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오늘 몸이 너무 안 좋다. 내일…이나 모레 보자. 아니면 주말에"
퇴근길 택시 안, 선영의 영화 제안을 거절했다. 간만의 제안을 거절한 것임에도, 고맙게도 서운함 대신 걱정부터
해주었다.
"오빠 목소리 완전 갔네요. 힘내요 오빠, 약 지어먹어요. 약 있어요?"
"어, 레몬"
"그게 뭐야. 잘 챙겨먹어요. 약도 먹고 밥도 잘 챙겨먹구. 아 속상하다. 오빠 왜 아프고 그래요"
"흐…괜찮아. 금방 나을거야"
걱정해주는 그녀의 목소리가 고맙다.
"알았어요, 그럼 얼른 들어가서 푹 쉬고, 대신에 나으면 주말에 영화 꼭 봐요 꼭!"
"어, 알았어"
전화를 끊고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과 함께 숨이 가빠지고, 가래가 섞인 기침을
한다. 주머니 속 구겨진 휴지로 입을 막았던 손을 닦아내고 잠깐 숨을 고른다. 열까지 나는 것 같다. 눈을 감았
다. 얼른 집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손님, 어디서 세워드릴까요?" 하는 기사님의 목소리에 겨우 깨어서 내렸다. 결재를 하고 택시 문을 여니까 칼
바람에 다시 한번 목구멍 찢어지는 고통스러운 기침이 흘러나온다. 아프다. 눈이 맵다. 열이 나는 것 같다.
'배도 고픈데'
집 바로 근처의, 언제나처럼 그 자매가 운영하는 까페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잔과 머핀 하나를 산다. 쿠폰에
도장을 찍어주던 '언니'가 묻는다.
"감기 걸리셨어요?"
"…네, 장난 아니네요"
"저런…요즘 날씨 너무 춥잖아요. 아, 이거라도 드세요"
그녀가 내민 귤 하나, 아니 두 개.
"아하…하, 고맙습니다"
"얼른 나으세요"
"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머리가 어지럽고 피곤하다. 장난스러운 농담 한 마디 못 건내고 인사만 겨우 하고는 가게를 빠져나왔다. 아,
몸이 너무 안 좋다. 겨우 칼바람을 뚫고, 몇 번의 목구멍을 뜯어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기침을 토해낸 후에 겨우
집까지 간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몇 초가 이다지도 길게 느껴질까.
문을 열고 도착해서 간신히, 신발을 벗은 후 정말 커피와 머핀만 주방에 살짝 놓아두고 코트도 안 벗고 바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빙글빙글 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꽤 있다. 해열제가 있던가. 냉장고 구석 어디
엔가 있을텐데. 하지만 꺼낼 생각도 못하겠다. 형광등 불빛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일어나서 불을 끄고, 약을
챙겨먹을 생각은 하지 못하겠다. 그저 팔로 눈만 가릴 뿐이다.
"아으…"
입에서 신음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잠에 빠져든다.
여전히 미열은 있지만 그래도 한숨 자고 나니 조금은 나은 것 같다. 여전히 두통과 안구 뒤쪽이 욱씬거리고 온
몸이 무겁고 뻐근하지만 몸을 일으켰다. 소변이 급하다. 몸을 일으켜 세우니 온 몸에 시름시름 통증이 쏟아져
내린다. 노인처럼 신음성을 터뜨리며 화장실 가서 소변을 본다. 샛노란 오줌이다. 눈이 뻐근하다. 먹은 것도
없지만 입이 텁텁해서 억지로 겨우 양치질을 했다. 양치질을 하면서도 배가 고팠다.
세수까지 마치고 화장실을 나와 뭐 먹을 것이 없나 두리번 거리다 아까 사온 머핀을 새삼 떠올렸다. 게걸스레
다 식어빠진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었다. 몇 시인가 궁금해 휴대폰을 확인했다. 밤 12시 반. 생각보다는 그래도
많이 안 잔 모양이다. 머핀 하나와 커피 반 잔을 비우니 그래도 좀 낫다. 냉장고에 뭐 더 먹을게 없나 뒤졌지만
술병들 외에는 딱히 뭐가 없다.
