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돼? 그냥 자구 가"
아쉬워하는 기영에게 또 한번의 진한 키스를 안겨주고 한나는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4시 반. 슬슬 옷을 챙겨입고 머리를 뒤로 묶었다.
"가야 돼. 나오지 마. 더 푹 자고 낮에 연락해. 카톡으로"
한나의 대답에 기영은 피식 웃으며 "그럼 잘 들어가고, 남친한테 아침이라도 사줘라. 밤새 걱정했을텐데"
라고 한마디 했다. 한나는 "이게 확 죽을라고" 하고 주먹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
했다.
한나는 모텔방을 나섰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아직도 어두웠다. 모텔의 차양 아래로 저 밖에 행인 하나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조심스레 모텔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행인은 그 뿐이 아니었다. 맞은 편의 청소부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은 민망했지만 아는 사이도 아니고 뭐 어쩌랴. 그저 발걸음을 조금 빨리할 따름이었다.
새벽녘의 모텔촌을 도망치듯 빠져나온 그녀. 바로 택시를 잡았다.
"신림 2동이요"
택시기사는 대답이 없다. 불친절하다. 이런 택시 기사들이 제일 싫다. 그 와중에 룸미러로 힐끔 이쪽을
쳐다보기까지 한다. 무섭고, 재수없다. 한나는 주머니에서 꺼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꺼진 휴대폰을 켜자
부재 중 전화가 14통이나 와 있었다.
하나는 10시 반의 엄마 전화, 나머지는 모두 윤택의 전화였다. 10분, 30분, 한 시간 정도 단위로 드문드문
걸려온 전화. 가장 마지막에 걸려온 전화는 새벽 3시 14분.
'아 씨'
그냥 늦게라도 전화 한 통 하는 건데. 아니면 그냥 아파서 일찍 잔다고 거짓말을 할 걸. 괜히 윤정이랑 술
마신다고 거짓말을 치는 바람에 아….
여친이 친구랑 술 마시러 간다고 전화해놓고서는 밤새도록 연락이 두절되었으니 남친 입장에선 걱정과
의심이 들 법도 하지. 사실 뭐 나라고 기영이랑 또 잠까지 잘 줄 알았나. 그냥 간만에 얼굴 보고 가볍게
한 잔 하고 일어서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어'
지금 남친인 윤택, 아니아니 그 전 남친인 진욱을 만나기 전의 '썸남' 남기영. 주미에게 받은 소개팅으로
잘 되어가는 분위기였다가 둘 다 너무 회사 일로 바빠서 흐지부지 되었던 차에… 놀랍게도 1년 반만에
거래처 사람 만나러 갔다가 정말 우연히 그 회사 빌딩에서 딱 마주쳤질 뭔가.
"어? 조한나? 맞지?"
"아…"
"야, 내 이름 벌써 까먹은거야? 남기영. 어? 아, 이거 실망이네. 난 아직도 너 완전 기억하는데"
"맞다, 기영…"
잠깐 나이가 어떻게 되었더라 하고 호칭을 고민하는 순간 눈치 빠르게 "야 우리 동갑이잖아. 아 너 장난
아니다" 하고 대답해준 기영. 큼직큼직한 눈코입. 시원하게 웃는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있으리. 이름이야
솔직히 정말 까먹었었지만.
'운명이야 운명'
서로 반가움에 번호를 주고받고, 며칠 간 카톡을 나누다가 기영이 먼저 "주말에 한잔 하자" 하고 제의를
해서, 정말로 술 한잔 마시고 올라고 윤택에게는 윤정이 만나고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만나러 갔다.
원래부터 잘 생기고 색기가 감도는 얼굴이었지만 간만에 본 기영은 더욱 섹시해졌다. 한나는 새삼 생각
했다. 기영이야말로 원래 내 타입이라고. 말빨 좋고 웃기고 말근육에다 시원시원한 남자다운 스타일.
그러고보면 왜 기영이랑 잘 안 됐더라? 아… 맞다. 진욱이. 허진욱 그 조루새끼.
