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이라는, 일본 인터넷에서 유래한 신조어/은어가 있다. 아니 신조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벌써 15년 전쯤에 유행했던 말이다. 지금도 쓰이기야 쓰인다만.
그 뜻이야 다들 알다시피…'사춘기 시절 겪기 쉬운 자의식 과잉에 의한 손발 오그라드는 행동/사고방식의 부끄러운 흑역사에 대한 자조적인 비웃음' 정도로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중학교 2학년이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오버된 자아가 얄팍한 지식이나 허세에 빠져 벌이는 유치한 행동 전반에 대해서 중2병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뭐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 중2병 : 암흑황제
> 중학교 2학년 때, 만화나 게임 속의 사악한 힘을 동경한 나머지 난 스스로를, 천계를 배신하고 타락하여
> 다시 태어난 암흑황제라고 자칭하고 있었다.
>
> 평소부터 반에서「나의 암흑력을 발동시키면, 우리 반의 인간들 따위는 한순간에 몰살시킬 수 있어」따위의
> 발언을 지껄여댔기 때문에, 당연히 격렬한 집단 괴롭힘과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 탓에 학교 생활이 너무나
> 괴로워져서 일단 자신의 설정을「암흑력을 사용해, 어두운 마의 힘으로부터 세상사람들 모두를 지킨다」로
> 변경했지만 주위의 대응에는 변화가 없었다.
>
> 화가 치민 나는 기말고사 도중 대뜸 힘차게 일어나서, 상냥한 미소를 띄우면서「모두…괜찮아…나는, 나는
> 아직 싸울 수 있어」라고 선언한 후 창가로 갑자기 달려가서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는「나의 이름은 암흑황!
> 반드시 모두를 지켜낸다! 반드시!!」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
>
> 후...13년이 지난 지금, 그때 일을 생각하면 죽고 싶은 마음만 들고, 지금도 고향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 세일러 문의 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대뜸 갑자기 꺼내보이곤「이게 나의 영원의 연인」이라고 말하고 다닌
> 것도 심각한 데미지 중 하나다
> 다시 태어난 암흑황제라고 자칭하고 있었다.
>
> 평소부터 반에서「나의 암흑력을 발동시키면, 우리 반의 인간들 따위는 한순간에 몰살시킬 수 있어」따위의
> 발언을 지껄여댔기 때문에, 당연히 격렬한 집단 괴롭힘과 무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 탓에 학교 생활이 너무나
> 괴로워져서 일단 자신의 설정을「암흑력을 사용해, 어두운 마의 힘으로부터 세상사람들 모두를 지킨다」로
> 변경했지만 주위의 대응에는 변화가 없었다.
>
> 화가 치민 나는 기말고사 도중 대뜸 힘차게 일어나서, 상냥한 미소를 띄우면서「모두…괜찮아…나는, 나는
> 아직 싸울 수 있어」라고 선언한 후 창가로 갑자기 달려가서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는「나의 이름은 암흑황!
> 반드시 모두를 지켜낸다! 반드시!!」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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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13년이 지난 지금, 그때 일을 생각하면 죽고 싶은 마음만 들고, 지금도 고향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 세일러 문의 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대뜸 갑자기 꺼내보이곤「이게 나의 영원의 연인」이라고 말하고 다닌
> 것도 심각한 데미지 중 하나다
2. 중2병 : 해커
> 고등학교 때, 나는 나 자신이 천재적인 해커로 모두에게 보여지길 바랬다.
>
> 차가운 눈초리와 지적인 캐릭터의 상징 안경, 칠흑의 머리카락. 나는 완벽한 쿨 캐릭터였다(순전히 망상).
> 쉬는 시간이면 항상 교실 구석의 콘센트에는 충전기를 꼽고, 휴대폰을 재빨리 미친듯이 눌러대며
>
>「젠장! 펜타곤은 뭘 생각하고 있는거야! 전쟁이라도 시작할 생각인가!」
>
>「아니 이건…엄청나다…정부에 이 사실을 보고해야하나…아니, 침착하자. 일단은 이걸 뚫고 잠입, 정보를
> 얻고 난 이후가 좋겠군…」
>
> 하고 큰 소리로 혼잣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즉, 휴대폰으로 해킹하는 척을 했다. 당연히 주위녀석들은 나를
> 완전히 미친 놈 보듯 무시했지만, 난 위험한 느낌이 감도는 남자에게 여자애들이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 속으로 생각했다. 이를테면「OO(내 이름)은 왠지 조금 무섭지만 쿨하고 멋있어!」하고 말이다.
