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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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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타임 Th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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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

아웃룩을 열어보니 경영지원팀에서 보내온 급여 메일이다. [ 한달간 수고하셨습니다 ] 라는 제목과 함께
이번 달 월급 [ 수명 3개월 29일치 ] 가 들어왔다. 물론 거기서 국민연금과 6대 보험, 각종 세금을 제하고
나면 실 급여는 2개월 18일 정도다.

'후우'

하지만 그래봤자 차 할부금과 대출금을 갚고 이번 달 카드값을 제하고 나니… 남은 통장에 찍힌 숫자는
겨우 6일 2시간. 즉, 나는 6일하고도 2시간 뒤 죽는다. 당연히 다음 달 급여일까지 모자라는 수명은 여기
저기에서 꾸던가, 수명거래소에서 대출을 받던가, 길거리의 LTM기에서 수명 서비스를 받던가(하지만
무려 20%의 수수 시간이 붙는다!), 사설 수명거래소에서 초고금리에 수명을 꾸어오던가, 알바를 뛰던가
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 회사는 투잡을 금지하고 있지만.

'씨발'

수명 소비를 줄여야지 줄여야지 생각은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연애질하는데 들어가는 수명이 너무
많다. 유정이 이 기집애가 진짜… 아 정말이지 어린 기집애랑 연애하려니까 수명 까이는 속도가 팍팍
느껴진다.

'관둘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오늘은 금요일, 퇴근하면 이제 주말이다. 좋은 생각만 하기로 한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그녀의 회사 앞으로 차를 몰고가 픽업해서, 평범하게 저녁을 먹는다. 아니 '평범하게'
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비싼 저녁을 먹는다. 비싸지만 아주 부담을 못할 가격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서너번을 보는 우리 관계, 그리고 데이트 비용을 거의 내가 부담하다보니 이게 쌓이면 결국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빠 무슨 생각해?"
"아니야, 너가 하도 맛있게 먹길래"

하지만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오빠 표정이 안 좋은데. 왜 그래"
"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야. 왜 내 표정 이상했어?"

나의 발뺌에 유정은 잠깐 표정이 굳어졌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아냐. 그냥 오빠 표정이 좀 순간 이상해서"

눈치 하나는 진짜. 어쨌든 나는 애써 표정을 숨기며 다시 푸아그라 버섯 그라탕을 입으로 가져갔다.
후. 테이블의 분위기는 왠지 순간적으로 서먹해졌다. 난 서둘러 분위기 전환을 위해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우리 와인 한잔 할까?"
"와인?"
"응"

유정은 "왠 와인이래…" 하면서도 "응 오빠 먹고 싶으면 시켜" 하고 승락했다.



'옘병'

괜히 마음에도 없는 와인을 시켰다가 좆됐다. 요새 와인값이 비싸다 비싸다 하긴 했어도 이 정도까지
올랐을 줄이야. 평소 같으면 23시간 정도면 될 계산이 무려 3일 2시간이 나왔다. 좆같은 오존층 파괴.
갈수록 이렇게 와인값이 폭등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이제 앞으로 몇 년 후면 포도 재배가 불가능해지
려나보다.

"오빠…"
"응?"
"오늘…"
"어"
"우리, 간만에 모텔 갈까?"
"어?"

왠일이래. 유정이 이 기집애가 먼저 모텔 제안이라니.

"왠일로?"

그러자 유정이는 내 허벅지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오늘 오빠 뭔가 근심이 가득한 거 같아. 내가 오빠 고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침대에서 들어주고 또
다 풀어줄께. 응?"

아무래도 내가 아까부터 수명 문제로 걱정을 하고 있자 이 기집애가 뭔가 내 표정에서 눈치를 까고
내 마음 풀어준다면서 모텔 제안을 했다. 평소같으면 만세라도 불렀겠지만 지금 내 수명 계좌 잔고가
걱정이다. 지금 딱 3일치 남았는데, 내일 저녁까지 같이 있다가 저녁 먹고 헤어진다고 치면 얼추 자연
소모 하루, 모텔비 하루, 그리고 중간에 뭐 밥이라도 시켜먹고 하면…

'위험하다'

하지만 뭐, 모자라는건 동생에게 꾸기로 했다. 수명은 월요일날 카드로 땡겨서 채워넣지 뭘.



