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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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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막막한 나머지 미루고 미루다 아예 잊기까지 했지만 '시민과 사회' 수업은 분명히 교수가 미리 밝혔다
시피 무조건 레포트로만 학점을 주는 강의였다. 게다가 이미 2학년 때 학사 경고까지 받은 바 있는 나로선
한 학점이 아쉬운 상황에서 이 강의 역시 포기할 수 없었다.

"화요일까지 제출 안 하면 F 받을 각오해"

교수님께 겨우 사정사정해서 일주일의 시간을 벌기는 했다만,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시민단체에 대해
갑작스럽게 조사를 해야하는 입장에서 나는 절박한 나머지 단순해지기로 했다.

"북송 문제라…"

그냥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시민단체 세 개 '풀뿌리 희망연대', '어버이 지원 청년회', '탈북자 북송 반대 협회'
중 제일 본격적인 느낌이라 레포트 점수가 잘 나올 것 같은 단체로 골랐다. 그래, 처음 시작은 그런 단순하고
불순한(?) 의도였다.



"힘들지는 않아?"

그리고 이런 곳에서 여자, 그것도 내 동갑내기 여자애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해봤지만 전화기
너머 그 예쁜 목소리 주인공은 얼굴까지 예뻤다. 정다희라는 이름의 그녀는, 3년 전부터 여기에서 학교까지
휴학해 가면서 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원도 열악하고, 힘들긴 힘들어. 정작 우리가 도와준 새터민들도 별로 크게 고마워하지도 않고.
물론 뭘 바라고 그런 건 아니지만, 아쉬운건 아쉬운 거니까"

고마워하지 않는다니, 그건 좀 의외였다.

"왜?"
"글쎄. 아무래도 북한 사회 자체에서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감정표현이 우리처럼 솔직하지는 않아.
감정표현 뿐만 아니라, 속에 담긴 말이나 이야기거리도 은근히 감추는 것도 많고 과장이나 거짓말도 은근히
꽤 하는 편이야. 우리도 그런 건 감안하고 들어. 그런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니까. 이젠 익숙해"

좋아, 이런 흐름이라면 1,2학년 어린 새끼들이 인터넷이나 뒤지면서 만든 짜깁기 레포트와는 아예 질이 다른
현장의 냄새가 숨쉬는 레포트를 만들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마침 울린 전화벨 소리에 저쪽 구석 테이블의 전화를 받으러 갔다. 난 새삼 여기 사무
실을 빙 훑어보았다.



경한로 근처 대륙 기원 뒷 골목의 고물상 옆 사무실은, 처음 밖에서 보았을 때는 아예 망한 줄 알았을 정도로
허름하고 다 낡은 옛 공장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아니 사무실이라 하기도 좀 민망한  것이 그냥 텅 빈 공장
건물에 책상 몇 개 가져다 놓고 이런저런 방송용 앰프 등 시위 장비를 구석에 쌓아놓은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설거지할 그릇들 담아놓은 큰 고무 다라이나 기름 난로,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아서 가져다 놓은 소형
발전기 등 열악한 환경은 과연 이런 단체에서 일을 제대로 하기는 할까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건물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액자 대신 그냥 테이프로 붙여놓은 시위 사진들은 그들의 열정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중국 대사관 앞에서, 외교부, 통일부 앞에서, 미국 대사관 앞에서, 광화문 앞에서
시위를 하거나 서명을 구하는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옆에는 또 비디오 비전과 수십 개의 VHS
비디오, 시디 등의 영상자료들이 있었다.

"흐음"

그냥 돌아갈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안녕하세요" 하고 문을 열었을 때 다희가
"안녕하세요, 아! 아까 전화하셨던 분?" 하고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예를 들어서 지금 문 열고 들어온
저 삐쩍 마른 늙은 아저씨 같은 사람이 기침 쿨럭이며 맞이했더라면 난 분명히 "죄송합니다" 소리와 함께 곧
바로 문을 닫고 돌아나갔을 것이다.

