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쥐색 정장 안으로 땀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동준은 끄트머리가 군데군데 해진 소매로 연방 이마의 땀을 훔친다. 제가 그리 더울진대 몸이 골골한 마누라는 또 얼마나 더울런지.
"다 왔어. 저 있잖아"
손가락으로 가리킨 저 편에 떡하니 오 병원이 있다.
"어휴…"
마누라는 또 현기증이 오는지 잠시 쉬어가자는 듯 동준의 팔을 그 가는 손목으로 잡아 끈다.
"허, 다 왔구만…"
차라리 시원하니 병원에 가서 쉬는게 낫지 싶건만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든 모양이다. 속이 탄다. 담배라도 한 대 태웠으면 좋겠건만 주머니에 딸랑 빌려온 돈 10만원은 당최 병원비로도 부족하지 싶으니 담배 따위로 하릴 없이 태울 돈이야 있을 리 없다.
"가자, 쉬어도 병원에서 쉬는게 나아"
가로수 밑에 서있어봐야 바람 한 점 없는 숨막히는 여름 땡볕 아래 비척비척 땀이나 치솟지 얼른 들어가자고 재촉하니 그제서야 "알았어요" 하면서 마누라는 동준의 손을 잡고 그 힘없는 걸음을 내딛는다.
'지미 덥기는 오라지게 덥네'
그냥 반팔 입고 올 거를 괜히 그래도 병원 같은 데서 얕보이면 바가지 쓰지 싶어서 딱 한벌 있는 낡은 정장을 입고 왔더니 땀에 목욕을 할 지경이다. 안되겠다 싶어서 마이를 벗어 손에 들고 가는데 그제사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불어오니 한숨 돌린다.
'그나저나 혜택을 봐야할텐데'
허구한 날 온 몸이 어디 아프다 아프다 하던 마누라다. 원체 몸이 약해서 애가 들어서지를 않아 결혼 6년 차에 접어들어도 뭐 애가 당최 들어서질 않으니 이건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병원에를 갔더니 애가 문제가 아니라 뜬금없이 자궁에 뭔 혹 같은게 보인단다. 자세히 검사를 해보자고 하는데 신용불량자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입장인데 수십만원 검사비를 감당할 길이 없고 겁도 난다는 마누라 말에 걍 괜찮다고 됐다고 일어서는데 의사가 그런다.
"암일 수도 있습니다"
마누라는 식겁하고 동준도 재수없는 소리라며 애써 무시하려 했는데,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의사가 오 병원의 김 아무개 의학박사 명함을 준다. 실력도 좋은 선생님이고 무엇보다 오 병원이 저소득층 환자들을 위한 지원 시스템이 있단다. 한번 알아보란다.
명함을 받아놓고 걱정이야 태산 같지만 한달에 돈 110만원 받아서 빚 갚고 월세비 내고 세금 내고 어머니 약값 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생각 같아선 뭐라도 하고 싶지만 바른손 손구락이 셋 밖에 없는 상황서 지금 다니는 공장 일만 해도 간신히 얻은 자리다. 그러다보니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있었는데 하루는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마누라가 집에서 하혈을 왈칵 했단다.
눈 앞이 캄캄해져서 집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지 구름 위를 뛰어가는지 모르게 배달용 자전거 타고 두 번이나 고꾸라지며 집에 왔노라니 이미 앉은뱅이 어머니 왈이 마누라는 119 타고 병원 갔단다. 아니 그럼 어느 병원 갔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니깐 어안이 벙벙해지더니 그냥 옆집 순민이 엄마가 같이 갔단다. 왈칵 성이나 원 사람이 뭔 일을 그리 똑똑치 못하게 처리하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노라는데 그때 집으로 순민이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군민 병원이었다.
벽력같이 뛰쳐나가 이제 세상에 내 가진거는 마누라 뿐이 없는데, 하면서 그 나이에 눈물까지 훔쳐가며 풀린 다리로 겨우겨우 병원에 도착하니 마누라는 안색이 파리하지만 또 남편 왔다고 희미하게 미소까지 지어보인다.
"…뭘 잘했다고 웃어"
마음이 놓이지만 또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말이 나온다. 생전에 배워먹은게 이래서 곱상한 말은 당최 할 줄을 모른다. 그래도 내심 고맙기까지 하다. 하지만 병실을 나오자 의사가 잠깐 할 말이 있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아뿔싸 올 것이 왔다.
