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여기 삼겹살 2인분 추가요~"
보은과 지연은 쭈꾸미 삼겹살을 애시당초 3인분을 시켰지만 양이 부족했던지 거기에 삼겹살
2인분을 더 추가했다. 얼큰한 쭈꾸미와 맛난 삼겹살이 입 속에서 어우러져 기가 막힌 맛의 하
모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거 김치 좀 잡아줘"
하지만 월요일 저녁에 지글지글 스트레스 풀어가며 먹는 쭈삼의 기막힌 맛보다도, 둘이 밥
먹는 모습이 훨씬 더 볼만하다. 양념 듬뿍 매콤한 쭈꾸미를 턱 하니 집어 상추에다 밥 올려
그 위에 삼겹살 얹고 마늘 얹어 왕~ 한 입 턱 쌈싸먹으면 어허, 세상에 시름 다 잊을 수 있다.
거기에 입 안 얼얼한 매운 맛 미역국 한 숟갈 떠먹어 달래고 다시 떡 쭈꾸미 집어먹고 삼겹살
뒤집고 겉절이 김치 집어 아삭아삭 베물어 먹고 밥 한 숟갈 떡 큼지막허니 떠서 또 왕! 먹고…
덩치 산만한 두 젊은 처자가 정신없이 맛나게 먹으니 이거 또한 볼거리다.
옆에서 커플들이 조잘대며 애교 부려가며 먹든말든, 오른쪽 테이블에서 담배 태우는 아저씨
둘이 "잘 먹는구만" 하고 중얼대는 소리가 들리든 말든 일단 모른 척 최선을 다해 쭈삼을 착착
맛나게 비워가니 식도락가로서 이 정도 경지에 올랐으면 반은 득도한 셈이다.
"우리 밥 볶아 먹을까?"
"당삼이지!"
기분이 좋았던지 보은이 참 올드한 어휘로 맞장구까지 치고, 신난 지연도 "이모~ 여기 밥 2개
볶아주세요!" 하고 아줌마를 부른다. 아줌마는 "네~" 하고 대답하고 큼지막한 사발에 밥덩이
이만큼에 상추 당근 야채 계란 얹어 볶음밥 재료 들고 와, 쭈삼 국물과 건더기 이만큼 건져낸
다음 그 위 불판에 볶음밥꺼리 얹어 눌러 펴 지글지글 볶는다.
"맛있게 드세요. 어휴 아가씨 둘 잘 먹네~"
각각 88kg, 94kg의 두 거구 아가씨에게 아차하면 실례될 말일지도 모르지만 보은 지연은 별로
그런 말에 기분 나빠 하지도 않고 웃으며 받는다.
"아 이모 여기 진짜 쭈꾸미 제대로 맛있네요"
아줌마는 "그럼요, 재료도 다 좋은거 쓰는데요" 하고 대답하곤 저기 소주 한 병 달라는 테이블
로 또 부리나케 다가간다. 지글지글 눌러익어가는 불판을 바라보던 지연이 말했다.
"그런데 레이버에서는 뭐래?"
그 물음에 보은은 대답을 망설이다 한 숟가락 떠 입에 넣고는 말한다.
"작화나 스토리, 평점 다 나쁘지 않대. 맘에 든대. 그런데 연재 주기에 대해 조금 걱정이 된다고
하더라고. 연재 만화는 다 마찬가지지만 특히 웹툰은 펑크 나면 난리나는건데, 인기작가라면 또
몰라도 신인작가같은 경우에는 펑크나면 난리나는건데 마감기한 잘 지킬 수 있냐 이거지"
지연은 그게 뭐 문제냐는 식으로 물었다.
"아니 그거야 당연하지. 세상에 마감에 안 쫒기는 만화가가 어딨어"
하지만 보은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내 만화 올리거 보면 다 주기가 불규칙하잖아. 연재주기도 막 2주 3주 들쭉날쭉하고.
솔직히 매주 연재라는거 좀 두렵기까지 해. 내 생활이 완전 없어질 거 같아. 그렇게 해서라도
과연 할 수 있긴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지연은 "세상에…!" 하고 탄식하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서 안 한다고 그랬어? 그건 아니지?!"
보은은 또 고개를 저었다.
"그쪽에서도 내가 좀 못 미더웠나봐. 연재주기도 들쭉날쭉이고 그렇다고 지금 비축분이 막
백 단위로 쌓이고 이런 것도 아니니깐. 애시당초 지금 이렇게 제의 드리는 것도 굉장히 파격
적인 케이스라고 하더라. 하긴 2~3년씩 계속해도 안 되는 애들도 있는걸 뭐. 여튼 그러더니
그럼 일단 시범적으로, 한 3개월이나 6개월간 꾸준히 연재하는거 보고, 그때 다시 결정하자고
하더라고"
지연은 발을 굴렀다.