>
> 물론 당연히 그럴 리 없지. 단순히 재수없는 안경멸치였을 뿐인데. 근데 그나저나 펜타곤은 뭐하는 곳이야?
>
> 차가운 눈초리와 지적인 캐릭터의 상징 안경, 칠흑의 머리카락. 나는 완벽한 쿨 캐릭터였다(순전히 망상).
> 쉬는 시간이면 항상 교실 구석의 콘센트에는 충전기를 꼽고, 휴대폰을 재빨리 미친듯이 눌러대며
>
>「젠장! 펜타곤은 뭘 생각하고 있는거야! 전쟁이라도 시작할 생각인가!」
>
>「아니 이건…엄청나다…정부에 이 사실을 보고해야하나…아니, 침착하자. 일단은 이걸 뚫고 잠입, 정보를
> 얻고 난 이후가 좋겠군…」
>
> 하고 큰 소리로 혼잣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즉, 휴대폰으로 해킹하는 척을 했다. 당연히 주위녀석들은 나를
> 완전히 미친 놈 보듯 무시했지만, 난 위험한 느낌이 감도는 남자에게 여자애들이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 속으로 생각했다. 이를테면「OO(내 이름)은 왠지 조금 무섭지만 쿨하고 멋있어!」하고 말이다.
>
> 물론 당연히 그럴 리 없지. 단순히 재수없는 안경멸치였을 뿐인데. 근데 그나저나 펜타곤은 뭐하는 곳이야?
3. 중2병 특징
> · 오토바이 포스터를 방에 붙인다
> · 인사 대신 펀치
> ·「샐러리맨만큼은 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한다
> · 인기 있는 밴드를「난 쟤들 인기 있기 전부터 좋아했어」라고 우긴다
> ·「인수분해가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냐구」
> ·「어른은 더럽다」
> · 엄마가 뭐라고 말을 하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악을 쓰듯「알았어!!」라고 외치곤 듣지 않는다.
> · 자신의 진짜 친구 찾기를 시작한다
> · 뭐든지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 엄마에 대해서 이유없이 분노를 터뜨리며「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줘」라고 말한다.
> · 담배도 피우지 않으면서 지포 라이터를 갖고 다닌다.
> · 슬슬 역사를 배우게 되면「미국은 더러워」하고 갑자기 말하기 시작한다.
> · 노래도 만들 수 없는 주제에 작사
> · 뭐든지 좋은 평가를 내려주는 일이 없다. 특히 프로에 대해서는.
> ·「나는 나일뿐, 다른 누군가가 아니다」라고 떠들고 다닌다.
> · 담배를 야니(ヤニ)라고 부른다 (역주: 내 사춘기 시절에 담배를 '야리'라고들 불렀는데, 이 영향이었나)
> ·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환타지에 빠져서 게임 프로그래머를 목표로 하지만,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 그 후속편에 약간의 이벤트를 덧붙이거나 스토리, 아이템 뿐.
> · 야동을 갖고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 ·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지만, 즉시 절망.
> · 엄마가「어디 가는 거야?」라고 물으면,「밖에」하고 대답한다.
> · 목검을 갖고 싶어한다.
(정보출처 : 전파만세 http://newkoman.mireene.com/tt )
…위의 1,2 예들은 조금 극단적인 예이지만, 어쨌거나 곰곰히 자신의 사춘기 시절을 뒤돌아 보았을 때 저런 식으로 자의식 과잉 때문에 저지른 손발 오그라들고 부끄러운 추억이 떠오른다면 그게 바로 중2병을 앓았던 흔적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10년도 전에 유행했던 퇴물 신조어가 뜬금없이 한국 사회/교육계에서 유행하는 것 같다. 그것도 의미가 살짝 이상해진 형태로.
