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 섹스칼럼니스트 이도희 ]…
[2. 도희의 소개팅 ] …
[3. 외로운 여자 이도희 ] …
[4. 도희의 첫 사랑 ] 에 이어서…
아주 오래간만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누군가가… 그것도 남자가 있는 것은. 아직 남자는 주말
오전의 늦잠을 만끽하는 중이라, 내 손을 잡은 채 행복한 표정으로 잠에 빠져있다. 도희는 아주 조심스
럽게 남자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었다.
'하아'
누운 채로 천장부터 남자의 방을 둘러본다. 아담한 원룸… 양장본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부터, 행거에
잘 걸어놓은 옷가지 등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애써 꾸며온 손길이 느껴지는 그
아늑한 느낌이 제법 괜찮다. 도희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보며 새삼 살짝 놀랐다가
이불로 몸을 살짝 가리며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간밤의 흔적이 침대 밑 방 안 이곳저곳에 널부러져 있다. 심지어 자신의 팬티는 저기 멀리도 날려 의자에
걸쳐있었다. 아무리 둘 다 만취 상태였다고는 해도… 순간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로 민망했다. 게다가
끝나고는 그대로 잠에 들어버렸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드는 순간 화들짝 놀라 '그것'을 확인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진 않다.
제대로 콘돔을 사용한 모양이다. 도희는 고개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크고 둥근 얼굴에 다부진 턱, 어울리지 않는 긴 속눈썹이 언밸런스하지만 또 묘하게 귀여운 그런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평소의 그녀였다면 아무리 원나잇이라고는 해도 절대로 몸을 허락하지 않았을
그런 남자… 도희는 기억을 더듬어 남자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상훈. 하상훈.
12월 31일 "야, 궁상맞게 혼자 집에 있지 말고 빨리 준비해서 건대 앞으로 나와" 라는 유정의 일방적인
통고에 어처구니 없는 실소를 흘리며 나간 도희. 그리고 요즘 부킹 호프에 완전 제대로 빠졌다는 유정의
엄청난 뒷북에 또 한번 웃었지만 사실 말로만 들었을 뿐 그녀 역시 막상 직접 가본 적은 없었기에 설레임
반, 그려려니 하는 마음 반으로 함께 그곳에 갔다.
하지만 역시나 '별 거 없었다'. 클럽 분위기의 화려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는 마음에 들었지만 너무 쿵쿵
대는 분위기는 도희에게 잘 맞지 않았다. 게다가 연말이라 그런지 사람만 북적대고 태반은 대학생 또래
였다. 도희는 "야, 너 대학생 핏덩이들하고 노냐?" 하고 웃으며 유정에게 궁시렁댔지만 유정이야말로
"그럼 뭐 어때?" 하고 한술 더 뜨는 바람에 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째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은 듯 해서 오히려 그건 더 마음에 들었지만-남자들만 우글우글한 곳
이라면 절대 사양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이래서야 뭐 정말 썸씽이 생기긴 하려나?' 하고 속
으로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 역시나 그런 기우는 할 필요가 없다. 금방 쪽지가 날아왔고 도희와 유정은
별 생각없이 합석을 했다.
그런데 그게 황이었다. 처음에 얼굴만 봤을 때는 남자 둘 모두 조금 '못되게 생긴 얼굴'이라서 별로 썩
마음에 땡기지는 않았지만 유정의 취향이야 뻔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주었는데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거나 너무 가볍고… 나쁘게 말하자면 그냥 어린 양아치들 같았다. 몇 잔 받아주려다 말았는데
어째 애매하게 상황 정리가 잘 안 됐다. 게다가 술을 계속 먹이는게, 민망할 정도였다. 티는 안 내도
이미 짜증이 나기 시작한 상황에 유정이 먼저 왈짜를 부려 그렇게 겨우 간신히 관두고 그냥 가게를
나왔다.
