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거길 왜 가 미친 새끼야. 뭐, 그 기집애가 너보고 오래? 하, 미친 년. 넌 가면 진짜 호구새끼다"
펄펄 뛰던 승택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지만 나는 어느새 정장을 갖춰입고 그녀의 결혼식장으로
차를 몰고 있다. 날씨는 이렇게나 맑고 길도 일요일답지 않게 뻥 뚫렸건만, 내 마음은 왜 이리도
우중충하고 속이 답답할까.
'얼마를 내야되지'
전 여자친구의 결혼식에는 축의금을 얼마를 내야할까.
'5만원?'
이제는 남이 된 사이니까 5만원?
'10만원?'
그래도 한때 친했던 사인데 10장?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나왔다. 돈을 뽑으려고 보니까 은행 잔고가 정확히 7만 3천원이
남아있었다. 나는 피식 웃고 5만원만 하기로 했다. 그 5만원을 새하얀 봉투에 고이 넣어 조수석에
놓았다.
'하아'
떠올리면 안되는 생각이지만, 그녀와 둘이 펜션 여행을 갔을 때를 떠올렸다. 물론 눈은 여전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지만, 머리는 자꾸 딴 생각을 한다.
'좆같네'
운전을 하느라 멍하니 딴 생각을 깊이는 못하지만 눈 앞에, 그때 좋았던 시간들이 어른 거리는게
참 좆같다. 특히 새벽녘 따뜻한 실외 월풀 속에서 끌어안고 반신욕하던 시간이 묘하게 추억 짙다.
"예라이"
앞 차가 갑자기 끼어들기를 해서 하마터면 받을 뻔 했다. 물론 내가 뻘 생각하느라 멍해져서 반응이
늦었던 탓도 있지만. 그래, 일단 운전에나 집중하자. 남 결혼식 보러가다 내가 황천길 가서야.
일단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보니 그제사 마음에 갈등이 된다. 일주일 전, 새벽에 받은 전화로 그녀는
나에게 결혼식에 오라고 말하긴 했다만 그거야 씨발 결혼 앞두고 마음 싱숭생숭한 년이 뭔 말인들
못하겠나. 그리고 어쨌거나 청첩장도 못 받은 상태 아니냔 말이다.
'아'
생각해보니 그 년 친구들도 결혼식에 올텐데…그… 이름이 뭐더라, 눈 크고 앞머리 낸 기집애, 아…
여튼, 그 년이 또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그 친구 년들이 또 나를 보면 뭐라고 수근거릴까. 아 정말
그건 전혀 생각을 못 했네. 아 괜히 돈 내고 쪽팔릴 필욘 없지 않을까. 그냥 다시 집에 갈까.
'쩝'
조수석에 놓아둔 축의금 봉투를 보면서 마음만 복잡해진다. 3시 예식인데 지금 2시 45분. 들어갈까
아님 그냥 집에 갈까. 근데 또 여기까지 왔는데 집에 가기도 거시기하고. 아 뭘 어쩔까. 그러고보니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난다.
지각을 했다. 학생 주임 그 새끼도 참 에지간히 무식한 새끼라서 적당히 굴리던지 아니면 걍 앗싸리
매를 두어대 때리고 말지 뭔 씨발 지각했다하면 지각자들은 아예 0교시 수업까지 제끼고 1시 반을
운동장 오리걸음을 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은 물론이요 고3 교실 담임들마저 이건 주객전도라면서
말렸지만 그냥 그 때 뿐이다. 1시간 반을 내내 계속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뺑뺑이를 돌고 눈 앞이 다
노래져서 교실에 들어가면 지쳐서라도 그 날 내내 하루 수업은 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늦으면 아예 학교를 제껴버리거나 그냥 1교시, 혹은 2교시 수업 때서야 들어갔다.
'지금 내가 왜 이 생각을 하지?'
아, 그래. 집에 간 적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집에서 출발을 했으면 밖에서 땡땡이를 치든 어쨌든
학교에는 갔다. 마찬가지다.
"그래, 그냥 돈 내고 부페 먹으러 온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미친 년들이 뭐라고 수근거리면 수근
거리라지 뭐. 화제 속의 남자 해주지 뭐"
나는 차에서 내려 식장으로 향했다.
