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살이 에이도록 추운 어느 겨울날. 경찰서 입초에서 나는 집으로 보낼 편지 한 통 써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흐으으으, 추워죽겠네'
말년 윤지훈 수경이 이빨을 조져서 경비계에 남는 난로 하나를 더 가져와 난로를 2개나 깔아놓았음에도
초소 안은 여전히 추웠다. 난로 덕분에 나름 이 안 공기는 훈훈했지만, 발바닥이 얼어붙을 것처럼 시멘트
바닥이 차가웠다. 머리는 띵하니 잠은 오고. 공기가 너무 탁해서 살짝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칼 바람이
들어오는 통에 창문은 잠깐잠깐 열 뿐이다.
'이러다 동상걸리지 씨발'
경찰서 본관에서 입초까지 그 한 기백미타 거리 오는데 단화 속 발가락이 곱을 정도로 춥기도 참 추웠던
그 날. 단화 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난로로 녹이다 오늘도 무전 음어와 경찰서 직원 차량 번호를 다시
복습하듯 암기하고 있노라니 또 잠이 그렇게나 몰려온다. 잠 깨려고 편지 한 통 썼지만 역시나 몰려오는
잠을 멈출 수는 없다.
'딱 10분만'
나는 그렇게 그만 꾸벅꾸벅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갓 일병 단 주제에 쳐졸다니, 군기가 빠져도 이만저만 빠진게 아니지만, 그 추운 날 하루종일 고생
하고 난로를 2개나 틀어 산소가 부족한 이 좁은 입초에서 근무를 서려니 잠이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얼마나 졸았을까.
똑똑똑
누군가 초소 옆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잠결에도 그 소리를 듣고 옆 지구대에서 직원이 지나가다가 나
조는거 보고 깨우나 싶어, 식겁하며 잠 안 잤다는 듯 몸을 일으키곤 바로 경례를 올려붙이는데… 어?
"저기요…"
창문이 빼꼼히 밖에서 열리더니 바가지 머리, 아니 자갈치 머리를 한 여자애 하나가 말을 건다.
"저기요 오빠, 나 여기서 잠깐만 있으면 안 되요?"
당시만 해도 개찌끄래기 짬밥이었던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어 들어와"
하고 그녀를 초소 안으로 들였다. 척 보기에도 가출청소년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행색이 꾀죄죄 하고
엉망이었다. 조금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며 뒤에 접어놓았던 의자 하나를 펴서 난로 옆에 놓아주었다.
"엄청 춥지?"
"쓰흐흡, 네에…"
이빨을 다 덜덜 떨며 대답하는 그녀. 한, 열 대여섯살쯤 되었을까. 뭘하고 돌아다녔는지 얼굴에 검댕
같은 것이 묻어있고 심지어 입가에는 침 말라붙은 허연 자국까지 있었지만 어쨌든 자세히 들여다보니
참 앳되어 보였다. 두툼한 잠바를 하나 입긴 했다만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별 도움도 안 되었으리라.
"오빠 나 물 좀 주면 안되요?"
"어, 자"
목도 꽤나 말랐던 모양인지, 패트병에 담아온 미지근한 물을 종이컵에 따라 한잔 주니 벌컥벌컥 참
맛나게도 들이킨다.
"이걸로 얼굴 좀 닦아"
아까 서랍 뒤지다가 발견한 물티슈-보나마나 조영필 상경거겠지- 한 장을 뽑아 그녀에게 건내주었다.
물티슈로 조금 얼굴을 정리하자 훨씬 더 보기좋았다. 뭐 그리 썩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만, 안쓰러워
그랬을까 그 웃는 얼굴이 나름 귀엽긴 했다. 이름은 민정이라고 했다. 조민정.
하지만 어쨌거나, 이 기집애를 초소 안에 들이고 나니 걱정도 되었다. 오늘 당직 서는 직원이 순찰을
돌다가 얘를 보기라도 하면, 이래저래 난감해지는 것이다. 오늘의 당직은 유미경 경장.