"어쩌냐 술 배만 불렸네"
"아후, 아까 그 새끼들 왜 그렇게 찌질해? 왠만하면 모르는 척, 해주려고 해도 너무 술을 멕여. 아 진짜
어린 애들 속 빤히 보이는거 증말 너무 싫어. 왜 그렇게 촌스러?"
유정의 짜증에 그만 도희는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왜 웃어?"
"아까는 대딩들 좋다며. 뭐 어떠냐면서"
"아 그거야 잘 생기고 몸 좋고 키 크고 매너 좋은 애들에 한해서지"
조금 마음이 풀어졌다. 시간은 이미 11시를 넘겼지만 그렇다고 이런 날 이 시간에 집에 갈 수는 없었고
조금 더 걷다가 뜨끈한 조개국물에 속 좀 풀자고 하며 들어간 곳이 실내포차였다.
'거기서 합석했지'
연말이라 다들 마음이 허했던지, 아니면 여자 둘이 적당히 술 마신 채로 들어오자 쉬워보였던 모양인지
옆 테이블에서 '출퇴근용 정장' 입은 30대 초반의 샐러리맨 둘이 은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부킹
하자마자 건들건들 하면서 인사하던 아까 그 양아치 새끼들과는 달리 소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중히
말을 걸어온 이 남자들에 유정과 도희는 눈빛을 주고 받았다가 OK를 해준 것이다.
오죽하면 연말에 남자 둘이 술을 마시고 있을까, 하고 내심 생각했지만-사실 우리 둘도 그저 연말에
여자 둘이 술 마시고 있는 처지이긴 했지만- 의외로 남자 둘은 제법 말을 나누자 더 괜찮았다. 자신을
'성민'이라 밝힌 마른 남자는 대기업 사원이었고, 다부진 얼굴이긴 했지만 살이 조금 붙어 얼굴이 동
그란 '상훈' 역시도 유수의 대기업 사원이었다. 둘은 친구 관계로, 격무에 시달리는 통에 연애도 못하는
처지를 한탄하며 술을 기울이던 차란다.
…이후로 술을 몇 병 더 마신 것까지는 확실히 기억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이 조금 애매하다. 자신이
술을 못 이겨 그만 마셔야겠다고 하자 유정이 같이 일어난 것까지는 확실한데 그 이후가 가물가물,
뭐, 상훈의 품에 안겨서 택시에 탄 건 기억난다.
솔직히 좋았다. 남자 품에 안겨서 그의 희미한 향수 냄새를 맡은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머리 속
한편에서는 "이도희, 너 미쳤어? 처음 보는 남자랑? 니가 지금 한창 놀 나이야? 왜 정신 못 차려?"
하고 계속 경고를 보내왔지만 그냥 눈 감은 채로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냥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안락함을 느끼고 싶을 따름이었다.
잠에 빠진 상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한참을 그렇게 어젯 밤 일을 되짚어보던 그녀는 고개를
젓고는 산발이 된 머리를 뒤로 모아 정리했다. 머리끈을 어디에 뒀더라. 일단 옷부터 입어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돌려 침대 밑으로 다리를 뻗는 순간…
"우"
하복부부터 사타구니, 골반에 이르기까지 묵직한 뻐근함이 느껴졌다. 만취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래
대단했다. 하지만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은 그저 원망이랄까 짜증이랄까 민망함이랄까 전반적으로
네거티브한 느낌들이었다. 새해 첫 날에 눈 뜬 곳이 처음 보는 남자의 방이라니.
'생각해보니 엄청나게 어이없네'
다양한 감정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고, 다시 알몸인 채로 방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남자의 인기척을 느꼈다.
잠에서 깬 모양이다. 간밤에 서로의 몸을 안아본 사이임에도 왠지 격렬한 부끄러움이 느껴졌고 도희는 고개
를 돌리는 대신 그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 턱턱 의자 위의 팬티를 집어 입었고, 역시 바닥에 널부러진 브래
지어를 집어 착용했다. 그제서야 침대로 눈을 돌리자 남자는 뜻밖에도, 귀엽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보진 않았어요"
묵직하게 뻐근한 하반신의 상태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남자의 그 말에 도희는 피식 웃었다.
