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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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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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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도, 뱀 대가리가 용 꼬랑지보단 낫다 안 카나? 으잉? 그러니까네, 여가서 니 열심히 하믄 그게 남는 기라. 거 뭐 또 니 성적이면 여서 장학금도 나온다고 안 카나? 봐라 임마, 니 부모님도 등록금 댄다고 고생고생 할 필요도 없이…"
"저희 아버지 회사에서 대학교 학자금 지원되는데요"
"니 아부지가 뭐 니 군대 다녀오고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학실히 그 회사 다닌다는 보장 있나? 사람 앞일 모르는기라. 아엠에프 겪고도 모르나"

선생님은 계속해서 '학과'를 강조했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암만 해도 인서울 잡과가 지잡대 법대보다 낫다 생각했지만, 그의 지론은 이거였다. 

"법대 나오믄 임마, 하다하다 안되믄 공뭔 시험봐도 되는기고, 행정고시를 공부해도 남보다 유리하고, 어디 가도 법대 간판 달면… 마, 사법고시, 판사, 변호사, 검사, 뭐, 노무사, 변리사, 사짜 직업은 의사 교사 빼고 다 먹고 가는기라. 우리 생활에 법 필요 없는 곳 있나? 하 짜슥 답답허네"

선생님은 답답하다는 듯 담배를 꺼내무셨고, 그래도 못내 아쉬운 나는 "그래도 가군 부터 지방대 쓰는건…" 하고 한번 더 뻗대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발칵 화를 내며 책상을 쿵쿵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거 짜슥 말귀가 어두운기가? 아이면 머 어데가서 니도 상담 받아온거 있나?"

고3 입시반만 17년을 맡았다고 자부하는 그는, 요즘 유행하는 입시 전문 학원 상담에 대해 열등감이라고 해야할지, 기묘한 경쟁의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난 학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닙니다. 일단 부모님이랑 이야기하고 오겠습니다"
"알았다. 가봐라"

뒤로 선생님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욱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망친 수능성적에 대한 짜증이 몇 곱절은 더 컸다. 








스카이







이틀간 적어도 내가 아는 모든 '대학 입시에 상담할 만한 사람'들에 대해서 연락을 해보았다. 딱 두 명 빼고. 명지대 다니는 큰 집 형욱이 형과 현역 고교 교사인 작은 아버지 말이다. 어릴 때부터 그저 무슨 서연고 이하는 대학 취급도 안 하며 내 자랑을 그렇게 입에 달고 사시던 아버지였기에, 나는 지금의 '인서울 잡과를 가야할지, 지방대 법대를 가야할지' 같은 고민을 차마 그들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후우…"

물론 엊그제 작은 엄마의 전화가 왔지만, 오랜 보험 아줌마 경력으로 쌓은 엄마의 '이야기를 요리 돌리고 조리 돌리며 핵심 질문은 피해가는' 스킬  덕분에 작은 엄마는 결국 내 성적에 대한 궁금증을 풀지 못했다. 하지만 바보천치가 아닌 다음에야, 평소 같으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자랑을 해도 모자랄 내외가 입 싹 닫고 있는 모습에 내 수능성적을 짐작하기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리라.

"음, 내 생각에는… 니 적성이 제일 중요할 것 같기는 해. 근데 법대도 별로고, 니가 가고 싶어하는 대학의 과도 별로 좋아하는 과는 아니라며?"

전화를 할까말까 1시간 넘게 고민하다가 한 편의점 알바동지 은지 누나는 그나마 제일 쓸만한 상담을 해주었다. 

"네. 그래서 지금 엄청나게 고민이에요. 그래도 사람이 인서울하고 지방하고는, 나중에 취업할 때도 그렇고, 어디 간판 내걸기도 그렇고…"
"음, 그런 것도 있긴 하지"

아니, 별로 도움은 안 되었다 사실. 그냥 그래 그래 맞장구만 쳐주는 정도였으니까. 그 다음으로 도움이 된 것은 중학교 동창 윤식이였다.

"야 씨발 닥치고 인서울이지. 지방대? 좆까라고 해. 너 씨발 내 엄창 찍고 우리 형… 아 그 병신 쓰레기 사는거 보면 모르냐? 지잡대 4년에 몇 천만원 주고 나올 바에야 그냥 그 돈으로 끽동 가서 창녀들이랑 뽕빨나게 좆뿌리 닳도록 떡치다가 딱 150만원 남겨서 낙원상가 중고 깁슨 들고 땅따라따라 뚯드르드르…"

아 미친 새끼.

