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처음은 이렇다.
한국대병원에서 입원환자들이 난동을 피워서 지금 아수라장이다, 라는 내용의 사진과 영상이 체이스북을
중심으로 인터넷에서 유포되기 시작한 것. 처음 기사로 보도한 것도 유력 일간지나 통신사들이 아닌 그냥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돌면서 기사받아 쓰는 영세 온라인 뉴스사였다. 어쨌든.
화질도 별로 좋지 않고 많이 흔들리는 통에 얼핏 처음 영상을 플레이 해보면 병원에서 의례 있기 마련인
일부 보호자들의 과잉 행동처럼 보이지만…30초 정도 지난 지점부터 의사 위에 올라탄 마른 남자가 의사
의 목을 조르고 급기야는 목을 물어뜯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다가 갑자기 끝나는 그 영상.
네티즌은 "저게 뭐임?", "무슨 영화 티저 영상 같은거 아냐? 위치어 불릿 같은 거처럼", "존나 무섭네;;;",
"하여간 못 배운 새끼들이 항상 저 지랄. 살려놓으면 병원비 비싸다, 죽으면 살인마네 뭐네 병신들;;;;;",
"영화야?", "조작이네", "네 다음 폭도" 등으로, 반응이 분분했다.
하지만 진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그 영상이 떠돌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대병원에 있던
입원환자나 외래 환자, 병문안을 온 방문객, 의료진 등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병원에 완전
난리가 났다고 울며불며 전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가벼운(?) 쇼킹영상으로 끝난 줄 알았던 것이
이윽고 뉴스 기사화 되어 속보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속보] 한국대병원에서 괴한 난동…환자 및 방문객들에 무차별 폭행
[1보] 한국대병원에서 테러 발생…경찰특공대 출동 중
한국대병원에서 괴질 발생(1보)
[단독] 한국대병원에서 묻지마 살인 발생(1보)
처음에는 누구 하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언론에서도 오보가 빗발쳤다. 테러, 괴한 난동, 괴질
등 여러 추측이 난무하던 가운데, 병원 입구에 폴리스라인이 쳐지고 경찰이 출동한 상황에서 경찰들을
향해서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뛰어들어 목덜미를 물어뜯고 마구잡이 폭행을 하는 미친 사람들의 행동이
당시 현장에 나가있던 방송사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뉴스를 탔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미 지난 몇 년간 영화나 게임 등으로 수도 없이 보고 듣고 겪은 한 단어를 떠올렸다.
살아있는 시체 : 좀비
사실 난 그동안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나 게임, 소설 등을 보면서, 그 작품 속의 사람들이 정말로 무능
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좀비 바이러스가 공기 중 전염이라도 된다면 몰라도, 그게 아닌 이상에야 어찌
경찰력이 총동원되고 군대가 출동해도 그 끄어하면서 걸어다니는 시체 군단 하나 처리 못해서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진단 말인가.
그런데 막상 상황이 닥치고 보니 확실히, 일이 커지기 전에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좀비병에 걸린 미친 놈이 사람을 문다. 그리고 그 좀비에 물린 사람도 10분 만에 또 다른 좀비가 되어
다른 사람을 문다. 그들을 제지하려던 사람도 물리거나 피가 점막에 튀거나 해서 병균에 감염되면 또
좀비가 된다.
영화 속 좀비와는 달리 행동이 그리 느리지도 않고, 오히려 술 취해서 객기 부리는 사람 마냥 시뻘건
얼굴로 괴력을 휘둘러대니 제압하기도 쉽지 않다. 덩치 좋은 사내놈 몇 명만 좀비화 되어도 그 주변은
그래서 금방 쑥대밭이 된다.
게다가 영화에서처럼 쉽게 쏴죽일 수도 없다. 한국에 총이 어딨나 총이. 그렇다고 칼로 사람 목을 딴
다는 것도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지, 자기 가족이 갑자기 미친 놈처럼 폭력 휘두른다고 칼로 그 가족
목을 딴다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아니 무엇보다 좀비라는건 공상 속에나 있는 일 아닌가?
