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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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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남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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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별 대단찮은 작은 테크닉을 말하자면 이런게 있어. 소설을 쓸 때 말이지, 특정 부분의 디테일을
아주 확 높여버리면, 전체적인 이야기가 꽤 황당무계하고 얼개가 부실하더라도 왠지 그 디테일한 부분의
찜찜함이 남아서 '혹시 사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남게 만든단 말이지.

쉽게 말해서 아예 쌩 구라보다는 적절히 사실을 섞은 구라가 더 잘 통한단 말씀이야. 그 날의 상황은 뭐
어찌보면 그 이야기의 확장선이라고 볼 수 있지.


대학교 1학년 때의 이야기야. 너희들도 공감하겠지만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학교 친구들은 분명 엄청나게
다르단 말이야. 아무리 친한 척 매일 함께 술을 퍼마셔도 뭔가 근본적으로 홀랑 서로를 까보이지는 않는,
그리고 묘하게 계산적으로 선을 그어놓는 그런게 분명히 있어. 예외가 아주 없다고야 못하겠지만 보통은
그렇단 말이지. 그런 판이니 이제 술 좀 들어가면 더욱 뻔하지 않겠어?

녀석들도 그랬어. 성현, 주용, 형진, 진구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놈이 함께 다녔지. 크게 우리 과에는 파
벌이 셋이 있었는데, 과 대표였던 해민이 놈을 중심으로 한 1그룹과 내가 속한 2그룹, 마지막으로는 별로
볼 거 없는 찌질이, 아웃사이더들이 속한 3그룹.

여자애들처럼 파벌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분명히 각각의 그룹 간에는 거리감이 상당
했지. 1그룹 애들은 꽤나 잘난 놈들이었어. 다들 키도 크고 인물도 훤칠하고 잘 놀고, 잘 어울리고, 제 앞
가림 잘하는 놈들…아니, 다 그런건 아니지만 여튼. 고등학교로 비유하자면 소위 일진 그룹 애들이었지.

그리고 내가 속한 2그룹 애들은 평범한 놈들. 3그룹 애들처럼 대놓고 찌질이처럼 꾸밀 줄도 모르고 학과
생활에 겉돌며 서브 컬쳐에 관심 갖고 뭐 그런 놈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뭐가 특별히 잘난
것도 없는 그런 놈들 말이야.

말하자면 B학점짜리 인생들이랄까. 다들 나름의 꿈은 있겠지만 결국에는 다들 적당한 회사에서 적당히
만족하며 적당한 여자와 적당한 가정을 꾸리고 적당히 살 놈들. 다들 '중산층'을 꿈꾸지만 결국에는 뭐
'서민'으로 살다 갈 놈들.

…그런 만큼 '그래도 우리 학교 정도 간판이면 썩 나쁜 건 아니지 않는가?' 라는 미묘한 공감대도 있고,
아주 대단한 포부나 목표를 갖고 인생 사는 놈들도 아닌 만큼, 술을 통한 어설픈 친목도모는 결국 그런 
B학점 인생들에게 중요한 서브 목표 정도가 되어주었지.

처음에는 다들 통학을 했지만 곧 그래도 아버지가 중소기업 사장이던 성현이 놈이 그나마 우리 중에선
제일 나은 경제력을 자랑하듯 자취를 시작한거야. 학교 앞 원룸치고는 제법 넓었던 녀석의 집은 금방
우리들의 술 아지트로 사용되었고 그렇게 우리들은 하루 건너 하루 술 파티를 벌이기 시작했지. 



"아 뭐 재미나는거 없냐?"

알딸딸해질 무렵, 주용이 놈이 그렇게 씨부린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형진이 놈이 "그럼 왕게임
할래?"하고 받았지.

"자지 새끼들 다섯이서 무슨 왕게임이야. 왜? 여기 따먹고 싶은 새끼라도 있냐?"

진구의 말에 나머지 네 놈이 낄낄대었지만, 의외로 주용은 거기서 아이디어를 캐치했다.

"왕게임 대신에, 술병 돌려서 썰 하나씩 풀자"
"뭔 썰?"

역시 평범한 대가리답게 형진의 구체적인 플랜제시 요구에 주용은 입을 다물었지만, 곧 형진이 "뭐 아무
이야기나 좋지. 웃긴 얘기던 야한 얘기던, 좆같은 얘기던" 하고 이야기를 구체화 시켰고, 맨날 다들 적당
히 간 보며 야부리만 털었지 의외로 생각해보니 각자에 대해 정말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 없던 우리는
그 의견에 동조했다.

"내가 고2때 여친 따먹은 이야기부터 풀까?"

형진이 오징어를 씹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 시점에 내가 태클을 걸었다.