여경인 만큼 좋게좋게 "그래, 몸 좀 녹이다 가라"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반면에 그만큼 괜히 지랄을
떨지 어떨지 알 길이 없다. 가뜩이나 맨날 교통계 윤수일 수경은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대며 내무반
으로 들어와서는 그녀를 떠올리며 "그 좆씨발년 죽여버릴까보다, 아 존나 개씨발!" 하며 성질을 피우
는데. 겪어보진 못했지만 어지간한 년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깡촌 3급서인 우리 경찰서의 개막장 직원들은 2시간마다는 커녕 지 좆꼴리는대로 아무 때나
대충 순찰함 싸인을 하는 것이 불행이자 다행이고, 설마 이 날씨에는 더더욱 안 오겠지 싶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은 계속 불안했다.
"오빠는 혼자 여기서 보초서는 거에요?"
"어"
"하루종일?"
"아니. 2시간동안"
"졸립겠다"
"어, 피곤하지"
"오빠는 몇 살이에요?"
"스물 한 살. 넌?"
"열여섯살이요"
"중딩이야?"
"학교 안 다니는데…"
배시시 웃는 얼굴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온다. 문득 '몇 시나 됐지?' 하고 싶어 시계를 보니, 아 벌써 새벽
3시 28분. 약 30분 후, 슬슬 교대를 할 시간이다. 아쉬웠다.
열여섯살짜리 꼬맹이라고는 해도 기집애, 무엇보다 하루종일 내내 갈굼과 명령과 지랄 속에 인간대우 못
받고 쉼없이 어디 마음 기댈 곳 하나 없이 굴러다니다가 이렇게 누군가와 따뜻한 대화를 주고받으니 그게
너무 좋았다.
"밥은 먹고 다니냐? 너 가출했지?"
"대충…먹고 다녀요. 그리고 가출한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다 집을 나갔어요"
"왜?"
이야기를 들어보니 민정의 집은 흔한 막장 집구석이다. 엄마는 이미 몇 년 전에 나갔고, 아빠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존재인데 정말로 그나마 요새는 몇 달씩 집에 안 들어오고 그러다보니 반 고아나 다름
없는 상태였다. 아 불쌍한 기집애.
뭐라도 주고 싶었지만 딱히 줄 게 없었다. 그저 농담 따먹기나 조금 하고 있노라니, 문득 그녀의 허벅지
근처에 구멍난 레깅스에 눈이 갔고, 또 그 곧게 뻗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뭔 생각하는거야 미친 새끼야'
민망한 이야기지만, 이 꼬맹이랑 이야기를 하는 틈에 어느샌가 살짝 발기가 되었다. 어느 틈엔가 민정의
주변 남자애들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흘러가버렸으니.
언뜻 시계를 보니 38분. 문득 충동이 들었다. 까짓거, 얘 한번 잘 꼬드겨서, 아니면 지금 주머니에 마침
아까 경비계장님 담배 심부름하고 거스름돈 7천원 있으니까 이걸로라도 어떻게 해서…어? 대충 뭐 씨발
대충…언제 또 이런 기회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찼다.
마침 그녀도 "오빠는 여자친구 있어요? 휴가는 언제 나갔다 왔어요?" 하고 슬슬 내 이야기를 캐묻는데
점점 "오빠도 외박나가면 막 여기 은마다방 언니들이랑 놀아?" 하면서 은근하게 그 질문의 수위를 높여
가는데 문득 떠오른 생각이 '얘가 여기 들어온게 처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뭐 그러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다, 어? 기왕 이런거 한번 얘랑… 하는 충동이 거세게 들었다. 까놓고
말해 집 나온 애들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닌가. 뻔한거.
