못 알아듣는 눈치다. 아이폰을 뒤져 책에서 찍어둔 그 근처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주소를 보여주니
"오께 오께" 하며 그제서야 출발한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심야의 홍콩. 밤거리의 홍콩과는 달리 또 나름 심야의 홍콩은 화려하면서도 묘하게
을씨년스러운 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밤을 알록달록 화려하게 수놓는 간판과 조명들은 참
매력적이다. 홍콩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홍콩만큼 전기 아까운 줄 모르는 동네도 없는 것 같다.
"여기"
"thank you"
50홍콩달러짜리 지폐를 하나 주고는 그냥 내렸다. 잔돈 챙기기 귀찮아서 나머지는 팁으로 줘버렸다.
센트럴 프린스 호텔 25층에 자리잡고 있는 스카이라운지 바, SEVVA. 여기가 간지나는게 뭐냐면…
25층까지 직통으로 올라가는 버튼 하나짜리 엘리베이터에 문이 딱 열리면 SEVVA 로고가 간지나게
나를 반긴다는 점이다. 카운터에서 적당히 짐이나 옷가지를 맡기고 난 후 나는 바로 야외 바로 향했다.
"후우"
테라스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드득드득 붙어있고 간신히 난 자리를 잡고 나는 오가는 귀여운 알바에게
진 한 잔을 주문을 했다. 잠시 술이 나올 때까지 25층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물끄러미 감상하노라니
몇 겹으로 된 흰 롱 스커트를 입고 온 이쁜 아가씨 하나가 손에 칵테일 잔을 하나 들고 다니다가 스윽
내 스탠드 테이블 곁으로 다가와 야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흠'
그냥도 어두침침한데 선글래스까지 쓰면 뭐가 보이나 싶은데 그래도 그녀는 좋다고 쓰고 있다. 잠시
야경을 감상하던 그녀는 역시나 선글래스가 불편했던지 슥 벗는데, 이야, 미인이다. 아니 뭐 솔직히 딱
엄청난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불과 3일만에 눈 많이 낮아졌다- 그래도 미인이다.
"hello, where are you from"
내심 영어 쓰는 나라 아가씨가 아니길 빌며 툭 한번 던져본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처음엔
잠시 자기를 향해 하는 말인줄 몰랐던지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내가 자신에게 한 말이라는 사실을 깨
닫고는 화들짝 돌라면서 대답했다.
"ja, japan"
일본인가.
"와타씨와 간코쿠데 키마시타"
발음이야 안 좋겠지만 맞긴 맞을거다. 작년에 일본 갈 때 죽어라 공부했던 기초 일어회화 아닌가. 내가
일본어로 말하자 피식 웃은 그녀는 "간코쿠?" 하더니 곧 "와타시, 근짱 돗떼모 스키요" 하고 곧바로 뭐라
일본어로 말을 하는데, '근짱' 하는 말은 알아듣겠다. 장허세 씨팔.
"아, 장근석? 굿굿"
그리고 때마침 웨이터가 내 잔을 가져온다. 잔을 받아들고 가볍게 눈 인사. 그리고 "와타시와, 기무박스
데스, 아나타노 나마에와 난데스까" 하고 그야말로 책에서 나온 고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츠코, 나츠코 데스" 하고 자기 이름을 말한다. 나츠코… 좋네.
"히토리데 키마스까?"
차라리 영어로 말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은 일본인이니 일본어로 들이대본다.
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도모다치또 잇쇼니 킷단데스가, 토모다치와 이마 호테루니 이마스요" 하고는 조곤
조곤 말해주는데 아 눈치껏 뭔 말인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일단은 건배부터 해본다.
뭔가 어색하지만 일단 그녀도 내가 싫은 눈치는 아니다. 하기사 이 SEVVA 분위기가 혼자 놀기는 참 되게
뻘쭘한 분위기인데 그래도 말 걸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나쁘진 않았으리라.