"자궁에 큰 물혹이 하나 보이는데, 악성조직이 아닐까 우려됩니다. 자세한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같습니다."
일단 하혈은 금방 멈추어 그날 바로 퇴원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이러다 진짜 암이면' 하는 마음에 밤새도록 잠이 안 온다. 결국 다음 날 반차를 내고 그 없는 사람 도와준다는 오 병원으로 괜찮다는 마누라 손 붙잡고 향했다.
"수술하자고 하면 난 그냥 안 할래요"
재수없게스리 벌써부터 뭔 걱정이 그리도 태산인지 버스 기다리면서도 연방 그 소리다.
"아 거 재수없게스리 뭐 누가 수술 하라고 하기는 해? 왜 벌써부터 혼자 개소리여"
아내에게 무안을 주기는 했지만 미안하고 걱정되기는 제 마음이 벌써 3미리 너트만하다. 그나저나 날씨는 무슨 사람을 쪄죽이기라도 할 것인지 아주 푹푹 찐다. 그나마 버스 안에서는 좀 살만했다만 잘못 내려 한참을 걸어야했다.
"더워?"
제 숨이 턱턱 막히는데 약골 마누라 숨이야 넘어가기 직전이다. 손부채질을 해가매 질질 끌어가매 병원까지 간신히 들어오니 이미 둘 다 땀으로 흠뻑 젖었다.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 휑 하니 에어콘 바람에 그제사 숨을 돌릴만하다.
"저기…"
막상 병원에 들어오니 사람들은 바글바글한데 어디가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병원에 오자마자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고 벌벌벌벌 아무 말도 못하는 마누라는 둘째치고 동준도 이런 큰 병원은 처음이라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간호사 하나를 붙잡고 물어보니 저어기가 그래 접수받는 곳이란다.
"네 어서오십시오"
사무적인 말투에 또 쪼그라든 동준이지만 그래도 마누라 앞에서 주눅 든 모습 보이기 싫어 괜히 목소리만 가다듬고 마누라가 아픈 거 같다며 얼마 전에 하혈을 해서 병원에 갔더니 검진 한번 받아보라 했다, 그러면서 동네 병원에서 받은 여기 병원의 의학박사 명함도 같이 내밀었다.
"김명국 선생님 특진은 당일 진료는 안되시구요 미리 예약을 해야하는데 언제가 편하신가요?"
그게 아니지 싶어서 어물쩍 거리면서 뒷머리를 긁적거리는데 뒤에서 마누라는 또 후들대는 몸으로 힘들게 서있다.
'아 저기 자리 있잖아, 앉아서 기다려'
손가락과 입모양으로 저기 빈 의자를 가리키며 앉아있으라니 알았다며 비척비척 가서 앉는다. 거 지 몸 힘든거 앉아 기다릴 줄도 모르게 맹꽁한 당최 갑갑한 여편네다. 그러다 문득 명함을 다시 가리키며
"이게, 그, 다른 의사 선생님 추천으로 온 건데, 그, 저희 같은 없는 사람들한테 병원비를 지원하는 뭐가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그제서야 간호사는 아,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희끼리 뭔가 이야기를 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리고는 "4층 산부인과로 가셔서 김명국 선생님을 찾으시면 됩니다" 하고 안내한다.
알겠노라며 그 명함을 다시 받아들고 마누라 손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힘들지?"
"괜찮아요…그나저나 당신 밥을 안 먹어서 어떡하나"
"아 밥이 문제야? 니 몸 걱정이나 해. 지미 몸이라고는 수수깡마냥 약해빠져서 원"
4층에 가서는 또 무슨 접수를 하고 기다리기를 30분쯤 됐을까. 그제사 의사 얼굴을 본다. 김명국이가 이 사람이구나. 인상 좋네, 하는데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는데 또 무슨 검사하자는 말에 돈 걱정이 문득 들어 물어보니 4만원이란다. 그거라면 괜찮겠다 싶어서 일단 검사받고 다시 이야기를 하는데…
'니미럴'
여기서도 암이 우려된단다면서 정밀검사를 해보잔다. 그건 또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수십 만원이란다. 맥이 탁 풀리는데 여기 병원에는 뭐 저소득층을 위한 뭐가 있다고 해서 추천 받아왔다고 말했지만 직업 유무를 묻더니 직업이 있으면 그 대상이 아니란다.
'그렇구나'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것이 좌절되자 동준이야말로 현기증을 느꼈다.