"야, 존나 뻔한 이야기들 말고, 뭐 쎈 거 없냐? 평범한 거 말고 쎈 이야기들 좀 풀어보자" 하고 말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형진의 표정을 보고 그랬던 거 같다. 되도 않는 뻔한 쌈마이 썰을 존나게
재미없게 풀어놓을 듯한 그 느낌에 대박 아니면 꺼져, 하는 식으로 태클을 걸고 싶었던 묘하게 꼬인 마음
같은거 말이다. 형진은 내 말에 조금 '야마가 돌았는지' 곧바로 되물었다.

"넌 뭐 있냐?"

하기사 다들 뻔한 그렇고 그런 인생 살아온 놈들, 것두 대딩 1학년 새끼들이 뭐 특별한 경험을 해도 뭐
얼마나 했겠느냐만… 의외로 뭐가 아다리가 맞을 때는 있는 법이다.

"그럼…내가 존나 쎈 이야기 하나 해볼까?"

진구. 우리 중에서는 확실히 제일 그나마 인생 험하게 살았을 거 같은 놈이었다. 바이크도 끌고 다니고
어깨에 문신도 그렇고… 굳이 나누자면 1그룹, 혹은 3그룹에 속할 놈이었겠지만 우리 과의 1그룹과는
또 묘하게 안 어울리게 어두운 면이 있었던데다 우리 과 3그룹은 아무리 서브컬쳐 쪽에 속한 새끼들이
라고 치도라도 좀 심한 데가 있는 놈들이었기에 녀석은 그나마 우리와 함께 했던 것 같다.

"뭔데?"

새끼가 조금 뜸을 들이자 곧바로 주용이 물었다. 그러자 진구가 곧바로 쎈 질문을 해왔다.

"너네 혹시 깜방 갈만한 짓 해본 적 있냐?"

감방이라. 그 날로부터 십 년도 훨씬 넘긴 지금의 나라면 "어"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겠지만, 그래도
당시의 나는 순진한 데가 있던 놈이었고 나머지 네 놈도 왠지 뭔가 핵폭탄이 터질 거 같은 상황 속에서
선뜻 입을 열지는 못했다. 그러자 진구가 미미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난 있다"



진구 놈의 이야기는…글쎄, 뭐랄까. 삽시간에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교통사고 뺑소니를 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린 아이를.

놈은 벌써 중3 때부터 바이크를 타기 시작했다는데, 사고를 낸 건 고1 때였다고 한다. 훔친 오토바이를
바이크 수리하는 아는 형 통해서 카울이랑 쇼바까지 싹 손 본 다음에 타고 다녔는데 하루는 학교 선배
네에서 술 빨고 집에 들어가려고 새벽에 몰다가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꼬맹이를 치었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에 미성년자, 훔친 바이크에 피해자 꼬맹이는 골통이 부서져 피를 철철 흘리기까지 했으니 뭐
그야말로 패닉에 빠지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너무 상황이 안 좋다보니까 술이 확 깨고 정신이
번쩍 들더랜다. 그리고 또 든 생각이…

"씨바알"

진구는 문득 그 날 그 순간의 좆같은 기분이 다시 들었는지 소주를 나발로 불더니 그 허스키 보이스로
정말 좆같음이 물씬 느껴지는 욕을 한 마디 내뱉고 다시 썰을 이어갔다.


좆됐다, 라는게 당연히 첫 번째, 이어서 왠 새벽에 미친 꼬맹이가 돌아다니나 싶은 마음이 둘째, 이제는
억울하다라는 마음이 셋째, 이윽고 이대로 인생 망칠 수는 없다라는게 넷째, 마지막으로 '나라도 살아야
겠다'라는 마음.

그래서 결국 놈은 그 머리가 깨져 의식이 없는 꼬맹이를 질질 끌어서 골목길 옆에 놓아두고 그대로 바이
크를 타고 달아났고, 집에 가자마자 핏자국은 빡빡 닦아냈단다. 그런데 더 믿기 어려운 일은, 그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 날 이후로 아무런 뭐가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뺑소니 목격 관련해서
현수막 하나 붙은 적이 없다는 것. 한번은 너무 마음이 찜찜해서 목격자 코스프레 하면서 경찰서에 전화
까지 했는데 어이없게도 그 날 신고된 뺑소니건 자체가 없더란다.

"이제와서는 그냥 술 쳐먹고 꾼 꿈인가 싶어"

하고 씩 웃는 진구의 이야기. 허무하기도 하고, 뭔가 좆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너무 뜬금없는 꽤 적절한
한 방이었기에 우린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첫 타가 대박이었던 탓일까, 아니면 술이 왠수일까. 성
현이가 그 분위기에 이어서 역시 핵폭탄을 터뜨렸다.



"너네…정말 살면서 하면 안 되는 짓 해본 적 없냐?"

성현의 이야기는 또 지랄 맞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중 1때로 넘어간다. 녀석에게는 한살 연상의 형이
있었는데, 피를 나눈 형은 아니라고 했다.