"봤으니까 고개를 돌리고 있겠죠"
그리고 그제서는 '그래, 어제 갈 데까지 갔는데 뭐 어때' 하는, 평소라면 상상도 못했을 뻔뻔한(?)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속옷만 입은 채로 의자에 털썩 앉아-뱃살이 접히지는 않을까 순간 긴장하며 배에 힘을 빡
주고 혹시 몰라 손으로 가리기까지 한 것은 물론이다- 물었다.
"나 어제 일이 잘 기억이 안나서 그런데,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에요?"
아니 뭐 그래 원나잇을 하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자기 집으로 데려오는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러자
남자는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모텔로 가려고 했는데 도희씨가 모텔이 싫다고 한건데…"
아…
"그럼 집으로 보내셨어야죠"
그러자 상훈은 더욱 당혹스러워하면서 "어, 죄송해요. 아니 저는 음… 저기…어… 그, 저희 둘이, 그,
어제 잘…분위기가 좋아서리…그 어제 같이 계셨던 일행 여자분도… 둘이 좋은 시간 보내라고…" 하고
어버버 거리며 말했다. 아… 이제 감이 좀 잡힌다. 아 유정이 그 망할 년. 어쨌든 간밤에 잘 놀아놓고
아침 와서 정색을 하자 남자는 잔뜩 긴장한 채로 어쩔 줄 몰라하는데, 그 모습이 좀 귀여워보이긴 했다.
도희는 애써 짜증과 웃음을 함께 참으며 "알았어요" 하고 "나 그럼 씻고, 갈게요"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남자의 눈에 아쉬워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떠올랐지만, 연말 분위기는 어제까지만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영양가조차 별로 없는 이번 일은, 적당히 각색해서 '기억에 없는 뻐근한 하반신'이라는 좀
여자 입장에서는 심각하게 불유쾌한 주제로 다음 화 칼럼에 쓰기로 마음 먹었다.
[2. 도희의 소개팅 ] …
[3. 외로운 여자 이도희 ] …
[4. 도희의 첫 사랑 ] 에 이어서…
아주 오래간만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누군가가… 그것도 남자가 있는 것은. 아직 남자는 주말
오전의 늦잠을 만끽하는 중이라, 내 손을 잡은 채 행복한 표정으로 잠에 빠져있다. 도희는 아주 조심스
럽게 남자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었다.
'하아'
누운 채로 천장부터 남자의 방을 둘러본다. 아담한 원룸… 양장본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부터, 행거에
잘 걸어놓은 옷가지 등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애써 꾸며온 손길이 느껴지는 그
아늑한 느낌이 제법 괜찮다. 도희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보며 새삼 살짝 놀랐다가
이불로 몸을 살짝 가리며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간밤의 흔적이 침대 밑 방 안 이곳저곳에 널부러져 있다. 심지어 자신의 팬티는 저기 멀리도 날려 의자에
걸쳐있었다. 아무리 둘 다 만취 상태였다고는 해도… 순간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로 민망했다. 게다가
끝나고는 그대로 잠에 들어버렸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드는 순간 화들짝 놀라 '그것'을 확인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진 않다.
제대로 콘돔을 사용한 모양이다. 도희는 고개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크고 둥근 얼굴에 다부진 턱, 어울리지 않는 긴 속눈썹이 언밸런스하지만 또 묘하게 귀여운 그런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평소의 그녀였다면 아무리 원나잇이라고는 해도 절대로 몸을 허락하지 않았을
그런 남자… 도희는 기억을 더듬어 남자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상훈. 하상훈.
12월 31일 "야, 궁상맞게 혼자 집에 있지 말고 빨리 준비해서 건대 앞으로 나와" 라는 유정의 일방적인
통고에 어처구니 없는 실소를 흘리며 나간 도희. 그리고 요즘 부킹 호프에 완전 제대로 빠졌다는 유정의
엄청난 뒷북에 또 한번 웃었지만 사실 말로만 들었을 뿐 그녀 역시 막상 직접 가본 적은 없었기에 설레임
반, 그려려니 하는 마음 반으로 함께 그곳에 갔다.
