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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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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 개운하게 몸을 씻고 컴퓨터 앞에 앉노라니
메일함에는 오늘도 수십통의 스팸 메일이 쌓여있다.

"흠"

그러나 그 와중에는 눈에 띄는 제목의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 스박님께 긴히 드릴 문의가 있습니다 ]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열어보니 그 내용은 뜻밖의 것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소 스박 님의 약 빤 똥글을 열심히 애독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다소 약을 안 하시는 듯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빠시는 것 같더군요.

  그보다, 갑작스레 이런 메일을 드려서 조금 놀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평소
  싸시는, 아니 쓰시는 글을 보노라면 그래도 현실 기반의 약빤 글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 아무래도 레드
  코어나 블루 아이즈를 사용하시는 것 같은데 혹시 구하시는 루트가 있으시면 저에게도 소개시켜 주실
  수 있는지요?

  아참,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인터넷 음지에서 합성 영상을 만들어 미투브에 주로 올리곤 하던 병신
  입니다. 평소에 저는 레드 코어를 주로 빨고 가끔 블루 아이즈나 데스 헤븐을 섞어서 하는 편인데 안타
  깝게도 저에게 약을 공급하던 형님이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저 세상 가는 바람에;;;

  약물을 구할 루트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문득 스박님이 생각 나더군요. 아무래도 스박님
  처럼 대놓고 약빤 글 쓰시는 분이시라면 뭐 약물 구하시는 거 정도는 뭣도 아니리라 생각해서…아니
  암만 그래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루트 알선하는게 아무래도 부담이 오시겠지만 오죽하면 제가 
  이런 글을 보낼까 하고 생각하시고, 설령 안된다고 하더라도 메일로 안된다는 답장이라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혹시 짭새나 언더 애들이 함정 파는 것으로 오해하실까 싶어서 첨부파일에 제 주민등록증과 약 빤
  인증 사진도 같이 올렸습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이런 무례한 메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약물이라… 뭔 개헛소리인가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컸다. 인터넷에서 소위 '약 빨았네' 이런
댓글을 많이 보기는 했다만, 진짜로 약물 빨고 창작을 하는 새끼들이 있단 말인가?

아 물론 연예인들이 종종 대마나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야 뉴스를 통해서도 흔히 접하는 케이스고, 
좋지 않은 약물들에 이런저런 루트로 손을 대는 병신들이야 몇 다리 건너서라도 이야기를 접하기는
했다만…레드 코어니, 블루 아이즈니, 데스 헤븐이니, 이건 뭐지.

호기심이 동했다. 좋은 글 소재가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정말로 이런 약물 빨고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새끼들이 있다니, 하는 놀라움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에게 만나자는 답장을 보냈다.
물론 나는 약물도 손대지 않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줄도 잘 모르겠다는 내용을 솔직히 곁들여서. 




"후우, 정말이군요…놀랍습니다. 스박 님 같은 정도의 미친 똥글러라면 당연히, 뭐 레드 코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샤워 트립 정도는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만나자마자, 그는 인사 대신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 소회를 털어놓았다. 내가
웃으며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자세히 가르쳐달라고 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같이 합성 드럭을 하는 놈들은 눈을 보면 알죠. 장기간 약 빤 놈들은 눈알이 노랗습니다. 심한
케이스의 경우에는 홍채의 색까지 변하는 놈들도 있고. 뭐 그 정도쯤 되면 이미 병원 가야되는 놈들
이지만. 스박님은 보아하니 정말 안 하시는 분 같네요. 아니 정말 스박님 맞습니까?"

그는 다시 한번 나를 의심했지만, 휴대폰 속의 해바라기 사진을 보여주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스박님 블로그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해바라기 꽃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여튼, 아, 정말
놀랍습니다. 약도 안 빨고 그런 미친 글들을 쓰시다니. 정말 스박님은 미친 개또라이가 틀림없네요"

그 말을 한 직후 그는 "아, 저희 사이에서는 '또라이'가 일종의 칭찬이랄까, 뭐 똘끼, 천재성 그런
의미로 쓰이곤 합니다. 절대 욕 한 것이 아닙니다" 하고 사과를 했다. 난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흐음…"

난 집으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선물이라며 주고 간 '레드 코어' 라는 이름의
그 드럭 한 알 때문이다. 솔직히 기대하고 왔는데 정말로 내가 '바닐라'라서 너무 아쉽단다. 그러면서
마지막 남은 돗대, 아닌 '돗알' 한 알을 나에게 주었다.

"아, 아뇨, 됐습니다. 저는 이런 거…안 합니다"
"버리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드리는 겁니다"

그의 말로는 한 두알 정도는 괜찮단다. 물론 그가 처음 눈알 색이 노랗네 어쩌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
곧바로 되물었지만 그건 진짜 어지간히 심하게 쳐해서 중독된 놈들 이야기라며 말을 바꾼다. 딸딸이
도 심하게 하는 새끼는 몸 좆되지만 솔직히 그 정도로 하는 새끼가 얼마나 있냐면서 말이다.

조금 못 미덥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주 중독성이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대마…아니, 삼
겹살 정도 될 겁니다. 그 정도로 중독성은 약해요" 하고 비유하는 그의 말에 일단은 뭐 믿어보기로
했다. 100%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이 약의 효과는 어떤 것일까.

"글쎄요, 저도 미투브에서는 약 좀 빠는 새끼로 유명한데, 사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디게 재미없고
얌전한 놈입니다. 평소 생각하는 것도 소심하고 평범하고. 오히려 너무 그러다보니까 반향으로 재미
없는 삶의 탈출구를 찾다찾다 이렇게 된 거지만…

박스님 같은 또라이 새…아, 여튼 뭐 남다른 분들이 이 약을 하시면 정말 어떤 작품이 나올지 솔직히
정말 기대가 되네요. 물론 사람마다 약빨이라는게 좀 다르긴 하지만" 

라는 그의 부추김에 나까지 호기심이 강하게 들었다. 문득 든 생각에 바로 되물었다.

"혹시 이 약을 하는 유명인들 있나요?"

순순히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몇 명의 유명 웹툰 작가들과 인터넷에서 개또라이로 유명인 몇몇의
이름을 들려주었다. 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랬구나. 과연. 

새삼 거기까지 다시 기억을 더듬은 나는 도저히 그 호기심과 충동을 이겨낼 수 없었다. 곧바로 약을
물과 함께 삼켰고, 한올 한올 풀려나가는 나의 정신줄을 일부러라도 놓아버렸다.




여기까지가 지난 1년 간의 이야기다. 나는 요즘 레드 코어나 블루 아이즈 같은 것은 이제 하도 빨아서
약빨도 별로 안 듣는다. 데스 헤븐이나 아이스 쿼드 코어 정도는 되어야 겨우 글을 쓸 의욕이라도 날
정도다. 

오늘도 나는 '그'에게 메일을 쓴다. 약 좀 구해달라고. 그렇다. 그가 처음 나에게 메일을 보낸 진정한
이유는, 약이 떨어져서 약 좀 구해달라기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약에 호기심을 보일 만한' 개호구
등신을 찾기 위한 한 편의 잘 연출된 연극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처음에 왜 그랬습니까?"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 바닥이 그렇죠. 장담 하나 해볼까요? 스박님도 앞으로 몇 달 후면 저처럼 약 팔고 다니실 겁니다.
저는 바로 그게 기대가 됩니다. 어떤 식으로 약 팔고 다니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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