주변의 다른 친구들이 '진득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들이대던 땅꼬마 새끼. 하도 노골적으로 들이대길래
반쯤 포기하는 느낌으로 사귀기로 했는데, 솔직히 나한테 잘하긴 정말 잘했다. 웃기기도 엄청 웃기고.
근데 그러면 뭐하는가.
'남녀 사이에서는 그게 제일 중요한건데'
진욱과의 연애는 불과 3개월 만에 끝났다. 돈 많고 나한테 잘해주면 뭐해. 밤일 솜씨가 형편없는데. 정말
처음 자던 날 속으로 '아 씨발…' 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혼자 정상위로 3분만에 찍…. 난 솔직히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그게 안 맞으면 못 만난다.
그 얼마 후 진욱과 헤어지고 만난게 지금의 남친 윤택이다. 우연히 진송 미술관에 전시보러 갔다가 내가
실수로 그의 발을 밟았는데, 내가 밟아놓고 혼자 놀라 그 자리에서 펄쩍 뛰자 웃으면서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고 시원하게 웃던 남자.
그게 지금의 남친 윤택이다. 사귄지는 얼추 1년쯤 되었다. 뭐 남친으로서는 나름 훌륭하지만 남편감으로
서는 조금…. 돈 안되는 통역일 하는데다, 솔직히 외모가 참 타입이 아니다. 둥글둥글한게 살 좀 빼라고
아무리 말해도 점점 더 찌는 것 같다.
"다 왔습니다"
"카드로 결제할께요"
"거기 대세요"
택시에서 내려 시계를 보았다. 5시 조금 안 된 시간. 나는 윤택의 집으로 향했다. 지금쯤 자고 있겠지.
여튼, 지난 밤. 기영과 간만에 만나 술을 마시는데 솔직히 보자마자…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일에 너무 지쳐서 욕구불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요새 운동한다면서 복근을
슬쩍 까 보여주는데 아…
'왜 내가 남친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을까' 하는 어이없는 후회를 했었다. 하지만 기영은 꽤 거침없는
남자였다.
"운동 한다면서 고기 먹어도 돼?"
"운동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지금 먹으면 다 살로 갈거 아냐"
그 말에 씩 웃으면서 "밤에 운동하면 되지" 하며 눈웃음 치는 그 남자. 한나는 자기도 모르게 픽 웃음이
터졌다. 어쩜 그렇게 과감할까. 윤택이나 진욱에게서는 꿈도 못 꿀 그런 것이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람을 피우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선택이었다.
술잔을 들이키면서도 한참을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술잔을 뺏으며 한 기영의 한 마디에 날아갔다.
"너 여기 나올 때 남친한테 솔직히 말하고 나왔으면 그냥 들어가고, 거짓말 하고 나왔으면 오늘 나랑
자자"
…너무나도 스트레이트한 한 마디. 그리고 난 그 말에 무어라 대꾸 할 수 없었고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조한나 31세.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벽히 남자에게 퍼펙트 KO 당한 순간이었다.
KO는 그 술자리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잠자리에서도 기영은 완벽했다. 정말이지 요 몇 년간의 섹스 중
최고였다. 몇 번을…아. 게다가 매너도 좋았다. 귓가에 속삭이던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어쩌면 그렇
게도 사람 마음을 녹이는지.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외도를 한 거지만 전혀 후회가 안 남을 정도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노라니 어느새 윤택의 집 앞이다. 살짝 옷매무새를 흐트러뜨리고, 마지막으로
통화기록까지 다 삭제하고는 문을 두드렸다.
콩콩콩.
아마도 자고 있는지 반응이 없다. 몇 번을 더 두드리자 겨우 안에서 잠에 찌든 목소리로 "누구세요?" 하는
말이 들려왔다.
