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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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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50만원짜리 잠바는 무슨…여 파스나 붙여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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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엄마는 씨알도 안 먹힐 분위기다. 하기사 뭐 애시당초 당연히 씨알도 안 먹힐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거기말고, 조금 아래. 으, 거기"
"아 일 좀 쉬엄쉬엄 해. 몸 부서져라 일한다고 누가 알아줘?"
"어이구 그게 되냐. 다 이렇게 일해서 너 먹여살리는거야"

빌딩 청소일을 하는 엄마는 언제나 어구구, 하며 죽는 소리를 내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온다. 하지만
엄마의 고단한 일은 집에 온다고 끝나지 않는다. 바닥에 훌렁훌렁 벗어놓은 내 교복을 보며 "아 집에 있음
방 좀 치우지 이게 뭐야 돼지우리도 아니고"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그 얇은 잠바를 옷걸이에 걸면서
저기 싱크대에 산처럼 쌓여있는 설거지거리에 자그마한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그녀는 설거지, 방청소와 함께 또 빨래를 돌린 이후에야 잠시 쉴 시간을 갖는다. 방에 이불을 깔고
잠시간의 쉬는 시간 동안 고단한 몸을 이불에 반쯤 누워 졸아가면서 드라마를 보노라면 그제사 하루종일
미친듯이 혹사당한 팔다리 허리 목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붙여봐야 잠시만 후끈후끈해서 좋다 뿐이지
별 좋은 것도 모르겠는 파스를 등에 붙이고 있노라면 또 슬슬 드라마는 끝나간다. 그렇게 드라마 끝나갈
시간이면 빨래도 끝나고, 빨래를 널고 나면 어느새 11시가 다 된 시각.

"어휴"

아직도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일하고 있을 애아빠 생각에 절로 한숨이 쉬어지는데 일단 자리는 펴놓고

[ 추운대 빨리 끗내고 드러와요 ]

하는 문자 한통을 날린다. 허리가 아파 잠도 안 오건만 불 끄고 눈을 잠시 붙인다. 눈을 붙이자마자 잠이
쏟아진다. 노곤하다.


"엄마"

아들의 목소리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떼며 "왜?" 하고 묻노라니 아들은 자못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얼굴이다.



"니 아빠는 지금 이 시간에 돈 한푼 더 벌라고 추운데 잠도 못자고 일하고 있어"
"아 내가 뭐 언제 그런거 한번이라도 사달라는 적 있어? 아 진짜 다들 입는데 나 혼자, 증말 나 혼자만
그지같은 잠바떼기 입고 있다고! 얼마나 쪽팔린 줄 알아? 애들 사이에서 나만 그러니까 인정을 못 받지"

아들과 엄마의 대화. 엄마는 기가 차지만 아들은 필사적이다. 하지만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할 말이 많다.

"진짜로, 내가 뭐 그짓말로 하는게 아니라 우리 반 38명 중에 33명이 사우스페이스를 입는다니까? 아 한번
사면 졸업할 때까지는 입는데 뭘 오히려 싼 거지. 괜히 어중떼기 잠바 사서 몇 년 입지도 못하는 거보다는
낫잖아. 글고 얼마나 뜨신데. 정 뭐하면 나 사서 입고 추운 날 아빠 빌려줘도 되잖아. 이거 히말라야 갈 때
도 입을 수 있는거래. 어? 엄마 나 진짜 앞으로 막 다른거 하나도 안 해줘도 되니까 이거 하나만 해주라.
어? 엄마"

생전 이런거 없는 애가 이렇게까지 졸라대는 거면 뭐가 있어도 있겠지 싶어 하나 사주고 싶다가도 아
50만원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직쌀나게 고생해가며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사는 팔자에
그런 돈이 어디있나 싶은 엄마.

"사주고 싶어도 엄마가 그런 돈이 없어 아 엄마 피곤해 내일 이야기해 내일"
"아 내일 이야기 하면 또 이럴 거잖아. 내가 모 말도 안되는거 바래? 어? 이거 하나만 사줘 진짜. 내가
맨날 학교에서도 그냥 이런 잠바떼기 입으니까 애들이 막 깔보고 그런단 말이야"
"누가 니를 깔보는데"
"아 애들이 다. 우리 집 그지냐고 그런단 말이야"
"에휴 그럼 그지라고 해~"
"아 엄마아"


그리고 그때 즈음해서 쿵쿵 묵직한 발소리가 들리고 "아빠 왔나보다" 하는 엄마가 슬슬 몸을 일으키면
아들은 먼저 뛰어나가서 문을 연다.