'흐'
윤석이 그 새끼… 설마와도 내가 올 줄이야 생각도 못 했겠지. 내가 딱 축의금 봉투를 내밀자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딱 얼어버리는 윤 동생 윤석. 나는 "뭐해? 축의금 받어"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봉투를 내밀었다. 그제서야 윤석이 그 새끼도
"네, 와주셔서 감사해요"
하고 인사를 받았다. 한때는 친동생처럼 친했던 놈인데. 생각해보면 윤주도 윤주지만 얘랑 남이
됐다는 사실도 솔직히 좀 아깝다. 만약 내가 윤주와 결혼했더라면 우리는 일반적인 매형-처남
관계가 아니라 정말로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되었을텐데. 맨날 축구 보러 같이 가고.
'…음'
한번 후회를 하기 시작하니 마음 속 어딘가가 갑자기 아파온다. 씨발. 이러다가 면사포 쓴 윤주
얼굴 보고 울기라도 하면 나 좆되는데. 문득 그냥 차라리 신부대기실에 들러서 잠깐 윤주 얼굴이나
보고 바로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윤주가 웨딩 로드를 걷는거 직접 보고 감정 컨트롤을
잘 할 수 있을지 덜컥 이제서야 겁이 났다.
'내가 여길 왜 왔을까'
이미 3년도 전에 헤어지고, 아무리 간간히 연락을 했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남의 여자가 되는
여자인데. 뭘 바라고 여기 왔을까. 누가 나를 반겨준다고? 내 축하를 윤주는 좋아할까? 그
남편이라도 그 사실을 알면 좋아할까? 미친 새끼야 여길 왜 왔어.
후회가 몰려왔다. 급격히 피로해졌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식장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 크지는 않아도 나름 그럴듯한 식장이다.
'윤주랑 정말 같이 걷고 싶었던 길인데'
저 앞에 보이는 주례석에서부터 문 밖까지 이어진 웨딩로드를 보노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너무
두리번 거리지 말자. 누구 내 얼굴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피차 곤란하냐.
'허허'
저기 앞에 앞에 줄에 다영이, 그래 이제 이름 생각났네. 다영이 그 기집애랑 희진이가 보인다.
윤주의 친한 친구로, 같이 밥도 몇 번인가 먹었는데. 흠. 아는 척 하지는 말자.
"아아, 장내에 모여주신, 신랑 이호진 군과 신부 강윤주 양의 결혼을 빛내러 와 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소중한 예식을…음,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랑 친구로 보이는 훤칠한 놈의 멘트와 함께 결혼식이 드디어 막을 올렸다(?).
'저 새끼구나‥'
뭐 꽃미남까지는 절대 아니지만 훤칠한 키에 남자답게 생긴 외모, 친구들도 참 많은거 보니 좋은
남자구나. 얼굴도 선하니, 우리 윤주…
'어…'
막상 윤주의 남편 될 사람 얼굴을 보고 나니, 그리고 윤주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어이없게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간신히 표정관리를 했다. 정신차려 새끼야. 여기서
눈물흘리면 나는 진짜 세상에 다시 없을 쪼다가 되는거야. 그리고 씨발 이젠 니 여자도 아니잖
아. 쿨하게, 행복 빌어주면 되지…
애써 감정 조절을 하고 있노라니 사회자가 신랑을 두고 몇 마디 짖궂은 농담을 해서 하객들의
웃음이 쏟아지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내 심장은 쿵쿵 뛴다…
그리고 그 순간 신부 입장을 알리는 결혼행진곡이 연주되었다. 하객들의 눈이 입구 쪽으로 쏠리며
탄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예쁘다…'
…
…
…씹…개새끼야, 눈물 흘렸다간 눈알 뽑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윤주의 웨딩드레스 모습을 보자, 나는 그만 눈물이 글썽했다. 왜일까. 왜.
이젠 다 잊었잖아. 뭐가 아쉬워서 울어 병신아. 어? 쟤, 너 싫다고 떠난 기집애야. 너 지금 여
기서 뭐해. 왜 병신같이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어 이 븅신 호구야.