"아빠가 사고쳐서 낳아온 자식이지"

그러고보니 놈이 형 이야기는 처음 하는 듯 했다. 우리는 다들 놈한테 형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녀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난 까놓고 말해서 우리 아버지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대단한 여성편력을 자랑했고 어릴 적부터 항상 그 문제로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단다. 게다가 결국 녀석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난데없이 왠 지보다 대가리 하나가 더 큰
남자애랑 집에 들어오더니 "오늘부터 니 형이다" 라면서, 밖에서 낳아온 자식을 소개했단다.

"너네 어머니 근데도 이혼 안 하셨냐?"
"할라고 했지"

그러나 타이밍이 지랄이었단다. 원래부터 건강이 그리 안 좋으셨던 외할아버지가 결국 쓰러져서 입원을
하셨고, 큰 수술을 해야되는 판에 급한대로 결국 엄마는 아버지한테 손을 내밀 수 밖에 없었고 돈 문제와
그 외할아버지 간병 문제로 이혼 절차를 못 밟고 질척대다가 그렇게 결국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
다는 것이다.

"어쨌든, 아 씨발 잡음 좀 넣지마"

그저 아부지가 에쿠스 끌고 다니는 부잣집 외동아들이라고만 생각했던 성현의 가정사가 제법 복잡하고,
심지어는 이복형제까지 있다는 말에 우리들은 꽤 놀라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고 덕분에 이야기가 원활
하게 넘어가지 않아서 성현은 그렇게 일갈했다. 우린 모두 입을 닫았고 성현은 그 형 이야기를 이어갔다.

"근데 그 새끼가 초장부터 좀 이상했어"


아무리 나이 상으로는 형이라고는 해도, 밖에서 굴러들어온 돌. 게다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에 대한 엄마
의 증오가 투사되는 대상에 대해서 사춘기였던 성현이 그리 호감이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또 대가리 굵어질 나이라서 벌써부터 나중에 아버지 유산문제까지 신경이 쓰이더란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예 그냥 투명인간 취급을 했어"

나이로도 형이었고 키도 살짝 더 컸지만, 그 '형'이라는 사람은 워낙에 마르고 여리여리한 타입이라 성현
은 그가 전혀 두렵지 않았고 막대했단다.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하거나 가끔 부르더라도 "야" 혹은 "주워
온 애"하고 부르고.

그런데 뜻밖에 '형'은 전혀 반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인 이상 욕을 하고 지랄을 하면 조금이라도
분노를 하기 마련인데 일절 그런 것도 없었고 그저 "미안" 혹은 "잠깐만" 하고 그저 수그릴 뿐. 손뼉도 뭐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지, 그렇게 철저하게 고개를 숙이고 집에서도 그림자처럼 생활한데다 어머니
도 그리 독한 분이 아니라서 몇 달 후에는 결국 그를 더이상 괴롭히지 않고 받아들였단다.

"너네 어머니 성자네 성자"
"엄마는 근데 아무 것도 몰라 씨발"
"뭘?"
"들어봐"


그러던 어느 날. 한창 성에 관심이 갈 나이였던 성현. 언제나처럼 몰래 밤에 자기 방에서 야동을 보면서
딸딸이를 치던 도중 문득 '형은 이 시간에 뭐하지?'하는 호기심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자기 방에서 나와
형의 문 앞까지 가서 문을 벌컥 열어버렸단다. 자신의 방과는 달리 잠금장치가 없던 '형'의 방을 그렇게
심야에 활짝 문을 열었더니… 그 형은 자신의 항문에 열심히 손가락 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에이 씨발 구라쟁이 새끼"
"에휴, 좆까라. 뭔 구라를 쳐도…"
"드럽다 씨발 야 아 참나 원…"
"아 존나 웃기네 이 새끼"

우리는 모두 일제히 그의 말에 비난을 퍼부었고, 성현은 그 말에 픽 웃었다. 그랬다. '픽'하고 웃었다. 그
건 구라라는걸 인정하는 웃음 같기도 했고, 그저 '그래, 너네들이 믿을 리가 없지. 차라리 난 그게 좋아'
라는 웃음 같기도 했다.

"다음 이야기가 진짜 액기스인데 너네가 안 믿으니까 관둔다. 근데 이거 하나만 말해둘께. 나 아다 그 새
끼한테 뗐다. 그리고 그 새끼 지금 이 세상에 없다. 내가 뭐한다고 그런 구라를 치냐?"



이래저래 비난의 폭풍우가 쏟아졌지만 우리는 그 즈음해서 뭔가 분위기가 한층 달아올랐다. 이제는 뭐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 것도 적당히 구라를 섞어서 과장해도, 아니 과장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가 된 속에서 주용이 입을 열었다.

"난 구라 같은 썰 안 푼다. 어차피 이빨 털어봐야 너네가 속을 리도 없고. 그냥 나 어릴 때 우리 옆 집에…"

그렇게 운을 뗀 주용은 자신의 첫 사랑과 얽힌 좆같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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