"야, 그러다 다른 애들이 추천받아서 정식 연재 시작하면? 그럼 넌 6개월 죽도록 고생하고
아무 것도 안될 수도 있는거야. 걔들이 도장을 찍어줬어 계약서를 쓰기를 했어!"
자꾸 지연이 성을 내자 조금 속이 상했는지 보은도 이번에는 다소 퉁명스러운 말로 대답했다.
"그래서 그냥 안한다고 했어"
지연은 "뭐?" 하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보은도 갑자기 입맛을 잃었다는 듯 숟가락을 내려놓
았다.
"어차피 지금 이대로, 꾸준히 회지 내서 파는 걸로도 생활에는 큰 지장 없는데, 뭐 얼마나 더
벌자고 그렇게 주간 연재 시작해서 내 생활 뺏기고 그러는 것도 싫고. 그냥 그래서 안한다고
했어. 담당자 새끼도 삐져서 그냥 알았다고 하더라."
지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너 지금 생활이 만족스러워? 하루종일 내내 게으름 피워가며 간신히 한두달에 한 편씩 회지
내서 한달에 겨우 돈 백이나 벌까말까한 그걸로, 밤에는 또 편의점 알바해가면서 이렇게 사
는게 넌 만족스러워? 야 우리 나이 서른이야.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수 있는데. 겨우겨우 운 좋
게 포털에 웹툰 작가 제의가 들어왔는데… 너 정말 이렇게 사는게 좋아?"
지연의 말에 보은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불판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도 좋지야 않지. 근데… 못하는걸 어떡하라구. 그래, 지금 우리 사는게 풍족하지는 않아.
간신히 월세나 내고 살고 돈 한푼 저축 못하고 남자라고는 사귀어 본 적도 없고 결혼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근데 난 이 생활 말고 뭐 다른 일 하라면 못할 거 같애. 막 규칙적이고 짜여진 생활로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혀. 아까 낮에도 정말 그렇게 막 마감에 쫒기며 살 생각하니까
막 상상만 했는데도 숨이…"
"야! 이보은!"
지연은 문득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톤이 높았다는 것을 알곤 다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너 처음에 나랑 같이 자취 시작하면서 뭐라고 그랬어? 같이 성공해서 멋있게 살자고 그런
거 기억 나 안 나? 나 정말 너 말 믿고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같이 만화 시작한 거야.
그래 비정규직에 연봉 1600 받고 일하던 그지 같은 회사지만, 그래도 회사는 회사야. 꼬박
꼬박 월급 나오고 또 경력 쌓아서 다른데 가서 더 받으면 돼. 근데 지금 우리 상황 좀 봐.
두 달에 한번씩, 꼴랑 일주일 제대로 밤새가며 회지 만들어서 팔고, 밤낮 교대로 너랑 나랑
돌아가며 편의점 알바 뛰고 그러면서 돈 한푼 저축 못하고 겨우겨우 먹고 살고 있잖아."
지연은 문득 설움이 복받치는지 휴지를 뜯어 눈가를 닦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넌 모르겠는데, 난 이대로 살고 싶지 않아. 지금은 이렇게 거지같이 살아도, 제대로 된
커리어 만들어서, 또 대박도 나면 좋겠지만… 최소한 남들만큼은 살고 싶어. 웹툰 연재
시작해서 꼬박꼬박 최소한 한달에 돈 1~200이라도 들어오고, 또 그렇게 유명세 얻고
그러면, 경력으로 뭐 다른 일거리라도 같이 하면서 제대로 돈 벌고 싶다고. 넌 근데, 나랑
협의 한마디 안 해보고 그런 자리가서 니 멋대로 안 한다 못 한다 결정지어 버린거야."
그러더니 지연은 자리에서 코트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일어났다.
"나 이제 너랑 같이 일 못 해. 나 이제 내 살 길 알아서 찾을거야. 너도 알아서 해. 이번
주말에 짐싸 나갈거야. 너도 다른 어시 구하던지 뭐 어쩌던지 해"
보은은 당황하며 "지, 지연아" 하고 그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성큼성큼 카운터를 향해
가더니 그대로 현찰로 결제하고 바로 나가버렸다. 보은은 그녀를 따라 일어서려다가
자신의 둔중한 허벅지가 테이블과 의자에 끼어 테이블을 엎을 뻔 하고는 다시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옆 자리의 아저씨 둘이 킥킥대어 짜증이 치솟았지만
그보다 지연이 더 중요했다.
<< 계속 >>
[ 뚱녀 블루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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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녀 블루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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