어쨌든, 방금 들어온 저 키 작고 마르고 안광 사나운 저 아저씨는 들어오자마자 나를 보며 "누구…?" 하며
신원을 물었다.


"안녕하세요, 아…저는 취재 때문에,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전화 드리고 방문했습니다"

사실 대학교 과제 때문에 방문한다고 하면 혹시라도 안 된다고 할까봐, 난 우리 대학의 학교 신문 취재차
나왔다고 미리 다희에게 전화로 거짓말을 했었다. 그러나 취재란 말에 가뜩이나  안광이 장난 아닌 양반이
더욱 눈빛을 흉흉하게 내뿜으며 다가왔다. 뭐, 어쩌자는거지, 순간 어디서 본 것처럼 내 카메라를 뺏어다
내동댕이 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격정적으로 다가온 그는 내 손을 힘차게 잡았다.

"좋은 기사 써주세요. 2천만 동포의 생사가 걸린 일입니다"

 
…곧이어 전화를 끊은 다희가 다가와서 나를 한국대 신문반 기자라고 밝히자 실망한 기색이 너무 역력해
내가 다 미안했지만-이런 분위기이니 사실 난 그조차도 아니고 그냥 레포트 때문에 온 일개 무명 대학생
이다,  라고 밝힐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만큼 관심과 지원에 목마르다고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탈북자 북송 문제는, 당장 수십만의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도, 그 어느 누구 하나 관심 갖는 사람도 없고
정부에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단 말입니다. 독지가들 몇몇이 뒤에서 돕고는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누가
경제적 지원을 뭐 하나 해주는 것도 아니고, 기업이 스폰서를 해줄 일도 아니고, 정부는 뭐 더하고" 

벌써 10년도 넘게 이 문제에 뛰어들어 전 재산을 다 써가며 혼신을 다했지만 지원은 없었단다. 뜻을 높이
산 독지가들 몇몇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누군가들이 은근히 뒤에서 도와주긴 했지만, 그나마도 작년에
시민단체 몇몇과 충돌을 빚은 이후로는 끊기고 말았다.

"정치적 문제가 있었거든"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 대북관계, 정치적 스탠드에 따른 정권과 정당, 각 계파간의 이해관계, 소위 '종북'
단체들의 견제, 대선을 전후해 어용단체가 절대다수인 이 나라 시민단체들 사이의 어마어마한 힘 겨루기
등등 수없이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발목을 잡았다고 했다.

"차라리 빨갱이 섀끼들은 원래가 그런 족속이라고 쳐. 그런데 대선에서 함께 발 안 맞춘다고 지랄하는
보수단체라는 놈들은 도대체가 어쩌자는 말이야"

김 소장은 울분을 토해냈다. 다희는 그를 달래다가 뒤늦게서야 말했다.

"이따가 4시에, 대사관 앞으로 김현정 의원 님도 오신대요"
"후우, 알았다"

답답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김 소장은 "그럼 대화 나누시다가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고는 다시 사무실을 나섰다. 다시 썰렁해진 사무실에서 난 다희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 와?"

그녀는 시계를 잠깐 살피다가 "지금이 2시 반이니까, 3시 즈음해서 오실거야 다들. 다해봐야 일곱이 전부고,
오늘은 나까지 넷이 전부겠지만" 하고 답했다.



난 다희가 자그마한 봉고에 앰프와 피켓을 싣고 준비를 하는 것을 도왔다. 체크남방에 청바지, 운동화와
뒤로 묶은 머리의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충분히 매력 넘치는 그녀였다. 뜻이 있으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멀쩡한 재원이, 돈 한 푼 안 생기는 일에 이렇게까지 매달리는게 솔직히 잘 이해는 안 됐다. 청춘, 이라고
하니 너무 촌스러운 말 같아서 좀 그렇지만 어쨌든 이 젊은 나이에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고생
하는 모습을 보니 좀 안타깝기까지 할 정도로.

"고마워"
"아냐"

손을 털며 머리를 넘기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이지 매력적이었다. 처음 봤을 때 놀란 긴 속눈썹만큼이나.

