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말에, 이미 눈가가 벌개진 엄마가 묻는다.
"그거, 담은 일주일이라도 좀 지켜봤다 하면 안되는지"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젓는다.
"지금 선생님이, 호흡기를 떼면 바로 몇 시간 내로 돌아가시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이제 이거를 다시 꺼내기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당장 그거는 나중에 차차 생각할 문제고, 아까 폐 사진 보여드렸지마는 지금 선생님 폐 상태가 아주 많이 안 좋으세요. 그래서 일단은 약으로 당장 급한 폐렴부터 잡구요, 상태가 나아지면 뭐, 그리고 차도가 없으면 뭐 역시 그것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태구요"
의사의 입에서 '죽음'이라는 말이 언뜻언뜻 비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나는 와닿지 않는다. 아니, 이미 찔끔찔끔 흘릴 눈물은 집으로 부랴부랴 향하던 택시 안에서 충분히 다 흘렸다.
"일단 지금은 폐렴과 잠깐 싸울 수 있는 시간을 번 거구요…, 그리고 이거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이거는 폐가 이렇게 있으면 여기에 혈관을 삽입하는 겁니다. 지금 약을 대여섯개를 쓰는건데, 팔로 주입하게 되면 주사가 못 버텨요. 굵은 혈관에 여기에 이렇게 주입을 할건데… 뭐 감염이나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구요. 그런데 이거는 뭐 소독을 하고 하니까 문제가 없는데, 폐가 정상 상태가 아니신 분들은 폐가 이렇게 부풀어 오릅니다. 이 시술 과정이나 그 이후에 폐에 기흉이 생길 수 있고, 뭐 그럴 때는…"
"아버지가 원래 기흉도 있으신데"
"아뇨아뇨, 그런 기흉의 문제가 아니라… 여튼, 여기에 기흉이 생기게 되면 나중에 구멍을 내서 바람을 빼내야 할 수도 있구요. 여기 아드님이 싸인 부탁드립니다"
대략적인 설명을 듣기는 했다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의사가 하자면 해야지. 싸인을 하고, 의사는 동의서를 간호사에게 넘기고 간단히 목례 후에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간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그저 의사에게 머리를 굽신 숙인다. 일주일 전 쯤, 아버지와 싸운 것이 후회가 된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아버지한테 심한 막말까지 퍼부었는데. 중환자실 앞에서 그저 멍하니 벽을 바라본다. 또 눈물을 줄줄 흘리는 어머니에게 독하게 말했다.
"다 팔자야 팔자. 살 사람은 다 살고 죽을 사람 죽는거고"
사실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저 허망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회사에 연락했다. 전화를 마치고 오자 엄마는 옆에서 중얼거린다.
"아빠가 벌써 가기에는 나이가 아깝잖아. 좋은 것도 못 먹고, 누려보지도 못하고"
"아빠가 못 먹긴 뭘 못 먹어. 수시로 고기반찬 올라오는데"
나는 억지로 엄마에게 눙을 치지만 엄마는 "그래도 남들처럼 어디 여행이라도 다같이 다니지도 못하고, 평생을 고생고생만 하다가 병원에서 이렇게 갈 생각하니까…" 하고 또 눈가를 닦는다.
몇 번의 위기를 오뚜기처럼 넘긴 아버지다. 뇌출혈은 이겨냈고, 폐 기능 저하와도 오래 싸워왔다. '보험 있잖아'라고 되뇌이지만, 며칠 전 아버지가 "당장 돈이 없어서 보험도 다 줄줄히 해약하고 있는 판이야"라고 했던 말이 섬뜩하다.
매번, 그래도 어떻게는 가족의 부담을 안 지웠던 양반이다. 자신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마치 예견이라도 했던 모양으로 딱 뇌출혈 오지 2년 전 즈음에 보험을 마구 가입해서 버텨내더니, 폐가 망가졌을 때도 어디서 또 결핵균은 감염되어서 900만원 넘게 나온 병원비를 나랏 돈으로 거진 다 막아냈다. 이번은 어찌될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지금 이거 하시게 되면, 몸에 혈전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래서 다리에 마사지 기계를 끼우실 건데, 이게 처음에 10만원이고 매일 만원씩 이용료를 지불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퇴원하실 때 집에 가져가시는 건 아니구요…" 라며 영업인지 치료인지 모를 안내를 하며 인턴이 내민 차트에 그러라고 싸인을 한다.