"어휴, 왠일로 우리 아들이 문을 다 열어줘?"
"아빠 나 선물 하나만. 어? 올해 공부 2배로 열심히 할께"
"뭔데?"

고되게 일한 대가로 발에서 썩는 듯한 발냄새가 나는 아빠. 평소 같았으면 "어우 발냄새" 하고 코를 감싸
쥐며 방으로 뛰어 들어갔겠지만 오늘은 그런 것을 가릴 참이 아니다. 성큼성큼 화장실로 향한 아빠에게
다급히 말했다.

"사우스페이스라고 요즘 유행하는 잠바가 있는데 그거 하나만 사주라"
"뭐, 사우스 뭐?"
"사우스페이스. 히말라야 막 그런데 갈 때도 입는 잠바인데 입으면 완전 뜨듯해. 공부할 때도 완전 좋아"
"그렇게 좋아? 근데 너 잠바 있잖아"
"아 그게 무슨 잠바야 그냥 오리털도 아닌데. 그냥 솜잠바가 뭐. 어? 나 그거 하나만 사줘 아빠"
"얼만데"
"55만원"
"뭐?"
'55만원. 아 그래 비싸긴 좀 비싼데 어? 어? 진짜 공부 2배로 열심히 할께"
"가 자 임마. 55만원은 무슨"

나름 호의적이던 반응은 55만원이라는 돈 앞에 차갑게 바뀌고, 엄마는 화장실로 다가와서 "밥 먹었어?"
하고 아들를 막아서며 묻는다.

"어 먹었어. 아 들어가서 자. 내일 또 일가야 되는 사람이. 골골매지 말고"
"알았어 빨리 씻고 들어와서 자. 피곤하지?"
"아후, 알았어"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자 아들은 다시 한번 조른다.

"어? 아빠, 나 진짜, 어? 증말로 딱! 아 우리 학교 얼마나 추운지 알아? 요새 난방도 막 에너지 절약이다
뭐다 해서 따뜻하게 안 해. 얼마나 구린데. 꼭 하나만 사줘"
"아 임마 그럼 그거 사준다고 니가 공부를 해?"
"나 무시해? 아빠 어? 나 증말 열심히 할께"
"그거 뭐, 카드 할부도 돼?"

공부 열심히 하겠다며 안달복달 하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또 조금 흔들리고, 그제서는 또 방에 들어간
엄마가 한 마디 한다.

"아 정신 못 차리고 55만원이 누구 애 이름이야? 엄마는 이렇게 허리가 부러져라 일해서 받는 돈이 한달에
돈 백도 안되는데 무슨 오십오만원은. 니 자꾸 쓸데없는걸로 떼쓰지 마라"
"아 엄마!"
"가서 잠이나 자"

아빠는 별 말 없이 발을 다 씻고는 샤워기를 들어 화장실 문을 닫고 샤워를 시작한다. 아들은 한숨을 내쉬
면서 또 방 안 옷걸이에 걸린, 중학교 때 사서 벌써 3년째 입는 낡고 번질번질한 스포츠 브랜드 잠바떼기를
바라본다. 너무 촌스럽고 구리다.


하지만 아들은 알았을까.

그토록 조르고 졸라 겨우 구입한 그 사우스페이스 드라이 래프트, 그래 룹시로 사도 될 것을 괜히 이번을
기회로 잘나가고 싶은 마음에 눈 딱 감고… 엄마 아빠한테 죄 짓는 마음으로 기어코 졸라서 산, 엄마 아빠
앞에서 울고 불고 기어코

"내가 이런 그지같은 집에서 태어나서 학교에서도 기를 못 펴는거야, 알아?"

하고 부모 마음에 못을 박는 발언까지 해가면서 겨우겨우 산 그 필사의 패딩을… 불과 일주일도 입어보지
못하고 하교 길에 만난 옆 학교 창운 공고 양아치 새끼들에게 뺏기게 된다는 것을. 그나마도 그렇게 허무
하게 뺏기고는 맨날 그 옷 왜 안 입고 다니냐는 엄마의 말에

"아 친구 빌려줬다고"

하고 거짓말이나 살살 하면서 속상해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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