"더우면 뭐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먹을텨?"
병원비 9만 6천원을 내고 나오니 수중에 있는 돈은 버스비 빼고 나면 남는 돈이 천원이다. 마누라는 차가운건 됐고 그냥 시원한 물이나 한잔 마시잔다. 병원 로비의 편의점에 가서 생수 하나를 사서 한 모금 먹이고 나도 한 모금 먹고 나니 살 거 같은데 그때 보니 저기 병원의 정수기가 있다.
'지미, 공짜를 놔두고 비싼 물 쳐먹었네'
근데 문득 그래도 물 한 모금 먹었다고 시원하다며 얼굴이 조금 펴지는 마누라 보니까 또 마음이 선선해진다. 그래 어차피 또 집에까지 가려면 한 나절인데 물 잘 샀네 싶었다.
"아닐거야, 암은 무슨 암… 우리 팔자에. 우리 집안에 생전에 암 환자는 하나도 없었어"
마누라 손 잡고 병원을 나서는데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흠칫 놀라며 눈가를 닦는데 마누라는 또 씩씩하게 내 팔을 흔든다.
"애도 못 낳는 애기집인데 뭐, 애 집어먹었으면 됐지 돈까지 집어먹을라구? 괜찮아요"
다 죽어가는 표정이더니만 어째 병원에서 암일지도 모른다는데 표정이 더 밝다. 모자란 년도 아니고. 그런데 문득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여보, 나 죽으면 그냥 화장해. 그리고 어머니 기저귀 빨래할 때 찬물로 하면 안 지니까… 물 끓여서
빡빡 옥시크린 조금 넣어서 삶아서 빨고"
동준은 문득 그게 마누라 유언이라는 생각에 그만 눈물이 복받친다. 대답도 못하고 그저 아랫 입술만 깨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미안해요. 약속 못 지켜서. 평생 옆에 있어준다고 했는데"
동준은 울음을 참다못해 끄윽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생전에 호강 한 번 못 시켜준 마누라한테 못내 미안했다. 왼손에 쥔 마누라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이미 땀과 눈물로 젖은 오른손 소매로 눈가를 닦는데 등줄기로 굵은 땀방울이 또 흐른다.
뜨거운 땡볕은 3시가 넘었는데도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tag : 땡볕, 김유정
"다 왔어. 저 있잖아"
손가락으로 가리킨 저 편에 떡하니 오 병원이 있다.
"어휴…"
마누라는 또 현기증이 오는지 잠시 쉬어가자는 듯 동준의 팔을 그 가는 손목으로 잡아 끈다.
"허, 다 왔구만…"
차라리 시원하니 병원에 가서 쉬는게 낫지 싶건만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든 모양이다. 속이 탄다. 담배라도 한 대 태웠으면 좋겠건만 주머니에 딸랑 빌려온 돈 10만원은 당최 병원비로도 부족하지 싶으니 담배 따위로 하릴 없이 태울 돈이야 있을 리 없다.
"가자, 쉬어도 병원에서 쉬는게 나아"
가로수 밑에 서있어봐야 바람 한 점 없는 숨막히는 여름 땡볕 아래 비척비척 땀이나 치솟지 얼른 들어가자고 재촉하니 그제서야 "알았어요" 하면서 마누라는 동준의 손을 잡고 그 힘없는 걸음을 내딛는다.
'지미 덥기는 오라지게 덥네'
그냥 반팔 입고 올 거를 괜히 그래도 병원 같은 데서 얕보이면 바가지 쓰지 싶어서 딱 한벌 있는 낡은 정장을 입고 왔더니 땀에 목욕을 할 지경이다. 안되겠다 싶어서 마이를 벗어 손에 들고 가는데 그제사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불어오니 한숨 돌린다.
'그나저나 혜택을 봐야할텐데'
허구한 날 온 몸이 어디 아프다 아프다 하던 마누라다. 원체 몸이 약해서 애가 들어서지를 않아 결혼 6년 차에 접어들어도 뭐 애가 당최 들어서질 않으니 이건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병원에를 갔더니 애가 문제가 아니라 뜬금없이 자궁에 뭔 혹 같은게 보인단다. 자세히 검사를 해보자고 하는데 신용불량자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입장인데 수십만원 검사비를 감당할 길이 없고 겁도 난다는 마누라 말에 걍 괜찮다고 됐다고 일어서는데 의사가 그런다.