그래, 차라리 사람들이 좀비라는 단어와 그 행동 양태를 아예 몰랐다면 오히려 더 대응이 빨랐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단기간 내에 폭력적으로 미치게 만드는 감염성 괴질이 돌고 있다 라고 순순히 받아들
이기도 쉬웠을테니까. 아마 분명히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가 봐도 공상 속 좀비와 동일한 증상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정보가 전해지는 것을
방해했다. 오죽했으면 경찰조차 당시 접수된 최초 신고를 장난전화로 무시했을까. 제대로 된 정보가
사람들에게 전달된 것은 거의 반 나절이 꼬박 지난 9시 뉴스 직전 정부 공식성명 속보에서였다.
"아울러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비하여 국민 여러분은 가급적 집안에서 머물러 주시고…"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사실 제대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엄마가 진지한 목
소리로 "지금 뉴스 봤는데, 요즘 무슨 바이러스가 돈단다. 그러니까 싸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꼼짝말고
들어가있어"라고 연락을 한다고 해봤자, 독감 걱정하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린 이들은 여전히 이어폰을
들으며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홍대를 향해 전철에 몸을 싣고 있을 따름이었다.
…뭐 그건 좀 심한 케이스고, 여튼 영화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찰들은 좀비의 대가리를 향해 총을 쏘
기는 커녕 어어어 하다 여기저기 물려서 좀비의 희생양이 된 케이스가 많았다. 첫 희생자가 발생한 종
로에서 서울 전역으로 좀비 사태가 확산되기까지는 딱 이틀이 걸렸다. 계엄령이 선포된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5일이 지나서였다.
게다가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에도, 좀비를 향해 군인들의 총구가 불을 뿜기까지는 무려 4일이라는 시
간이 더 걸렸다.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다.
다행히(?) 병의 잠복기간이 짧아서, 제대로 된 이성판단이 불가능한 좀비가 되기 전에 차량으로 이동
하다가 병이 더 빨리 퍼지는 등의 사태는 없었지만 문제는 서울의 높은 인구밀도와 그다지 넓지 않은
이 나라의 땅덩어리였다.
공식적으로 계엄령과 군대의 발포명령이 떨어진 것은 이미 전국적으로 좀비 사태가 커진 이후였고,
그때까지도 다양한 정치적 위험 때문에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군인들은 현장에서 대단히 소극적인
대응을 하다가 피해가 컸다.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대응을 한 것은 전경대나 기동대, 방순대 등 경찰의 진압부대들이었다.
진압장구와 방패로 효과적인 방어를 하고 봉 대신 총으로 좀비들을 몰살시키는 대응으로, 악화만 되어
가던 상황을 조금은 진정시키는데 성공했으니까. 그러나 용산 미군기지 앞 기지 방어작전에서 무리한
작전 수행을 하다가 직원 기동대를 비롯해 서울 1기동단이 포위를 당해 전원 몰살당한 것은 무척 안타
까운 일이었다.
당시 미군은 아무리 '좀비'라고 한들 '미군이 한국의 민간인들을 향하여 총부리를 겨눈다' 라는 것이
갖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에 그저 기지 내 경비에만 총력을 기울일 뿐 그 어떤 실질적인 군사적 대응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희생이 헛된 것은 아니어서, 미군과 미군 기지를 지키려다가 좀비 떼에 몰살당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은 CNN을 통해 전 세계로 방송되어 그 사상 초유의 사태에 미군이 개입하는데 확실한
명분을 제공했다.
이미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던 한국의 좀비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시작
되었고, 미군의 본격적인 개입은 남한 내 혼란을 틈탄 '북한의 위험한 선택'에 대한 강력한 견제가 되어
주었다. 미 7 함대가 동해로 진입했고, 덕분에 전방의 예비 사단 몇 개가 좀비 소탕 작전으로 돌려질 수
있었다.