> [이슈] ‘중2병’ 앓는 교실…멍드는 교사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중2병을 앓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정말로 멍들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중2병 때문에 교사들이 멍든다는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기사를 읽다보니 어째 좀 뉘앙스가 이상하게 읽힌다.
단어만 같을 뿐, 아예 다른 의미로 뜻이 사용되는건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분명히 본문에서 일본에서 유래한 신조어라고 밝히고 있으며 딱히 그것이 실제 질병이나 그런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어째 전반적으로 중2병을 대하는 뉘앙스는 사춘기 청소년에 대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름이 아니다.
> "이재정 경기교육감 명예교사 첫 수업 "중2병 느낄수 있었다"
여기서는 아예 중2병이 '사춘기 청소년들의 고민' 그 자체로 의미가 변형/확장되어 있다.
네이버 캐스트에 소개된 이 '중2병이 뭐길래'라는 특강에서도 마찬가지로 중2병을 사춘기 그 자체로 확장해서 사용하고 있다.
> 김창완 “중2병? 어른들이 입맛에 맞지 않아 붙인 것” 일침(스케치북)
>
> 가수 김창완은 "중2병이라는 말도 어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학생들에게 병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여놓은
> 것"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저 위의 예시를 본 후의 입장에서는 듣자마자 "아닌데요!" 라고 반박하고 싶어질 정도의 말이 아닌가.
> [책]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 '중2병의 비밀'
책도 나왔다.
> 네이버 지식백과 - 트랜드 지식사전 : 중2병
여기서는 그나마 '원래의 의미'를 그럭저럭 설명하기는 했다만 결국에는 또 그 방향성과 의미를 '사춘기 청소년의 고민' 전반으로 확대해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죽 읽어내려가노라면 '철없던 시절 저지른 유치한 행동에 대한 자조적, 자학적인 개그/비웃음'의 의미가 더 강한 원래의 중2병 단어가, 적어도 한국의 대중사회에서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고민' 전반으로 확장해서 사용되고 있음이 보인다.
물론 단어의 뜻이라는건 언제든지 확장/축소되거나 바뀔 수 있는 것이고,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하듯이 일본의 인터넷 신조어라고 해도 한국에서는 전혀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어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생긴지 15년 가까운 오래된 단어이고(1999년 일본 라디오 방송에서 탄생),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서도 꽤 널리 퍼진 용어이며 애초에 '사춘기 청소년들의 고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부정적인 뉘앙스도 없잖아 있는 단어인데 엉뚱한 개념정립을 해서 사용하는 것에는(그것도 아예 다르면 차라리 혼동의 여지라도 없지, 이렇게 은근슬쩍 의미를 확장해서 사용하는 것은 더더욱)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정치인 이회창도 과거 한때 '빠순이'라는 단어를 엉뚱한 의미로 사용했다가 곤욕을 치르지 않았던가.
애초에 이런 은어를 교육감이나 교육자들이 굳이 입에 올려가면서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만큼 청소년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함일텐데 말이다. 기왕 사용한다면 그 뜻이 인터넷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정확히 알고 접근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 접근방향을 보면서 더욱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던 것은, '중2병'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 뜻을 들었을 때 '그것을 자신의 과거에 비추어 공감하며 부끄러워하면서도 민망함에 웃고야 마는' 내재적 관점이 아닌, '타자화 시키고 그것을 일종의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며 고치고 선도해야 할' 외재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부분이다.
이 나라 청소년 문제 거의 전부가, 진정으로 그 문제를 함께 쓰고 배우고 공감하며 해결하는 대신, 어설프게 주워들은 한두가지를 제멋대로 해석해서 엉성한 프레임으로 외부에서 황당한 방향으로 엉뚱한 접근을 하는 통에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만 시키고 해결은 요원한 길로 접어들게 되지 않던가.
'중2병'이라는 흔한 인터넷 용어 하나의 뜻도 제대로 캐치 못해서 엉뚱하게 사용하는 이들이, 복잡하고 난해한 청소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정말이지 요만큼도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