찬장을 뒤지다 스낵면 하나를 발견했지만 라면 끓여먹는 것도 지금은 귀찮다.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나온다.
서브 데스크 위의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마우스를 흔든다. 구형 맥미니가 잠시 버벅거리더니 깨어난다. 살짝
더 기다리다 음악을 재생시키고는 스캔드를 켰다. 지금 형광등을 켰다가는 머리가 깨지도록 아플 것 같다.
"음…"
모니터에 띄워진 사진은 지난 12월에 혜정이랑 다녀온 미술 전시회에서 그녀와 찍은 사진이다. 서울 시립
남서울 미술관의 인공정원 전. 전시회는 별게 아닌데, 연말이라서 외로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
날 난데없이 우리 집 구경을 시켜달라고 졸랐고, 나는 OK했다.
…그 후로 며칠간 꽤 즐거웠지만 '크리스마스를 함께 할 수 없는 남녀'의 사이는 결국 거기까지. 이후로는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기로 했다.
"으음"
혼자 또 신음 아닌 신음을 내다가 인터넷을 잠깐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길게
한숨을 쉬며 다시 냉장고를 열었다. 며칠 전에 마트에서 사둔 봄베이 진을 꺼내 진 토닉을 만들었다. 감기
걸렸는데 뭔 술이냐 싶지만, 그냥 가볍게 한잔하고 푹 자고 싶었다.
다시 양치질을 하고, 모든 옷을 훌렁훌렁 벗고 침대에 누웠다. 눈이 쿡쿡 쑤신다. 그래도 눈을 감는다.
그리고 내일의 지긋지긋한 출근과, 쌓여있는 좆같은 업무를 떠올리며 다시 겨우 눈을 뜨고 휴대폰으로
알람을 맞춰놓는다. 그제서야 정말로 다시 눈꺼풀을 감고, 아직은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다 나아서 몸이 좀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그제서야 새삼 방이 무척 건조하다는 사실을 느꼈지만 이제는 다시 일어나 뭘 할 수 있는 기력이 더이상
없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내일 아침도 여전히 목구멍이 찢어질 듯한 건조함 속에서 아침을 맞이하겠
구나 하는 허탈함만을 끌어안고 잠을 청해본다.
퇴근길 택시 안, 선영의 영화 제안을 거절했다. 간만의 제안을 거절한 것임에도, 고맙게도 서운함 대신 걱정부터
해주었다.
"오빠 목소리 완전 갔네요. 힘내요 오빠, 약 지어먹어요. 약 있어요?"
"어, 레몬"
"그게 뭐야. 잘 챙겨먹어요. 약도 먹고 밥도 잘 챙겨먹구. 아 속상하다. 오빠 왜 아프고 그래요"
"흐…괜찮아. 금방 나을거야"
걱정해주는 그녀의 목소리가 고맙다.
"알았어요, 그럼 얼른 들어가서 푹 쉬고, 대신에 나으면 주말에 영화 꼭 봐요 꼭!"
"어, 알았어"
전화를 끊고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과 함께 숨이 가빠지고, 가래가 섞인 기침을
한다. 주머니 속 구겨진 휴지로 입을 막았던 손을 닦아내고 잠깐 숨을 고른다. 열까지 나는 것 같다. 눈을 감았
다. 얼른 집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손님, 어디서 세워드릴까요?" 하는 기사님의 목소리에 겨우 깨어서 내렸다. 결재를 하고 택시 문을 여니까 칼
바람에 다시 한번 목구멍 찢어지는 고통스러운 기침이 흘러나온다. 아프다. 눈이 맵다. 열이 나는 것 같다.
'배도 고픈데'
집 바로 근처의, 언제나처럼 그 자매가 운영하는 까페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잔과 머핀 하나를 산다. 쿠폰에
도장을 찍어주던 '언니'가 묻는다.
"감기 걸리셨어요?"
"…네, 장난 아니네요"
"저런…요즘 날씨 너무 춥잖아요. 아, 이거라도 드세요"
그녀가 내민 귤 하나, 아니 두 개.