작전명 '좀비워'가 시작되었다. 전방의 예비사단들과 수방사, 수기사를 중심으로 한 1선이 서울과 수도
권에서 좀비로부터의 안전구역을 늘려가며 고립된 시민들을 지원하고, 후방에서 방어 작전을 수행하던
부대들과 예비군들이 본격적인 소탕작전을 수행했다.
…까지가 어제까지의 이야기. 들리는 말에 따르면 아직까지 불통인 지역이 꽤 있는 것 같지만 전화,
인터넷과 TV 방송이 그제께부터 재개되었고, 서울의 한강 이남 전 지역과 용산구, 마포구, 서대문구
등에서 제한 급수와 식량 배급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 X같다. 어제 엄마가 식량 구하러 나갔다가 죽었는데, 오늘 군바리들이 급식 시작하더라… C발 ]
[ 정부에서 좀만 일찍 계엄령 내렸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안 왔을 거다 개씨X ]
[ 근데 이거 공기 전염되는 변종 바이러스 돌기 시작하면 그냥 다 뒤지는 거라며 ]
[ 난 아직도 다 꿈같고, 믿겨지지가 않는다… ]
난 묵묵히 게시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 역시 모든게 다 꿈 같고, 하필이면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황당했다. 좀비병에 걸린 사람들을 모조리 다 쏴죽인다
해도,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이상 언제든 이런 사태가 재발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인터넷에 따르면 소문은 분분했다. 북한의 세균전 병기라느니, 변종 사스 바이러스라느니, 미국의
실험이라느니…. 하지만 그 어느 하나 별로 믿음이 가는 것은 아니었고, 솔직히 내가 신경쓰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또 언제쯤 그 건빵을 가득 길은 육공 트럭이 우리 동네를 지나가느냐가
궁금할 따름이다. 남은 건빵은 겨우 세 봉지. 억지를 써서라도 많이 받아올 것을 그랬다.
'하아…'
좀비 사태가 터지고, 1차적으로 상황을 수습하려던 일선 경찰들은 어이없이 좀비들에게 많이 당해
버렸고, 신고를 받고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을 병원으로 옮기던 과정에서 응급대원들이 또 좀비에
많이 당했다. 이어 병원으로 옮겨진 좀비병 환자들에 의해 또 많은 병원들이 마비되었다.
치안이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서 언론의 확인되지 않은 보도들이 줄을 이었고 불안을 느낀 사람들은
폭동에 가까운 이기심을 보였다. 온갖 상점들이 털렸고 범죄들이 연이었다. 성범죄도 물론이었다.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가 꼭꼭 숨어서 거의 20일 가까이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초기 혼란기에 생긴
좀비병 환자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희생자들은 대부분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 당한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지금은 전기와 수도가 복구되었고, 난 비닐봉투에 싸서 1층에 던지던 똥봉투들을 더이상 버
리지 않아도 되었다.
"…현재 국군은 최선을 다하여 작전을 수행 중에 있으며, 앞으로 며칠 내로 이 모든 상황을 종결지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TV에서는 이마에 별을 단 한 장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전황을 보고했으며, 이어 며칠 만에 보는
윤지민 아나운서가 마치 날씨 예보를 하듯 좀비 전쟁의 전황을 소개했다.
도대체 어떻게 집계한 것인지 그 신뢰성에 상당히 의문이 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좀비 사태로 인해
현재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인원은 40만명이 넘어섰다고 했다. 직접 감염으로 옮는 병이라서 생각
보다 지방은 희생자가 적었고 거의 모든 피해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전황을 보건데 서울 강북 지역도 대부분 며칠 내로 전부 좀비를 물리칠 것 같고, 후방의 소
탕 작전도 매우 성공적이란다.