하지만 겨우 마음을 추스렸다. 만에 하나라도 얘랑 여기서 뭐 뻘짓하다가 누구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진짜 뭐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랴 싶었다. 영창에 기율대에 전출까지 정해진 코스겠지. 하다못해
내가 뭐 짬밥이라도 되면 몰라도, 이건 암만 해도 좆되는 길이다 싶었다. 아쉽지만… 아니아니 인간
으로서 어린 애랑 뭐하자는 짓이야 미친 놈아. 암만 굶었어도, 하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게다가 어차피 시간도 어느새 45분. 슬슬 다음 근무자 깨워달라고 상황실에 전화를 할 시간이다. 난
슬슬 입초를 정리했다. 그리고 상황실 근무자인 윤호에게 전화를 해서 다음 근무자인 황연호 상경을
깨우라고 했다. 이후 민정에게 말했다.
"야야, 민정아, 지금 이제 슬슬 오빠 고참 올 시간 됐으니까 나가있다가 그 고참이랑 교대하면 그때
다시 들어와. 오빠 혼나걸랑. 아 그리고 오빠랑 노가리 깠다는거 이야기 하면 안된다? 절대로? 그럼
오빠 좆되니까. 그럼 담에 너 여기 절대 못 들어와"
"알았어요. 오빠랑 이야기해서 재밌었어요. 담에 또 봐요"
"어어"
"저 그럼 잠깐 밖에 나가있다가 오빠 다음 사람 오면 그때 다시 와도 되는거죠?"
"어. 그 고참이 된다고 하면. 아 너 또 막 '요 앞에 오빠는 된다고 그랬는데' 뭐 이럼 안 된다?"
"하하, 알았어요"
"오케이"
이래저래 사정도 딱한 여자애, 걍 식당에라도 데려가서 라면이라도 하나 배불리 끓여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찌끄래기 짬밥에 뭐 도울 길이 있으랴. 문득 방금 전의 이상한 생각을 했던 자신이 참으로
한심했다.
근무 교대를 마치고, 나는 기상까지 남은 2시간을 차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후, 황연호 상경은 난데없는 임질로 병원 치료를 다니기 시작했다.
있었다.
'흐으으으, 추워죽겠네'
말년 윤지훈 수경이 이빨을 조져서 경비계에 남는 난로 하나를 더 가져와 난로를 2개나 깔아놓았음에도
초소 안은 여전히 추웠다. 난로 덕분에 나름 이 안 공기는 훈훈했지만, 발바닥이 얼어붙을 것처럼 시멘트
바닥이 차가웠다. 머리는 띵하니 잠은 오고. 공기가 너무 탁해서 살짝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칼 바람이
들어오는 통에 창문은 잠깐잠깐 열 뿐이다.
'이러다 동상걸리지 씨발'
경찰서 본관에서 입초까지 그 한 기백미타 거리 오는데 단화 속 발가락이 곱을 정도로 춥기도 참 추웠던
그 날. 단화 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난로로 녹이다 오늘도 무전 음어와 경찰서 직원 차량 번호를 다시
복습하듯 암기하고 있노라니 또 잠이 그렇게나 몰려온다. 잠 깨려고 편지 한 통 썼지만 역시나 몰려오는
잠을 멈출 수는 없다.
'딱 10분만'
나는 그렇게 그만 꾸벅꾸벅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갓 일병 단 주제에 쳐졸다니, 군기가 빠져도 이만저만 빠진게 아니지만, 그 추운 날 하루종일 고생
하고 난로를 2개나 틀어 산소가 부족한 이 좁은 입초에서 근무를 서려니 잠이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얼마나 졸았을까.
똑똑똑
누군가 초소 옆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잠결에도 그 소리를 듣고 옆 지구대에서 직원이 지나가다가 나
조는거 보고 깨우나 싶어, 식겁하며 잠 안 잤다는 듯 몸을 일으키곤 바로 경례를 올려붙이는데… 어?
"저기요…"
창문이 빼꼼히 밖에서 열리더니 바가지 머리, 아니 자갈치 머리를 한 여자애 하나가 말을 건다.