"암일 수도 있습니다"
마누라는 식겁하고 동준도 재수없는 소리라며 애써 무시하려 했는데,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의사가 오 병원의 김 아무개 의학박사 명함을 준다. 실력도 좋은 선생님이고 무엇보다 오 병원이 저소득층 환자들을 위한 지원 시스템이 있단다. 한번 알아보란다.
명함을 받아놓고 걱정이야 태산 같지만 한달에 돈 110만원 받아서 빚 갚고 월세비 내고 세금 내고 어머니 약값 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생각 같아선 뭐라도 하고 싶지만 바른손 손구락이 셋 밖에 없는 상황서 지금 다니는 공장 일만 해도 간신히 얻은 자리다. 그러다보니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있었는데 하루는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마누라가 집에서 하혈을 왈칵 했단다.
눈 앞이 캄캄해져서 집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지 구름 위를 뛰어가는지 모르게 배달용 자전거 타고 두 번이나 고꾸라지며 집에 왔노라니 이미 앉은뱅이 어머니 왈이 마누라는 119 타고 병원 갔단다. 아니 그럼 어느 병원 갔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니깐 어안이 벙벙해지더니 그냥 옆집 순민이 엄마가 같이 갔단다. 왈칵 성이나 원 사람이 뭔 일을 그리 똑똑치 못하게 처리하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노라는데 그때 집으로 순민이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군민 병원이었다.
벽력같이 뛰쳐나가 이제 세상에 내 가진거는 마누라 뿐이 없는데, 하면서 그 나이에 눈물까지 훔쳐가며 풀린 다리로 겨우겨우 병원에 도착하니 마누라는 안색이 파리하지만 또 남편 왔다고 희미하게 미소까지 지어보인다.
"…뭘 잘했다고 웃어"
마음이 놓이지만 또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말이 나온다. 생전에 배워먹은게 이래서 곱상한 말은 당최 할 줄을 모른다. 그래도 내심 고맙기까지 하다. 하지만 병실을 나오자 의사가 잠깐 할 말이 있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아뿔싸 올 것이 왔다.
"자궁에 큰 물혹이 하나 보이는데, 악성조직이 아닐까 우려됩니다. 자세한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같습니다."
일단 하혈은 금방 멈추어 그날 바로 퇴원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이러다 진짜 암이면' 하는 마음에 밤새도록 잠이 안 온다. 결국 다음 날 반차를 내고 그 없는 사람 도와준다는 오 병원으로 괜찮다는 마누라 손 붙잡고 향했다.
"수술하자고 하면 난 그냥 안 할래요"
재수없게스리 벌써부터 뭔 걱정이 그리도 태산인지 버스 기다리면서도 연방 그 소리다.
"아 거 재수없게스리 뭐 누가 수술 하라고 하기는 해? 왜 벌써부터 혼자 개소리여"
아내에게 무안을 주기는 했지만 미안하고 걱정되기는 제 마음이 벌써 3미리 너트만하다. 그나저나 날씨는 무슨 사람을 쪄죽이기라도 할 것인지 아주 푹푹 찐다. 그나마 버스 안에서는 좀 살만했다만 잘못 내려 한참을 걸어야했다.
"더워?"
제 숨이 턱턱 막히는데 약골 마누라 숨이야 넘어가기 직전이다. 손부채질을 해가매 질질 끌어가매 병원까지 간신히 들어오니 이미 둘 다 땀으로 흠뻑 젖었다.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 휑 하니 에어콘 바람에 그제사 숨을 돌릴만하다.
"저기…"
막상 병원에 들어오니 사람들은 바글바글한데 어디가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병원에 오자마자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고 벌벌벌벌 아무 말도 못하는 마누라는 둘째치고 동준도 이런 큰 병원은 처음이라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간호사 하나를 붙잡고 물어보니 저어기가 그래 접수받는 곳이란다.
"네 어서오십시오"
사무적인 말투에 또 쪼그라든 동준이지만 그래도 마누라 앞에서 주눅 든 모습 보이기 싫어 괜히 목소리만 가다듬고 마누라가 아픈 거 같다며 얼마 전에 하혈을 해서 병원에 갔더니 검진 한번 받아보라 했다, 그러면서 동네 병원에서 받은 여기 병원의 의학박사 명함도 같이 내밀었다.
"김명국 선생님 특진은 당일 진료는 안되시구요 미리 예약을 해야하는데 언제가 편하신가요?"