'하기사…'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압도적인 화력을 갖고 있는 군대가 이빨로 물어뜯는 시체 군단 따위에 패배할
리가 없다. 처음에야 뭘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 모르고 또 '사람을 죽인다' 라는 생각에 군인들이 망설
이다 피해가 커질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야 뭐.
역시 픽션과 현실은 다르다. 그리고 현실의 인간은 픽션 속 인간보다 강하고 똑똑하다. 이번 사태로
한국은 앞으로 모든 세계 호러 마니아들의 성지가 되겠지. 드라큘라하면 루마니아가 떠오르듯 좀비
하면 이제 한국이 떠오르겠지. 진짜 좀비의 성지 아이티보다도 더.
나는 실실 웃음을 짓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5층이라 여기는 안전하다.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이제 며칠이다. 며칠 후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생각해보면 난 이 힘든 사태를 겪으면서도 뭐
딱히 힘든 것이 없었다.
수원에 있는 가족들도 무사히 잘 있다고 했고, 이 일 있기 바로 전날 냉장고에 채워둔 레토르트 식품
과 생수 덕분에 굶지도 않았다. 그제부터는 위험했지만 다행히 마침 군인들이 건빵을 나눠줘서 얻어
오기도 했으니.
그저 마치 나는 남의 나라 뉴스 보듯이, 그래 언젠가의 미국 6.11 사태 보듯이 이렇게 온라인에서 이
슈를 즐길 뿐인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흐뭇하고 좋다. 난 침대에 누웠다. 아마 그렇게 바로 잠들었다면 아주 흐뭇했
을 것이다. 적어도 그 날 하루는. 몇 분 후의 그 뉴스 속보를 안 들었어도 됐을테니까.
"속보입니다. 현재, 지금 현재 이 방송을 보고 계신 분들은 즉각적으로 창문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현재…공기 중으로 전염이 되는 변종 좀비 바이러스가 확인되어…"
< 끝 >
한국대병원에서 입원환자들이 난동을 피워서 지금 아수라장이다, 라는 내용의 사진과 영상이 체이스북을
중심으로 인터넷에서 유포되기 시작한 것. 처음 기사로 보도한 것도 유력 일간지나 통신사들이 아닌 그냥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돌면서 기사받아 쓰는 영세 온라인 뉴스사였다. 어쨌든.
화질도 별로 좋지 않고 많이 흔들리는 통에 얼핏 처음 영상을 플레이 해보면 병원에서 의례 있기 마련인
일부 보호자들의 과잉 행동처럼 보이지만…30초 정도 지난 지점부터 의사 위에 올라탄 마른 남자가 의사
의 목을 조르고 급기야는 목을 물어뜯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다가 갑자기 끝나는 그 영상.
네티즌은 "저게 뭐임?", "무슨 영화 티저 영상 같은거 아냐? 위치어 불릿 같은 거처럼", "존나 무섭네;;;",
"하여간 못 배운 새끼들이 항상 저 지랄. 살려놓으면 병원비 비싸다, 죽으면 살인마네 뭐네 병신들;;;;;",
"영화야?", "조작이네", "네 다음 폭도" 등으로, 반응이 분분했다.
하지만 진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났다. 그 영상이 떠돌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대병원에 있던
입원환자나 외래 환자, 병문안을 온 방문객, 의료진 등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병원에 완전
난리가 났다고 울며불며 전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가벼운(?) 쇼킹영상으로 끝난 줄 알았던 것이
이윽고 뉴스 기사화 되어 속보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속보] 한국대병원에서 괴한 난동…환자 및 방문객들에 무차별 폭행
[1보] 한국대병원에서 테러 발생…경찰특공대 출동 중
한국대병원에서 괴질 발생(1보)
[단독] 한국대병원에서 묻지마 살인 발생(1보)
처음에는 누구 하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언론에서도 오보가 빗발쳤다. 테러, 괴한 난동, 괴질
등 여러 추측이 난무하던 가운데, 병원 입구에 폴리스라인이 쳐지고 경찰이 출동한 상황에서 경찰들을
향해서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뛰어들어 목덜미를 물어뜯고 마구잡이 폭행을 하는 미친 사람들의 행동이
당시 현장에 나가있던 방송사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뉴스를 탔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미 지난 몇 년간 영화나 게임 등으로 수도 없이 보고 듣고 겪은 한 단어를 떠올렸다.