"오빠 나 먼저 씻을께"

모텔비로 하루를 계산했다. 이제 계좌에 남은 내 수명은 정확히 48시간. 나는 유정이가 샤워실에 들어
가자 몰래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어, 형. 왜?"
"야, 나 지금 급한데 24시간만 꿔줘"
"어? 나 지금 술 마시고 있는데 조금 이따가 집에 가면서 넣어주면 안 돼?"
"아 또 너 까먹을까봐 그러지"
"잠깐만, 확인 좀 해보고"

동생은 잠깐 뭔가 확인하더니 곧 다시 말을 이었다.

"어 형 계좌로 24시간 보냈어"
"고마워"
"아 시간 좀 아껴써! 맨날 나한테 시간 꾸지말구. 나도 요새 엄마한테 시간 빌려주느라 모자란단 말이야"
"새끼. 알았어. 여튼 술 너무 마시지 말어"
"아 몰라, 여튼 수고"
"어이"

됐다. 이제 계좌 잔고 72시간. 내일 저녁까지 자연소모, 밥, 그리고 여유분 하루 해서 안정빵이다. 룰루
신나는 기분으로 난 옷을 벗기 시작했다. 간만에 유정이랑 거품 목욕이나 해볼까. 



오늘따라 그녀는 엄청 적극적이었다. 아까 내 표정이 다소 뚱하자, 그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기라도
한 것인 줄 알았던 듯, 평소답지않게 아주 적극적이고 헌신적이었다. 그녀답지 않게 내 심볼을 입으로도
서비스 해주고, 또 열심히 허리를 움직였다. 그런 그녀의 새로운 모습에 나는 몇 번이고 극치감을 느꼈다.
그녀와 사귄 이래 가장 뜨거운 밤이었다. 그만큼 피곤했다.




"으음…"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새벽에 어떤 미친 새끼야… 난 떠지지 않는 눈으로 더듬더듬 손으로 휴대폰을 집었다.

"여보세요?"

그러자 전화기 저 편에서 다급하게 울먹이는 동생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어!! 형, 나 지금 좆됐어, 빨리 나 좀 살려줘"

나는 눈을 뜨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물었다.

"뭔 얘기야"

동생은 전화기 저 편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말했다.

"형 나 지금 7분 남았어… 아까 형한테 수명 줄 때 나 28시간 남아있었거든, 집에 가면서 걍 카드로
수명 서비스 받아서 채워넣을라고 했는데… 나 술 먹다가 그냥 자버렸나봐, 그리고 지금 나 지갑도
잃어버려서 어디갔는지 모르겠어… 형 나 좀 살려줘"
"아 미친 새끼! 아까 내가 그래서 술 너무 쳐먹지 말고 들어가랬잖아! 아 씨발, 기달려 알았어 내 바로
시간 넣어줄께"

나는 전화기를 끊고 서둘러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었다. 바지 통에 다리는 왜 이렇게 안 들어가! 씨발.

"오빠 무슨 일이야?"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하자 잠에서 깬 유정이도 깨어나 물었다. 난 짧게 "지금 내 동생 수명
7분 남았는데 지갑 잃어버렸대" 하고 대답하고 지갑과 휴대폰을 챙겼다. 그리고 순간 유정이에게
"혹시 너 폰 뱅킹 되냐?" 하고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 폰뱅킹 등록 안 해놨는데"

난 속으로 '씨발 생전에 도움이 안 되는 년'하고 소리치며 밖으로 미친듯이 뛰쳐나갔다. 하기사 나도
폰뱅킹 평소에 안 써서 등록 안 해놓은 주제에. 옷 입으면서 한 1분 썼을테니 이제 6분쯤… 남았나.

'아 씨발 엘리베이터는 왜 이렇게 안 와'

다시 휴대폰이 걸려왔다. 동생이었다. 전화를 받자 동생은 "형 나 이제 5분 남았어, 빨리 빨리" 하고
울먹인다. 난 "알았어 알았어 바로 넣어줄께" 하고 덜덜 떨리는 내 손을 애써 진정시켰다. 후우, 빨리
올라와라 빨리 올라와! 아 씨발 엘리베이터 지하로 가네.

'씨발'

난 계단으로 뛰어내려갔다. 4층인데. 차라리 그냥 먼저 계단으로 내려갈걸,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
오다 하마터면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했다. 1층까지 겨우 내려와 카운터에 물었다.