3천을 향해 달려가는 내 빚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싸우고 있는 것은 아버지 뿐만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게 나도 싸워왔다. 대법원 상고 결과가 나왔다.
'상고를 기각한다'
세 번의 싸움. 나는 패배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그건 다른 문제다. 아버지의 싸움이 더 중요하다. "퇴원하면, 집에 니 색시될 사람 데려와" 소리했던 것이 생각난다. 마음이 안 좋다. 그렇다고 엄마 앞에서 울 수는 없다. 가벼운 콧김을 뿜어내며 시계를 본다.
"지금 여기 중환자실 이거도 다 산재 처리가 되나? 저번에도 이미 한번 그래놓은거라서"
엄마는 병원비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안된다면 뭐 노무사 끼고 싸워봐야지"
나는 법으로 이미 세 번이나 진 놈이 또 법 타령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이 아득하다. 나는 항상 너무 심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다. 이게 다 꿈이길 빌면서. 실제로 많은 경우 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모든 것이 다 현실이다. 그래서 하루에 몇 번이나 그 짓을 한다. 꿈이길 빌면서.
"엄마 밥 먹고 와"
"됐어"
"아침 점심 다 굶었잖아. 먹고 와. 엄마까지 쓰러지면 또 쌍으로 모셔야 돼. 나 귀찮게 하지 말고 먹고 와"
"너 먹고 와"
결국 둘 다 안 먹고 멍하니 병원 벽만 바라본다. 침묵 속에서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한다. 대답 대신 "졸립다"라는 말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저녁 면회 시간에 영감의 얼굴을 보고 병원을 돌아나왔다. 엄마는 순대국을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맛없어 보이는 가게라서 걸렀다. 그래놓고 고른 것이 김밥천국 라면에 김밥이다.
집으로 와 눕는다. 아버지는 자신의 수명과 싸우고 있다. 불꺼진 안방에 누워 엄마도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 역시 불 꺼진 내 방에서도 모든 것이 다 뒤틀리고 있다.
그저 부디 새벽 시간 전화기가 울리지 않기 만을 바란다.
"그거, 담은 일주일이라도 좀 지켜봤다 하면 안되는지"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젓는다.
"지금 선생님이, 호흡기를 떼면 바로 몇 시간 내로 돌아가시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이제 이거를 다시 꺼내기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당장 그거는 나중에 차차 생각할 문제고, 아까 폐 사진 보여드렸지마는 지금 선생님 폐 상태가 아주 많이 안 좋으세요. 그래서 일단은 약으로 당장 급한 폐렴부터 잡구요, 상태가 나아지면 뭐, 그리고 차도가 없으면 뭐 역시 그것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태구요"
의사의 입에서 '죽음'이라는 말이 언뜻언뜻 비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나는 와닿지 않는다. 아니, 이미 찔끔찔끔 흘릴 눈물은 집으로 부랴부랴 향하던 택시 안에서 충분히 다 흘렸다.
"일단 지금은 폐렴과 잠깐 싸울 수 있는 시간을 번 거구요…, 그리고 이거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이거는 폐가 이렇게 있으면 여기에 혈관을 삽입하는 겁니다. 지금 약을 대여섯개를 쓰는건데, 팔로 주입하게 되면 주사가 못 버텨요. 굵은 혈관에 여기에 이렇게 주입을 할건데… 뭐 감염이나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구요. 그런데 이거는 뭐 소독을 하고 하니까 문제가 없는데, 폐가 정상 상태가 아니신 분들은 폐가 이렇게 부풀어 오릅니다. 이 시술 과정이나 그 이후에 폐에 기흉이 생길 수 있고, 뭐 그럴 때는…"
"아버지가 원래 기흉도 있으신데"
"아뇨아뇨, 그런 기흉의 문제가 아니라… 여튼, 여기에 기흉이 생기게 되면 나중에 구멍을 내서 바람을 빼내야 할 수도 있구요. 여기 아드님이 싸인 부탁드립니다"
대략적인 설명을 듣기는 했다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의사가 하자면 해야지. 싸인을 하고, 의사는 동의서를 간호사에게 넘기고 간단히 목례 후에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간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그저 의사에게 머리를 굽신 숙인다. 일주일 전 쯤, 아버지와 싸운 것이 후회가 된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아버지한테 심한 막말까지 퍼부었는데. 중환자실 앞에서 그저 멍하니 벽을 바라본다. 또 눈물을 줄줄 흘리는 어머니에게 독하게 말했다.
