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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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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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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출근하고 아들 학교 보내고 고요한 방 안, 저어기 큰 길가 차 소리가 샷시와 커튼을 뚫고 희미하게
들려올 적, 어느새 귓 가에는 시계소리마저 들려오고 그 적적함이 너무 싫어 혼자 무릎을 웅크리고 앉아
아침 드라마 보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한참 눈물 적시며 울다가 겨우 무릎 세워 일어난 다음 거실의 PC
앞에 앉아 첫 사랑에게 일기쓰듯 닿지 않는 이메일 보내는 것이 소일거리인 그녀.

남편 졸라서 산 커피 메이커로 커피 내려마시고 식탁에 얼굴 묻은 채 '난 왜 사는걸까' 고민하다 또 지금쯤
회사에 도착했을 남편한테 [ 사랑한다고 말해줘 ] 문자 보내지만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다시 우울해하다가
싱크대 옆에서 키우는 강낭콩 화분에 물 주며 그저 잔잔히 슬픔을 달래는 그녀.

방 청소를 위해 청소기를 거실에서 가져오다가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남아있는 남편 향기 맡으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흐르는데 참아야지, 생각하는 순간 폭포수처럼 터지는 울음. 한참 그리 울다가 겨우
눈물 그치고 친정에 전화하지만 엄마는 받지 않고…

문득 생각이 나, 혼자 거울 앞에 서서 사놓고 딱 두 번 입어본 섹시한 란제리 입어보다 벗고 한숨 쉬며 요즘
탈수 과정에 유독 심하게 털털대는 세탁기 A/S 전화를 거는 그녀.

방 청소를 마치고 간만에 마트에 쇼핑하러 다녀오는 길에 동네 서점에서 간만에 처녀 시절 미용실에서 자주
보던 여성잡지를 한 권 사서 집에 와 펴보는데… 공감가는 내용도 하나 없고 난 도대체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에 아득한 짜증과 무기력감이 전신을 휘감고…

한숨 내쉬며 다시 TV를 켜는데 어느새 12시 45분, 생각해보니 빨래 돌려놓고 다 돌아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싶은데 그보다 배가 고파 밥을 먹긴 먹어야 되는데 만사 귀찮다…그래도 학교 마치고 돌아올 아들 생각에 밥
지어여지, 하고 힘없이 일어나노라니 저혈압에 핑 하고 어지러움증이 느껴지고 속도 더부룩하니 오만 일을
다 하기가 싫어지는 그녀.

우편함에서 가져온 공과금 용지들과 카드고지서. 공과금 그냥 자동이체 시키면 편한데 전화를 해야지, 해야지
하고 안 한게 벌써 2년째. 카드 고지서 죽 읽어보면 한숨이 죽 나오고, 도대체 뭐 크게 쓴 것도 없는데 달달이
이렇게 많이 쓰니까 난 정말 살림 솜씨빵점인가 생각도 들고…

눈에 들어오는 가스 밸브. 귓가에 어른거리는 남편 잔소리에 어휴, 한숨 쉬며 일어나 다시 밸브를 잠그는데
잠그고보니 또 싱크대 이곳저곳의 더러운 자국들. 묵묵히 지우노라니 꼭 내 삶이, 내 인생이 이렇게 어딘가에
묻은 얼룩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는 그녀.

결혼 전후해 다 멀어진 통에 친구라고 할 만한 애들도 없고, 동네 아줌마들은 너무 아줌마스러운데다 남편도
언제부터인가 예전같지 않고, 이 우울하고 답답함에 그저 침대에 멍하니 드러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싶지만 이
와중에도 다시 빨리 빨래 널리 않으면 쉰 내 나겠다 하는 생각에 너무너무 짜증나는 몸을 일으키고…

이 모든 짜증과 우울함,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며 답답한 삶의 쳇 바퀴에…그저
살짝 열린 창 틈 사이 구름 한점 없이 보이는 푸른 하늘에 한 마리 새가 되어 훨훨날고만 싶은 것은 내가 외로
운 탓일까 봄이 온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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