"그거 붙인거야?"
"뭘?"
"속눈썹"

한참을 웃은 그녀는 내가 신기하다며 내 팔뚝을 쳤다.

"넌 무슨 남자애가 그런 걸 물어보냐"

나 역시 실없이 웃었다. 이어 오늘 함께 시위에 동참할 단체의 회원 아저씨 둘이 얼마 후 도착했고,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모두 함께 봉고에 올랐다. 난 다희의 옆 자리에 앉았다.



"탈북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인권 후진국 중국을, 규탄한다!"
"규탄한다! 규탄한다!"

상상 이상으로 대사관 앞의 경비는 엄중했다. 전경 중대가 죽 늘어서서 대사관 앞을 지키고 있었고, 그 앞
으로는 분대 병력이 그 앞을 왕복하며 이동 경비를 서고 있었다. 또한 그 옆엔 전경 버스가 세워져 있어서
보다 효율적인 경력 운용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 수백 개의 눈 앞에서 고작 넷이 초라하게 장비를 내려놓고 피켓을 든 채로 시위를 하는 모습은 열악
하다 못해 너무나 무력해보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보아야 하다못해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조차 눈길 한번 안 주는 상황이 안쓰러웠다.

"뜻이 없는데 굳이 동참할 필요는 없어. 옆에서 구경만 해도 좋아"

다희는 차에서 내릴 때 나에게 그렇게 말했고, 확실히 생각도 없이 그저 멍청하니 함께 소리지르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난 한발자국 떨어져 그들을 옆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김원일 소장과 다희 이외의 다른 둘은 탈북자라고 했다. 그 중 황씨라고 자신을 밝힌 이는 실제로 자신의
아내가 탈북을 시도했다가 중국에서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되었다고 했다. 아마 지금쯤 죽었을 것이라며
담담히 말하는 그였다.

"같이 안 할라니?"

황씨 옆에서 구호를 함께 외치던 최, 라는 이 역시 탈북자인데 그는 날 보고서도, 봉고에서도, 한 마디를
안 했지만 그저 멀뚱히 내가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자 슬쩍 피켓을 건내며 물었다. 난 잠시 고민하다
피켓을 받아들었다.

내가 피켓을 받아들고 동참하자 김 소장과 황씨는 물론이요 다희도 슥 돌아보면서 좋아하는 티를 냈다.
그렇게 씩씩한 척 해도, 결국 다들 '동료'가 그리웠던 것일까.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의 북송을 즉각 중지하라!"
"중지하라!"
"중지하라!"

다희는 어떤 연유에서 이 단체에서 활동하게 되었을까. 아까 잠깐 이야기를 나눈 바에 따르면 그녀는
독일에서 유학 중이다가 한국으로 들어왔고 그 이후 시민단체 활동을 잠깐 하다가 김 소장을 알게 된
이후로 이 단체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솔직히 김 소장을 바라볼 때의 그녀 눈빛을 보노라면 '존경' 그 이상의 감정이 느껴져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유학파 출신의 엘리트가 이런 작은 시민단체에서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혼신을 다하여 일하는 데
에는 분명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할텐데, 그 동기가 혹시 김 소장은 아닐까 싶어 나는 조금 떨떠름해
졌다. 혹시나 나의 이 감정은 질투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우스웠다.

"잠깐 쉬었다 하자"
"여기 물 좀 드세요"

김 소장의 건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실 벽에 걸린 사진만 봐도 알겠
지만 이 단체 활동에 관련해서 위험한 일도 많이 겪고,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과정에서 몸도 많이
상했다고 했다.

그렇게 다들 피켓과 확성기를 내려놓고 잠시 쉬는 와중에 검은 그랜저 한 대가 다가왔고, 정장 차림의
한 여자가 내렸다. 아까 다희가 말한 김현정 의원인 듯 했다. 그녀는 조금 초췌해보이는 기색이었지만
우리들 모두와 일일히 악수를 나누었고, 놀랍지만 시위에도 함께 동참해주었다. '국회의원'에 대한 내
편견이 처음으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들어가세요"
"그럼, 일 보라"

시위를 마치고, 김영정 의원과 함께 모두 저녁까지 먹고 우리는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짐을 내려
놓고 탈북자 출신 황씨와 최씨는 먼저 돌아갔다. 김 소장은 사무실 한 켠에서 김 의원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겠다며 우리도 들어가라고 했다.

