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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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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죽이 땡기는 금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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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와 살이 불타는 금요일 밤. 하지만 별 약속도 없고 그저 너무나 노곤했던 이번 주를 회고하며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던 차, 오후가 되니 뱃 속이 훼하니 아까부터 왠지 뜨신 음식이 왠지
격하게 그립다. 

드디어 퇴근길, 집으로 가던 길에 동네에 있는 삼계 음식점에 들어선다. 이미 들어서기 전부터
고소하니 닭죽 끓이는 냄새가 길에 고고하게 번지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훈훈하게 풍겨오는
그 고소함 속에 살짜기 닭 비린내가 희미하게나마 없지야 않지만 그보다는 그저 서둘러 닭을
뜯고 싶을 따름이다.

"혼자 오셨어요?"
"네"

밖은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피곤함이 느껴지는 살짝 어두운 누리끼리한 형광등 불 빛에 
왠지 모를 피로가 급히 몰려오는 것이 그래도 배는 두 배로 고파진다.  

좁은 가게에 7개 정도 테이블에는 그저 저 앞에 노인 둘, 부부로 보이는 중년 커플 둘 나까지
합해 다섯의 손님이 앉아있다. 두런두런 들려오는 그들의 간간한 정담에 왠지 귀는 가지만
애써 무시하고 나는 구석 테이블에 앉아 닳고 닳은 메뉴판을 슥 훑어보며 삼계탕과 반계탕,
닭곰탕과 전복닭죽 속에 고민을 하다 닭곰탕을 고른다. 

"네에 잠시만 기다리세요"

더이상 아들이 입지 않아 입은 것으로 보이는 목 늘어난 보라색 줄무늬 니트티를 입은 아줌마는
헝클어진 머리를 살짝 긁으며 주문을 받는다. 

'흠'

구수한 닭내음 속의 루즈함. 한쪽 벽 선반 위의 TV를 보며 무료함을 달래보지만 오늘이 금요일이란
사실에 왠지 모를 음울함만 더 피어오른다. 노곤함이 몰려와 눈꺼풀이 뻑뻑하니 무거워지면서 살짝
우울해지기까지 하는데 그제사 뜨끈한 닭곰탕이 큼지막한 뚝배기에 담겨 공기밥 한 그릇과 함께
보기만 해도 배가 뜨셔질 정도로 맛나게 해서 슥 나온다.

"이거 밥 공기는 뭐에요?"
"드시고 양 부족하면 더 드시라구"
"아아, 네에"
"네에 "

'흐아'

후후 입 안에 침이 감돌고 한 숟가락 뜨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그보다 먼저 반찬으로 나온 
싱싱한 풋고추부터 푸욱 장에 찍어 한 입 베어문다. 그리 맵지 않아 맛난 한 입을 그리 씹어넘기고
살살 소금 조금 뿌려 간을 맞춘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뜨끈한 닭곰탕 한 숟가락 살짝 떠 위에 실한 닭고기 한 조각 얹어 후후 불어
입 안에  넣노라니 아아, 맛나다.

주린 배에 뭔들 맛 없을까만 씹을수록 입 안에 짭쪼름하니 맛나고 고소하게 맛나니 일단 맛나다.
뜨겁기도 그리 심하게 뜨겁지 않으니 먹기도 좋다. 살살 뒤저으며 후후 불고 식혀서 다시 또 한
숟갈 입 안으로 가져가니 아 또 맛나다. 

이거 먹고 또 집으로 가봐야 잠 자는거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건만 어쨌거나 이토록 빨리 한 그릇
비우러 손 바삐 움직이는 것은 서둘러 돌아가 자고 싶은 귀소본능 탓일까 그저 이 간만의 닭곰탕이
그리도 맛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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