"저기요 오빠, 나 여기서 잠깐만 있으면 안 되요?"
당시만 해도 개찌끄래기 짬밥이었던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어 들어와"
하고 그녀를 초소 안으로 들였다. 척 보기에도 가출청소년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행색이 꾀죄죄 하고
엉망이었다. 조금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며 뒤에 접어놓았던 의자 하나를 펴서 난로 옆에 놓아주었다.
"엄청 춥지?"
"쓰흐흡, 네에…"
이빨을 다 덜덜 떨며 대답하는 그녀. 한, 열 대여섯살쯤 되었을까. 뭘하고 돌아다녔는지 얼굴에 검댕
같은 것이 묻어있고 심지어 입가에는 침 말라붙은 허연 자국까지 있었지만 어쨌든 자세히 들여다보니
참 앳되어 보였다. 두툼한 잠바를 하나 입긴 했다만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별 도움도 안 되었으리라.
"오빠 나 물 좀 주면 안되요?"
"어, 자"
목도 꽤나 말랐던 모양인지, 패트병에 담아온 미지근한 물을 종이컵에 따라 한잔 주니 벌컥벌컥 참
맛나게도 들이킨다.
"이걸로 얼굴 좀 닦아"
아까 서랍 뒤지다가 발견한 물티슈-보나마나 조영필 상경거겠지- 한 장을 뽑아 그녀에게 건내주었다.
물티슈로 조금 얼굴을 정리하자 훨씬 더 보기좋았다. 뭐 그리 썩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만, 안쓰러워
그랬을까 그 웃는 얼굴이 나름 귀엽긴 했다. 이름은 민정이라고 했다. 조민정.
하지만 어쨌거나, 이 기집애를 초소 안에 들이고 나니 걱정도 되었다. 오늘 당직 서는 직원이 순찰을
돌다가 얘를 보기라도 하면, 이래저래 난감해지는 것이다. 오늘의 당직은 유미경 경장.
여경인 만큼 좋게좋게 "그래, 몸 좀 녹이다 가라"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반면에 그만큼 괜히 지랄을
떨지 어떨지 알 길이 없다. 가뜩이나 맨날 교통계 윤수일 수경은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대며 내무반
으로 들어와서는 그녀를 떠올리며 "그 좆씨발년 죽여버릴까보다, 아 존나 개씨발!" 하며 성질을 피우
는데. 겪어보진 못했지만 어지간한 년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깡촌 3급서인 우리 경찰서의 개막장 직원들은 2시간마다는 커녕 지 좆꼴리는대로 아무 때나
대충 순찰함 싸인을 하는 것이 불행이자 다행이고, 설마 이 날씨에는 더더욱 안 오겠지 싶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은 계속 불안했다.
"오빠는 혼자 여기서 보초서는 거에요?"
"어"
"하루종일?"
"아니. 2시간동안"
"졸립겠다"
"어, 피곤하지"
"오빠는 몇 살이에요?"
"스물 한 살. 넌?"
"열여섯살이요"
"중딩이야?"
"학교 안 다니는데…"
배시시 웃는 얼굴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온다. 문득 '몇 시나 됐지?' 하고 싶어 시계를 보니, 아 벌써 새벽
3시 28분. 약 30분 후, 슬슬 교대를 할 시간이다. 아쉬웠다.
열여섯살짜리 꼬맹이라고는 해도 기집애, 무엇보다 하루종일 내내 갈굼과 명령과 지랄 속에 인간대우 못
받고 쉼없이 어디 마음 기댈 곳 하나 없이 굴러다니다가 이렇게 누군가와 따뜻한 대화를 주고받으니 그게
너무 좋았다.
"밥은 먹고 다니냐? 너 가출했지?"
"대충…먹고 다녀요. 그리고 가출한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다 집을 나갔어요"
"왜?"