"야 미친 새끼 개소리 그만하고. 넌 씨발 그래서 어디 쓸건데?"
"나? 나 수능 안 봤는데"
"아 병신. 끊는다"
"미친 새끼"

그러나 내가 그의 미친 소리에 귀를 기울인건 그의 형 준식이 형 때문이다. 윤식이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그 형은 그래도 일찍부터 담배-염색-리니지 테크를 탄 윤식이과와는 달리 나름 모범생이었다. 윤식이 말로는 솔직히 공부를 그렇게 썩 잘하진 않았지만 학교도 참 착실하게 다니고 책도 좋아하고. 하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 탓에 4년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서울권 좋은 대학을 포기하고 지방대로 갔지만, 그 이후로 어찌된 일인지 현재까지 취업을 안 하고 있단다. 못하는건지 안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알았다. 근데 니, 그러다 다 미끄러져도 내는 책임 안 진다. 알았나?"
"예"

나는 결국 내가 고집한 대로 가 군은 '인서울 잡과'를 지망했다. 그 대가로 선생님한테 한 시간 가까운 설교를 들었고, 나,다 군에 '내 성적이 아까울 정도의 지잡대 잡과'를 안전빵으로 집어넣게 되었다. 솔직히 난 가 군에선 떨어질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선생님도 어디까지나 '법대'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고집과 장학금 때문에 나에게 가군 지방대를 권유한 것이지 내가 떨어질 우려 때문에 그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운명은 결정적인 순간에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전반적으로 높았던 수능 난이도 탓에 하향지원이 강세였고, 거기에 우후죽순 늘어난 막장 지방대의 폐혜를 언니 오빠 형 친구를 통해 보고 들은 '지잡 손윗형제를 둔 동생들' 덕분에 나같은 '인서울 턱걸이 족'들은 사상 최악의 경쟁율을 겪고 말았다. 그러나 뜻밖에 담임 선생님은 의외로 표정이 그리 어둡지 않았다. 

"이 자슥아 이 자슥아…에헤이 참. 마 개안타. 그래도 여는 스울에서 한 시간 반이면 간단다. 학교 버스도 댕기고, 학교 재단이 빵빵해서 니 원하믄 거 해외대학으로 교환학생도 마이 가고, 뭐 그런단다. 여 써라 그냥"

솔직히 말해서 그제서야 왜 나, 다군 입시 전형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왜 저 '지방대 제조기', '지잡 마니아'의 말을 듣고 내 소중한 기회 두 개를 마구잡이로 써버렸을까 하는 후회가 몰려왔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나중에 어디서 주워듣기로 그가 매년 그 '나, 다 군'에 보내는 학생들의 대한 리베이트비로 준중형 세단 반 대 분 돈을 받는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그 소리를 듣고 멘붕하기엔 이미 내 멘탈은 훨씬 전에 붕괴한 상태였다. 




"아아, 우리 대학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아 저기 뒤에! 똑바로 서세요"

재수만큼은 절대로 하기 싫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알았으니까. 재수를 한다고 성적이 올라갈 리 없었다. 공부는 포기한지 오래, 허구헌 날 게임 아니면 인터넷이나 하던 내가 재수한다고 공부를? 오히려 그나마 올해의 수능성적 유지도 불가능할게 뻔했다. 

"아 좆같네. 이것도 대학이라고, 돌대가리 개똥통대 시팔"

내 앞에 선 누군가의 말에 나는 진심으로 공감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공연히 산 허리 잘라내어 뚝딱뚝딱 공고 건물 같은 강의동몇 채 올리고 등록금 받은 돈으로 또 뚝딱뚝딱 건물 몇 채 더 올리고 의욕 없는 대학교수들과 총장 핏줄로 교내 조직 채우고 학교 주변 편의시설이라고는 그나마 한솥 도시락과 PC방 몇 개, 인쇄 복사집, 이 학교 졸업생 출신들이 운영하는 바가지 요금 호프집 몇 개가 전부인 이딴 학교에서 내 청운의 포부를 펴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 큰 이모를 불교로 전향시키는 것보다 어려우리라 싶었다.

"후우…"

무엇보다 서있는 새끼들 중에 멀쩡해보이는 새끼가 몇 없었다. 공고 입학식이라고 해도 이거보단 좀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껄렁해보이는 놈들도 꽤 있었고, 여기가 무슨 뮤 온라인 현실판인지 대가리 색깔은 총천연색이었다. 검은 색 머리카락은 50%가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런 만큼 사내 놈들이나 계집애들이나 죄다 꽤나 잘 놀게 생긴 애들 뿐이라 솔직히 겁부터 들었다. 더 웃긴건 해병대 군복 입고 저벅저벅 소리내며 도열해 있는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군기 잡는 놈들이었다. 저 놈들은 선배일까 아니면 이 학교의 뭐시기일까. 