그게 아니지 싶어서 어물쩍 거리면서 뒷머리를 긁적거리는데 뒤에서 마누라는 또 후들대는 몸으로 힘들게 서있다.
'아 저기 자리 있잖아, 앉아서 기다려'
손가락과 입모양으로 저기 빈 의자를 가리키며 앉아있으라니 알았다며 비척비척 가서 앉는다. 거 지 몸 힘든거 앉아 기다릴 줄도 모르게 맹꽁한 당최 갑갑한 여편네다. 그러다 문득 명함을 다시 가리키며
"이게, 그, 다른 의사 선생님 추천으로 온 건데, 그, 저희 같은 없는 사람들한테 병원비를 지원하는 뭐가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그제서야 간호사는 아,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희끼리 뭔가 이야기를 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리고는 "4층 산부인과로 가셔서 김명국 선생님을 찾으시면 됩니다" 하고 안내한다.
알겠노라며 그 명함을 다시 받아들고 마누라 손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힘들지?"
"괜찮아요…그나저나 당신 밥을 안 먹어서 어떡하나"
"아 밥이 문제야? 니 몸 걱정이나 해. 지미 몸이라고는 수수깡마냥 약해빠져서 원"
4층에 가서는 또 무슨 접수를 하고 기다리기를 30분쯤 됐을까. 그제사 의사 얼굴을 본다. 김명국이가 이 사람이구나. 인상 좋네, 하는데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는데 또 무슨 검사하자는 말에 돈 걱정이 문득 들어 물어보니 4만원이란다. 그거라면 괜찮겠다 싶어서 일단 검사받고 다시 이야기를 하는데…
'니미럴'
여기서도 암이 우려된단다면서 정밀검사를 해보잔다. 그건 또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수십 만원이란다. 맥이 탁 풀리는데 여기 병원에는 뭐 저소득층을 위한 뭐가 있다고 해서 추천 받아왔다고 말했지만 직업 유무를 묻더니 직업이 있으면 그 대상이 아니란다.
'그렇구나'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것이 좌절되자 동준이야말로 현기증을 느꼈다.
"더우면 뭐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먹을텨?"
병원비 9만 6천원을 내고 나오니 수중에 있는 돈은 버스비 빼고 나면 남는 돈이 천원이다. 마누라는 차가운건 됐고 그냥 시원한 물이나 한잔 마시잔다. 병원 로비의 편의점에 가서 생수 하나를 사서 한 모금 먹이고 나도 한 모금 먹고 나니 살 거 같은데 그때 보니 저기 병원의 정수기가 있다.
'지미, 공짜를 놔두고 비싼 물 쳐먹었네'
근데 문득 그래도 물 한 모금 먹었다고 시원하다며 얼굴이 조금 펴지는 마누라 보니까 또 마음이 선선해진다. 그래 어차피 또 집에까지 가려면 한 나절인데 물 잘 샀네 싶었다.
"아닐거야, 암은 무슨 암… 우리 팔자에. 우리 집안에 생전에 암 환자는 하나도 없었어"
마누라 손 잡고 병원을 나서는데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흠칫 놀라며 눈가를 닦는데 마누라는 또 씩씩하게 내 팔을 흔든다.
"애도 못 낳는 애기집인데 뭐, 애 집어먹었으면 됐지 돈까지 집어먹을라구? 괜찮아요"
다 죽어가는 표정이더니만 어째 병원에서 암일지도 모른다는데 표정이 더 밝다. 모자란 년도 아니고. 그런데 문득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여보, 나 죽으면 그냥 화장해. 그리고 어머니 기저귀 빨래할 때 찬물로 하면 안 지니까… 물 끓여서
빡빡 옥시크린 조금 넣어서 삶아서 빨고"
동준은 문득 그게 마누라 유언이라는 생각에 그만 눈물이 복받친다. 대답도 못하고 그저 아랫 입술만 깨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미안해요. 약속 못 지켜서. 평생 옆에 있어준다고 했는데"
동준은 울음을 참다못해 끄윽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생전에 호강 한 번 못 시켜준 마누라한테 못내 미안했다. 왼손에 쥔 마누라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이미 땀과 눈물로 젖은 오른손 소매로 눈가를 닦는데 등줄기로 굵은 땀방울이 또 흐른다.
뜨거운 땡볕은 3시가 넘었는데도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tag : 땡볕, 김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