"나야"
내 목소리를 듣자 잠이 확 깼는지 윤택은 바로 문을 열었다. 순간 그의 표정에서 분노를 읽었지만 나는
먼저
"자기야…"
하고 콧소리를 내며 그의 품에 안겼다. 윤택은 겨우 몸의 균형을 잡으며 "뭐야, 술 마신거야?" 하고 물었고
난 "웅" 하고 또 취한 척 대답했다.
"미앙해. 새벽까지 술 마셔서엉"
"됐고, 옷부터 벗어. 술 냄새 난다"
센스 넘치는 기영의 조언대로 술 마실 때 머플러에다도 소주 좀 뿌려놓길 잘했다. 윤택의 목소리는 조금
누그러진 듯 했다. 아무렴, 다른 남자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면 차라리 아침까지 연락을 두절하지 이렇게
남친의 집으로 새벽에 쳐들어 올리가 있나.
"뭔 술을 지금 시간까지 마셨어"
"윤정이랑 마시다가아, 종로에서어, 희주랑 민지도 근처라고 해서어 간만에에 4차까지 완전 달렸엉.
자기야, 미안해"
여전히 계속 윤택을 끌어안고 혀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여자친구들이랑 새벽까지 달렸다고 하니까 그의
화도 누그러진 듯 했다. 그렇게 믿고 싶은게 또 사람의 마음이고.
"알았어 알았어, 일단 옷 벗고, 씻어. 그리고 푹 자자"
"엉"
샤워를 또 했다. 그리고 속옷만 입고 윤택을 끌어안고 누웠다. 피곤했다. 술 마셨지, 기영이랑 밤새 즐겼지…
"지금 몇 시야?"
"6시 5분 전. 더 자"
"응"
하지만 그 말과는 달리 윤택은 내 몸을 더듬고 있었다. 남자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귀엽고.
평소 같으면 귀찮다고 거절했겠지만, 오늘만큼은 봐주기로 했다. 잘못한 것도 있으니까 이걸로 퉁 치지 뭐.
그래도 윤택의 미숙한 손길을 느끼자니 새삼 몇 시간 전의 기영이 더 그리워진다. 난 정말로 나쁜 년인 것
같다. 하지만 뭐 어때.
아쉬워하는 기영에게 또 한번의 진한 키스를 안겨주고 한나는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4시 반. 슬슬 옷을 챙겨입고 머리를 뒤로 묶었다.
"가야 돼. 나오지 마. 더 푹 자고 낮에 연락해. 카톡으로"
한나의 대답에 기영은 피식 웃으며 "그럼 잘 들어가고, 남친한테 아침이라도 사줘라. 밤새 걱정했을텐데"
라고 한마디 했다. 한나는 "이게 확 죽을라고" 하고 주먹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
했다.
한나는 모텔방을 나섰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아직도 어두웠다. 모텔의 차양 아래로 저 밖에 행인 하나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조심스레 모텔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행인은 그 뿐이 아니었다. 맞은 편의 청소부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은 민망했지만 아는 사이도 아니고 뭐 어쩌랴. 그저 발걸음을 조금 빨리할 따름이었다.
새벽녘의 모텔촌을 도망치듯 빠져나온 그녀. 바로 택시를 잡았다.
"신림 2동이요"
택시기사는 대답이 없다. 불친절하다. 이런 택시 기사들이 제일 싫다. 그 와중에 룸미러로 힐끔 이쪽을
쳐다보기까지 한다. 무섭고, 재수없다. 한나는 주머니에서 꺼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꺼진 휴대폰을 켜자
부재 중 전화가 14통이나 와 있었다.
하나는 10시 반의 엄마 전화, 나머지는 모두 윤택의 전화였다. 10분, 30분, 한 시간 정도 단위로 드문드문
걸려온 전화. 가장 마지막에 걸려온 전화는 새벽 3시 14분.
'아 씨'
그냥 늦게라도 전화 한 통 하는 건데. 아니면 그냥 아파서 일찍 잔다고 거짓말을 할 걸. 괜히 윤정이랑 술
마신다고 거짓말을 치는 바람에 아….