"흠…"
목소리를 혼자 아주 작게 가다듬으며 눈물을 참아냈다. 아주 간신히. 그리고 이미 지나가
저기 앞에 주례석 앞에 남편 될 사람과 함께 나란히 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휴, 우리 윤주 너무 이쁘네. 어떻게, 신부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뜬금없이 옆에 앉은 한복 입은 할매가 나에게 말을 건냈다. 뭐야 내가 눈물 글썽이는거라도
봤나?
"예? 아…그냥 친구에요. 고등, 아니 대학교 때 친구요"
"아아, 그렇구나. 에 그래요. 에휴 참 곱다 고와"
딱히, 별 의미가 있어서 말을 건 것은 아니고 그냥 의례적인 아주머니의 동의를 구하는 한마디
였던 모양이다. 그래.
"네, 진짜 이쁘네요. 와 진짜 오늘 아마 여기 결혼식 장에서 한 신부 중에 제일 이쁠 듯 하네요"
내 말에 할망구는 "그쵸? 아까 그렇잖아도 여기 앞 타임 신부는 하나도 안 이쁘더라고. 드레스
도 막 짜리몽땅한게 안 이뻤어. 아 나는 윤주 큰 고모 되는 사람이유" 하면서 수다와 자기소개
를 했다.
'그렇구나'
만약 잘 됬더라면 이 분도 나의 먼… 인척 관계가 될 뻔 했던 분이었네.
"하하"
나는 그저 어색한 미소만을 지어보였다.
결혼식 본식이 얼추 끝나고, 신랑 신부 친구들이 사진을 찍을 때 나는 그냥 돌아서서 나왔다.
솔직히 여기까지 온 이상, 윤주랑 말이라도 한 마디 해보고 싶은 욕심은 굴뚝 같았지만, 가장
행복해야 되는 날 괜히 내가 나타나서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설령 윤주는 걍
쿨하게 넘기더라도 그 남편 새끼가 누구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뭐라고 대답할건가.
'하하'
부페라도 먹고 갈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도 포기했다. 얼굴 팔지 말자. 씁쓸했다. 나는
오늘 여기 도대체 진짜 왜 왔나. 병신 새끼.
"형"
뚜벅뚜벅 걸어나가노라니 윤석이가 나를 불렀다. '형'이라니, 흐.
"어? 어…어어. 야, 신부 동생이 여기서 뭐해? 가서 도와줘야지"
"괜찮아요. 부모님도 있고 다 있는데 뭐. 그보다 오늘 여기 와주셔서 고마워요"
윤석이는 또 싹싹하게 나에게 말해주었다. 새끼…내가 더 고맙네. 아까는 그렇게 어색해하더만.
"야 너 지금 속으로 호구라고 나 욕했지?"
"하하하, 아니예요. 저 진짜 형, 정말로 와줘서 고마워요. 형이 우리 누나랑 헤어졌을 때, 저 되게
속상해한거 아시죠?"
"니가 왜 속상해 임마 으이구"
"지금 매형도 좋은 분이긴 한데, 아무래도 좀… 재미없는 양반이라"
윤석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쿡 하고 윤석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그럼 임마, 세상에 나처럼 재미나는 남자가 몇이나 되겠냐? 짜식. 임마 니네 누나 되게 실수
한거야!"
내 농에 윤석도 웃으며 받아쳤다.
"에이…하하하, 그래 그렇다고 해줄께요. 그래도 우리 누나 행복 빌어줘요"
"야이, 진짜 누굴 끝까지 호구로 만드나. 짜식. 알았다. 여튼 간다. 너도 곧 장가 잘가라"
"아 형, 밥 먹고 가요. 여기, 여기 밥 되게 맛있대요"
하지만 난 고개를 젓고 휘적휘적 걸어가며 말했다.
"됐다~ 여기서 오늘 밥 먹으면 난 백프로 체한다"
내 등 뒤에서 윤석의 굿바이 인사가 들려왔다.
"형도 곧 좋은 데 장가가세요"
흐, 그래. 그래야지. 음. 정말로… 정말로 좋은 데… 좋은 여자 만나서, 장가가야지…
나는 그제사 쏟아지는 눈물을 한 손으로 어색하게 훔치며 서둘러 빠른 걸음으로 지하 주차장을 향했다.