하지만 역시나 '별 거 없었다'. 클럽 분위기의 화려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는 마음에 들었지만 너무 쿵쿵
대는 분위기는 도희에게 잘 맞지 않았다. 게다가 연말이라 그런지 사람만 북적대고 태반은 대학생 또래
였다. 도희는 "야, 너 대학생 핏덩이들하고 노냐?" 하고 웃으며 유정에게 궁시렁댔지만 유정이야말로
"그럼 뭐 어때?" 하고 한술 더 뜨는 바람에 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째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은 듯 해서 오히려 그건 더 마음에 들었지만-남자들만 우글우글한 곳
이라면 절대 사양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이래서야 뭐 정말 썸씽이 생기긴 하려나?' 하고 속
으로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 역시나 그런 기우는 할 필요가 없다. 금방 쪽지가 날아왔고 도희와 유정은
별 생각없이 합석을 했다.
그런데 그게 황이었다. 처음에 얼굴만 봤을 때는 남자 둘 모두 조금 '못되게 생긴 얼굴'이라서 별로 썩
마음에 땡기지는 않았지만 유정의 취향이야 뻔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주었는데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거나 너무 가볍고… 나쁘게 말하자면 그냥 어린 양아치들 같았다. 몇 잔 받아주려다 말았는데
어째 애매하게 상황 정리가 잘 안 됐다. 게다가 술을 계속 먹이는게, 민망할 정도였다. 티는 안 내도
이미 짜증이 나기 시작한 상황에 유정이 먼저 왈짜를 부려 그렇게 겨우 간신히 관두고 그냥 가게를
나왔다.
"어쩌냐 술 배만 불렸네"
"아후, 아까 그 새끼들 왜 그렇게 찌질해? 왠만하면 모르는 척, 해주려고 해도 너무 술을 멕여. 아 진짜
어린 애들 속 빤히 보이는거 증말 너무 싫어. 왜 그렇게 촌스러?"
유정의 짜증에 그만 도희는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왜 웃어?"
"아까는 대딩들 좋다며. 뭐 어떠냐면서"
"아 그거야 잘 생기고 몸 좋고 키 크고 매너 좋은 애들에 한해서지"
조금 마음이 풀어졌다. 시간은 이미 11시를 넘겼지만 그렇다고 이런 날 이 시간에 집에 갈 수는 없었고
조금 더 걷다가 뜨끈한 조개국물에 속 좀 풀자고 하며 들어간 곳이 실내포차였다.
'거기서 합석했지'
연말이라 다들 마음이 허했던지, 아니면 여자 둘이 적당히 술 마신 채로 들어오자 쉬워보였던 모양인지
옆 테이블에서 '출퇴근용 정장' 입은 30대 초반의 샐러리맨 둘이 은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부킹
하자마자 건들건들 하면서 인사하던 아까 그 양아치 새끼들과는 달리 소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중히
말을 걸어온 이 남자들에 유정과 도희는 눈빛을 주고 받았다가 OK를 해준 것이다.
오죽하면 연말에 남자 둘이 술을 마시고 있을까, 하고 내심 생각했지만-사실 우리 둘도 그저 연말에
여자 둘이 술 마시고 있는 처지이긴 했지만- 의외로 남자 둘은 제법 말을 나누자 더 괜찮았다. 자신을
'성민'이라 밝힌 마른 남자는 대기업 사원이었고, 다부진 얼굴이긴 했지만 살이 조금 붙어 얼굴이 동
그란 '상훈' 역시도 유수의 대기업 사원이었다. 둘은 친구 관계로, 격무에 시달리는 통에 연애도 못하는
처지를 한탄하며 술을 기울이던 차란다.