살아있는 시체 : 좀비
사실 난 그동안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나 게임, 소설 등을 보면서, 그 작품 속의 사람들이 정말로 무능
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좀비 바이러스가 공기 중 전염이라도 된다면 몰라도, 그게 아닌 이상에야 어찌
경찰력이 총동원되고 군대가 출동해도 그 끄어하면서 걸어다니는 시체 군단 하나 처리 못해서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진단 말인가.
그런데 막상 상황이 닥치고 보니 확실히, 일이 커지기 전에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좀비병에 걸린 미친 놈이 사람을 문다. 그리고 그 좀비에 물린 사람도 10분 만에 또 다른 좀비가 되어
다른 사람을 문다. 그들을 제지하려던 사람도 물리거나 피가 점막에 튀거나 해서 병균에 감염되면 또
좀비가 된다.
영화 속 좀비와는 달리 행동이 그리 느리지도 않고, 오히려 술 취해서 객기 부리는 사람 마냥 시뻘건
얼굴로 괴력을 휘둘러대니 제압하기도 쉽지 않다. 덩치 좋은 사내놈 몇 명만 좀비화 되어도 그 주변은
그래서 금방 쑥대밭이 된다.
게다가 영화에서처럼 쉽게 쏴죽일 수도 없다. 한국에 총이 어딨나 총이. 그렇다고 칼로 사람 목을 딴
다는 것도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지, 자기 가족이 갑자기 미친 놈처럼 폭력 휘두른다고 칼로 그 가족
목을 딴다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아니 무엇보다 좀비라는건 공상 속에나 있는 일 아닌가?
그래, 차라리 사람들이 좀비라는 단어와 그 행동 양태를 아예 몰랐다면 오히려 더 대응이 빨랐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단기간 내에 폭력적으로 미치게 만드는 감염성 괴질이 돌고 있다 라고 순순히 받아들
이기도 쉬웠을테니까. 아마 분명히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가 봐도 공상 속 좀비와 동일한 증상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정보가 전해지는 것을
방해했다. 오죽했으면 경찰조차 당시 접수된 최초 신고를 장난전화로 무시했을까. 제대로 된 정보가
사람들에게 전달된 것은 거의 반 나절이 꼬박 지난 9시 뉴스 직전 정부 공식성명 속보에서였다.
"아울러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비하여 국민 여러분은 가급적 집안에서 머물러 주시고…"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사실 제대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엄마가 진지한 목
소리로 "지금 뉴스 봤는데, 요즘 무슨 바이러스가 돈단다. 그러니까 싸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꼼짝말고
들어가있어"라고 연락을 한다고 해봤자, 독감 걱정하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린 이들은 여전히 이어폰을
들으며 여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홍대를 향해 전철에 몸을 싣고 있을 따름이었다.
…뭐 그건 좀 심한 케이스고, 여튼 영화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찰들은 좀비의 대가리를 향해 총을 쏘
기는 커녕 어어어 하다 여기저기 물려서 좀비의 희생양이 된 케이스가 많았다. 첫 희생자가 발생한 종
로에서 서울 전역으로 좀비 사태가 확산되기까지는 딱 이틀이 걸렸다. 계엄령이 선포된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5일이 지나서였다.
게다가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에도, 좀비를 향해 군인들의 총구가 불을 뿜기까지는 무려 4일이라는 시
간이 더 걸렸다.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다.