펄펄 뛰던 승택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지만 나는 어느새 정장을 갖춰입고 그녀의 결혼식장으로
차를 몰고 있다. 날씨는 이렇게나 맑고 길도 일요일답지 않게 뻥 뚫렸건만, 내 마음은 왜 이리도
우중충하고 속이 답답할까.
'얼마를 내야되지'
전 여자친구의 결혼식에는 축의금을 얼마를 내야할까.
'5만원?'
이제는 남이 된 사이니까 5만원?
'10만원?'
그래도 한때 친했던 사인데 10장?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나왔다. 돈을 뽑으려고 보니까 은행 잔고가 정확히 7만 3천원이
남아있었다. 나는 피식 웃고 5만원만 하기로 했다. 그 5만원을 새하얀 봉투에 고이 넣어 조수석에
놓았다.
'하아'
떠올리면 안되는 생각이지만, 그녀와 둘이 펜션 여행을 갔을 때를 떠올렸다. 물론 눈은 여전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지만, 머리는 자꾸 딴 생각을 한다.
'좆같네'
운전을 하느라 멍하니 딴 생각을 깊이는 못하지만 눈 앞에, 그때 좋았던 시간들이 어른 거리는게
참 좆같다. 특히 새벽녘 따뜻한 실외 월풀 속에서 끌어안고 반신욕하던 시간이 묘하게 추억 짙다.
"예라이"
앞 차가 갑자기 끼어들기를 해서 하마터면 받을 뻔 했다. 물론 내가 뻘 생각하느라 멍해져서 반응이
늦었던 탓도 있지만. 그래, 일단 운전에나 집중하자. 남 결혼식 보러가다 내가 황천길 가서야.
일단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보니 그제사 마음에 갈등이 된다. 일주일 전, 새벽에 받은 전화로 그녀는
나에게 결혼식에 오라고 말하긴 했다만 그거야 씨발 결혼 앞두고 마음 싱숭생숭한 년이 뭔 말인들
못하겠나. 그리고 어쨌거나 청첩장도 못 받은 상태 아니냔 말이다.
'아'
생각해보니 그 년 친구들도 결혼식에 올텐데…그… 이름이 뭐더라, 눈 크고 앞머리 낸 기집애, 아…
여튼, 그 년이 또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그 친구 년들이 또 나를 보면 뭐라고 수근거릴까. 아 정말
그건 전혀 생각을 못 했네. 아 괜히 돈 내고 쪽팔릴 필욘 없지 않을까. 그냥 다시 집에 갈까.
'쩝'
조수석에 놓아둔 축의금 봉투를 보면서 마음만 복잡해진다. 3시 예식인데 지금 2시 45분. 들어갈까
아님 그냥 집에 갈까. 근데 또 여기까지 왔는데 집에 가기도 거시기하고. 아 뭘 어쩔까. 그러고보니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난다.
지각을 했다. 학생 주임 그 새끼도 참 에지간히 무식한 새끼라서 적당히 굴리던지 아니면 걍 앗싸리
매를 두어대 때리고 말지 뭔 씨발 지각했다하면 지각자들은 아예 0교시 수업까지 제끼고 1시 반을
운동장 오리걸음을 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은 물론이요 고3 교실 담임들마저 이건 주객전도라면서
말렸지만 그냥 그 때 뿐이다. 1시간 반을 내내 계속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뺑뺑이를 돌고 눈 앞이 다
노래져서 교실에 들어가면 지쳐서라도 그 날 내내 하루 수업은 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늦으면 아예 학교를 제껴버리거나 그냥 1교시, 혹은 2교시 수업 때서야 들어갔다.
'지금 내가 왜 이 생각을 하지?'
아, 그래. 집에 간 적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집에서 출발을 했으면 밖에서 땡땡이를 치든 어쨌든
학교에는 갔다. 마찬가지다.
"그래, 그냥 돈 내고 부페 먹으러 온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미친 년들이 뭐라고 수근거리면 수근
거리라지 뭐. 화제 속의 남자 해주지 뭐"
나는 차에서 내려 식장으로 향했다.
