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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79)] 그녀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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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남자가 신부 대기실 앞에서 기웃거리는 것은 여러모로 멋적은 일이다. 머리를 긁적
이며 다시 로비 쪽으로 돌아나왔다가, 그렇다고 다른 아는 사람도 없는데 하객석에 혼자 앉아있기도 조금
뭐하고.

'에이이'

그냥 축의금만 내고 갈까 했지만 그러자니 또 결혼식까지 와서 얼굴도 한번 안 보고 가기도 그래서 다시
신부대기실 바깥에 어색한 포즈로 서있노라니 안에서 그녀의 친구들로 보이는 여자 셋, 아니 네 명이
웃으며 나온다. 셋은 모르는데 한 명은 일전에 같이 소정이와 함께 얼굴 본 사이다. 근데 것도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인지. 나 기억이나 할까.

"어? 도진…씨?"

기억하네.

"아, 수미씨! 반가워요"
"아, 소정이 보러 오신 거에요? 들어가 보세요"
"아 예"

상큼하게 웃는 모습이 아 참 이쁘긴 이쁘다. 여튼, 좀 뻘쭘하지만 빼꼼하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소정아"

살짝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안에 들어서니, 화사하게 꾸민 그녀가 예식장 관계자로 보이는 여자랑
같이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아, 도진아!"

원래부터 예뻤지만 신부화장 하니까 정말 예쁘네. 남편될 사람 부럽다.

"와줘서 고마워"
"뭘. 당연히 와야지. 나중에 나 결혼할 때 너도 와줘야 된다? 시집 갔다고 모른 척 하면 안 돼?"
"당연하지! 이야, 너 정장 입은거 첨 보는 거 같다. 괜찮은데? 제법 수트 핏 나온다 너"
"나도 너 웨딩드레스 처음 본다. 또 보면 큰일나겠지"

싱거운 농담에 가볍게 눈을 흘긴 그녀. 그러던 그녀는 "혼자 왔어? 태경이는?" 하고 묻는다.

"태경이는 언제적 태경이야. 연락 안하고 지낸지 오래됐어. 여튼 이쁘다. 시집가서 잘 살어"
"그래 고마워. 잘 살게"
"남편 말 잘 듣고"
"남편이 내 말 잘 들어야지"
"에휴 니 성격 어디 가겠니"

여튼 웃으며 그녀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 "그럼 나 가볼께. 행복해라" 하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왠지
여운 남는 목소리로 "밥 먹고 가. 여기 밥 맛있대" 라고 말했고, 나는 "그래, 먹고갈게" 하고 대답은
했지만 그냥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출출했지만 텅 빈 속으로 예식장을 나오니 곧바로 꼬르륵 거리는 위장의 용트림이 시작되었다. 그냥
돌아서서 먹고 나올까? 했지만 다시 식장에 들어가기는 싫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냥 시원섭섭한
느낌이었지만, 정작 그녀를 보고 돌아나오니 속상했다.

'에휴'

그렇게 좋아했고 그렇게 오래 곁에 있었건만, 끝내 고백 한번 못 해보고 이렇게 그냥 멍하니 떠나
보내는 것이… 싫었다. 병신 같았다. 쨍쨍한 해가 눈을 찔렀다.




"정말? 대박! 그럼 10년도 넘게 친구로 지내면서 한번도 뭐 그런게 없었어?"
"어"
"오빠 대박이다. 진짜 오빠 순정남인가보다"
"순정남은 무슨, 호구새끼지"

그 말을 하면서도 솔직히 웃겼다. 좋아하던 여자애가 시집가는 날에, 그게 속상해서 뜬금없이 풀싸롱에
기어들어와 찌질대고 있는 천하의 개병신 새끼가 나다.

"아 오빠 그렇게 힘들어?"

술이 취해서일까, 아니면 지금 내 처지가 너무 우스꽝스러워서일까. 그만 나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렸고
내가 지명한 이 아가씨 '정아'는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이 일 한지는 한 3년 좀 넘었는데, 오빠같은 손님은 첨 본다. 아니야, 본 것도 같고"
"흐"

흔한 멘트. 나는 무어라 대답 대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정말 이럴 바에야 왜 풀싸롱에를 왔을까.
하지만 곧 그 답은 내 귓가에 속삭이는 그녀의 질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오빠… 오빠가 말한 그 오늘 결혼했다는 친구, 나랑 닮았지?"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괜히 강남 야구장에를 오고 싶었고, 그래서 저번에 완전 이쁘다며 지명했던 아가씨를
젖혀두고 이 아가씨를 내가 지명한 거구나. 6개월 전에 인허가건으로 생전 처음으로 접대받으러 왔다가 본
이 아가씨를 잘도 기억해냈다 싶었다. 그 아가씨가 또 마침 나한테 아다리 걸린 것도 운이 좋았고.

"그런 거 같다"

'정아'는 내 답에 피식 웃고는 말했다.

"하긴 그런 손님은 또 많아. 자기 아는 여자랑,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랑 닮은 언니들 초이스 하는 남자들"

여전히 정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천천히 그녀의 살내음을 맡는다. 향수냄새와 희미하게 섞인 그녀의
농익은 살내음. 좋다.

"방으로 갈래?"

어차피 술 맛도 그리 나지 않는다. 기분이 축 늘어져서일까. 겨우 양주 반 병에 맥주 한 병만으로 반쯤 취한
상태. 노래 부르고 싶은 마음도 안 나고, 이대로 찌질하게 늘어지는 것도 좀 싫다. 하지만 비싼 돈 내고 와서
후다닥 그거나 하고 나갈 생각은 없다.

"시간 아까워"

마치 아기처럼, 그녀의 가슴에 묻었던 얼굴을 들고 솔직하게 말하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특별히, 두 번 해줄께. 올라가자. 여기서 이렇게 늘어지지 말구. 피차 피곤하잖아 이러면"

그 말도 일리 있고, 무엇보다 두 번 해준다는 말에 나는 정아를 끌어안고 말했다.

"그래, 올라가자. 올라가서, 뜨겁게…아주 맛나게 하자"

정아는 그런 나를 내려다보면서 내 이마를 스윽 쓰다듬었다. 그리고 정아의 그 눈빛에서 나는 그녀에 대해
참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어쩌면… 앞으로 나, 강남야구장 단골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른 편 보러가기) - [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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