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시작은 참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전에 잠깐 '붉XXX'라는 닉네임으로 휘갈겼던 그야말로 망상의
나래들을 이글루스 서비스에 옮겨놓은 것 뿐이었다. 그리고 기왕 옮긴거 헛소리 좀 해볼까? 생각했다.
원래 계획도 두어달 끄적이다 시원하게 폭파하는게 목적이었다. 그게 조금 길어졌다. 어느새 3년을 훌쩍
넘겼다.
아무 생각없이 마구 휘갈기던 미친 블로그였지만, 꼬리가 길다보니 아는 사람도 늘어나고 이래저래 주변의
시선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더이상 마음껏 개소리들을 쓰기 어려운 곳이 되어버렸다. 눈치를 보고 방어적
으로 글을 쓰고, 글을 써놓고도 공개를 안 하거나 중간에 쓰다 말거나 한 글이 몇 개인지 모른다. 아니 사실
쓰다가 그냥 영 별로라서 관둔 글이 많다. 임시저장된 글이 360개가 넘어간다. 물론 그 중 대부분은 한두줄
쓰다 만 것이지만, 아주 긴 글도 있다.
뒤돌아보면 참 별 이야기를 다했다. 정말 어이없는 개소리부터 내심 속으로 통곡했던 일까지 직간접적으로
이래저래 많이 털어놓았다. 사실 이 블로그를 통해서 꽤 마음의 위안을 많이 받았다. 정말 속이 안 좋을 때
이 블로그에 어떤 식으로던 그런걸 토해놓으면 적어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으니까. 다만 몇 번 그런 글
을 써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망상, 창작의 이야기도 실제 내 이야기인 줄 알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좀
난처하기는 했다.
중간에 책도 한번 냈다.
사실은 당시에 돈이 꽤 급했다. 원래 계획은 제대로 정식유통하는 책을 내는 거였고, 원고도 블로그 글 급히
짜깁기 한 게 아니라 대부분을 제대로 쓴 글로 채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가 없었다.
결국 급하게 블로그 글을 대충 추려서 책을 내게 되었다. 블로그 독자 분을 대상으로 투자도 받았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제의를 주셨다. 그 중에서 총 세 분께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해 손해가 발생했다.
많은 분들이 이래저래 도와주셨음에도 잘 안 됐다. 참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언제부터인가 블로그에 글 쓰는게 허무해지고 재미도 덜해졌다. 막상 그래도 다 써놓고 나면 흐뭇하기도 하
지만 일단 귀찮아졌다.
그래서 접는다. 언젠가 다른 블로그에서, 혹은 뻔뻔스레 이미 몇 번 그랬듯이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능청스레
이 블로그에서 또 무슨 글을 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단은 안녕이다.
아, 가는 마당에 무슨 꼬리가 그리 기나 싶지만 원래 꼬리 달린 짐승이 귀여운 법이다. 쓰다가 만 글 리스트를
몇 페이지 올려본다.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인지 상상하는 것도 나름 재밌지 않은가.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