'흐'
윤석이 그 새끼… 설마와도 내가 올 줄이야 생각도 못 했겠지. 내가 딱 축의금 봉투를 내밀자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딱 얼어버리는 윤 동생 윤석. 나는 "뭐해? 축의금 받어"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봉투를 내밀었다. 그제서야 윤석이 그 새끼도
"네, 와주셔서 감사해요"
하고 인사를 받았다. 한때는 친동생처럼 친했던 놈인데. 생각해보면 윤주도 윤주지만 얘랑 남이
됐다는 사실도 솔직히 좀 아깝다. 만약 내가 윤주와 결혼했더라면 우리는 일반적인 매형-처남
관계가 아니라 정말로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되었을텐데. 맨날 축구 보러 같이 가고.
'…음'
한번 후회를 하기 시작하니 마음 속 어딘가가 갑자기 아파온다. 씨발. 이러다가 면사포 쓴 윤주
얼굴 보고 울기라도 하면 나 좆되는데. 문득 그냥 차라리 신부대기실에 들러서 잠깐 윤주 얼굴이나
보고 바로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윤주가 웨딩 로드를 걷는거 직접 보고 감정 컨트롤을
잘 할 수 있을지 덜컥 이제서야 겁이 났다.
'내가 여길 왜 왔을까'
이미 3년도 전에 헤어지고, 아무리 간간히 연락을 했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남의 여자가 되는
여자인데. 뭘 바라고 여기 왔을까. 누가 나를 반겨준다고? 내 축하를 윤주는 좋아할까? 그
남편이라도 그 사실을 알면 좋아할까? 미친 새끼야 여길 왜 왔어.
후회가 몰려왔다. 급격히 피로해졌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식장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 크지는 않아도 나름 그럴듯한 식장이다.
'윤주랑 정말 같이 걷고 싶었던 길인데'
저 앞에 보이는 주례석에서부터 문 밖까지 이어진 웨딩로드를 보노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너무
두리번 거리지 말자. 누구 내 얼굴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피차 곤란하냐.
'허허'
저기 앞에 앞에 줄에 다영이, 그래 이제 이름 생각났네. 다영이 그 기집애랑 희진이가 보인다.
윤주의 친한 친구로, 같이 밥도 몇 번인가 먹었는데. 흠. 아는 척 하지는 말자.
"아아, 장내에 모여주신, 신랑 이호진 군과 신부 강윤주 양의 결혼을 빛내러 와 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소중한 예식을…음,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랑 친구로 보이는 훤칠한 놈의 멘트와 함께 결혼식이 드디어 막을 올렸다(?).
'저 새끼구나‥'
뭐 꽃미남까지는 절대 아니지만 훤칠한 키에 남자답게 생긴 외모, 친구들도 참 많은거 보니 좋은
남자구나. 얼굴도 선하니, 우리 윤주…
'어…'
막상 윤주의 남편 될 사람 얼굴을 보고 나니, 그리고 윤주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어이없게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간신히 표정관리를 했다. 정신차려 새끼야. 여기서
눈물흘리면 나는 진짜 세상에 다시 없을 쪼다가 되는거야. 그리고 씨발 이젠 니 여자도 아니잖
아. 쿨하게, 행복 빌어주면 되지…
애써 감정 조절을 하고 있노라니 사회자가 신랑을 두고 몇 마디 짖궂은 농담을 해서 하객들의
웃음이 쏟아지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내 심장은 쿵쿵 뛴다…
그리고 그 순간 신부 입장을 알리는 결혼행진곡이 연주되었다. 하객들의 눈이 입구 쪽으로 쏠리며
탄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예쁘다…'
…
…
…씹…개새끼야, 눈물 흘렸다간 눈알 뽑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윤주의 웨딩드레스 모습을 보자, 나는 그만 눈물이 글썽했다. 왜일까. 왜.
이젠 다 잊었잖아. 뭐가 아쉬워서 울어 병신아. 어? 쟤, 너 싫다고 떠난 기집애야. 너 지금 여
기서 뭐해. 왜 병신같이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어 이 븅신 호구야.