"아저씨 지금 이 근처에 LTM기 제일 가까운 곳이 어디에요? 편의점이라도"

그러자 아저씨는 머리를 긁적였다.

"LTM기? 이 근처에… 아 잠깐만, 아 저기… 큰 길로 나가서, 그 길 건너서, 편의점에 있을거야"

씨발… 멀기도 멀다. 어쨌거나 나는 바로 총알같이 튀어나갔다. 다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형 아
뭐하는거야, 나 이제 3분도 채 안 남았어!" 하고 닥달한다.

3분… 아니 3분도 채 안 남았다니까…저기까지 달려가서, 길 건너서… LTM기에서 입금하는데까지
2분… 가능할까… 순간 눈 앞이 흐려져왔다. 아니야, 할 수 있어. 씨발, 할 수 있다 없다가 아냐 이건
해내야 돼 씨발. 난 그리고 순간 내가 너무 당황했음을 느끼고 다시 아직 끊어지지 않은 전화기로
동생에게 물었다.

"니 친구들은 다 뭐하는데 새끼야, 전화 좀 여기저기 돌려봐!"

그러자 동생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새벽이라서 그런지 다들 안 받는단 말이야"
"길가는 사람들한테서라도 좀 꿔봐! 이 병신 새끼야!! 이렇게 뒤질거야?"
"나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고! 눈 뜨니까 길바닥이고 술 마시던 가게는 문 닫았어! 사람도 없어
여기 무슨 골목길이야"

어머니 아버지도 지금 다 주무실 시간이고, 어차피 폰뱅킹은 커녕 LTM기도 잘 쓸 줄 모르는 무식한
영감쟁이들이니…

'후우, 후우, 후우'

숨이 차오른다. 겨우 큰 길까지 달려왔다. 얼마나 남았을까. 1분 30초? 1분? 8차선 도로였지만 신호
기다리고 있을 여유 따윈 없다. 난 미친듯이 그 큰 길로 뛰어들었다.

빵빵 거리며 차량들이 난리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러면 내 동생이 죽는다. 씨발, 씨발!
겨우 찻 길을 무사히 지나 편의점 가게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바로 알바생에게 물었다.

"헉, 헉, 헉, 여기, LTM기기 어딨어요?"

혼이 빠져나간 듯한 내 얼굴을 보던 알바생은 그러나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저기 지금… 저희 가게 LTM기 고장나서 수리 중인데요…"

씨발…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났고 나는 다짜고짜 그 알바생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말했다. 

"너 폰뱅킹 돼 안 돼"
"아, 안 되는데요…"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나는 힘이 쭉 빠졌다. 그리고 아직 끊어지지 않은 전화기 저 편에서 훌쩍이는 동생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형… 됐어?…"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는 그 순간 전화기 저 편에서 끄윽 하는 단말마가 들려왔다. 난 머릿 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이 모든게 꿈이기를 바랬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건 아니야 씨발… 이건 아니라고…

어어… 이 씨발… 씨발… 어어 이 씨발…

그리고 순간, 너무 어이없게… 여자친구와 모텔에서 섹스하려고 쳐 날린 그 수명 '하루'가 어이가 없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유정이 그 년이 모텔 가자는 말만 안 했더라도…

아니, 아니야. 내가 그냥 내일 낮에 잠깐 LTM기기 가서 그냥 내 카드로 내 수명 인출 했으면 될 일이잖아.
그게 귀찮아서 동생에게 하루를 부탁했다가…

엄마 아빠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한테 멱살까지 잡힌 알바생이 다가
와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동생의 장례를 치르고, 나는 일방적으로 유정이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물론 모든 것은 내 책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자꾸 유정이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는 내 안의 쓰레기 같은 심보가 우리 둘 모두를
힘들게 할 것 같았다. 부모님께는, 아니 그 누구에게도 그 동생 죽음의 내막을 말하지 않았다. 못했다.

너무 어이없고 황당했으니까.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감찰국에서도 동생이 나에게 죽기 몇 시간 전
전송한 24시간에 대해서 캐물었지만 난 그저 '아마 동생이 자살을 계획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시간이
동생의 마지막 수명인지도 몰랐어요…' 하고 거짓 울음을 지어보였다. 감찰국 직원은 흔히 있는 일이
라면서 나를 위로했다.

나는 속으로 "나는 내 손으로 죽인다" 라고 다짐하고 또 했다. 나는 사상 최악의 쓰레기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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