"시츠레이 데스가, 이꾸츠 데스카?"
"니쥬큐사이"
나이를 묻자 손가락을 2개 폈다가 9개를 편다. 29살? 일본이니까 만 나이 감안하면 서른이네? 생각보다
엄청 동안이구나. 나는 "서티원" 하고 영어로 대답했다. 역시 손가락으로 3, 1을 보여주면서. 그러자 그녀
는 "I know, 31" 하면서 웃는다. 나츠코 역시 영어는 잘 못하는 듯 했지만, '굳이 31을 손가락으로 보여주진
않아도 '서티원' 정도는 알아요' 하고 톡 쏘는 그 모습이 귀엽다.
나는 씩 웃으면서, 스탠드 테이블을 돌아가 그녀 바로 옅에 서서, 과감하게 나츠코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하야스기" 라고 무어라 말 한 마디를 건냈지만 나는 그저 미소만 지어보였다. 물론 그녀 역시 내 손을
놓지는 않았다.
5일로 온 여행이니까 내일 밤이 지나면 나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흠'
차라리 어제 좀 쉬고 오늘 놀 걸 그랬나. 아니다, 그래도 내일은 날밤을 새야하는데 오늘 좀 쉬어두는게
맞다. 그리고 어제 클럽에서 그렇게 재미나게 놀았는데. 전혀 아깝지 않다. 홍콩의 클럽이라고 해서 별
기대도 안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드래곤아이를 갈까 하다가 그냥 딱 삘이 오길래 베이징클럽으로 향했는데 아 탁월한 초이스였던 것 같다.
시설도 나름 깔끔하고 수질은 좀 많이 떨어져도-그래도 그 와중에 끼어있는 백마 언니들은 어째 전부 다
미란다 커 아니면 전성기의 미셸 파이퍼다. 물론 가난한 김치 코리안인 내가 건드릴 수 있는 레베루가
당연히 아니지만- 분위기 괜찮고, 무엇보다 다들 춤들이 각양각색이라 가끔은 손발 오그라들어도 뭔가
그래서 더 편하고 재미졌다.
'흐흐'
그러다 살살 '동남아 이민정', '어디가서 많이 맞고 온 김태희' 급의 이쁜이들이랑 부담없이 부비부비 하노
라니 이게 바로 글로벌 라이프 아니겠는가. 새삼 또 가고 싶을 정도로 재밌었다. 왕년에 갔던 일본 록폰기
클럽 가스패닉은 뭔 씨발 등치 큰 흑형 아니면 기획물AV에서도 출연이 힘들만한 추물들로 그득한 뭔 미군
부대 느낌이라 최악이었는데 여기가 그보다는 100배 재밌었던 것 같다.
뭐 확실히 한국보다 물은 좀 많이 떨어지지만 대신, 뭔가 좀 더 편하고 자유롭다고나 할까. 엘루이에서
놀다가 어느 날 엔비에서 놀 때 느껴지는 그 뭔가 '편함' 말이다. 일전에 듣기로는 대만쪽 클럽이 그렇게
물도 좋고 재미나다는데. 별로 믿지는 않지만-경험상 한국이 클럽 물은 확실히 아시아에서는 독보적인
원탑인 것 같다- 내년에는 대만에나 갈까. 아니 그보다, 생각해보니 클럽 안 간지도 엄청 오래됐구나.
외국보다 일단 한국가면 다시 클럽이나 가야지.
TV를 켰다. 알 수 없는 쏼라쏼라 중국말이 쏟아진다. 그러고보니 이 '쏼라쏼라' 라는 말, 왠지 참 중국어
를 잘 표현해낸 말 같아서 새삼 재미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니 영화 '우주전쟁'을 보여준다. 딱
거기서 채널을 고정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킨 나는 TV화면 대신 냉장고를 뒤지고 있다. 아까 낮에 사놓은 '블루걸' 맥주다. 우리
나라 OB맥주에서 수출하는 현지 전용 맥주인데, 나는 그 어떤 맥주보다 이 맥주가 제일 맛있다. 홍콩하면
이 맥주만 떠오를 정도니까. 목 넘김이 부드러운 맥주를 좋아하는 나는 역시나 김치 코리안이다.