"흠…"
목소리를 혼자 아주 작게 가다듬으며 눈물을 참아냈다. 아주 간신히. 그리고 이미 지나가
저기 앞에 주례석 앞에 남편 될 사람과 함께 나란히 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휴, 우리 윤주 너무 이쁘네. 어떻게, 신부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뜬금없이 옆에 앉은 한복 입은 할매가 나에게 말을 건냈다. 뭐야 내가 눈물 글썽이는거라도
봤나?
"예? 아…그냥 친구에요. 고등, 아니 대학교 때 친구요"
"아아, 그렇구나. 에 그래요. 에휴 참 곱다 고와"
딱히, 별 의미가 있어서 말을 건 것은 아니고 그냥 의례적인 아주머니의 동의를 구하는 한마디
였던 모양이다. 그래.
"네, 진짜 이쁘네요. 와 진짜 오늘 아마 여기 결혼식 장에서 한 신부 중에 제일 이쁠 듯 하네요"
내 말에 할망구는 "그쵸? 아까 그렇잖아도 여기 앞 타임 신부는 하나도 안 이쁘더라고. 드레스
도 막 짜리몽땅한게 안 이뻤어. 아 나는 윤주 큰 고모 되는 사람이유" 하면서 수다와 자기소개
를 했다.
'그렇구나'
만약 잘 됬더라면 이 분도 나의 먼… 인척 관계가 될 뻔 했던 분이었네.
"하하"
나는 그저 어색한 미소만을 지어보였다.
결혼식 본식이 얼추 끝나고, 신랑 신부 친구들이 사진을 찍을 때 나는 그냥 돌아서서 나왔다.
솔직히 여기까지 온 이상, 윤주랑 말이라도 한 마디 해보고 싶은 욕심은 굴뚝 같았지만, 가장
행복해야 되는 날 괜히 내가 나타나서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설령 윤주는 걍
쿨하게 넘기더라도 그 남편 새끼가 누구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뭐라고 대답할건가.
'하하'
부페라도 먹고 갈까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도 포기했다. 얼굴 팔지 말자. 씁쓸했다. 나는
오늘 여기 도대체 진짜 왜 왔나. 병신 새끼.
"형"
뚜벅뚜벅 걸어나가노라니 윤석이가 나를 불렀다. '형'이라니, 흐.
"어? 어…어어. 야, 신부 동생이 여기서 뭐해? 가서 도와줘야지"
"괜찮아요. 부모님도 있고 다 있는데 뭐. 그보다 오늘 여기 와주셔서 고마워요"
윤석이는 또 싹싹하게 나에게 말해주었다. 새끼…내가 더 고맙네. 아까는 그렇게 어색해하더만.
"야 너 지금 속으로 호구라고 나 욕했지?"
"하하하, 아니예요. 저 진짜 형, 정말로 와줘서 고마워요. 형이 우리 누나랑 헤어졌을 때, 저 되게
속상해한거 아시죠?"
"니가 왜 속상해 임마 으이구"
"지금 매형도 좋은 분이긴 한데, 아무래도 좀… 재미없는 양반이라"
윤석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쿡 하고 윤석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그럼 임마, 세상에 나처럼 재미나는 남자가 몇이나 되겠냐? 짜식. 임마 니네 누나 되게 실수
한거야!"
내 농에 윤석도 웃으며 받아쳤다.
"에이…하하하, 그래 그렇다고 해줄께요. 그래도 우리 누나 행복 빌어줘요"
"야이, 진짜 누굴 끝까지 호구로 만드나. 짜식. 알았다. 여튼 간다. 너도 곧 장가 잘가라"
"아 형, 밥 먹고 가요. 여기, 여기 밥 되게 맛있대요"
하지만 난 고개를 젓고 휘적휘적 걸어가며 말했다.
"됐다~ 여기서 오늘 밥 먹으면 난 백프로 체한다"
내 등 뒤에서 윤석의 굿바이 인사가 들려왔다.
"형도 곧 좋은 데 장가가세요"
흐, 그래. 그래야지. 음. 정말로… 정말로 좋은 데… 좋은 여자 만나서, 장가가야지…
나는 그제사 쏟아지는 눈물을 한 손으로 어색하게 훔치며 서둘러 빠른 걸음으로 지하 주차장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