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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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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떨던 그 소년을 우리 집에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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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왔어요?"

나의 말에 "거, 거의 다 왔어요. 보, 봉천역 근처에요" 하고 버벅이며 대답한 그. 나는 슬슬 큰 길가로
나가 추위에 떨며 그를 기다렸다. 날씨가 차다. 이런 날씨에 몇 시간을 떨었을 그 소년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시리다.

이윽고 택시 한 대가 뻘쭘하게 근처에서 선다. 놈이 탄 택시 같다. 나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지불하고 "춥죠? 어휴, 손이 꽁꽁 얼었네" 하며 그를 바로 근처의 신선 설농탕으로 데러간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벌써 얼굴이 환해진다.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귀염상이다.

아마 좋은 집에서 태어났다면 은근히 주변에 여자 좀 있었을 관상이다. 빤히 얼굴을 들여다보자 민망
한지 "스타일박스 님은 안 드세요?" 하고 묻지만 "전 먹었어요" 하고 대답한다.

나이를 묻고 "그럼 이제 나, 말 놓을께요?" 하고 조금 편하게 대한다. 한 그릇 다 멕이고 집에 집으로
데려와 우선 씻긴다. 곧 물소리가 들리고, 나는 "가방 좀 뒤질께요. 뭐 있나보게" 하고 대놓고 가방을
뒤진다. 뭐 들은 것도 없다. 땡전 한 푼 없는 지갑이랑 양말 두 켤레, 티 한 벌이 전부다.

'초딩이 가출해도 이거보단 잘 챙겼겠네' 싶은 마음에 혀를 차고는 일단 물을 올린다. 오뎅탕을 끓일
작정이다. 식빵이랑 크림 치즈도 꺼내놓는다.

다 씻고 나오자, 나는 츄리닝 바지랑 티를 던져준다. "입어. 내 여친이 사준거야. 디자인 존나 웃기지?
ㅋㅋ 근데 저거 비싼 티야. 나는 한번도 안 입었지만"

아직 방이 어색한지 엉거주춤 주변을 둘러보는 그에게 "방이 엉망이지? 그러게 씨발 진작 온다고 했음
내가 정리라도 좀 해놓지 임마. 아까 전화를 그렇게 할 때는 받지도 않더만" 하고 퉁을 놓고는 다 끓은
오뎅탕 한 접시를 가져온다.


오뎅탕을 멕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참 깝깝한 상황이다. 세상은 씨발 참 불공평하다.

여튼 나는 그를 달래고 뉘인다. "벌써 1시네. 나도 내일 일찍 나가야하니까 자자. 침대에서 자. 난 바닥
에서 잘께"

피곤했던지, 불 끄고 침대에 누운지 얼마 안 돼 그는 잠에 빠졌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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