"후우"
혼자 우적우적 비첸향 육포에 맥주를 넘기노라니 뭔가 허망하다. 아 역시 지금이라도 나갈까? 왠지 외국
까지 나와서 호텔에 혼자 있으려니 너무 청승맞다. 아 씨팔 역시 해외여행은 혼자 다니면 이래서 싫다.
뭔가 혼자 시간을 때워야 하는 시간이 오면 마냥 초조하고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 뭐
딸딸이라도 치는 건 그거야말로 병신 짓 아니겠는가.
그냥 지금이라도 란카이펑에 가서… 아 막상 나가려니 너무 귀찮다. 후우. 그리고 주말 이 시간대에 그냥
술집에 가면 술에 꽤나 쩔어버린 양키들이 크게 소리지르며 놀 시간인데, 김치 황인이 혼자 그 사이에서
끼고 들어가는 것도 조금은 애매하다.
'아 그냥'
SEVVA가 떠올랐다. 원래는 내일 마지막 일정으로 짜놓았는데, 아무래도 너무 답답하고 뭔가 초조한 이
마음에 오늘 가기로 마음 먹었다. 호텔에 도착 직후 캐리어에서 꺼내서 옷장에 걸어놓은 나의 휴고 보스
수트를 훑어본다. 후우, 좋아.
원래는 아까 자려고 씻었던 것이건만, 잘 되었다. 다시 한번 얼굴에 스킨만 바르고는 손목에 살짝 향수를
뿌렸다. 흠. 거울을 보면서 머리에 왁스도 바르고, 좋아. 음.
타이는 하지 않은 채 와이셔츠도 두 어개 풀고 아래 위로 정장을 슥 걸치고 구두까지 딱 신고는, 지갑도
놓고 카드 하나에 1,100 홍콩달러만 딱 머니 클립에 꽂아 출발한다. 물론 휴대폰, 호텔 카드키까지는 챙
기고.
단단하게 꾸미고 호텔 방문을 나서니 마침 맞은 편 복도에서 머리가 하얗게 샌 미국 할매 한 분이 걸어온다.
먼저 나를 보며 인사를 한다. 역시 외국인들의 이 밑도 끝도 없는 인사는 참 좋다. 나 역시 "Hi" 하고 인사를
받노라니 무어라 말을 하는데 영어가 아니다. 나는 그냥 슥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지나쳐서
호텔 입구로 향한다. 호텔 앞에는 벨보이도 없다.
"후우"
생각보다 날씨가 많이 차다. 와이셔츠 하나를 잠궜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베스트 입고 올 것을 그랬나.
하지만 뭐 금방 택시를 탈 거니까. 택시를 잡아타고 나는 "센트럴 프린스 빌딩" 하고 말했지만 역시나 잘
못 알아듣는 눈치다. 아이폰을 뒤져 책에서 찍어둔 그 근처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주소를 보여주니
"오께 오께" 하며 그제서야 출발한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심야의 홍콩. 밤거리의 홍콩과는 달리 또 나름 심야의 홍콩은 화려하면서도 묘하게
을씨년스러운 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밤을 알록달록 화려하게 수놓는 간판과 조명들은 참
매력적이다. 홍콩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홍콩만큼 전기 아까운 줄 모르는 동네도 없는 것 같다.
"여기"
"thank you"
50홍콩달러짜리 지폐를 하나 주고는 그냥 내렸다. 잔돈 챙기기 귀찮아서 나머지는 팁으로 줘버렸다.