"저기요, 근데 상경계열 여기 서는거 맞나요"

그때 누군가 내 뒤를 톡톡 두드렸다.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듯 했고 체구도 무슨 씨름선수만했지만 그의 얼굴과 분위기는그야말로…

오.타.쿠.

거 왜 일본 히키코모리 문제에 관한 다큐나 시사 영상에 자료화면으로 종종 비칠 법한 그런 어둡고 지질맞은 분위기의 그 어떤… 그런 놈이었지만, 적어도 그 놈 뒤에 서있는 깡패 같이 생긴 놈보다는 훨씬 나았다. 

"네, 맞아요"

내가 대답을 하자 그는 안심한 듯 했고, 곧이어 친한 척 말을 걸어왔다.

"근데 여기 분위기 장난 아니지 않아요?"

나만 그렇게 느낀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피식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지잡대 지잡대 하는 말이 왜 나온지 진짜 알 것 같다고. 몇 마디 주고받으며 조금씩 지금 상황에 적응할 무렵, 내 앞에 서있던 마른 체구의 훤칠하고 간지나게 생긴 놈이 뒤돌아 보며 말을 걸었다.

"혹시 라이터 있어요?"

나는 없다고 했고, '오타쿠' 성호도 없다고 했다.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둘은 벌써 친해졌나보네. 난 민주다. 오민주" 

여자 이름답게 이쁘장하게 생긴 것이 여자들이 줄줄 따르게 생겼다. 나도 저렇게 생겼으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우리 셋이 조금 친해진 듯이 보이자 여자 줄에 서있던 애들 몇몇이 이쪽을, 정확히는 민주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듯 했다. 

"얘들아 안녕"

그리고 힐끔힐금 쳐다보는 아이들을 향해 먼저 상쾌한 인사를 건내는 민주를 보며 나는 감탄했다. 저런 거구나, 하고. 여자애들 몇몇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저런거지. 

"장난 아니네"

뒤에서 성호가 중얼거렸고, 나 역시 차마 표현은 안 했지만 민주의 자연스러운 매력끌기 솜씨에 같은 찌질남으로서 매우 감탄했다.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난데없이 나와 성호를 마치 오랜 불알친구라도 되는 양 그녀들에게 추가로 소개했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곧 동기가 될 친구들로서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언젠가 성호는 그 날의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그 날 민주 니가 미라 누나랑 쟤 인사 안 시켰으면 백퍼 학교 관두고 재수했을걸. 내가 처음 말 건 순간 이미 존나 후회하던 얼굴인거야. 나까지 덩달아 관두고 싶더라니까. 근데 니가 딱 미라 누나랑 그때 걔 존나 이뻤던 애 누구지? 그 연기 준비하던 애. 아 윤미, 배윤미 걔네랑 같이 인사시키니까 바로 얼굴 확 밝아지대? 그리고 OT 가서 바로 미라 누나랑 눈 맞아서 사귀기 시작했잖아. 나중에 나 저 새끼 수능 성적 듣고 개뿜었잖아. 난 쟤 미친 줄 알았다니까"


그의 기억과는 별개로, 사실 내가 기억하는 내가 학교를 관두지 않은 이유는 하늘 때문이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무슨 대통령 출마 연설처럼 기나긴 총장님의 아무도 듣지 않는 연설이 끝나고, 몇 단계의 절차가 거행되며 입학식이 어느 정도 무르익을 무렵 본 하늘이 바로 내가 그 똥통대를 관두지 않은 이유였다. 

"와…"

그 높디 높은 하늘, 그 너무나도 화창한 하늘은,  도시에서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하늘이었다. 정말이지 어찌도 그리 드높고 푸르렀는지 암울한 내 기분과 미래에 대한 우려까지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의 청명한 하늘이었다. 그 하늘을 매일처럼 볼 수 있다면, 그리고 방금 전에 발견한 그 하늘에 그려놓고 싶은 얼굴을 매일 볼 수 있는 이상, 산 속의 그 학교를 다니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 '그 스카이'보다 '이 스카이'가 나는 더 좋았다고, 그렇게 나는 담담히 내 성적과 선택에 대한 후회를 애써 변명해 본다. 오늘까지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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