"다 팔자야 팔자. 살 사람은 다 살고 죽을 사람 죽는거고"
사실은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저 허망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회사에 연락했다. 전화를 마치고 오자 엄마는 옆에서 중얼거린다.
"아빠가 벌써 가기에는 나이가 아깝잖아. 좋은 것도 못 먹고, 누려보지도 못하고"
"아빠가 못 먹긴 뭘 못 먹어. 수시로 고기반찬 올라오는데"
나는 억지로 엄마에게 눙을 치지만 엄마는 "그래도 남들처럼 어디 여행이라도 다같이 다니지도 못하고, 평생을 고생고생만 하다가 병원에서 이렇게 갈 생각하니까…" 하고 또 눈가를 닦는다.
몇 번의 위기를 오뚜기처럼 넘긴 아버지다. 뇌출혈은 이겨냈고, 폐 기능 저하와도 오래 싸워왔다. '보험 있잖아'라고 되뇌이지만, 며칠 전 아버지가 "당장 돈이 없어서 보험도 다 줄줄히 해약하고 있는 판이야"라고 했던 말이 섬뜩하다.
매번, 그래도 어떻게는 가족의 부담을 안 지웠던 양반이다. 자신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마치 예견이라도 했던 모양으로 딱 뇌출혈 오지 2년 전 즈음에 보험을 마구 가입해서 버텨내더니, 폐가 망가졌을 때도 어디서 또 결핵균은 감염되어서 900만원 넘게 나온 병원비를 나랏 돈으로 거진 다 막아냈다. 이번은 어찌될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지금 이거 하시게 되면, 몸에 혈전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래서 다리에 마사지 기계를 끼우실 건데, 이게 처음에 10만원이고 매일 만원씩 이용료를 지불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퇴원하실 때 집에 가져가시는 건 아니구요…" 라며 영업인지 치료인지 모를 안내를 하며 인턴이 내민 차트에 그러라고 싸인을 한다.
3천을 향해 달려가는 내 빚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싸우고 있는 것은 아버지 뿐만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게 나도 싸워왔다. 대법원 상고 결과가 나왔다.
'상고를 기각한다'
세 번의 싸움. 나는 패배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그건 다른 문제다. 아버지의 싸움이 더 중요하다. "퇴원하면, 집에 니 색시될 사람 데려와" 소리했던 것이 생각난다. 마음이 안 좋다. 그렇다고 엄마 앞에서 울 수는 없다. 가벼운 콧김을 뿜어내며 시계를 본다.
"지금 여기 중환자실 이거도 다 산재 처리가 되나? 저번에도 이미 한번 그래놓은거라서"
엄마는 병원비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안된다면 뭐 노무사 끼고 싸워봐야지"
나는 법으로 이미 세 번이나 진 놈이 또 법 타령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이 아득하다. 나는 항상 너무 심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다. 이게 다 꿈이길 빌면서. 실제로 많은 경우 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모든 것이 다 현실이다. 그래서 하루에 몇 번이나 그 짓을 한다. 꿈이길 빌면서.
"엄마 밥 먹고 와"
"됐어"
"아침 점심 다 굶었잖아. 먹고 와. 엄마까지 쓰러지면 또 쌍으로 모셔야 돼. 나 귀찮게 하지 말고 먹고 와"
"너 먹고 와"
결국 둘 다 안 먹고 멍하니 병원 벽만 바라본다. 침묵 속에서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한다. 대답 대신 "졸립다"라는 말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저녁 면회 시간에 영감의 얼굴을 보고 병원을 돌아나왔다. 엄마는 순대국을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맛없어 보이는 가게라서 걸렀다. 그래놓고 고른 것이 김밥천국 라면에 김밥이다.
집으로 와 눕는다. 아버지는 자신의 수명과 싸우고 있다. 불꺼진 안방에 누워 엄마도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 역시 불 꺼진 내 방에서도 모든 것이 다 뒤틀리고 있다.
그저 부디 새벽 시간 전화기가 울리지 않기 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