여친이 친구랑 술 마시러 간다고 전화해놓고서는 밤새도록 연락이 두절되었으니 남친 입장에선 걱정과
의심이 들 법도 하지. 사실 뭐 나라고 기영이랑 또 잠까지 잘 줄 알았나. 그냥 간만에 얼굴 보고 가볍게
한 잔 하고 일어서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어'
지금 남친인 윤택, 아니아니 그 전 남친인 진욱을 만나기 전의 '썸남' 남기영. 주미에게 받은 소개팅으로
잘 되어가는 분위기였다가 둘 다 너무 회사 일로 바빠서 흐지부지 되었던 차에… 놀랍게도 1년 반만에
거래처 사람 만나러 갔다가 정말 우연히 그 회사 빌딩에서 딱 마주쳤질 뭔가.
"어? 조한나? 맞지?"
"아…"
"야, 내 이름 벌써 까먹은거야? 남기영. 어? 아, 이거 실망이네. 난 아직도 너 완전 기억하는데"
"맞다, 기영…"
잠깐 나이가 어떻게 되었더라 하고 호칭을 고민하는 순간 눈치 빠르게 "야 우리 동갑이잖아. 아 너 장난
아니다" 하고 대답해준 기영. 큼직큼직한 눈코입. 시원하게 웃는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있으리. 이름이야
솔직히 정말 까먹었었지만.
'운명이야 운명'
서로 반가움에 번호를 주고받고, 며칠 간 카톡을 나누다가 기영이 먼저 "주말에 한잔 하자" 하고 제의를
해서, 정말로 술 한잔 마시고 올라고 윤택에게는 윤정이 만나고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만나러 갔다.
원래부터 잘 생기고 색기가 감도는 얼굴이었지만 간만에 본 기영은 더욱 섹시해졌다. 한나는 새삼 생각
했다. 기영이야말로 원래 내 타입이라고. 말빨 좋고 웃기고 말근육에다 시원시원한 남자다운 스타일.
그러고보면 왜 기영이랑 잘 안 됐더라? 아… 맞다. 진욱이. 허진욱 그 조루새끼.
주변의 다른 친구들이 '진득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들이대던 땅꼬마 새끼. 하도 노골적으로 들이대길래
반쯤 포기하는 느낌으로 사귀기로 했는데, 솔직히 나한테 잘하긴 정말 잘했다. 웃기기도 엄청 웃기고.
근데 그러면 뭐하는가.
'남녀 사이에서는 그게 제일 중요한건데'
진욱과의 연애는 불과 3개월 만에 끝났다. 돈 많고 나한테 잘해주면 뭐해. 밤일 솜씨가 형편없는데. 정말
처음 자던 날 속으로 '아 씨발…' 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혼자 정상위로 3분만에 찍…. 난 솔직히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그게 안 맞으면 못 만난다.
그 얼마 후 진욱과 헤어지고 만난게 지금의 남친 윤택이다. 우연히 진송 미술관에 전시보러 갔다가 내가
실수로 그의 발을 밟았는데, 내가 밟아놓고 혼자 놀라 그 자리에서 펄쩍 뛰자 웃으면서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고 시원하게 웃던 남자.
그게 지금의 남친 윤택이다. 사귄지는 얼추 1년쯤 되었다. 뭐 남친으로서는 나름 훌륭하지만 남편감으로
서는 조금…. 돈 안되는 통역일 하는데다, 솔직히 외모가 참 타입이 아니다. 둥글둥글한게 살 좀 빼라고
아무리 말해도 점점 더 찌는 것 같다.
"다 왔습니다"
"카드로 결제할께요"
"거기 대세요"
택시에서 내려 시계를 보았다. 5시 조금 안 된 시간. 나는 윤택의 집으로 향했다. 지금쯤 자고 있겠지.
여튼, 지난 밤. 기영과 간만에 만나 술을 마시는데 솔직히 보자마자…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일에 너무 지쳐서 욕구불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요새 운동한다면서 복근을
슬쩍 까 보여주는데 아…
'왜 내가 남친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을까' 하는 어이없는 후회를 했었다. 하지만 기영은 꽤 거침없는
남자였다.