…이후로 술을 몇 병 더 마신 것까지는 확실히 기억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이 조금 애매하다. 자신이
술을 못 이겨 그만 마셔야겠다고 하자 유정이 같이 일어난 것까지는 확실한데 그 이후가 가물가물,
뭐, 상훈의 품에 안겨서 택시에 탄 건 기억난다.
솔직히 좋았다. 남자 품에 안겨서 그의 희미한 향수 냄새를 맡은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머리 속
한편에서는 "이도희, 너 미쳤어? 처음 보는 남자랑? 니가 지금 한창 놀 나이야? 왜 정신 못 차려?"
하고 계속 경고를 보내왔지만 그냥 눈 감은 채로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냥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안락함을 느끼고 싶을 따름이었다.
잠에 빠진 상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한참을 그렇게 어젯 밤 일을 되짚어보던 그녀는 고개를
젓고는 산발이 된 머리를 뒤로 모아 정리했다. 머리끈을 어디에 뒀더라. 일단 옷부터 입어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돌려 침대 밑으로 다리를 뻗는 순간…
"우"
하복부부터 사타구니, 골반에 이르기까지 묵직한 뻐근함이 느껴졌다. 만취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래
대단했다. 하지만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은 그저 원망이랄까 짜증이랄까 민망함이랄까 전반적으로
네거티브한 느낌들이었다. 새해 첫 날에 눈 뜬 곳이 처음 보는 남자의 방이라니.
'생각해보니 엄청나게 어이없네'
다양한 감정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고, 다시 알몸인 채로 방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남자의 인기척을 느꼈다.
잠에서 깬 모양이다. 간밤에 서로의 몸을 안아본 사이임에도 왠지 격렬한 부끄러움이 느껴졌고 도희는 고개
를 돌리는 대신 그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 턱턱 의자 위의 팬티를 집어 입었고, 역시 바닥에 널부러진 브래
지어를 집어 착용했다. 그제서야 침대로 눈을 돌리자 남자는 뜻밖에도, 귀엽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보진 않았어요"
묵직하게 뻐근한 하반신의 상태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남자의 그 말에 도희는 피식 웃었다.
"봤으니까 고개를 돌리고 있겠죠"
그리고 그제서는 '그래, 어제 갈 데까지 갔는데 뭐 어때' 하는, 평소라면 상상도 못했을 뻔뻔한(?)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속옷만 입은 채로 의자에 털썩 앉아-뱃살이 접히지는 않을까 순간 긴장하며 배에 힘을 빡
주고 혹시 몰라 손으로 가리기까지 한 것은 물론이다- 물었다.
"나 어제 일이 잘 기억이 안나서 그런데,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에요?"
아니 뭐 그래 원나잇을 하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자기 집으로 데려오는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러자
남자는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모텔로 가려고 했는데 도희씨가 모텔이 싫다고 한건데…"
아…
"그럼 집으로 보내셨어야죠"
그러자 상훈은 더욱 당혹스러워하면서 "어, 죄송해요. 아니 저는 음… 저기…어… 그, 저희 둘이, 그,
어제 잘…분위기가 좋아서리…그 어제 같이 계셨던 일행 여자분도… 둘이 좋은 시간 보내라고…" 하고
어버버 거리며 말했다. 아… 이제 감이 좀 잡힌다. 아 유정이 그 망할 년. 어쨌든 간밤에 잘 놀아놓고
아침 와서 정색을 하자 남자는 잔뜩 긴장한 채로 어쩔 줄 몰라하는데, 그 모습이 좀 귀여워보이긴 했다.
도희는 애써 짜증과 웃음을 함께 참으며 "알았어요" 하고 "나 그럼 씻고, 갈게요"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남자의 눈에 아쉬워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떠올랐지만, 연말 분위기는 어제까지만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영양가조차 별로 없는 이번 일은, 적당히 각색해서 '기억에 없는 뻐근한 하반신'이라는 좀
여자 입장에서는 심각하게 불유쾌한 주제로 다음 화 칼럼에 쓰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