다행히(?) 병의 잠복기간이 짧아서, 제대로 된 이성판단이 불가능한 좀비가 되기 전에 차량으로 이동
하다가 병이 더 빨리 퍼지는 등의 사태는 없었지만 문제는 서울의 높은 인구밀도와 그다지 넓지 않은
이 나라의 땅덩어리였다.
공식적으로 계엄령과 군대의 발포명령이 떨어진 것은 이미 전국적으로 좀비 사태가 커진 이후였고,
그때까지도 다양한 정치적 위험 때문에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군인들은 현장에서 대단히 소극적인
대응을 하다가 피해가 컸다.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대응을 한 것은 전경대나 기동대, 방순대 등 경찰의 진압부대들이었다.
진압장구와 방패로 효과적인 방어를 하고 봉 대신 총으로 좀비들을 몰살시키는 대응으로, 악화만 되어
가던 상황을 조금은 진정시키는데 성공했으니까. 그러나 용산 미군기지 앞 기지 방어작전에서 무리한
작전 수행을 하다가 직원 기동대를 비롯해 서울 1기동단이 포위를 당해 전원 몰살당한 것은 무척 안타
까운 일이었다.
당시 미군은 아무리 '좀비'라고 한들 '미군이 한국의 민간인들을 향하여 총부리를 겨눈다' 라는 것이
갖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에 그저 기지 내 경비에만 총력을 기울일 뿐 그 어떤 실질적인 군사적 대응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희생이 헛된 것은 아니어서, 미군과 미군 기지를 지키려다가 좀비 떼에 몰살당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은 CNN을 통해 전 세계로 방송되어 그 사상 초유의 사태에 미군이 개입하는데 확실한
명분을 제공했다.
이미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던 한국의 좀비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시작
되었고, 미군의 본격적인 개입은 남한 내 혼란을 틈탄 '북한의 위험한 선택'에 대한 강력한 견제가 되어
주었다. 미 7 함대가 동해로 진입했고, 덕분에 전방의 예비 사단 몇 개가 좀비 소탕 작전으로 돌려질 수
있었다.
작전명 '좀비워'가 시작되었다. 전방의 예비사단들과 수방사, 수기사를 중심으로 한 1선이 서울과 수도
권에서 좀비로부터의 안전구역을 늘려가며 고립된 시민들을 지원하고, 후방에서 방어 작전을 수행하던
부대들과 예비군들이 본격적인 소탕작전을 수행했다.
…까지가 어제까지의 이야기. 들리는 말에 따르면 아직까지 불통인 지역이 꽤 있는 것 같지만 전화,
인터넷과 TV 방송이 그제께부터 재개되었고, 서울의 한강 이남 전 지역과 용산구, 마포구, 서대문구
등에서 제한 급수와 식량 배급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 X같다. 어제 엄마가 식량 구하러 나갔다가 죽었는데, 오늘 군바리들이 급식 시작하더라… C발 ]
[ 정부에서 좀만 일찍 계엄령 내렸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안 왔을 거다 개씨X ]
[ 근데 이거 공기 전염되는 변종 바이러스 돌기 시작하면 그냥 다 뒤지는 거라며 ]
[ 난 아직도 다 꿈같고, 믿겨지지가 않는다… ]
난 묵묵히 게시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 역시 모든게 다 꿈 같고, 하필이면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황당했다. 좀비병에 걸린 사람들을 모조리 다 쏴죽인다
해도,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이상 언제든 이런 사태가 재발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인터넷에 따르면 소문은 분분했다. 북한의 세균전 병기라느니, 변종 사스 바이러스라느니, 미국의
실험이라느니…. 하지만 그 어느 하나 별로 믿음이 가는 것은 아니었고, 솔직히 내가 신경쓰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또 언제쯤 그 건빵을 가득 길은 육공 트럭이 우리 동네를 지나가느냐가
궁금할 따름이다. 남은 건빵은 겨우 세 봉지. 억지를 써서라도 많이 받아올 것을 그랬다.