"운동 한다면서 고기 먹어도 돼?"
"운동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지금 먹으면 다 살로 갈거 아냐"
그 말에 씩 웃으면서 "밤에 운동하면 되지" 하며 눈웃음 치는 그 남자. 한나는 자기도 모르게 픽 웃음이
터졌다. 어쩜 그렇게 과감할까. 윤택이나 진욱에게서는 꿈도 못 꿀 그런 것이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람을 피우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선택이었다.
술잔을 들이키면서도 한참을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술잔을 뺏으며 한 기영의 한 마디에 날아갔다.
"너 여기 나올 때 남친한테 솔직히 말하고 나왔으면 그냥 들어가고, 거짓말 하고 나왔으면 오늘 나랑
자자"
…너무나도 스트레이트한 한 마디. 그리고 난 그 말에 무어라 대꾸 할 수 없었고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조한나 31세.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벽히 남자에게 퍼펙트 KO 당한 순간이었다.
KO는 그 술자리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잠자리에서도 기영은 완벽했다. 정말이지 요 몇 년간의 섹스 중
최고였다. 몇 번을…아. 게다가 매너도 좋았다. 귓가에 속삭이던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어쩌면 그렇
게도 사람 마음을 녹이는지.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외도를 한 거지만 전혀 후회가 안 남을 정도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노라니 어느새 윤택의 집 앞이다. 살짝 옷매무새를 흐트러뜨리고, 마지막으로
통화기록까지 다 삭제하고는 문을 두드렸다.
콩콩콩.
아마도 자고 있는지 반응이 없다. 몇 번을 더 두드리자 겨우 안에서 잠에 찌든 목소리로 "누구세요?" 하는
말이 들려왔다.
"나야"
내 목소리를 듣자 잠이 확 깼는지 윤택은 바로 문을 열었다. 순간 그의 표정에서 분노를 읽었지만 나는
먼저
"자기야…"
하고 콧소리를 내며 그의 품에 안겼다. 윤택은 겨우 몸의 균형을 잡으며 "뭐야, 술 마신거야?" 하고 물었고
난 "웅" 하고 또 취한 척 대답했다.
"미앙해. 새벽까지 술 마셔서엉"
"됐고, 옷부터 벗어. 술 냄새 난다"
센스 넘치는 기영의 조언대로 술 마실 때 머플러에다도 소주 좀 뿌려놓길 잘했다. 윤택의 목소리는 조금
누그러진 듯 했다. 아무렴, 다른 남자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면 차라리 아침까지 연락을 두절하지 이렇게
남친의 집으로 새벽에 쳐들어 올리가 있나.
"뭔 술을 지금 시간까지 마셨어"
"윤정이랑 마시다가아, 종로에서어, 희주랑 민지도 근처라고 해서어 간만에에 4차까지 완전 달렸엉.
자기야, 미안해"
여전히 계속 윤택을 끌어안고 혀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여자친구들이랑 새벽까지 달렸다고 하니까 그의
화도 누그러진 듯 했다. 그렇게 믿고 싶은게 또 사람의 마음이고.
"알았어 알았어, 일단 옷 벗고, 씻어. 그리고 푹 자자"
"엉"
샤워를 또 했다. 그리고 속옷만 입고 윤택을 끌어안고 누웠다. 피곤했다. 술 마셨지, 기영이랑 밤새 즐겼지…
"지금 몇 시야?"
"6시 5분 전. 더 자"
"응"
하지만 그 말과는 달리 윤택은 내 몸을 더듬고 있었다. 남자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귀엽고.
평소 같으면 귀찮다고 거절했겠지만, 오늘만큼은 봐주기로 했다. 잘못한 것도 있으니까 이걸로 퉁 치지 뭐.
그래도 윤택의 미숙한 손길을 느끼자니 새삼 몇 시간 전의 기영이 더 그리워진다. 난 정말로 나쁜 년인 것
같다. 하지만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