"아하…하, 고맙습니다"
"얼른 나으세요"
"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머리가 어지럽고 피곤하다. 장난스러운 농담 한 마디 못 건내고 인사만 겨우 하고는 가게를 빠져나왔다. 아,
몸이 너무 안 좋다. 겨우 칼바람을 뚫고, 몇 번의 목구멍을 뜯어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기침을 토해낸 후에 겨우
집까지 간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몇 초가 이다지도 길게 느껴질까.
문을 열고 도착해서 간신히, 신발을 벗은 후 정말 커피와 머핀만 주방에 살짝 놓아두고 코트도 안 벗고 바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빙글빙글 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꽤 있다. 해열제가 있던가. 냉장고 구석 어디
엔가 있을텐데. 하지만 꺼낼 생각도 못하겠다. 형광등 불빛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일어나서 불을 끄고, 약을
챙겨먹을 생각은 하지 못하겠다. 그저 팔로 눈만 가릴 뿐이다.
"아으…"
입에서 신음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잠에 빠져든다.
여전히 미열은 있지만 그래도 한숨 자고 나니 조금은 나은 것 같다. 여전히 두통과 안구 뒤쪽이 욱씬거리고 온
몸이 무겁고 뻐근하지만 몸을 일으켰다. 소변이 급하다. 몸을 일으켜 세우니 온 몸에 시름시름 통증이 쏟아져
내린다. 노인처럼 신음성을 터뜨리며 화장실 가서 소변을 본다. 샛노란 오줌이다. 눈이 뻐근하다. 먹은 것도
없지만 입이 텁텁해서 억지로 겨우 양치질을 했다. 양치질을 하면서도 배가 고팠다.
세수까지 마치고 화장실을 나와 뭐 먹을 것이 없나 두리번 거리다 아까 사온 머핀을 새삼 떠올렸다. 게걸스레
다 식어빠진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었다. 몇 시인가 궁금해 휴대폰을 확인했다. 밤 12시 반. 생각보다는 그래도
많이 안 잔 모양이다. 머핀 하나와 커피 반 잔을 비우니 그래도 좀 낫다. 냉장고에 뭐 더 먹을게 없나 뒤졌지만
술병들 외에는 딱히 뭐가 없다.
찬장을 뒤지다 스낵면 하나를 발견했지만 라면 끓여먹는 것도 지금은 귀찮다.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나온다.
서브 데스크 위의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마우스를 흔든다. 구형 맥미니가 잠시 버벅거리더니 깨어난다. 살짝
더 기다리다 음악을 재생시키고는 스캔드를 켰다. 지금 형광등을 켰다가는 머리가 깨지도록 아플 것 같다.
"음…"
모니터에 띄워진 사진은 지난 12월에 혜정이랑 다녀온 미술 전시회에서 그녀와 찍은 사진이다. 서울 시립
남서울 미술관의 인공정원 전. 전시회는 별게 아닌데, 연말이라서 외로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
날 난데없이 우리 집 구경을 시켜달라고 졸랐고, 나는 OK했다.
…그 후로 며칠간 꽤 즐거웠지만 '크리스마스를 함께 할 수 없는 남녀'의 사이는 결국 거기까지. 이후로는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기로 했다.
"으음"
혼자 또 신음 아닌 신음을 내다가 인터넷을 잠깐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길게
한숨을 쉬며 다시 냉장고를 열었다. 며칠 전에 마트에서 사둔 봄베이 진을 꺼내 진 토닉을 만들었다. 감기
걸렸는데 뭔 술이냐 싶지만, 그냥 가볍게 한잔하고 푹 자고 싶었다.
다시 양치질을 하고, 모든 옷을 훌렁훌렁 벗고 침대에 누웠다. 눈이 쿡쿡 쑤신다. 그래도 눈을 감는다.
그리고 내일의 지긋지긋한 출근과, 쌓여있는 좆같은 업무를 떠올리며 다시 겨우 눈을 뜨고 휴대폰으로
알람을 맞춰놓는다. 그제서야 정말로 다시 눈꺼풀을 감고, 아직은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다 나아서 몸이 좀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그제서야 새삼 방이 무척 건조하다는 사실을 느꼈지만 이제는 다시 일어나 뭘 할 수 있는 기력이 더이상
없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내일 아침도 여전히 목구멍이 찢어질 듯한 건조함 속에서 아침을 맞이하겠
구나 하는 허탈함만을 끌어안고 잠을 청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