"뭐 더 필요한 것 없으세요?"

커피를 내온 다희가 김 소장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됐어. 난 여기 의원님이랑 좀 더 국회 대북 인권 결의안 관련해서 이야기 좀 해야되니까, 둘 먼저
들어가. 뭐 둘이 또래인데 술 한잔 하던지. 잘 어울리던데, 허허. 오늘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어휴, 아닙니다.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다희는 함께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부네. 은근 춥다"

내 말에 다희는 "그러네, 춥다" 하면서 팔을 문질렀다. 왠지, 조금 어색한 느낌. 아까 밥 먹을 때만 해도
이것저것 잘 챙겨주고 분위기 좋았는데. 아, 그래서 김 소장이 잘 어울린다니 그런 말을 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뻘쭘해졌다. 다희도 그 말을 의식한건가.

"흠, 다희야"
"어"


울리지도 않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던 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난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

"술 한잔 안 할래?"

내일은 어차피 오전 수업도 없고 하니까, 라는 생각이기도 했고 생각해보니 내가 그녀와 더 친해지고
싶어도 딱히 명분이 없었다. 내가 이 단체에서 활동할 것도 아니고 이대로 돌아가면 그렇게 그냥 허무
하게 혼자 '그런 애가 있었지' 하고 생각하다 말 것 아닌가.

오늘 아니면 날이 없다 생각하니 그녀와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었다.

차림이야 수수해도, 보조개 쏙쏙 들어가고 당찬 눈의 예쁜 그녀가 솔직히 좋았다. 싹싹하기도 하고, 뭐
아무래도 이런 시민운동 같은 것과는 관계가 먼 나로서는 이런 활동 자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이런
부분은 좀 그렇기는 했지만 어쨌든 오늘 하루동안 옆에서 지켜본 그녀는 꽤나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김 소장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소주를 건내며 물었다. 그러자 다희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하고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원래는 중국에서 사업하시던 분인데, 거기서 탈북자들 보고 크게 느끼셔서 사업 다 정리하고 이 일을
하게 되신거래. 정말 목숨 내놓고 하셔. 직접 국경에서도 몇 번이나 몰래 들어가서 사람들 다 데리고
나오고. 그러다가 몇 번 크게 당한 적도 있고. 나라면 정말 그렇게 못할거야"
"근데 그렇게 하다보면 가족들도 걱정하지 않을까"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가족들은 다 차 사고로 돌아가셨어. 그때 소장님도 사고 때 갈비뼈가 폐를 찔러서 위험하기도 했고.
근데 소장님 말로는 그게 북한 공작원들 소행 같다는 거야. 중국 촌동네에서, 양쪽 차선이 다 뻥 뚫린
길에서 덤프트럭이 다짜고짜 덤벼 들었대. 여튼 그렇게 가족을 전부 잃으셨지. 사고를 낸 가해자가
사라져서 보상도 전혀 못 받았고"

솔직히 그 말이 그다지 믿기지는 않았지만, 만에 하나, 라고 생각해보니 아까 피켓 들고 시위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고보니 중국에 뭐 나중에라도 비자 발급 안되고 이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괜히
아차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다희는 픽 웃었다.

"걱정마, 난 여기서 3년 넘게 일했는데도 멀쩡하잖아"



함께 꽤 마셨다. 그녀는 생각보다 술이 꽤 센 듯 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치고 술 약한 사람
없어" 라며 넙죽넙죽 받아마시는 그녀를 보노라니, 어쩌면 나보다도 술이 세지는 않을까 싶었다. 아니,
센 게 틀림없다.

"우억, 우우우억!"

몇 병을 마셨던가. 돌아가던 길에 난 그만 오바이트를 하고 말았다. 괜히 그녀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괜히 쏘맥 농도를 높게하는 등 오바했지만, 그래서 더 빨리 취했던 것인지 오히려 평소에 비해 그리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오바이트를 했다.