센트럴 프린스 호텔 25층에 자리잡고 있는 스카이라운지 바, SEVVA. 여기가 간지나는게 뭐냐면…
25층까지 직통으로 올라가는 버튼 하나짜리 엘리베이터에 문이 딱 열리면 SEVVA 로고가 간지나게
나를 반긴다는 점이다. 카운터에서 적당히 짐이나 옷가지를 맡기고 난 후 나는 바로 야외 바로 향했다.
"후우"
테라스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드득드득 붙어있고 간신히 난 자리를 잡고 나는 오가는 귀여운 알바에게
진 한 잔을 주문을 했다. 잠시 술이 나올 때까지 25층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물끄러미 감상하노라니
몇 겹으로 된 흰 롱 스커트를 입고 온 이쁜 아가씨 하나가 손에 칵테일 잔을 하나 들고 다니다가 스윽
내 스탠드 테이블 곁으로 다가와 야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흠'
그냥도 어두침침한데 선글래스까지 쓰면 뭐가 보이나 싶은데 그래도 그녀는 좋다고 쓰고 있다. 잠시
야경을 감상하던 그녀는 역시나 선글래스가 불편했던지 슥 벗는데, 이야, 미인이다. 아니 뭐 솔직히 딱
엄청난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불과 3일만에 눈 많이 낮아졌다- 그래도 미인이다.
"hello, where are you from"
내심 영어 쓰는 나라 아가씨가 아니길 빌며 툭 한번 던져본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처음엔
잠시 자기를 향해 하는 말인줄 몰랐던지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내가 자신에게 한 말이라는 사실을 깨
닫고는 화들짝 돌라면서 대답했다.
"ja, japan"
일본인가.
"와타씨와 간코쿠데 키마시타"
발음이야 안 좋겠지만 맞긴 맞을거다. 작년에 일본 갈 때 죽어라 공부했던 기초 일어회화 아닌가. 내가
일본어로 말하자 피식 웃은 그녀는 "간코쿠?" 하더니 곧 "와타시, 근짱 돗떼모 스키요" 하고 곧바로 뭐라
일본어로 말을 하는데, '근짱' 하는 말은 알아듣겠다. 장허세 씨팔.
"아, 장근석? 굿굿"
그리고 때마침 웨이터가 내 잔을 가져온다. 잔을 받아들고 가볍게 눈 인사. 그리고 "와타시와, 기무박스
데스, 아나타노 나마에와 난데스까" 하고 그야말로 책에서 나온 고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츠코, 나츠코 데스" 하고 자기 이름을 말한다. 나츠코… 좋네.
"히토리데 키마스까?"
차라리 영어로 말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은 일본인이니 일본어로 들이대본다.
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도모다치또 잇쇼니 킷단데스가, 토모다치와 이마 호테루니 이마스요" 하고는 조곤
조곤 말해주는데 아 눈치껏 뭔 말인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일단은 건배부터 해본다.
뭔가 어색하지만 일단 그녀도 내가 싫은 눈치는 아니다. 하기사 이 SEVVA 분위기가 혼자 놀기는 참 되게
뻘쭘한 분위기인데 그래도 말 걸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나쁘진 않았으리라.
"시츠레이 데스가, 이꾸츠 데스카?"
"니쥬큐사이"
나이를 묻자 손가락을 2개 폈다가 9개를 편다. 29살? 일본이니까 만 나이 감안하면 서른이네? 생각보다
엄청 동안이구나. 나는 "서티원" 하고 영어로 대답했다. 역시 손가락으로 3, 1을 보여주면서. 그러자 그녀
는 "I know, 31" 하면서 웃는다. 나츠코 역시 영어는 잘 못하는 듯 했지만, '굳이 31을 손가락으로 보여주진
않아도 '서티원' 정도는 알아요' 하고 톡 쏘는 그 모습이 귀엽다.
나는 씩 웃으면서, 스탠드 테이블을 돌아가 그녀 바로 옅에 서서, 과감하게 나츠코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하야스기" 라고 무어라 말 한 마디를 건냈지만 나는 그저 미소만 지어보였다. 물론 그녀 역시 내 손을
놓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