이야기를 들어보니 민정의 집은 흔한 막장 집구석이다. 엄마는 이미 몇 년 전에 나갔고, 아빠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존재인데 정말로 그나마 요새는 몇 달씩 집에 안 들어오고 그러다보니 반 고아나 다름
없는 상태였다. 아 불쌍한 기집애.
뭐라도 주고 싶었지만 딱히 줄 게 없었다. 그저 농담 따먹기나 조금 하고 있노라니, 문득 그녀의 허벅지
근처에 구멍난 레깅스에 눈이 갔고, 또 그 곧게 뻗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뭔 생각하는거야 미친 새끼야'
민망한 이야기지만, 이 꼬맹이랑 이야기를 하는 틈에 어느샌가 살짝 발기가 되었다. 어느 틈엔가 민정의
주변 남자애들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흘러가버렸으니.
언뜻 시계를 보니 38분. 문득 충동이 들었다. 까짓거, 얘 한번 잘 꼬드겨서, 아니면 지금 주머니에 마침
아까 경비계장님 담배 심부름하고 거스름돈 7천원 있으니까 이걸로라도 어떻게 해서…어? 대충 뭐 씨발
대충…언제 또 이런 기회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찼다.
마침 그녀도 "오빠는 여자친구 있어요? 휴가는 언제 나갔다 왔어요?" 하고 슬슬 내 이야기를 캐묻는데
점점 "오빠도 외박나가면 막 여기 은마다방 언니들이랑 놀아?" 하면서 은근하게 그 질문의 수위를 높여
가는데 문득 떠오른 생각이 '얘가 여기 들어온게 처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뭐 그러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다, 어? 기왕 이런거 한번 얘랑… 하는 충동이 거세게 들었다. 까놓고
말해 집 나온 애들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닌가. 뻔한거.
하지만 겨우 마음을 추스렸다. 만에 하나라도 얘랑 여기서 뭐 뻘짓하다가 누구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진짜 뭐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랴 싶었다. 영창에 기율대에 전출까지 정해진 코스겠지. 하다못해
내가 뭐 짬밥이라도 되면 몰라도, 이건 암만 해도 좆되는 길이다 싶었다. 아쉽지만… 아니아니 인간
으로서 어린 애랑 뭐하자는 짓이야 미친 놈아. 암만 굶었어도, 하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게다가 어차피 시간도 어느새 45분. 슬슬 다음 근무자 깨워달라고 상황실에 전화를 할 시간이다. 난
슬슬 입초를 정리했다. 그리고 상황실 근무자인 윤호에게 전화를 해서 다음 근무자인 황연호 상경을
깨우라고 했다. 이후 민정에게 말했다.
"야야, 민정아, 지금 이제 슬슬 오빠 고참 올 시간 됐으니까 나가있다가 그 고참이랑 교대하면 그때
다시 들어와. 오빠 혼나걸랑. 아 그리고 오빠랑 노가리 깠다는거 이야기 하면 안된다? 절대로? 그럼
오빠 좆되니까. 그럼 담에 너 여기 절대 못 들어와"
"알았어요. 오빠랑 이야기해서 재밌었어요. 담에 또 봐요"
"어어"
"저 그럼 잠깐 밖에 나가있다가 오빠 다음 사람 오면 그때 다시 와도 되는거죠?"
"어. 그 고참이 된다고 하면. 아 너 또 막 '요 앞에 오빠는 된다고 그랬는데' 뭐 이럼 안 된다?"
"하하, 알았어요"
"오케이"
이래저래 사정도 딱한 여자애, 걍 식당에라도 데려가서 라면이라도 하나 배불리 끓여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찌끄래기 짬밥에 뭐 도울 길이 있으랴. 문득 방금 전의 이상한 생각을 했던 자신이 참으로
한심했다.
근무 교대를 마치고, 나는 기상까지 남은 2시간을 차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후, 황연호 상경은 난데없는 임질로 병원 치료를 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