"괜찮아?"
"어, 미안"

그녀가 등 두드려주며 손수건을 건냈다. 보통은 그 반대가 정상 아닐까 싶은데. 난 손수건을 받아들고선
입을 슥 닦았다.

"미안, 이건 내가 빨아다 줄께"
"아니야 괜찮아"
"아냐, 정말 빨아다줄게"

겨우 한숨 돌린 난 다시 그녀와 함께 걸었다. 꼴 사납게 되었구나 싶어서 조금 풀이 죽었다. 차라리 그냥
적당히 마시고 헤어졌으면 다음을 기약하기도 하련만.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그때였다.

"속 많이 안 좋을텐데, 어차피 집에 가봐야 너도 자취한다며. 아침에 국 끓여줄 사람도 없을텐데 내가
북어국 끓여줄게 먹고 갈래?"

진짜로 요 몇 달간 들은 말 중에 제일 기쁜 말이었다.



그녀의 원룸은 아기자기하면서도 꽤 컸다. 말이 1.5룸이지 내 원룸의 거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거기에다
복층이기까지 해서 정말 넓어보였다.

"방 좋다"
"그러면 뭐해, 맨날 와서 잠만 자고 가는데"

여자 방에서는 그저 마냥 향긋한 냄새만 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아 물론 향기와 냄새 둘 중
에서라면 당연히 향기 쪽에 가깝지만, 책상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어놓은 티셔츠나 현관 구석 쓰레기 봉투
등에서 솔솔 올라오는 쿰쿰한 냄새 역시 없지는 않았다.

다행히 침대 쪽에서는 향기만 가득했지만. 그 바로 옆의 화장대 덕분일까.

"맨날 화장도 안 하고 이렇게 살아.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화장품 같은 것에 더 관심이 가. 쓰지도 않는
화장품만 모아제낀다니까"

그러고보니 내 전 여친의 화장품들에 비해 그 종류와 양이 훨씬 풍성해보였다. 근데 그렇다면 이런 것도
그렇고, 생활비는 다 어떻게 충당하는 것일까.

"생활비는 집에서 보태주시는거야?"

다희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끔 소장님이 차비라도 하라고 얼마씩 주시긴 하는데, 많이 모자라거든. 당장 협회 꾸려갈 돈도
없는데. 그래서 집에 손을 벌려"

조금 있는 집 자식인가. 하기사 이런 방이면 월세만 해도 만만치 않을텐데.

 



"미안,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 이거라도 입을래?"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에게 그녀는 수면바지와 자신의 하늘색 후드티를 내밀었다. 난 그냥 다시 원래
입었던 옷을 입을까 했지만, 수면바지를 손에 든 채로 기대에 찬 표정의 그녀를 보며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역시나 내가 그 옷들을 입고 나오자 빵 터져서 바닥을 뒹구는 그녀. 민망하긴 해도, 그녀가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니까 썩 나쁘지 않았다.

다희는 내가 샤워하는 동안 물을 올려놓고 정말로 북어국을 끓이고 있었다.

"자기 전에 조금 먹고 자. 아침에 먹는 거랑은 또 달라. 그럼 물 넘치면 불 끄고, 나 씻고 나올께"

그녀의 왠지 들뜬 표정을 보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다희는 생각보다 꽤 거침없는 여자였다. 하기사, 내성적이고 소극적이기만 한 여자라면 그렇게 작은 시민
단체에서 목에 핏대 올려가며 큰 소리로 소리칠 수도, 모두가 외면하는 가운데 간절히 서명을 호소할 수도
없겠겠지. 애시당초 유학파에 안정이 보장된 길을 버리고 이런 일을 하고 있지도 않을테고, 무엇보다 처음
만난, 뭐 하나 그리 썩 대단할 것도 없는 나를 집으로 끌어들이지도 않았을테고.