'하아…'
좀비 사태가 터지고, 1차적으로 상황을 수습하려던 일선 경찰들은 어이없이 좀비들에게 많이 당해
버렸고, 신고를 받고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을 병원으로 옮기던 과정에서 응급대원들이 또 좀비에
많이 당했다. 이어 병원으로 옮겨진 좀비병 환자들에 의해 또 많은 병원들이 마비되었다.
치안이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서 언론의 확인되지 않은 보도들이 줄을 이었고 불안을 느낀 사람들은
폭동에 가까운 이기심을 보였다. 온갖 상점들이 털렸고 범죄들이 연이었다. 성범죄도 물론이었다.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가 꼭꼭 숨어서 거의 20일 가까이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초기 혼란기에 생긴
좀비병 환자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희생자들은 대부분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 당한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지금은 전기와 수도가 복구되었고, 난 비닐봉투에 싸서 1층에 던지던 똥봉투들을 더이상 버
리지 않아도 되었다.
"…현재 국군은 최선을 다하여 작전을 수행 중에 있으며, 앞으로 며칠 내로 이 모든 상황을 종결지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TV에서는 이마에 별을 단 한 장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전황을 보고했으며, 이어 며칠 만에 보는
윤지민 아나운서가 마치 날씨 예보를 하듯 좀비 전쟁의 전황을 소개했다.
도대체 어떻게 집계한 것인지 그 신뢰성에 상당히 의문이 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좀비 사태로 인해
현재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인원은 40만명이 넘어섰다고 했다. 직접 감염으로 옮는 병이라서 생각
보다 지방은 희생자가 적었고 거의 모든 피해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전황을 보건데 서울 강북 지역도 대부분 며칠 내로 전부 좀비를 물리칠 것 같고, 후방의 소
탕 작전도 매우 성공적이란다.
'하기사…'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압도적인 화력을 갖고 있는 군대가 이빨로 물어뜯는 시체 군단 따위에 패배할
리가 없다. 처음에야 뭘 어떻게 상대해야 할 지 모르고 또 '사람을 죽인다' 라는 생각에 군인들이 망설
이다 피해가 커질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야 뭐.
역시 픽션과 현실은 다르다. 그리고 현실의 인간은 픽션 속 인간보다 강하고 똑똑하다. 이번 사태로
한국은 앞으로 모든 세계 호러 마니아들의 성지가 되겠지. 드라큘라하면 루마니아가 떠오르듯 좀비
하면 이제 한국이 떠오르겠지. 진짜 좀비의 성지 아이티보다도 더.
나는 실실 웃음을 짓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5층이라 여기는 안전하다.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이제 며칠이다. 며칠 후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생각해보면 난 이 힘든 사태를 겪으면서도 뭐
딱히 힘든 것이 없었다.
수원에 있는 가족들도 무사히 잘 있다고 했고, 이 일 있기 바로 전날 냉장고에 채워둔 레토르트 식품
과 생수 덕분에 굶지도 않았다. 그제부터는 위험했지만 다행히 마침 군인들이 건빵을 나눠줘서 얻어
오기도 했으니.
그저 마치 나는 남의 나라 뉴스 보듯이, 그래 언젠가의 미국 6.11 사태 보듯이 이렇게 온라인에서 이
슈를 즐길 뿐인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흐뭇하고 좋다. 난 침대에 누웠다. 아마 그렇게 바로 잠들었다면 아주 흐뭇했
을 것이다. 적어도 그 날 하루는. 몇 분 후의 그 뉴스 속보를 안 들었어도 됐을테니까.
"속보입니다. 현재, 지금 현재 이 방송을 보고 계신 분들은 즉각적으로 창문을 닫아주시기 바랍니다.
현재…공기 중으로 전염이 되는 변종 좀비 바이러스가 확인되어…"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