그런 만큼이나 침대에서도 꽤나 적극적이고, 내가 기존에 만났던 그 어느 여자보다 더 열정적이었다. 아까
낮에 본 싹싹하고 다정한 그 모습과, 나의 그것을 입으로 열심히 서비스 해주는 그 모습이 대비되어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잘 맞는다고 해야하나. 그녀도 나도 아주 좋았다. 정말 좋았다.

 

"사실 많이 외로웠어. 제 발로 우리 협회 찾아온 사람도 거의 없고, 있어봐야 관계자들 아니면 정말 또라이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뜻밖에 다희는 자신도 거의 한계에 와 있다고 털어놓았다. 꽤 열린 분들이라 처음에는 시민 단체활동을
하는 것에 긍정적이던 부모님들도 이제는 슬슬 접으라고 압박을 주고 있었고, 별 다른 성과도미래도 없어
보이는 이 활동에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사실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작년 즈음해서 중국과 북한 관계가 다소 냉각된 이유도 있고, 국제사회의 압박도 있고 해서 탈북자 북송
문제에 대해서 중국도 조금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꾸준한 활동 덕분에 종종 언론에서도
다뤄지고 해서, 가끔 정치계 인사나 유명 정치 평론가, 논객들도 사무실에 들르곤 한다고.

"그렇게 신문에서나 볼법한 사람들 보는 재미로 겨우 지금까지 해오기도 한 거고"

하지만 그래봐야 자신이 정말 이쪽 일을 앞으로 평생 해나아갈 것인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다, 현실이 현실인 만큼 걱정도 되고 그렇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무어라 답해야 좋을지 잠깐 고민했지만, 그 어떤 대답을 한다고 해봐야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난 그저 그녀를 슥 품에 끌어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그게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취재는 그럼 다 한거야?"

다음 날, 느즈막히 일어난 우리는 마치 오래된 연인이라도 된 마냥 함께 씻고, 욕실에서 한번 더 관계를가
졌다. 그리고 같이 집을 나서, 까페에서 베이글에 커피를 마시며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다희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 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신문부라고 한 것도 뻥이고, 사실 그저 교양 과목
레포트 때문에 조사차 나온 것 뿐이라고.

하지만 의외로 다희는 쿨하게 "그랬구나" 하고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그게 전부야?"
"그럼, 화라도 내길 바랬어?"
"그건 아니지만…혹시 알고 있었어?"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기자답지 않다고는 생각했지. 보통 학생 기자들이 더 하거든. 자기가 정말 무슨 베테랑 기자
라도 된 줄 아는 애들이 많아서. 나도 예전에 그랬고. 넌 그게 전혀 없어서 더 좋았어"
"그랬구나"
"그리고…"

다희는 그때, 시위에 나갔을 때 함께 피켓을 들어준 내가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정말, 고마웠어"

마치 이제는 더이상 못 볼 사람을 두고 하는 말 같아서 괜히 마음이 아파진 나는 그녀에게 나도 당장은
좀 어려울지 몰라도, 방학 시즌이 되면 그때는 꼭 다시 참여하겠다며 약속했다. 딱히 내 말을 그리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런 말이라도 고맙다며 인사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곧 나는 소개팅으로 다른 여자친구가 생겼고, 시험과 과제에 치여 다희와의 약속 역시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날, 여자친구와 크게 싸운 날 집으로 일찍 돌아와 9시 뉴스를 보다가
국회에서 대북 인권 결의안이 부결되었다는 소식에 문득 그 날의 기억이 떠올라 다음 날 바로 사무실로
뛰어갔지만-

김 소장님은 건강 문제로 당분간 자택에서 쉬기로 하셨고, 다희 역시 이미 관둔지 꽤 됐다고 했다. 연락
처를 받아서 전화를 해보았지만 그녀의 전화는 없는 번호라고 나올 따름이었다.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민단체 활동은 시작도 못 해보하고 끝나버렸다. 또 다희와의 인연은그
날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그 날 밖에 없었던' 것으로 허무하게 종결되었고 남은 것이라고는 그녀의
손수건 뿐이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탈북자 관련 뉴스를 보다보면 종종 그녀가 생각난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당차고 싹싹하며 매력 넘치던 그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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